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외인부대 설립
그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한 부족의 젊은 추장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항상 현명하게 마을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족원들을 공평하게 대하며 마을을 다스렸고, 부족원들은 그를 신뢰했고, 이웃 부족도 그들을 침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을은 평온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에 의해 마을의 평화는 무참히 깨어지고 평온하던 그곳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복장을 하고 붉은 머리와 갈색 머리를 하고 있던 이들 수백 명이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쳐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불빛이 번쩍이는 무엇인가를 쏘아댔고 곳 마을을 지키는 용감한 전사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들은 지옥에서 온 악마와 같았다.
순식간에 마을에 들이닥쳐 전사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 지르고 아녀자를 겁탈했다.
그는 남아 있는 전사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침략자들과 싸웠으나, 이미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는 치욕스럽게 침략자들에게 사로잡혔다.
그는 울부짖으며 침략자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강렬히 저항했으나, 이내 그는 온몸이 쇠줄로 묶이고 손발에 족쇄가 채워진 비루한 처지가 되어 해안에 대기하고 있던 노예선에 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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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침침한 노예선의 맨 밑바닥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는 긴 항해를 했고, 어느덧 배가 항구에 도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문이 열렸고 그를 심하게 매질하던 선원들이 들어왔다.
“너의 새로운 주인님이 계신 곳이다. 내려! 이 자식아!”
“주인!”
몇 개월 만에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배 밖으로 나온 그는 강렬하게 내리치는 햇살에 눈이 부쳐 저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그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고, 그와 함께 마을 지키던 전사들도 그의 옆에서 쇠사슬로 온몸이 묶인 채 두려운 표정으로 낯선 땅을 두리번거렸다.
포르투갈의 노예선이 긴 항해를 마치고 정박한 곳은 조선의 강화도였다.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을 접한 그는 어리둥절했다.
거대한 배와 머리 모양과 옷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수많은 사람, 항구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건물들, 그리고 풍족한 먹을거리.
강화도의 번잡스러운 모습에 그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뭐하는 거야! 빨리 옮겨 타지 않고!”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이 비참한 신세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머뭇거리자 곧바로 채찍이 날아와 그의 몸을 내리쳤다.
배에서 내린 노예들은 이내 더 작은 배로 갈아탔다.
수많은 노예가 쇠사슬에 묶여 일일이 줄지어 나오자 강화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난 듯 이를 지켜보았다.
“뭐야! 저 사람들은?”
“그러게 생전 처음 보는데?”
“덩치 하나는 정말 크구만······.”
그들을 태운 배들은 한강 하구로 들어서 이내 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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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들인가?”
이균이 정후청장 김명원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균 앞에는 포르투갈 노예선에 실려 온 흑인 노예들이 있었다.
앞서 류성룡은 마카오에서 흑인 용병들의 뛰어난 무예 실력과 신체능력에 감명 받아 이균에게 조선도 이들을 용병으로 쓰는 것을 건의했다.
이균도 이들이 임진왜란에도 명나라의 용병으로 참전해 해귀라 불리며 큰 공을 새운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신체조건의 월등하고 날렵한 이들을 용병으로 쓰면 전장에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흑인 용병 부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포르투갈에 군인으로 쓸 수 있는 용병을 부탁한 것이다.
오랜 항해로 인해 몹시 지쳐 보였으나 역시 이들의 신체조건을 월등했다.
“과연 신체 조건이 좋구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균은 자세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중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이균은 알아차렸다.
“저자가 누구인가?”
“한마을을 다스리고 있던 추장이라고 하옵니다.”
“그러한가! 그대는 왜 그토록 짐을 노려보는가?”
“당신이 나의 주인이요! 나의 가족과 전사들을 무참히 살육한 당신을 끝까지 저주하겠소!”
“아니 저런 놈이 감히!”
쇠사슬에 묶여 있는 흑인 노예가 왕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자 군졸들이 당황해 그를 제압하려 했다.
“그만하거라!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요우로바요!”
그는 여전히 강렬한 눈빛으로 이균을 노려보았다.
“부족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는가?”
“그렇소. 당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요?”
“짐은 그대의 부족이 몰살당한 것을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는 용맹한 전사를 원했을 뿐이다.”
“그······. 그것을 믿으라는 것이요.”
“그럼 어찌하겠는가? 그대가 갈 곳은 아무 곳도 없다. 아마도 노예 상인들이 그대의 가족에게 화를 입힌 것 같은데······. 이미 돌아갈 곳도 없지 않은가?”
“노예 상인 놈들과 당신이 관련이 없다는 것이요?”
요우로바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부족민이 도륙을 당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듯했고, 같이 잡혀 온 그의 전사들도 추장이 눈물을 떨구자 한스러움이 몰려오는지 같이 흐느껴 울었다.
흑인 노예들이 눈물을 떨구자 이균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대가 원하면 자유를 줄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험난하다. 이 땅을 새로운 고향으로 삼아 짐과 백성을 위해 싸워준다면 그대들은 자유와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다른 주인이 아닌 짐을 만난 것이 어쩌면 새로운 운명이 될 수도 있거늘. 잘 생각해보거라!”
이균은 요우로바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자유?”
그의 새로운 주인은 자유를 약속했다.
아프리카에서 먼 생전 처음 보는 조선이라는 땅까지 끌려온 그가 돌아갈 곳은 없는 것이 맞다.
요우로바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몇 개월 동안 차디찬 노예선 화물칸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던 그는 실로 몇 개월 만에 뜨거운 물로 목욕했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
처음 보는 인간 대접이었다.
이 나라의 왕이라는 자는 비록 어려 보였지만, 영민해보였고 능히 한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왕이라는 그자가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할 자신을 구원한 자일지 모른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겠지!’
채찍으로 난도질당한 몸을 데워주던 온돌방에서 나온 그는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고향 생각에 잠겼다.
전사들과 함께 초원에서 사냥해 부족원들과 축제를 벌이던 행복했던 시절은 이제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추억일 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자신만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과 함께 사로잡혀온 전사들도 생각해야 했다.
요우로바는 달이 기울고 어둠이 짙게 내려온 새벽이 되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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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고민을 거듭하던 요우로바와 전사들은 이균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이 왕을 따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이균은 그들을 반갑게 받아주었다.
이균은 흑인 용사들 5,000명으로 구성된 별종군을 만들었다.
그의 또 다른 히든카드인 셈이다.
흑인 노예들 중 신체조건이 월등한 이들로 선발된 별종군은 곧 조선의 최정예부대가 되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어디에도 그들과 대적할 수 있는 부대가 없을 정도로 그들은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어떠한가?”
이균이 별종군의 훈련장을 불시에 방문했다.
“전하!”
왕이 아무 예고 없이 훈련장을 찾아오자 흑인 용병들을 가르치던 무관들이 놀란 표정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그래! 별종군이 훈련을 잘하고 있는가?”
“전하! 성과가 무척 좋습니다. 신체 능력이 탁월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하는 지경입니다.”
용병을 가르치는 무관들은 그들의 탁월한 신체능력을 무척 놀라워했다.
그들은 예상대로 뛰어난 신체조건과 운동신경으로 창과, 칼, 활, 조총 등 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고, 조선의 내놓으라 하는 갑사들과의 대련에서도 월등한 실력을 보이며 그들을 제압했다.
이균의 예상처럼 별종군이 뛰어난 능력을 보이자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전에 바로 써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조선에서 이들의 무예능력을 뛰어넘을 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 전하를 위한 일당백의 용사들이옵니다.”
“그러한가! 저 요우로바라는 자는 어떠한가?”
“아주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나이다. 그리고 통솔력이 있어 용병들을 이끌며 훈련을 주도 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 마음을 다잡았구나!”
분노라 가득 차 있던 요우로바의 눈빛은 어느덧 사라졌고,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 훈련을 했고, 함께 온 그의 전사들과 함께 훈련을 주도했다.
평생을 노예로 살 뻔 하다가 자유를 얻은 별종군 용사들은 자신을 노예로 만들고 가족을 살해한 포르투갈에 대한 증오심은 가득했지만, 이균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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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은 오래간만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서인의 극렬한 반대에도 그가 강하게 밀어붙인 국방개혁은 완수되어 조선은 20만 대군을 보유하게 되었고, 청화백자와 막사발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청화백자를 독점 수출하다가 조선이라는 경쟁자를 만난 명은 경덕진에 대규모로 가마를 증설하고 도공을 확충해 청화백자의 생산량을 늘려 청화백자의 공급가를 낮추어 판매하기 시작했으나, 조선도 이에 맞불을 놓으며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청화백자 생산으로 경제적으로 큰 호황기를 맞이한 조선은 이제 제법 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산된 청화백자를 강화도까지 이동시켜주는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상단이 생겨났는데 그중 한성유통이 가장 큰 규모로 이들은 수십 척의 판옥선을 보유하며 한강 뱃길을 따라 청화백자를 운반했고, 그뿐만 아니라 왜에 납품되는 막사발 등도 운반하며 규모를 키워 나갔다.
또 청화백자와 막사발의 수요가 급증하자 이균은 민간업체에서도 왕실의 관리하에 자기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자기를 만들어 판다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안 여러 상단들이 도자기 생산에 뛰어들었고, 그중 조선 자기, 한성 자기, 광주 자기 등이 두각을 나타내며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왕실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가 큰 민간 기업까지 성장하며 조선은 경제적으로 큰 호황을 누렸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세수도 증가했기에 궁핍했던 왕실의 재정은 이제 풍족해졌다.
그러나 이균의 마음에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청화백자의 원료인 코발트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포르투갈에 전량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포르투갈이 다른 마음을 품고 코발트의 공급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리기라도 한다면 청화백자의 생산이 올스톱되어 버리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에 이균은 포르투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아라비아 상인 등 별도의 공급처를 확보하려 노력했으나, 여전히 포르투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고 그리하여 조선 땅에 코발트가 나는지 알아보라 했으나 아직 희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조선 땅에 코발트가 없다는 것인가?’
이균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각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전하!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내관이 도승지 류성룡이 입시하였다고 알려왔다.
“도승지. 무슨 일이오?”
금일은 도승지가 올 예정이 없었고 별다른 일정 없이 혼자 있으려 했는데, 도승지가 갑자기 들어오자 이균은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전하! 경상도 땅에서 회회청이 발견되었다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