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성균관 대신 왕립대학(1)
그는 예수회 소속 신부 마테오 리치였다.
“저기 보이는 섬이 조선 땅입니까?”
“그렇습니다. 신부님, 강화도라는 섬입니다. 저기서 배를 타고 한강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조선의 도성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강화도가 이렇게 큰 섬인 줄은 몰랐습니다. 유럽식의 건물도 많고 아주 커다란 도시군요.”
마테오 리치도 강화도의 화려한 모습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에게 있어 조선은 그저 작은 명나라의 속국에 불과했다.
일찍이 포르투갈 등과 교류했던 왜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조선은 아직 그에게는 미지의 나라에 불과했다.
최근에야 조선이 포르투갈 등 유럽에 문호를 개봉하고 청화백자 등을 팔아 부를 쌓고 있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지만, 강화도가 이토록 휘양 찬란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그렇습니다. 신부님, 저도 이곳에 올 때마다 놀라고 있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는데, 이렇게 변해있으니······.”
구스타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조선을 명나라의 속국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군요.”
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로마 대학에서 수사학을 공부한 후, 예수회에 가입한 후 인도 고아에서 4년을 지내며 신학 공부와 해외 선교를 했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본래부터 해외 선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가 큰 명나라에 천주교를 전파하고 싶었다.
마침 예수회는 그의 바람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그에게 중국으로 갈 것을 명했고,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구스타프 상단의 기선 산 타리 나 호에 올라탔다.
그를 태운 상선은 인도 고아를 출발해 마카오로 향했는데, 그는 일본에 들려오라는 예수회의 명에 따라 마카오에서 내리지 않고 일본에 가 일본 예수회 소속 신부들에게 예수회가 전하는 서신과 문서들을 전달하고 일본의 천주교 포교 현황을 파악했다.
그런데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그에게 느닷없이 예수회는 중국이 아닌 조선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은 마테오 리치의 마음이 없었기에, 그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예수회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기에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조선으로 향한 것이다.
“신부님! 조선의 왕을 만나신다고요?”
구스타프가 다시 마테오 리치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예수회에서 조선의 왕을 만나보라고 하더군요. 듣기로는 왕이 아직 어리다고 하던데, 조선의 왕은 어떠한 자입니까?”
바닷바람에 마테오 리치의 머리는 휘날리고 있었다.
“흐음. 어리지만 아주 야망이 가득한 자입니다. 강화도를 이렇게 화려한 항구 도시로 만든 것이 바로 지금의 왕입니다. 조선은 명나라를 상국으로 받들며 다른 나라와는 국교를 맺지 않는 쇄국정책을 펴왔는데, 문호를 전면적으로 연 왕이 지금의 왕입니다.”
“그래요? 야망이 가득한 인물이라······.”
마테오 리치는 점점 가까워지는 강화도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자신의 운명을 조선으로 향하게 한 것인지, 그것이 예수님이 뜻이라면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여겼다.
****
강화도에 도착한 구스타프 상단은 마테오 리치를 내려준 후 청화백자를 구입하기 위해 강화도에 있는 자기청으로 향했다.
자기청은 도자기 제작, 판매 등을 위해 조선 왕실이 세운 것으로 조선 왕실은 생산된 청화백자 중 품질 검사에 합격한 제품만을 선정해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을 새겨 넣어 자기청을 통해서만 청화백자를 팔 수 있도록 했다.
곧 청화백자에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조선 왕실이 품질을 보증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유럽 및 아라비아 각지에서 온 상인들도 이를 좋아했다.
자기청은 강화도, 부산포 등에 지점을 두어 유럽, 아라비아, 왜에서 오는 상인들에게 청화백자, 막사발 등을 판매했는데, 강화도에 있는 지점이 당연히 규모가 가장 컸다.
구스타프 일행은 청화백자를 고르기 위해 자기청 강화지점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사가는 큰손 구스타프 일행이 모습을 보이자 자기청 직원이 반갑게 달려 나와 그들을 VIP룸으로 안내했다.
VIP룸에는 이제 갓 생산된 청화백자가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오래간만에 뵈옵니다!”
자기청 직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와 먹을거리를 가지고 왔다.
“하하하. 조선과 포르투갈 제국 사이의 거리가 워낙 머니······. 그래 이것들이 이번에 만들어진 자기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두 갓 구워진 자기들입니다. 한번 둘러보시지요. 만족하실 겁니다.”
구스타프는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 진열되어 있는 청화백자를 둘러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유럽에서 인기가 있는 찻주전자, 접시 등을 살펴보던 구스타프는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그림의 표현이 무언가 섬세해진 것 같습니다!”
그는 단번에 예전 청화백자의 회화보다 표현이 섬세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 이번 작품은 조선에서 나는 회회청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자기청 직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어라고요? 조선에서는 회회청이 없지 않습니까?”
직원이 뜬금없이 조선에서 나는 회회청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하자, 구스타프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다 노부나가의 부탁을 받고 자신이 조선에 처음 코발트를 구입해준 장본인이기에 조선에는 코발트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선 땅에서 난 코발트로 청화백자를 만들었다 하니 그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하하. 그러했지요. 그런데 이번에 경상도에서 회회청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질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래요? 조선 땅에서 회회청이 발견되었다는 겁니까?”
코발트가 나지 않아 포르투갈에게 의존하던 조선에서 갑자기 코발트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구스타프는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하고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조선 땅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제 회회청을 가지고 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기청 직원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로 회회청이 풍부한 모양이요?”
구스타프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청화백자를 만들어내기에 풍족한 양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도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럼 여기 있는 청화백자가 다 조선 땅에서 나온 회회청으로 만든 것이라는 거요?”
“네. 모두 조선 땅에서 나온 회회청으로 만든 자기들입니다.”
구스타프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이 나왔다.
코발트가 조선 땅에서 나온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질까지 좋아 백자에 더욱 섬세한 그림을 표현할 수 있으니, 조선의 청화 백자는 이제 명실공히 명나라의 청화백자를 능가하게 된 것이다.
“대단합니다. 이번 작품은 유럽에서 아주 인기가 많겠어요. 저희 상선에 청화 백자를 가득 싣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구스타프는 단번에 이번 작품이 유럽에서 인기를 끌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가능한 많은 청화백자를 사들이고 싶어졌다.
유럽으로 가져가만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물론입니다. 구스타프 상단은 VIP 고객 아닙니까. 또 저희가 청화백자를 팔 수 있도록 해준 분이시고, 원하시는 수량만큼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하하하! 고맙소.”
원하는 청화백자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하자 구스타프는 만족스러운 듯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청화백자의 원료인 코발트를 포르투갈에 의존하던 조선이 이제 코발트마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으나, 포르투갈이 조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었다.
‘조선이 이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할 줄이야.’
자기청에서 원하는 청화백자를 모두 구매하고 나오는 구스타프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청 건물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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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흐음. 이곳이 조선의 도성이구나. 생각보다는 큰 도시구나!’
강화도에 내린 마테오 리치 일행은 조선 수군이 보낸 판옥선을 타고 한강을 지나 한성에 도착했다.
한성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규모가 큰 도시였다.
한성에도 유럽인들과 오스만 투르크, 아라비아 등에서 온 상인들과 사신들로 붐볐고, 몇 해 전까지 가득했던 초가집들이 점차 사라지고 유럽풍의 건물과 성당, 모스크, 기와집 등이 들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은 견고해 보였고, 성 곳곳에는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화포 등으로 무장되어 있었고, 조총이나 환도를 들고 있는 조선군은 훈련이 잘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성에 도착해 융성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간 숙소에 머무르던 마테오 리치는 마침내 이균의 부름을 받고 왕궁으로 향했다.
마테오 리치는 조선의 왕이 어떤 자인지 그리고 그가 왜 자신을 찾는지 사뭇 궁금해 하며 조선의 왕궁으로 향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마침내 조선의 왕을 보게 되었다.
어리다는 말을 들었지만, 조선의 왕은 이제 갓 20살이 넘어 보일 정도로 실제로도 어려 보였다.
그러나 어린 외모와는 달리 샤프해 보이면서 구스타프의 말처럼 가슴 한구석에 야망이 가득해 보였다.
“아니옵니다. 전하! 이렇게 미천한 저를 찾아주시니 영광이옵니다!”
마테오 리치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균은 마테오 리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인자한 듯 하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범상치 않은 인상이었다.
“조선 땅은 처음이지요! 어떻습니까? 조선의 모습이······.”
“활력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도착한 강화도는 무척 화려한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리고 한성도 꽤 큰 도시인 것 같습니다.”
마테오 리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조선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듣자하니 인도에 있었다고요?”
이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마테오 리치를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며 신학 공부를 했습니다.”
“흐음. 본래 명나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고요?”
“그러하옵니다. 본래는 예수회에서 명나라로 가 선교활동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사오나······.”
“하하하. 내가 그대를 조선으로 보내 달라 예수회에 청을 넣었소.”
이균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도 그리 들었사옵니다. 전하께서 저를 찾으시는 이유가 있으신지······.”
“흐음. 그대가 선교 활동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소. 조선 땅에도 천주를 믿고자 하는 이들이 꽤 있으니 이곳에서도 선교 활동을 해보시오!”
이균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명나라 대신에 조선 땅에서 선교활동을 하라했다.
“전하! 조선 땅에 선교를 허하시니 영광이옵나이다. 전하의 뜻을 받들어 예수의 말씀을 전하겠나이다!”
마테오 리치는 명나라에서 선교활동 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이미 이균의 요청을 받은 예수회가 조선으로 가 선교활동을 하라 했으니,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선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니 강압적인 선교를 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흐음. 그리고 그대에게 한 가지 더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소!”
이균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마테오 리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엇인지?”
마테오 리치는 조선의 왕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선 땅에 대학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대가 대학을 맡아 주었으면 하오!”
“전하! 대학이라 하셨나이까?”
이균이 갑자기 대학을 맡아달라고 하자 전혀 뜻밖인 듯 마테오 리치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