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조세개혁
“그렇소. 일조편법을 시행하도록 하고, 은본위제를 시행하려 하오!”
“전하! 일조편법이라 하셨습니까!”
율곡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그도 조선의 조세제도가 백성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공평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어 조세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기득권층인 사대부들의 반발이 예상되어 과감한 조세개혁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왕께서 먼저 칼을 빼 든 것이었다.
“그렇소. 아시다시피 조선의 조세제도는 토지에 부과하는 전세, 양인 남자에 부과하는 군역 및 요역, 그리고 특산물을 받치는 공납제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납의 폐해가 커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소.”
이균의 말대로 지방의 특산물을 받치도록 하는 공납제도는 특산물을 구하기도 어렵고 운반과 저장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제력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부과했기에 백성들이 힘들어했는데, 결국 공물을 구하기 힘든 백성들은 이를 대납하는 방납이 성행했는데 중간 수탈이 심해 백성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전하! 그러하기는 하나 그렇게 되면 사대부들과 사림들의 반발이 크지 않겠사옵니까. 일전에도 우의정 김육이 공납제도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토지 면적에 따라 쌀 또는 면포로 세금을 내는 대동법을 주장했지만, 지주들의 반발로 무산된 일이 있사옵니다.”
류성룡도 조선의 조세제도를 개혁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공감하지만, 조세제도를 잘못 개편했다가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들이나 사람들의 반발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세금을 은으로 내도록 하자는 것이오. 조선은 이제 은이 풍족하지 않소. 각종 부역과 공납, 잡세 등을 일원화해서 토지 소유의 양, 재산의 양에 따라 세액을 결정하고 모두 은으로 납부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소.”
청화백자, 막사발 등을 팔아 막대한 은이 조선에 흘러들어오고 상업이 발전하고 있기에 이균은 이제 일조편법을 시행해도 큰 탈이 없고 오히려 각종 부역과 공납제도의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이 일조편법을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부 사대부들이 반대하겠지만, 절대적 지지층인 백성들이 일조편법을 지지한다면 사대부들도 더는 반대하지 못하고 이를 수용하리라는 것이 이균의 계산이었다.
“전하. 그런 것은 사실이오나, 가뜩이나 서인들이 전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조세제도를 급진적으로 개혁하면 서인들이 또 무슨 짓을 할까 염려되옵니다. 조세 제도의 개혁은 잠시 미루시어 때를 보아 시행하시옵소서!”
율곡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때를 기다리자 했다.
“아니오. 지금이 적기요. 백성이 지지할 것이요. 서인 놈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는 것이요. 일조편법과 은본위제를 동시에 시행하면 그 충격파가 크지 않을 것이요. 아니. 오히려 은이 유일한 화폐가 되어 조선의 상업은 더욱 발전할 것이오.”
류성룡과 율곡의 만류에도 이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들은 이균이 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하는 성격임을 잘 알기에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흐음. 그리고 함경도 단천에 은광이 있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명에서 조공품으로 은을 요구해 지금은 은을 캐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도 꽤 규모가 큰 은광이 있었는데, 그것에 단천 은광이었다.
은의 질도 제법 좋아 조선 초 은을 채굴하였으나, 이를 안 명나라가 은을 조공품으로 마칠 것을 요구해 태종은 은 채굴을 일시 중지하였다가 다시 채굴되었는데, 결국 명의 무리한 조공요구로 중종시대에 다시 채굴이 전면 중지되었다.
“은을 다시 채굴해야겠소!”
“전하! 그렇게 되면 명이 또다시 은을 조공품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사옵니다.”
류성룡이 입을 열었다.
“일조편법과 은본위제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은을 유통시킬 필요가 있소. 조선에 좋은 은광이 있는데 이를 묵힐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명나라와의 관계는 이미 틀어졌소. 그들이 조공 요구를 두려워할 필요가 더는 없소.”
“전하 그리하시옵시소. 조선에는 연은분리법이라는 제련기술이 있어 납 한 근으로 은 두 돈을 넉넉히 불릴 수 있어, 은을 넉넉히 쓸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율곡은 적극적으로 은광개발에 찬동했다.
“흐음. 그렇지요. 조선에는 연은분리법이 있지 않소. 그런데 그 기술을 왜놈들이 훔쳐가 사용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요. 조선이 일찍이 연은분리법을 이용해 은을 채굴했다면 조선이 더욱 부강해졌을 것이거늘.”
16세기 전세계의 기축통화는 은이었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대규모 은광을 발견해 은을 전세계로 유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명도 비단, 도자기를 포르투갈 등에 팔아 받은 은을 화폐로 유통하고 세금도 납부하게 했다.
일본도 세계 최대의 은광은 이와미 은광을 발견해 막대한 양의 은을 채굴해 막대한 부를 챙겼고 그 은광을 차지하기 위해 전국시대 영주들이 다툼을 벌였다.
이와미 은광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얻게 되었고, 결국 이와미 은광을 차지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한 후 은광에서 나오는 은을 기반으로 군자금을 마련해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이 처음부터 막대한 양의 은을 채굴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와미 은광에서 나오는 은광석에는 다량의 납이 들어 있었는데, 당시 일본은 제련법이 발달되지 않아 생산량이 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연은분리법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은 제련법을 가지고 있었다.
무쇠 회로나 냄비 안에 재를 그 안에 채운 다음 깨진 질그릇으로 덮어 숯을 피워 은을 분리하는 기술로 은광석 안에 든 은과 납의 녹는 온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착안해 납이 먼저 녹아 산화되면 그 납이 은광석으로부터 분리되어 순수한 은만 추출하는 기술로 당시로써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는 유럽의 은제련법보다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발견한 은광에 수은아말감 공법을 썼는데, 제련과정에서 막대한 수은가스가 발생하여 수천 명의 인디언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신대륙에서 가져오는 은은 인디언들의 목숨과 바꾼 것이었다.
반면 일본은 채굴한 은광석을 쌓아놓고 오랜 시간 동안 나무를 떼써 가열시킨 후 남은 재에서 은을 추출했는데 이는 막대한 비용과 노동력이 들어가는 데 비해 생산되는 은의 양이 적은 비효율적이고 원시적 방법이었다.
그러하기에 왜놈들은 16세기 전반만 해도 자신들이 채굴한 은광석을 조선으로 가지고 와 은을 제련했는데, 왜놈들은 결국 조선의 첨단 은제련술을 훔쳐갔다.
조선의 선진 기술을 훔쳐간 일본은 곧 엄청난 양의 은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직전에는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은의 3분의 1을 생산하게 된다.
조선이 일찍이 개발한 선진적인 제련기술로 은을 대량 생산해 유통했다면 조선은 더욱 빨리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나, 고작 명나라에 조공으로 빼앗길 것을 염려해 질 좋은 은광을 스스로 걸어 잠갔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균은 이제 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은을 다시 캘 것을 명하고 일조편법과 은본위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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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소리여!”
“아이구 자네는 언문도 모르는가! 이제부터 세금은 무조건 은으로 내라고 하지 않는가!”
일조편법과 은본위제는 도승지, 율곡 등 일부 이균의 측근들에게만 알려진 채 비밀리에 계획이 되어 서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한양을 비롯한 조선 8도에 일조편법과 은본위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내용의 방이 붙었고, 백성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조세개혁을 알리는 방을 읽으며 설왕설래했다.
“아니. 그러믄. 이제 힘들게 특산물을 받치지 않아도 된다는 거여!”
“그렇다는 거 아녀 지금. 돈이 많거나 땅이 많은 놈들은 세금을 더 내고, 그렇지 않으면 조금 내고, 세금도 다 은으로 내고 뭐 그렇다는 거 아녀!”
“아이고. 잘 됐구먼! 공납하느냐고 개고생했는데 말여!”
“그러게 말이야! 나라님이 아주 일을 잘하는구먼!”
이균의 예상대로 그동안 공납제로 인해 고생을 했던 백성들은 일조편법에 대해 환호했다.
또 도자기 등을 팔아 막대한 양의 은이 유통되고 있어 은본위제에 대한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많은 토지를 가진 지주들은 세금을 더 내야 했기에 불만이 컸고, 특히 서인들은 자신들을 배제한 채 나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조세제도를 개혁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조세제도를 원상태로 복원하라며 연일 상소를 제기했지만, 이균은 서인들의 불만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왕립 조선은행을 만들어 통화 정책을 관리했다.
은본위제로 은이 화폐로 쓰이게 되며, 막대한 양이 조선에 흘러들어오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기에 적절한 통화정책을 통해 은을 관리할 필요성이 있기에, 통화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중앙은행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조선 8도에도 은행을 만들어 상단이나 백성들이 번 은을 저축하거나 상업을 위해 필요한 경우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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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북경
“흐음. 은자가 왜 이리 부족한 것이요.”
장거정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재정 관리 대신을 바라보았다.
“재상님! 청화백자를 팔아 은자를 충당했는데, 조선이 거래선을 가로채 청화백자를 저가에 팔고 있어, 수입이 줄어든 것이 크옵니다.”
“허허. 이놈들이······. 감히! 이러면 곤란하지 않소. 가뜩이나 은자가 들어갈 곳이 한두 곳이 아니거늘.”
장거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도 조선과 같이 일조편법과 은본위제를 택해 부역과 조세, 잡세 등을 일원화해 은으로 세금을 받았는데, 유통되는 은은 도자기, 비단 등을 팔아 충당했다.
명나라 초기에는 절강성과 복건성에서 연간 100만 냥 이상의 은이 채굴되어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은의 수요를 충당할 수 있었으나, 곧 매장량이 한계를 드러냈고, 그럴수록 명은 청화백자와 비단 등을 팔아 은을 충당해야 했는데, 느닷없이 조선이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팔아 명나라로 들어오는 은의 양이 확 줄어들었다.
게다가 호시탐탐 명을 노리는 몽골족과의 전쟁을 치렀고,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이기는 하나 몽골족의 침략을 대비해 북방에 많은 병력을 배치해야 했기에 많은 양의 은이 국방비로 북방으로 흘러들어 가 가뜩이나 은이 부족한 상황인데 조선이 나타나 명나라의 주 수입원을 가로채니 명나라에서는 심각한 은 부족 현상이 나타냈다.
은이 부족하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심지어 세금을 낼 은이 부족해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나타나 명은 심각한 경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은은 명 제국이라는 거대한 몸둥아리를 타고 흐르는 피와 같은 것인데, 그 피가 돌지 않으니 명제국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고,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다 보니 장거정은 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구려. 당장 북방의 장수들이 은자를 보내달라고 아우성인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조선이 훼방을 놓는 이상 은자의 유통이 쉽지 않습니다. 당장 은이 부족하면 왜놈들과 거래하며 은을 달라 사정할 수는 있겠지만, 임시방편 아니겠습니까. 조선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조선을 친다!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오. 조선에 20만 대군이 있다 하지 않소. 조선을 치기 위해 대군을 빼면 그 틈을 타고 몽골의 알탄 칸이 분명 북경을 넘볼 것이오! 진퇴양난이로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은자를 확보할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기에 장거정의 어두운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황실의 비밀경찰 금의위 소속 군졸 수백 명이 막무가내로 장거정의 집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
지그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 있던 장거장이 갑작스러운 소동에 눈을 떠 금의위 군졸들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역적! 장거정은 황명을 받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