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28화 (28/202)

28화 20만 양병론(2)

율곡의 입에서 20만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균은 잠시 멈칫했다.

그도 당연히 율곡의 10만 양병설을 알고 있기에, 율곡의 입에서 기껏해야 10만이라는 말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갑절인 20만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조선의 인구가 1,000만에 달합니다. 군적만 제대로 관리하고 군역을 충실히 이행하면 족히 20만의 상비군을 만들고도 남습니다.”

이균은 미소를 지으며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말대로 20만의 병력을 즉시 동원할 수 있다면 조선은 외침의 걱정 없이 더 큰 뜻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말이 옳소. 고려도 요와의 전쟁에서 20만, 여진족을 토벌할 때 17만을 동원하지 않았소. 조선이 그리하지 못할 이유가 뭐요! 20만의 상비군만 있다면 누가 감히 조선을 넘볼 수 있겠소!”

이균은 율곡의 국방개혁안이 마음에 드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어전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합시다! 사림 놈들이 또 반대할 것이니 준비를 잘해야 할 것이에요!”

“알겠나이다. 전하!”

이균과 율곡은 오랫동안 고개를 맞대고 국방 개혁안에 대해 논의를 했다.

분명 사림들이 병력을 늘리는 것은 낭비라며 반대할 것이 뻔 하기에 철저하게 대비를 해야 했다.

****

“전하! 어찌 이곳에!”

작업복을 입고 화포와 조총 그리고 각종 무기를 연구하고 있던 군기감 관원들이 금군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 이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균은 자신의 지시로 확대 개편된 무기 개발 부서 군기감을 불시에 방문했다.

이균 옆에는 도승지 류성룡, 병조판서 율곡 이이, 그리고 이준경의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된 박순 등 그의 측근들이 동행했다.

조선은 개국 당시부터 화포 등 무기 개발에 관심이 많았고, 군기감을 설치해 많은 화포들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화포가 외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고 자칫 왕을 향하게 되면 왕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여기고 군기감을 축소하고 화포 개발도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균은 왕이 된 후, 청화백자를 팔아 어느 정도 재정적 안정이 유지되자, 군기감을 다시 설치에 재정적 지원을 하며 화포와 무기개발을 장려하였다.

이참에 이균은 무기개발이 어느 정도까지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군기감을 찾은 것이었다.

“그대들이 불철주야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대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왔으니 염려 말고 연구에 매진하시오!”

“전하!”

군기감 수장 나영실이 이균의 모습을 보고 감격에 겨운지 울먹거렸다.

그는 기계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한 천재였다.

사대부 집안에 서얼로 태어나 학문을 익히기는 했으나, 고리타분한 사서삼경보다는 잡서라 칭하는 천문학과 관련된 서적이나, 물시계나 천문관측을 위한 기구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서적이나 화포 등 무기에 관한 서적이 훨씬 재미있었고, 그 책을 읽고 직접 물시계를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며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잡학에만 능한 것은 아니었고, 유교 경전도 제법 잘 암기하여 과거에 쉽게 붙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지만, 서얼 출신이기에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는 쓰라린 아픔을 간직한 채 동네 건달과 어울리며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그러나 율곡의 추천을 받아 직접 그를 만나본 이균은 그의 천재성을 단번에 간파하고 그를 군기감 수장으로 앉힌 것이다.

군기감 수장이 된 그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각종 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홍이포도 이제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홍이포 개발도 모두 완료하였나이다!”

“하하하. 노고가 많았소. 그대들이 없었으면 우리 조선이 조총과 홍이포를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요. 도승지는 내탕금을 내려 이들에게 넉넉히 은자를 주도록 하시오!”

“전하!”

나영실은 감격에 겨운 듯 다시 울먹였다.

서얼 출신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술로 허송세월하던 그를 잡아준 것도 고마운데,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며 은자까지 내려주니 그는 왕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충정심이 절로 생겼다.

“흐음. 듣자하니 새로운 조총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균이 자애로운 눈으로 나영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왜에서 가져온 조총이 파괴력은 뛰어나고, 일반 병졸들도 큰 어려움 없이 다룰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조선의 국궁보다 사거리가 짧고, 비가 오거나 하여 화약이 젖으면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사거리를 늘리고 부싯돌을 이용해 장전을 더 편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나이다.”

“그래요? 아주 좋은 생각이구려! 그런 성능이 향상된 조총이 개발된다면 우리 조선군의 군사력이 월등히 높아지지 않겠소. 어찌 생각하오? 병조판서!”

“그러하옵니다. 전하! 비록 조총의 파괴력이 높다고 하나, 조선이 자랑하는 국궁에 비해 사거리가 짧고 장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어 일부 무장들은 조총을 실전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아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을 개선한 조총이 개발된다면 전장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을 것이 옵니다.”

율곡도 새롭게 조선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조총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율곡의 말처럼 일부 무장들은 조총을 매캐한 연기나 품어 내는 보잘것없는 형편없는 무기로 여기며 노골적으로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율곡은 조총이 전장의 양상을 바꾸어 놓을 무기임은 틀림없으나, 왜에서 들여온 조총이 장전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가 오는 등 습한 날씨에서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등 단점이 많기에, 그 단점이 개선되면 더욱 위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 그럼 사거리를 얼마 정도 늘릴 수 있겠는가?”

이균도 흥미로운 눈으로 나영실을 바라보았다.

“최대 천보까지는 늘려볼 생각이옵니다.”

“천보라! 그것에 가능하겠는가?”

사거리가 천보까지 늘어난다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조총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만 난다면 조총을 깎아내렸던 이들도 더는 조총을 전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하 시간이 넉넉히 주어진다며 능히 가능하옵니다!”

나영실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하구려! 시간은 넉넉히 줄 것이요. 필요한 것은 아낌없이 줄 터이니 실패를 두려워 말고 마음껏 개발을 해보시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흐음. 그리고 잠깐 드는 생각인데, 총선 안에 강선을 넣으면 파괴력이 더 늘지 않겠소?”

이균이 개발 중인 조총을 만지작거리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영실을 바라보았다.

뭐 사실 현대식 소총은 다 강선을 갖추고 있기에, 조총에도 강선을 넣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를 숨기고 방금 생각난 것처럼 말한 것이었다.

“전하! 소신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그리만 된다면 탄환이 총신에서 회전하며 발사가 되어 분명 파괴력이 더욱 커질 것이옵니다.”

이균이 뜻밖의 말을 하자, 나영실은 왕이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총신에 강선을 넣는다면 탄환의 회전력이 증가해 그 파괴력은 배가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평생 사서삼경만 공부하며 잡서는 읽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이균이 말하니 나영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럼 강선을 넣는 방법도 연구를 해보시오!”

“알겠나이다. 전하!”

각종 무기 개발 진행 상황이 만족스러운 듯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은 후 다른 무기들 개발 현황을 좀 더 살펴본 후 군기감을 떠났다.

****

어전회의

어전회의가 있자, 각 대신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조정은 이미 붕당이 형성되어 있었다.

백성들은 이균의 개혁, 개방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동인이라 불렀고, 이균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유학을 버린 변절자로 낙인찍으며 왕을 강하게 비난하는 세력을 서인이라 불렀다.

동인과 서인은 마치 원수라도 진 것처럼 서로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상 전하 입시오!”

내관이 큰소리로 외치자 서로 모여 대화를 나누던 대신들이 곧 몸을 조아리며 예를 갖추었고, 곤룡포를 입은 이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균은 잠시 대신들을 둘러본 후 옥좌에 앉았다.

“흐음. 오래간만에 여러 대신과 함께 정사를 논하는 자리를 마련하니 기분이 아주 좋구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대들이 노고 덕분에 우리 왕실 재정이 넉넉해졌으며, 고단했던 백성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소. 짐이 아주 복이 많은 왕인 것 같소. 이렇게 한결같은 충신들과 명재상이 있으니 짐이 더는 할 일이 없지 않소.”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이 모든 것이 백성들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때문이 아니겠나이까? 전하께서는 천세에 빛나는 명군이시옵니다.”

‘서애가 저렇게 아부를 잘했나?’

도승지 류성룡이 낯부끄러울 정도의 아부성 멘트를 날리자,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청화백자 판매를 통해 우리 조선의 재정이 많이 좋아졌소. 그러나 살펴본 바로는 국방력이 형편없는 수준이라 하오. 이래서 어찌 외침을 막아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겠소. 참으로 딱한 지경이오. 병조판서가 말해보시오!”

이균이 마침내 어전회의를 소집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전하! 조선이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온 탓인지 병장기는 녹슬어 창고에 방치되어 있고 병졸들도 군적에 이름만 올라 있을 뿐 존재하지 아니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외침을 당하면 조선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옵나이다.”

율곡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조선군이 형편없는 오합지졸이라며 조선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겠소!”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이균과 율곡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전하 지금 당장 전란이 발생하면 조선 팔도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채 몇 만이 되지 않사옵니다. 이리해서는 외침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국세가 부진한 것이 극도에 달했으니 조선군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10년이 채 가지 않아 토붕와해의 큰 화가 있을 것이옵니다. 바라건대 20만 명의 군병을 길러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소서!”

“뭐라고 20만 대군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율곡이 마침내 20만 양병설을 꺼내자 어전이 소란스러워졌다.

특히 서인들은 자신들이 말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하며 혼란스러워했다.

“20만이라! 20만의 정병을 양성하자는 말이지요?”

이균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율곡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바라건대 20만의 군병을 길러 도성에 4만, 각 도에 2만을 배치하여, 세금을 덜어주고 재주 있는 자를 훈련시킨다면 감히 조선을 넘보는 자는 없을 것이옵니다.”

“흐음. 그럴 것이오. 20만 대군이 조선을 지키는데 누가 감히 조선을 넘볼 수 있겠소.”

그러자 이를 잠자코 듣고 있던 우의정 노수신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율곡을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감언이설로 전하의 성심을 흐리는 간신의 말을 따르지 마시옵소서!”

노수신이 율곡을 간신이라 말하자,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고, 이균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뭐라? 지금 간신이라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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