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장거정을 제거하라!
“무어라! 지금 역적이라 했느냐!”
금의위 군졸들의 입에서 역적이라는 말이 나오자 장거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환관 풍보와 공모하여 황상 폐하를 시해하려 한 역모를 저질렀으나 당장 추포하여 신문하라는 황명이요.”
“황상폐하를 시해하려 했다! 하하하. 지금 그것을 말이라 하는 것이냐. 어디서 수작을 하는 것이냐”
장거정은 역정을 내며 직접 그를 추포하러 온 금의위 수장을 나무랐다.
그러나 금의위 수장은 아무 표정 없이 냉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서 저 역적 놈을 추포하라!”
금의위 수장이 명을 내리자 덩치가 산만한 금의위 군졸들이 장거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놓아라! 이놈들. 감히 어디서.”
나라의 재정을 걱정하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장거정은 고함을 치며 저항했으나, 이내 건장한 체격의 금위의 군졸들에게 제압당해 손발이 꽁꽁 묶여 황궁으로 압송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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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섭정으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 권력자에서 순식간에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손발이 꽁꽁 묶인 채 형틀에 앉아 있는 자신의 운명에 장거정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만력제을 바라보았다.
장거정 옆에는 이미 모진 고문을 당했는지, 피가 흥건히 젖어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환관 풍보가 거의 실신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황상폐하! 어찌 신에게 역모의 죄를 묻는 것이옵니까!”
장거정은 눈물을 떨구며 만력제를 바라보았고, 만력제는 그런 장거정의 애절한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그 요망한 입을 당장 닫으라! 이미 풍보에 의해 그대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졌거늘. 어서 이실직고하고 황상폐하께 용서를 구하라!”
황제 옆에 있는 환관 이소가 만력제를 대신해 장거정을 꾸짖었다.
“무어라! 환관 따위가 어디서 입을 나불거리는 것이냐! 폐하 환관의 뱀과 같은 혀에 속으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장거정은 그제야 이 모든 것이 환관 이소가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거정은 환관 이소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의 인상이 맘에 들지 않았으나, 혹독한 황제 수업을 받고 있던 만력제가 그마나 이소를 곁에 두고 의지하고 있기에 그를 차마 내치지 못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황상폐하! 대역죄인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모양이옵니다. 친히 국문을 하시어 대역죄인을 벌하소서!”
환관 이소가 만력제에게 친히 국문을 하라 했으나, 만력제는 장거정의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보고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다.
“이소야. 차······. 마 짐이 국문을 못하겠구나. 니가 짐을 대신에 국문 하······. 도록 하여라!”
만력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상폐하! 지엄하신 황명을 받들어 그리 하겠나이다!”
“장거정은 듣거라! 그대가 황상폐하를 속이고 재물을 몰래 모아 그 재물로 사병을 모아 황상폐하를 시해하고 옥좌를 차지하려 한 것이 사실이냐!”
“이런! 어디서 환관 따위가 황상폐하를 대신해 국문을 한다는 것이냐. 황상폐하 요망한 환관 따위에 속지 마소서! 소신은 오로지 선황제의 유지에 따라 황상폐하를 성군으로 만들어 제국이 만세토록 존속하기를 바라올 뿐입니다. 소신의 충심을 어찌 이리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장거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만력제를 바라보았으나, 만력제는 또다시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대가 아직도 재상인줄 아는가! 어디서 황상폐하를 겁박하려 드는 것인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이봐라 지엄하신 황명을 받들어 저자가 이실직고 할 때까지 주리를 틀도록 하라!”
환관 이소가 만력제의 이름을 빌어 서슬이 퍼런 권력자 장거정을 고문하라 하자, 군졸들이 머뭇거렸다.
“지엄하신 황명이 내려졌거늘! 뭐 하는 것이냐! 당장 주리를 틀라 해도!”
이소가 다그치자 그제야 군졸들이 커다란 몽둥이를 장거정의 다리 사이에 엇갈려 끼워 고문을 가했다.
“으악! 황상폐하!”
장거정의 비명소리가 국문장에 울려 퍼졌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신들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꽤 오랜 시간 고문이 계속되었으나 장거정 입은 무거웠다.
“아직도 이실직고하지 않는 것이냐!”
이소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문으로 초췌해진 장거정을 바라보았다.
“폐하! 어찌 소신을 믿지 못하시는 것이옵니까! 황상폐하를 보필할 이는 소신밖에 없거늘.”
어린 만력제가 환관 따위의 감언이설이 놀아나 자신을 대역죄인으로 몰아세우니 장거정은 앞으로 명제국의 운명이 걱정돼 절로 탄식이 나왔다.
“이런 고약한지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이소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군졸이 숯불에 달구어져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를 가져가 장거정의 몸뚱이를 지졌다.
“으악!”
살이 타는 비릿한 냄새와 함께 장거정은 비명을 지르다 잔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혼절했다.
그러자 군졸들이 찬물을 장거정의 몽둥이에 뿌렸고, 그제야 장거정은 눈을 떴다.
“이제 이실직고 하렸다!”
“무엇을 이실직고하라는 것이냐. 차라리 나를 죽여라!”
모진 고문에 몸이 상할 때로 상한 장거정은 차라리 빨리 자신을 죽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고약한지고!”
모진 고문에도 장거장이 자백하지 아니하자, 환관 이소가 혀를 끌끌 찼다.
“청백리를 자처하던 그대가 황실보다 많은 재물을 부정축재한 연유가 무엇이냐!”
“그······. 그것은 황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이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거늘!”
“허허. 그래도 이놈이! 조정에 은이 부족해 난리인데 그대의 비밀 금고에는 은자가 넘쳐 흐리고 있었거늘. 다 불순한 의도가 있어 은자를 모은 것이 아니더냐!”
“이······. 이놈 내 너의 목을 잘랐어야 했거늘. 세 치 혀로 어찌 황상폐하의 혜안을 흐리는 것이냐!”
“이······. 이놈이. 어디서 그따위 변명을 하는 것이냐. 뇌물을 받아 조정을 네놈의 측근으로 모두 채워 넣고, 사사로이 강릉에 있는 요왕부를 차지해 마치 황제인 양 행사하지 아니하였는가. 게다가 네놈의 자식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곽에 급제시키고 역참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등 섭정의 지위를 이용해 국정농단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허허! 참 많이도 조사하였구나’
장거정은 기가 막혔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재상이 그 정도 비리가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환관 이소는 만력제를 부추겨 장거정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장거정을 역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그 것은.”
장거정은 기가 차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서 이실직고 하렸다. 그대는 섭정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권력을 사유화했고, 결국 옥좌가 탐이 나 재물을 모아 역모를 도모할 사병을 기르려 한 것이 아니냐!”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더냐. 네놈이 작정을 하고 나를 대역죄인으로 만들려 하나 나는 한 점 부끄러운 것이 없도다!”
장거정이 마지막까지 발악했다.
그 순간 모진 고문에 실신해 있던 환관 풍보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네 이놈! 환관 풍보가 네놈과 역모를 도모했다며 모든 것을 발설했거늘 아직도 네놈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흑···. 흑. 장 재상. 모······. 든 것이 끝났소.”
풍보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장거정을 바라보았다.
장거정과 함께 국정을 논했던 환관 풍보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장거정과 모의해 만력제를 시해하고 장씨의 나라를 만들려 했다며 거짓 자복을 한 상태였다.
“하하하! 명의 운명이 참으로 걱정되는구나! 이보시게들 내가 과연 역적인가! 말들을 해보시게!”
장거정은 국문장을 둘러싸고 있는 대신들을 향해 소리쳤으나,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원리원칙에 따라 완벽한 개혁을 추구했던 그였기에 그의 개혁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으나, 그의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인해 기득권을 침해받는 관료들 또한 상당수였고 이들은 장거정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장거정이 섭정을 하며 권력의 정점에 있었기에 그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장거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대역죄인이 되어 국문을 받고 있는 것을 오히려 통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국문을 환관 이소에 맡기고 장거정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던 만력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 사부. 짐은 그대를 믿었소. 그러나 황제의 믿음을 이용해 역모를 도모하려 했다니······. 짐은 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 것이오.”
“황상폐하! 선황제 폐하의 유지를 받는 소신을 믿지 못하고, 어찌 간신배의 감언이설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흑······. 흑!”
장거정은 목 놓아 울부짖었으나 만력제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만두시오! 증자가 이렇게 많거늘. 어찌 변명 따위로 일관하는 것이오. 선황제를 모신 그대의 공로를 생각해 그대의 시신은 온전히 보전하고자 했으나, 그대는 끝까지 황제를 능멸하는구려!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고 섭정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불충을 도모한 장거정을 즉시 능지처참하고 그 일족을 모두 멸할 것이며, 부정축재한 가산을 모두 몰수하도록 하여라!”
만력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장거정을 능지처참하고 그 일족을 모두 도륙하라는 명을 내리고 국문장을 박차고 나갔다.
“황상폐하! 부디 성심을······. 흑흑.”
장거정은 끝내 말을 잊지 못하고 매몰차게 돌아서는 황제를 향해 마지막 절을 올렸다.
어린 만력제에게 장거정은 황제의 도리를 알려주려 한 스승이자 어버이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만력제를 성군으로 만들려는 의욕이 너무 강한 탓인지, 장거정은 어린 황제를 혹독하게 대했고, 어버이 정이 그리웠단 만력제는 냉철하고 혹독한 장거정의 태도에 마음의 상처가 쌓여 있다가, 장거정이 황제를 시해하기 위해 은자를 모으고 있다는 환관 이소의 농간을 그대로 믿고 명재상 장거정을 그렇게 속절없이 보내 버렸다.
장거정은 곧 형틀에 매달려 온몸의 살이 찢겨 고통에 신음하다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머리는 베어져 효수되었다.
그의 가산은 몰수되었으며 그의 일족은 모두 참수되었다.
장거정이 처형된 이후, 만력제는 믿었던 충신에 대한 배신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침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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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병판. 이렇게 체력이 약해서 어디 쓰겠소. 어서 달리시오!”
이균, 도승지 류성룡, 병조판서 율곡, 그리고 정후청장 김명원이 이른 아침부터 가벼운 차림으로 궁 밖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율곡은 힘이 달리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자꾸만 뒤처지려 했다.
“전하! 조금만 쉬었다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참, 나. 한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자가 이렇게 나약해서 쓰겠소. 잔말 말고 한 바퀴만 더 돕시다!”
이균이 자꾸 뒤처지려 하는 율곡을 닦달하자, 류성룡과 김명원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평생 서책이나 읽던 율곡은 죽을 맛이었다.
느닷없이 왕이 매일 아침 조깅을 하자 하니 어명이라 거절할 수도 없고, 매일 아침이 죽을 맛이었다.
본래의 역사대로 라면 선조는 56세, 44세에 세상과 작별하고 저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균은 그렇게 일찍 죽기가 싫었다.
56세라면 한참 세상을 즐길 나이인데, 60도 넘기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믿고 있는 천재 율곡은 선조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니 이를 막고 싶었기에 직접 운동을 시작으로 건강관리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왕의 뜻을 알지 못하는 율곡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균과 류성룡 그리고 김명원이 차례로 결승선에 들어왔으나, 율곡은 뒤처져 한참 후에야 비실대며 들어왔다.
“자. 다들 고생했소. 시원한 꿀물 한 잔씩 합시다!”
5킬로 구보를 마친 이균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낸 후 궁녀에게서 꿀물이 들어 있는 사발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휴. 시원하고만! 어떻소! 이렇게 운동하고 꿀물 한 사발 마시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 않소!”
뒤늦게 들어온 율곡도 궁녀에게서 꿀물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율곡은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전하! 요즘 제가 몸이 좋지 않아 며칠 쉬면 안 되겠습니까!”
율곡이 쭈뼛거리며 야속하다는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어허. 이 사람이 어명이요. 어명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않소!”
이균이 히죽히죽 웃으며 율곡을 바라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시원한 꿀물로 속을 달랜 이균은 그들과 함께 궁궐 주변을 거닐었다.
“이렇게 운동을 하니 참 기분이 상쾌하구려!”
“그러하옵니다. 전하!”
“흐음. 명나라의 재상 장거정이 제거되었다고요!”
이균이 정후청장 김명원을 바라보았다.
“그렇사옵니다. 정후청 요원 이소가 맹활약한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