44화 혼돈스러운 명나라(2)
군기감의 나영실이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조총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균은 병조판서 율곡, 도승지 류성룡, 영의정 박순 등 측근들을 데리고 군기감으로 향했다.
“성능이 개선된 조총을 개발했다는 것이 사실이오!”
“그러하옵니다. 전하!”
나영실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수고가 많았소. 자 그럼 신형 조총의 위력을 한번 보도록 합시다!”
이균이 대신들과 함께 자리에 앉자, 곧 응양군 갑사 한 명은 구식 조총을 한 명은 이번에 개발한 신형 조총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먼저 구식조총을 들고 있는 갑사가 사격 준비를 했다.
갑사는 오랜 훈련을 했는지 기계적으로 납탄을 총열에 삽입한 후 화약통에서 화약을 꺼내 조총에 넣은 후 도화선을 불을 붙인 후 약 100미터 앞에 놓여 있는 수박을 겨냥했고, 잠시 후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납탄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할 뿐 수박은 멀쩡했고, 이를 참관하던 이균과 대신들의 입에서는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구식 조총을 가진 갑사가 물러나고 신형 조총을 가진 갑사가 앞으로 나왔다.
신형 조총에는 도화선이 없었고, 갑사는 조총에 붙어 있는 태엽을 감은 후 곧바로 100미터 전방에 있는 수박을 겨누었고, 곧바로 불꽃과 함께 납탄이 회전하며 수박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납탄은 수박 정중앙을 그대로 명중시켰고, 수박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하하! 대단하구려!”
신형 조총이 성공리에 발사되자, 이균은 흥분된 모습으로 호탕하게 웃었고, 율곡을 비롯한 대신들도 신형 조총의 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하! 신형조총의 위력이 대단하옵니다”
율곡도 감격에 찬 목소리로 신형 조총의 성공적인 발사를 축하했다.
“이제 조선은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조총을 가지게 되었소. 이제 누가 과연 조선을 넘볼 수 있겠소.”
“그러하옵니다. 전하! 대명국도 이제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도승지 류성룡도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내가 한번 조총을 직접 쏘고 싶구려!”
이균은 신형 조총의 실력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지, 바로 앞으로 나아가 갑사가 가지고 있던 신형 조총을 건네받은 후 총열에 납탄을 넣은 후 커다란 수박을 겨냥하더니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균이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조총은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납탄을 토해냈고, 납탄은 곧장 커다란 수박을 향해 날아가 수박을 산산조각냈다.
“전하! 명중이옵니다!”
이균이 정확히 수박을 명중시키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신들이 탄성을 질렀고, 이균도 기분이 좋은 듯 조총을 한 손으로 치켜들며 활짝 웃었다.
“흐음. 조총의 성능이 아주 좋구나. 장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사거리도 늘어난 것 같고. 또 파괴력까지 늘었으니 과연 천하제일의 무기로구나!”
“전하!”
나영실은 신형 조총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지 염려되어 조마조마했는데,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영실을 비롯한 군기감 관원들의 고생이 컸소. 여봐라! 천하제일의 조총을 만든 이들에게 은자를 두둑이 내리도록 하여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은 신형 조총의 위력이 무척 맘에 드는지 조총을 개발한 이들에게 은자를 두둑이 하사했고, 나영실을 비롯한 군기감 관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군기감이 개발한 신형 조총은 곧 양산되어 야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북방, 도성 등 주요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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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자금성
“왜 이렇게 은자가 모이지 않는 것이냐!”
장거정을 대역죄인으로 몰아 죽은 만력제는 모든 정사를 거부하고 은둔형 외톨이처럼 자금성 깊숙한 곳에 은거하며 오로지 은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저······. 폐하. 은자를 확보하는 주 수입원인 청화백자를 조선이 팔고 있어서······.”
내탕금을 관리하는 대신 홍순후가 만력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거야 내 알바가 아니고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은자를 모으도록 해라! 세금을 더 뜯어내면 되는 것이 아니냐!”
홍순후가 변명을 하자 만력제가 역정을 냈다.
“황상폐하. 지금 은자가 부족해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사옵니다. 또 북방에서는 군자금을 보내 달라고 아우성인데······. 폐하! 우선 내탕금이라도 보태 북방에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인들과 몽골족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무어라! 내탕금을 내주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 장수들이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냐. 다 지들이 군자금을 핑계로 해먹으려 하는 것이 아니냐!”
“폐······. 폐하!”
홍순후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만력제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듯했다.
스승으로 모시던 장거정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배신감에 정신을 잃은 것인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오로지 내탕금을 모으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 땅 곳곳을 뒤져 은광을 개발하도록 하여라!”
“황상폐하! 은광은 이미 개발되어 은을 채취하고 있으나, 채굴되는 양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명은 은이 풍부하지 않습니다!”
“어허 무슨 말이 그리 많은게냐! 제국의 땅이 이리 넓거늘 샅샅이 뒤지면 나오지 않겠느냐. 지금 당장 환관들을 광세사로 임명해 전국에 이들을 보내 은광을 찾도록 하라!”
“그······. 그리 하겠나이다!”
만력제의 명이 있자, 홍순후도 더는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전국 곳곳에 광세사를 보내 명 전국 곳곳을 파헤쳤지만, 명의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은은 찾지 못했다.
“또 조선이 청화백자를 싸게 팔면 우리는 더 싸게 팔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명이 청화백자만 있는 것이냐. 비단도 있고, 생사도 있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도록 하여라!”
“그······. 그리 하겠습니다!”
조선이 청화백자를 저가에 판매하여 은이 제대로 모이지 않자, 만력제는 내탕금을 모으기 위해 경덕진에서 만들어지는 청화백자를 조선보다 싸게 덤핑으로 팔라고 지시했고, 황명을 받은 경덕진은 거의 원가 수준으로 청화백자를 싸게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공급했다.
그뿐만 아니라 명은 비단, 생사 등을 포르투갈 그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은광인 이와미 은광을 가지고 있는 왜에 팔아 은자를 유통했다.
명나라가 은자를 유통하기 위해 비단, 생사를 싸게 판 덕분에 왜놈들은 보다 큰 이득을 얻고 있었다.
조선과 명에서 청화백자를 사이에 두고 가격경쟁이 붙자 신이 난 것은 포르투갈 등 유럽 상인들이었다.
조선과 명이 경쟁을 벌이며 청화백자를 저가에 공급하자, 그들은 저렴하게 청화백자를 구해 유럽에 고가로 내다 팔며 엄청난 부를 챙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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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명령으로 단천 은광의 채굴이 제기되자 조선 팔도에서 백성들이 모여들어 은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단천에는 생각보다 양질의 은이 매장되어 있어, 조선이 개발한 연은분리법을 통해 질이 좋은 은이 채굴되었고, 단천에는 광부, 상인 등이 몰려들고, 숙박업소, 은행 등이 들어서며 광업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생사는 어떤가 잘 만들어지고 있는가?”
광주 관요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를 강화도로 운반하는 하청을 맡아 제법 많은 돈을 번 한성 유통의 객주 정득주가 행수 정치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객주 어르신 생사가 생각보다 품질이 좋습니다요. 왜놈들한테 충분히 팔 수 있는 수순입니다.”
“흐음. 잘 되었구먼! 그럼 생사를 왜놈에게 팔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게. 막사발도 여전히 왜놈들한테 잘 팔리고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막사발이 대량으로 만들어져 예전처럼 가격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요.”
도자기 유통업으로 상단 규모를 키운 한성유통은 어느덧 조선에서 제일 가는 상단 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고, 한성유통은 도자기 유통뿐만 아니라 인삼 등도 명나라, 왜에 팔며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이번에는 생사(비단원료)를 직접 생산해 왜에 파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비단은 명나라의 전유물이었는데, 명은 청화백자뿐만 아니라 비단, 생사(비단원료) 등을 유럽뿐만 아니라 왜에 팔아 부족한 은자를 유통했는데, 조선의 개인기업이 생사를 왜에 수출하려 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품질 좋은 생사를 만드는 데 꽤 애를 먹었으나, 오랜 노력 끝에 명의 생사와 품질이 유사한 생사를 만들게 되었다.
“남만선(갈레온선)이 언제 오는가?”
“내달 말에 올 것입니다요!”
그동안 판옥선으로 왜를 오가던 한성유통은 처음으로 갈레온선을 포르투갈에게서 구입했다.
“흐음. 그럼 이번에는 남만선(갈레온선)으로 왜를 가보세. 이제 우리도 좀 더 큰 상단이 되어야 하네. 왜놈들 상단은 저 멀리 서반아(스페인)가 지배하고 있는 비율빈(필리핀)과도 거래하며 많은 돈을 벌고 있다지 않는가! 우리도 마땅히 먼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돈벌이를 만들어야 하네. 그러기 위해서는 먼 바다를 나갈 수 있는 남만선(갈레온선)이 반드시 필요하네!”
객주 정득주가 야망이 가득한 눈으로 행수 정치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야망은 도자기 유통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이미 류성룡이 지은 서방견문록을 통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제국의 상단들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먼 바다로 나아가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도 이제 먼 바다로 나아가 새로운 세계와 교역하고 싶었다.
“객주님!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습니다요. 남만선(갈레온선) 한 척이 더 내년에 도착할 것이고. 선원들도 모으고 있습니다요.”
“흐음. 그래! 먼 바다로 나가 보세!”
한 달 후 생사와 막사발을 가득 실은 갈레온선은 부산포를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로 향했고, 조선 생사의 품질이 명나라 생사의 품질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것을 확인한 왜의 상단은 조선 생사를 지속적으로 구입하기로 했고, 생사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안 조선의 농민들에게 누에고치를 키우는 열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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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경복궁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균은 늦은 밤 홀로 중전의 방에도 가지 않고 독한 소주를 비우며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명이 조선보다 더 싸게 청화백자를 만들고 있다?”
이균은 소주가 가득 든 잔을 비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은자가 부족한 명이 원가에도 못 미치게 청화백자를 덤핑으로 판매하자, 조선은 그로 인해 청화백자의 수출량이 줄어들었고 판매마진도 확 줄어들었다.
명나라 자기보다 품질이 더 좋아 명의 저가 공세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최대의 도자기 산지인 경덕진의 덤핑 공세가 지속되면 국가 재정 상당수를 청화백자를 팔아 충당하는 조선으로서는 이를 이겨내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명황제의 미친 짓이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냈구나!”
장거정 제거까지는 좋았는데, 은을 모으는데 미친 만력제의 광기가 청화백자의 덤핑 판매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이균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친 황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
이균은 소주잔을 다시 단숨에 비운 후 섬뜩한 눈빛으로 소주잔을 벽을 향해 집어 던졌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소주잔은 산산조각이 났다.
“전하!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흐음. 그래! 이제야 왔구나. 들라하라!”
이균이 들라하자, 빗물이 뚝뚝 떨어트리며 왼쪽 뺨에 깊숙한 칼자국이 있는 거친 외모의 한 남성이 들어와 이균을 향해 큰 절을 올린 후 그를 바라보았다.
‘과연 살기가 가득하구나.’
깊은 밤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본래 그런 것인지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그대가 리마홍이란 해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