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39화 (39/202)

39화 유럽에 사절단을 보내볼까(1)

“그러하옵니다. 전하! 교황께서 조선 사절단을 원하고 계시옵니다!”

예수회 소속 신부 마테오 리치는 조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천주교에도 호의적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예수회에 보냈고, 예수회는 마테로 리치의 서신을 로마 교황청에 다시 보내 조선의 실상을 알렸다.

마테오 리치의 서신을 받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을 흥미로운 나라라 여기게 되었다.

당시 로마 교황청은 날로 세력이 커지고 있는 신교도들로 인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절대다수의 유럽 왕조들이 천주교를 신봉하며 교황의 권위를 존중해주고 있었지만, 네덜란드의 신교도들은 펠리페 2세의 강압적인 신교도 탄압에 항거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신교도들의 반란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펠리페 2세가 고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교도들인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동유럽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교황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로마 교황청은 그러한 수세를 전환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선교활동을 펼쳤고 그 선봉에 있는 것이 예수회였다.

예수회 덕분에 신대륙과 왜에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며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으나,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중국의 속국이라 여기던 조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천주교에 호의적이라 하니 그레고리우스 13세 조선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본래 교황청은 엄청난 인구를 가진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 명나라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포교활동을 하고자 했으나, 명은 쇄국주의 정책을 고수하며 천주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명나라의 제후국이라 여기던 조선이 천주교에 호의적이라 하니 조선을 전진기지로 삼으면 명나라에 천주교를 포교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게다가 조선에서 명나라의 품질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청화백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니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조선이 과연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어졌다.

“교황께서 조선의 사절단을 보고 싶어 하신다니 영광이구려!”

이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마셨다.

“전하! 사절단을 보내시옵소서. 유럽 각국은 아직도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 못하옵니다. 이번 기회에 사절단을 보내시어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이 아닌,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실 필요가 있사옵니다.”

“하하하! 그대 생각이 맞소. 유럽 열강들에게 조선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나라에 불과하겠지요. 이번 기회에 조선이 어떤 나라라는 것을 그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겠소!”

‘이번 기회에 국가 브랜드를 높여야겠구만!’

이균도 로마 교황청의 사절단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참에 유럽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제대로 메이킹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들의 무역로가 어떠한지 알아 두면 나쁠 것이 없겠지.’

언제까지 포르투갈 상단에 의지해 청화백자를 수출할 수만은 없기에, 이번 기회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포르투갈 제국의 동방 무역로를 파악해두면 훗날 이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균의 생각이었다.

여러모로 유럽에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이 나쁠 것이 없었다.

****

함경도 동구비보

이제 갓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초가을의 입구에 들어섰건만, 야인을 바라보고 있는 최전선은 벌써 매서운 삭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동구비보는 백두산이 멀지 않은 함경도 최북단 삼수라는 곳을 지키는 야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전방 방어진지였다.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받쳐-

-충성을 다하리라! 다짐했노라!-

일부 군졸들은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군졸들은 연병장에 모여 조총을 들고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군졸 몇 명은 망루에 올라서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워매! 이제 초가을인데 이리 춥다냐!”

“그러게 말이여!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모르겠구먼!”

보초를 서고 있는 군졸들은 초가을부터 불어오는 삭풍에 이번 겨울을 또 어떻게 견뎌야 할지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운도 지지리 없당게. 어떤 놈은 운이 좋아서 부산포에서 니나노 하고 있는디 하필 최전방에 걸려서 개고생이니······.”

군졸하나가 최전방에 배치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했다.

“아이구 그건 그렇고. 올가을엔 야인놈들이 그냥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구먼!”

그러자 다른 군졸 하나가 굶주린 야인들이 국경을 넘어 소란을 피우지만 않아도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 권관님은 왜 그렇게 엄한 것이다냐! 좀 술렁술렁 넘어가도 좋은디. 매일 빡시게 훈련만 시키기 죽을 맛이랑께”

“그러게 말이여! 그래도 이 권관님 덕분에 이제 조총은 눈을 감고도 그냥 장전해서 호랑이도 잡을 수 있게 됐다니께. 자네도 창검술이 아주 일취월장 했던디.”

“하하하! 그렇긴 하지. 이 권관님이 엄하긴 해도 또 훈련이 끝나면 잔정이 있으니. 그런 그렇고 이렇게 추우니 고향에 있는 마누라 엉덩이나 그립당께.”

“충성! 근무중 이상무!”

군졸들이 대화를 나누며 추위를 달래고 있는 사이 권관 이순신이 망루로 다가왔고 그제야 군졸들은 이순신을 발견하고 큰소리로 경례를 했다.

무과 시험에 계속 떨어지다 서른둘이 되던 해에 무과시험에 합격한 이순신은 여진족과 접하고 있는 최전방 동구비보 권관이 되어 병졸들과 함께 전방을 지키고 있었다.

“흐음. 특이사항은 없나!”

“네. 없습니다요!”

무과시험에서 왕을 직접 만났던 이순신은 스스로 최전방을 원했기에 동구비보에 배치되었지만, 최전방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야인들이 언제 출몰할지 모르기에 항상 긴장한 채 생활해야 했고,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는 또 다른 복병이었다.

그러나 최악의 조건에서도 이순신은 병졸들을 강하게 훈련시켜 강한 군졸들로 만들었고, 야인들의 동태를 꼼꼼히 기록하며 혹시 모를 전시 사태를 대비했다.

“자네들 내 욕을 하고 있던 것 같은데?”

이순신이 미소를 지으며 농을 던졌다.

“아······. 아니옵니다. 어찌 저희들이 권관님 욕을···.”

“하하하! 뭐 내 뒷말이라도 해야 좀 속이 시원하지 않겠나. 운도 지지리 없어서 이렇게 최전방에 배치되었으니!”

“아······. 아니옵니다!”

“흐음. 자네들이 힘들게 최전방에서 고생하고 있으니 조선의 백성들이 맘 놓고 편히 잘 수 있는 거네.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고생을 해주게!”

이순신이 병졸의 어깨를 툭 치며 그들을 격려했다.

그는 훈련에서는 엄한 장교였으나, 군졸들의 사정을 꼼꼼히 살피는 자상한 면이 있기에 군졸들은 그를 믿고 의지했다.

“이 권관님······. 급···. 보이옵니다.”

그 순간 군졸 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서류를 하나 들고 이순신 앞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야인이라도 넘어온겐가?”

“그······. 그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한양으로 가시라는 어명이옵니다!”

“한양? 어명?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린가!”

“이것 좀 보십시오! 이 권관님을 종 4품 만호로 승차시키고 즉시 도성으로 오라는 명령서이옵니다!”

“무어라!”

이순신은 재빨리 병졸이 들고 온 서류를 빼앗아 읽어 나갔다.

‘어 정말이네!’

병졸의 말이 사실이었다.

최말단 관직에서 종 4품 만호로 벼락 승진을 한 이순신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 군졸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승차를 축하드리옵니다. 나라에서 무슨 큰일을 주시려나 봅니다. 어서 가시지요!”

느닷없이 벼락 승진을 한 이순신은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편 최전방에서 함께 고생한 전우들을 뒤로하고 자신만 도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

‘도대체 전하께서 무슨 일로’

최전방을 지키는 하급 무관으로 있다가 졸지에 종 4품 만호로 벼락 승차하여 한양으로 급히 달려온 이순신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벼락 승진한 것도 당혹스러운데 왕께서 직접 자신을 찾는다고 하니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도성은 날로 변모하는구나.’

전방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야인과 맞서다 번잡스러운 한양에 온 이균은 나날이 변모하는 도성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명동에는 한참을 올려 보아야 볼 수 있는 거대한 첨탑을 가진 웅장한 성당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커피라는 음료를 파는 고급스러운 카페를 비롯해 이국적인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들어서고 있었으며 유럽풍의 이국적 건물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었다.

‘조선땅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이순신도 호기심에 생전 처음으로 카페라는 곳에 들러 커피를 시켜 한 모금 마셨다.

‘뭐야! 이게 왜 이렇게 쓴 거야.’

커피를 처음 맛본 이순신은 생각했던 맛과 달리 탕약을 먹는 것과 같은 쓴맛이 나자 인상을 가득 썼다.

그러나 카페에서는 쓰디쓴 커피가 맛있다는 듯 커피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거나 서책을 보는 이들이 꽤 있었다.

커피 값이 워낙 비싸서인지 카페의 손님들은 모두 부유해 보였고, 자신과 같은 하급 무관 출신은 없는 것 같았다.

‘별일이로구 쓰디쓴 커피를 맛있다고 홀짝홀짝 마시니!’

이순신은 카페에서 나온 후 왕이 있는 궁궐로 향했다.

****

“전하. 만호 이순신 입시이옵니다.”

“흐음. 들라 하여라!”

이순신이 마침내 왕을 만나기 위해 궁 안으로 들어왔다.

무과 시험장에서 왕을 처음 보았지만, 왕을 본 이순신의 가슴은 다시 뛰었다.

이순신은 이균을 향해 예를 갖춘 후 자리에 앉았다.

“이 만호! 어서 오시게. 먼 곳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만!”

이균이 미소를 지으며 청화 백자로 만들어진 커피 주전자를 직접 손에 들고 이균이 커피잔에 갓 로스팅한 따끈한 커피를 따라 주었다.

“이 만호! 한번 들어 보시오. 이게 최근 조선에서 유행하는 커피라는 음료요.”

“아. 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조금 전 카페에서 쓰디쓴 커피의 맛에 호되게 당한 이순신은 왕이 직접 커피를 따라 주자 당황하며 머뭇거렸다.

“자! 한잔 마셔보시오. 북방에 있어서 아직 맛보지 못했을 것이요. 마셔보면 피로도 풀리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오.”

“그······. 그리 하겠습니다.”

왕이 재차 마셔보기를 권하기에 이순신은 어쩔 수 없어 커피잔을 입에 가져댔다.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이순신의 입맛에 커피는 영 아니었다.

쓴맛만 나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커피를 왜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소. 맛이 괜찮소!”

“그······. 그러하옵니다. 아주 맛이 좋습니다.”

이순신은 마지못해 맛이 아주 좋다 대답했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류성룡은 이순신이 어떤 심정인지 알겠다는 듯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북방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들었는데, 북방의 상황은 좀 어떠한가?”

이균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전하! 북방의 상황은 안정적입니다. 야인들이 간간이 소란을 일으키고는 있으나 큰 준동은 없사옵니다. 다만······.”

“흐음. 뭐 걱정되는 것이라도 있소?”

“전하 다만, 야인들 중 누르하치라는 자가 부족을 규합해 세력을 키우고 있고, 나탕개라는 자도 그 세력을 점차 키우고 있으니 그것이 염려되옵니다.”

“흐음. 그렇소? 야인들이 힘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그 말이구려. 야인들이 송나라를 남쪽으로 몰아낸 금나라를 새운 저력이 있는 자들이 아니요. 그들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큰 변란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려.”

이균이 도승지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야인들의 동태를 더 세심히 살펴보고 북방의 전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옵니다.”

“이 만호. 그대를 급히 도성으로 부른 이유가 궁금하지 않소.”

이균이 다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그······. 그러하옵니다. 전하! 신에게 내리실 어명이 있으신지?”

이순신이 잠시 고개를 들어 이균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제부터 수군에서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데······.”

“전하! 수군이라 하셨나이까?”

이순신은 이균이 입에서 수군이라는 말이 나오자 흠칫 놀라 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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