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32화 (32/202)

32화 이순신과의 조우

“하하하. 그렇습니까? 드디어 조선 땅에 회회청이······.”

코발트가 조선 땅에서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은 이균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했다.

청화백자를 만드는데 필수적 재료인 회회청을 전량 포르투갈 등 외지에서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제 드디어 코발트를 자급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균은 그 기쁨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류성룡도 이균이 코발트의 자급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격스러워 했다.

“그래! 회회청의 질은 어떻다고 합니까?”

“전하! 다행스럽게도 회회청의 질이 아주 좋다고 하옵니다. 도공에 의하면 회회청이 물기가 많아 색을 옅게 표현할 수 있고, 발색은 깨끗하여 남만국이 가져다주는 회회청보다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다고 하옵니다.”

“그래요? 남만국이 가져다주는 회회청보다 질이 좋다? 하하하, 대단합니다. 그렇다면 명나라의 자기보다 더 질이 좋은 청화백자를 만들어 낼 수 있겠군요.”

경산에서 코발트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준기는 즉시 채굴된 코발트 안료를 가지고 청화백자를 만들어 보았는데, 코발트에 물기가 많고 이물질이 적어 보다 더 섬세한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질이 월등이 높았다.

조선에서 코발트가 발견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 그 질이 높아 보다 예술적인 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경사스러운 일이 없었다.

“아주 잘 되었습니다. 이제 회회청 걱정 없이 청화백자를 잘 만들어 낼 수 있겠어요. 회회청을 자급자족하게 되었으나 생산 가격이 너 낮추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균은 거듭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 모든 것이 전하의 은덕이옵니다.”

“흐음. 그리고 내일 무과 시험이 있다고 했지요?”

율곡과 함께 추진한 국방개혁으로 많은 장교가 필요해지자, 이균은 매년 무과시험을 치러 초급장교를 충원하도록 했다.

문을 중요시하는 조선의 뿌리 깊은 풍조에 의해 무과 시험은 문과 시험보다 천대시 되었으나, 국방 개혁을 통해 무관들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자 무장이 되려는 이들이 많아져 무과 시험은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래요. 대장군 감이 많이 나와야 할 터인데······. 짐도 내일 무과 시험을 참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무과시험에 참관하신다면 군의 사기가 크게 높아질 것이나, 일정이 빠듯하신데 굳이 참관하실 필요가 있겠나이까?”

류성룡은 요즘 밀려드는 일로 일정이 빠듯한 이균이 직접 무과 시험까지 볼 필요가 있겠느냐며 이를 만류했다.

“아니요. 조선 땅을 호령할 장군감이 있는지 내 직접 무과 시험을 보고 싶구려!”

“그러하옵니까? 전하! 기필코 조선군을 이끌 대장군 감이 나타날 것이옵니다!”

류성룡의 만류에도 이균이 무과 시험을 굳이 보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그도 더는 만류하지 못했다.

****

“하하하. 날렵하고 무예가 출중한 장수들이 많군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균은 병조 판서 율곡, 도승지 류성룡 등과 함께 무과 시험장에 와 시험을 참관하고 있었다.

무과 시험에 응시한 자들은 모두 뛰어난 무예 실력을 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무과는 초시에 합격한 이들을 상대로 초시와 동일한 무예실기와 병법서, 유교 경전, 역사서 등을 분야별로 1권씩 무작위로 선정해 물어보는 방식의 복시로 이루어졌는데, 초시 응시자 중 약 1,000여 명의 합격자들이 치루는 복시를 이균은 그의 측근들과 함께 참관하고 있었다.

무예 시험은 지상에서 활을 쏘는 보사,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기사, 말을 타며 창을 다루는 기창, 격구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균이 왕이 되고부터는 조총을 다루는 기술도 포함하도록 했다.

모두들 수년간 무예 수련을 하고 초시에 합격한 이들이었기에 그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흔들리는 말에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며 활을 쏘아 과녁을 명중시켰으며, 마치 관우와 같이 힘차게 말을 몰아 긴 창으로 짚단으로 만든 허수아비의 목을 내리치니 순식간에 허수아비의 목이 떨어졌다.

조총을 다루는 기술도 뛰어나, 당황함이 없이 빠른 기간에 조총을 장전해 격발하니 탄환 대부분이 과녁에 그대로 명중했다.

화창한 날씨에 널따란 벌판에서 무사들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보니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조선 땅에 이토록 무예가 출중한 이들이 가득하니, 이균은 절로 힘이 났다.

“조선에 이토록 무예가 출중한 이들이 있는지 몰랐구려!”

이균은 과녁에 활과 탄환이 명중할 때마다 호탕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워했고, 이를 지켜보는 류성룡도 미소를 지었으나, 그의 눈은 무예 시험을 보는 누군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도승지, 누군가를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눈여겨보는 자가 있는 거요?”

이균은 류성룡이 친분이 있는 이순신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물어보았다.

이순신이 아산으로 내려가기 전 그의 집안은 서울 목정동 인근에 살았는데, 류성룡의 집과 가까워 서로 교류하며 지냈는데, 류성룡은 이순신의 형인 이요신과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며 당연히 이순신과 알고 지냈다.

아산으로 내려가 무과를 준비하던 이순신은 1573년 훈련원 별과에 응시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낙마하여 시험에 떨어진 후 절치부심 끝에 다시 무과에 응시하여 초시에 합격하고 이제 복시를 보고 있었다.

이순신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는 류성룡은 초조한 마음으로 이순신이 시험을 잘 치르기를 기원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니옵니다.”

“무엇이 아니란 말이오. 지금 말을 힘차게 달려서 과녁에 정확히 화살을 꽂아 넣은 자만 계속 바라보고 있지 않소.”

이균은 류성룡을 놀려먹는 재미가 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저. 그게 실은 무과 시험을 보는 자 중 어릴 적 동문수학하던 지인이 있어서······.”

류성룡은 그제야 실토를 했다.

“아. 그렇습니까. 서애 대감과 동문수학을 한 자라면 믿을 만 한 자가 아니겠소. 그자의 이름이 누구요?”

“저······. 이순신이라 하옵니다.”

“하하하. 이순신이라······. 이름이 참 좋구려. 도승지와 동문수학을 했다 하니 내 직접 이순신이라는 자를 보고 싶구려! 말에서 방금 내린 자를 불러오도록 해라!”

“알겠나이다. 전하!”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기사 시험을 방금 마치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 이순신은 갑자기 임금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내관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왕 앞으로 다가갔다.

무과 시험을 보다가 졸지에 왕 앞으로 불려 나간 이순신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 자신이 왕에게 불경스러운 무엇인가를 한 것은 아닌지 염려된 그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왕 앞으로 가 큰절을 올린 후 고개를 조아렸다.

반면, 왜란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을 처음 보는 이균의 마음은 설렜다.

팔자에 없는 왕이 되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들을 처리하며 스트레스가 만빵이었던 그였는데, 이렇게 영웅 이순신을 직접 보는 호사스러움도 누리게 되었으니 이 맛에 왕 노릇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개를 들라!”

이균이 말하자, 청년 이순신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왕을 직접 보자 이순신의 가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흐음. 그대가 이순신인가?”

“그······. 그러하옵니다. 전하!”

청년 이순신은 아직 왜놈들을 도륙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었다.

무인이라 하기에 그 얼굴 생김새가 단아하고 말과 웃음이 적어 보였으나, 팔, 다리가 길며 체구도 큰 편으로 용맹스러워 보였으며, 외모보다는 가슴 깊은 곳에 큰 무엇인가를 간직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 그대가 여기 도승지와 동문수학한 사이인가?”

“그러하옵니다. 어린 시절 동문수학한 사실이 있사옵니다.”

이순신은 왕 앞에서 무척 긴장하고 있었지만, 가능한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왜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이 자신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균은 그런 상황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졌다.

“도승지, 그대와 동문수학을 했다 하니 학문에도 조예가 깊겠구려?”

이균이 밝게 웃으며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비록 무과 시험을 보고 있으나, 능히 문과에도 급제할 실력이 되는 자이옵니다.”

류성룡은 자신의 지기 이순신을 칭찬하는 것이 낯 뜨거운지 얼굴이 빨개져 말했다.

“허허. 그래요. 그렇다면 문무를 겸비한 장수가 아니겠소. 자고로 조선을 위해 큰일을 할 인재구려!”

이균이 껄껄거리며 이제 무과 시험에 응시한 조무래기에 불과한 이순신을 나라를 구할 재목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자 대신들은 왕이 왜 저러지 하는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순신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도승지인 류성룡과 지기 사이라 해도 무과에 급제하지도 못한 자신을 앞에 두고 조선의 최고 지존이 극찬하니 그는 영문을 몰라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무과에 급제하면 어디에서 근무하고 싶은 게냐?”

“북방에서 야인들과 맞서며 조선을 지키고 싶사옵니다.”

이순신은 주저함이 없이 야인들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북방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했다.

“하하하. 그래. 자고로 무인이라면 실전 경험을 할 수 있는 북방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순신이 주저함이 없이 북방으로 가겠다고 하자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시험이 얼마나 남았는고?”

“네. 전하! 기창이 남아 있사옵니다.”

“그래! 내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니 남은 시험을 잘 보아 꼭 무과에 급제하도록 하여라!”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왕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하자, 이순신은 감격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왕께 다시 큰절을 올리고 물러난 이순신은 말에 단숨에 올라타 긴 창을 들고 힘껏 말을 달려 그의 앞에 있는 세 개의 허수아비를 정확하게 찌른 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다시 돌아왔다.

“하하하. 과연 대단합니다!”

이순신이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긴 창으로 정확하게 허수아비를 찌르자, 이균은 감탄한 듯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이균은 류성룡, 율곡 등과 함께 무과 시험을 끝까지 지켜본 후 자리를 떠났고, 왕의 주목을 받은 이순신도 복시를 무사히 마치고 병과 4등으로 급제해 종 9품 함경도 동구비보 군관이 되어 그의 원대로 북방으로 떠났다.

****

강화도

강화도에 커다란 십자가 모양의 돛을 단 갈레온 선 여러 척이 입항하고 있었다.

조선 땅을 다시 찾아온 구스타프 상단이었다.

구스타프 상단은 마카오를 거쳐 일본에 들렀다가 조선의 청화백자를 구하기 위해 강화도에 들른 것이었다.

강화도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조선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허허벌판과도 같았던 강화도는 어느새 마카오를 능가할 정도로 동북아에서 가장 화려한 항구가 되어 있었다.

이국적인 유럽풍 건물과 이슬람식 건물들이 항구 주변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고, 전 세계에서 온 상인들로 도시는 북적거렸다.

“조선 땅이 올 때마다 변모하고 있구나!”

구스타프는 갑판에 올라 점점 가까워지는 강화도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구스타프 상단의 기선 산타리나 호 갑판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덥혀 있는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강화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님! 바람이 아직 차갑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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