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정보가 국력이다
율곡에 이어 새롭게 도승지가 된 류성룡이 들어와 이균에게 예를 갖춘 후, 자리에 앉았다.
“그래! 오문은 잘 다녀왔소!”
“그러하옵니다. 전하!”
“흐음. 오문을 다녀온 소감이 어떠하오?”
이균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 한 모금을 마시며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그도 이황의 제자로 사림과 뜻을 같이하며 이균의 급진적인 개혁에 반감을 품었기에 이균은 마카오에 다녀온 류성룡이 마카오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가 궁금했다.
“전하! 오문은 진귀한 물자가 가득한 신천지와 같았사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상인들이 수도 없이 오가며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류성룡도 생각이 바뀌고 있구나.’
마카오에 다녀온 류성룡이 이균의 의도대로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하자, 이균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남만국이 홍이포를 주기로 했다고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기꺼이 홍이포를 주겠다고 하였나이다!”
“흐음. 그것 잘되었구려! 우리 조선의 총통도 충분히 위력적이나 홍이포에 미치지 못하오. 명이 홍이포의 위력에 기겁을 했다 하지 않소. 우리 조선군도 홍이포로 무장할 필요가 있소. 홍이포와 조총으로 충분히 무장된다면 그 누구도 조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하옵나이다. 전하 오문에서 직접 홍이포의 위력을 확인하였나이다. 그 위력이 총통보다 월등하였나이다.”
마카오에서 홍이포가 발사되는 모습을 직접 참관한 류성룡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홍이포가 들어오면 잘 연구해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겠어요. 이참에 군기감을 다시 만들어 총포나 화포 등 무기 개발 연구에 전념하도록 해야겠어요!”
언제까지 홍이포 등 무기를 수입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균은 없어져 버린 군기감을 부활시켜 무기 개발을 독려할 심산이었다.
“전하! 좋으신 생각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조선군은 더 강해질 수 있사옵니다.”
류성룡도 이균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리고 이번에 정보 수집을 담당할 관청을 따로 만들어야겠소!”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이균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류성룡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림들의 동태도 수상하고, 이번에 오문을 다녀와서 그대도 느꼈겠지만, 조선은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소. 그것이 다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요. 조선은 물론이고 명, 왜. 그리고 남만국까지 곳곳에 세작을 보내 정보를 캐어낼 필요가 있지 않겠소.”
이균은 미국의 CIA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가 정보원 같은 정보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수집이 필수이다.
특히 이균이 파격적인 행보에 불만을 품은 사림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기에 그들의 동태를 신중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고, 또 조선을 둘러싸고 있는 명, 왜 그리고 언젠가는 유럽 각국의 돌아가는 정세도 시시각각 파악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전하! 좋은 생각이신 것 같사옵니다.”
류성룡은 그제야 이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균이 나이는 어리지만, 무어랄까 자신보다 한수, 두수 앞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그럼 새로 생기는 관청의 이름을 정후청이라 하겠소. 그럼 믿을만한 정후청장을 추천해줄 수 있겠소. 아무래도 정보를 독점하니 우리 편이어야 할 텐데......”
이균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보기관의 수장을 추천해 달라 하자 류성룡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하! 병조참판 김명원이 어떻겠습니까?”
“김명원이라! 그자도 이황의 문도가 아니오?”
김명원도 이황에게 학문을 배웠기에, 이균은 류성룡의 입에서 김명원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소 불만족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하오나 그렇게 성리학에 빠져 있는 자는 아니옵니다. 비록 문과에 급제했으나 병법과 궁마에도 아주 능한 자이옵니다. 또 타고는 자질이 호쾌하고 대범하여 능히 전하를 보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명원.
그는 1534년생으로 류성룡보다는 8년 먼저 태어났고, 류성룡과 마찬가지로 이황의 문도에 있었으니 성리학에 물들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류성룡의 말처럼 성리학 원리주의자라기보다는 보다 융통성이 있었고, 오히려 성리학의 지나친 교조적인 사고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호탕한 인물로 문에도 능했지만, 병법에도 능한 인물로, 마치 대장군과 같은 무인의 기계가 풍겨져 나왔다.
문과에 급제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무과에 급제하여 북방에 나가 말을 달려 여진족을 소탕하는 조선 최고의 장수가 되었을 것이다.
“흐음. 그자를 믿을 수 있겠소?”
“전하! 김명원은 사교보다는 지조와 충을 중하게 여기는 자이옵니다. 비록 이황의 문도이기는 하나 사림들과 그렇게 절친한 관계는 아니 오니, 전하께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병법에도 능한 자라! 그렇구려! 그대가 추천하니 김명원을 정후청장으로 임명하겠소!”
류성룡이 강력하게 추천하니 이균은 그를 믿고 김명원을 초대 정보기관 총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전하! 그런데 소신이 오문에서 아주 무예가 출중한 귀신과 같은 이들을 보았나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류성룡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뜨거운 녹차를 한 모금 마시던 이균은 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피부가 검고 머리가 곱슬 거리는 처음 보는 이들이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몸이 유연하며 무예가 출중해 남만국 군사들을 혼자서 순식간에 제압해버렸습니다.”
‘서애가 흑인 용병을 처음 보았나보구나.’
이균은 그제야 그가 말하는 것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용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흑인 용병을 처음 보는 류성룡으로서는 그들의 탁월한 신체조건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그래요! 그런 귀신과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이오?”
그러나 이균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런 자들을 본 적이 없사옵니다. 마치 귀신과 같이 날렵하여 가히 일당백의 용사들이라 할 것입니다.”
“대단하구려! 그런 자들을 우리도 용병으로 데려다 쓸 수 있다면 우리 조선군의 군사력이 꽤 든든하겠구려!”
“전하! 그러하옵나이다. 우리 조선군도 그들을 용병으로 쓸 필요가 있습니다. 오문(마카오)의 조르제 총독도 우리가 원하면 그들을 구해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왕의 뜻이 같음을 확인한 류성룡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그렇소! 잘 되었구려. 마침 이번에 병조판서로 간 율곡이 조선군의 군사력을 높이는 개혁안을 마련 중에 있소. 병조판서와 협력해 용병을 데리고 오는 방안을 함께 논해보시오.”
이균은 당연히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데리고 온 흑인 용병들이 해귀라 불리며 활약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흑인 용병을 데리고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류성룡이 흑인 용병에 관해 이야기를 하니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알겠나이다. 전하!”
“흐음. 그런데 요즘 책을 쓰고 있다고요?”
이균이 다시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아······. 전하! 별것 아니옵니다. 오문에 가서 느낀 것이 많아 그곳에서 듣고 본 것을 적어보고 있사옵니다.”
“그래요! 책을 다 쓰거든 짐에게도 보여주시오. 그리고 유생들에게도 보여줘야겠구려. 그러면 그들도 생각이 좀 바뀌겠지요.”
이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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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을 만난 후 이준기는 왕의 뜻에 따라 경기도 광주에 대규모로 가마를 증설하고, 도공들이 하는 역할을 나누었다.
자기의 모양을 만드는 과정, 유약을 바르는 과정, 코발트를 입히는 과정, 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과정, 가마에 불을 넣는 과정으로 분업화했다.
경기도 광주는 어느덧 명나라 최고의 자기 생산기지인 경덕진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가마수를 가지게 되었고, 오히려 생산과정이 마치 현대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분업화되어 생산량은 경덕진을 능가하게 되었다.
광주는 세계 최대의 도자기 공장이 되어 있었다.
이균은 직접 경기도 광주를 다시 방문해 경덕진에 버금가는 규모의 시설을 갖춘 자기 생산 시설을 직접 보며 자기 생산에 여념이 없는 도공들을 격려했다.
유럽인들이 열광하는 청화백자, 왜놈들이 최고의 가치로 치며 돈을 주고 앞 다투어 사가는 막사발 등 각종 수출용 자기가 이균이 제안한 대로 분업화되어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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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병조참판으로 있다가 졸지에 정후청이라는 정보기관의 수장이 된 김명원은 처음으로 만들어진 정보조직을 꾸리느냐 여념이 없었다.
김명원은 류성룡이 왜 자신을 정후청장으로 추천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황의 문도로 류성룡과 자주 교류하던 그는 류성룡에게서 마카오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그도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왕이 무엇을 꿈꾸는지도 들었다.
왕에게 큰 포부가 있다는 말을 들은 그도 심장이 뛰었으며, 본래 호탕하고 병법에 능한 대장부의 기질을 가진 그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다.
김명원은 우선 무예가 출중한 2,000여 명의 갑사를 뽑아 정후청 내에 당보군으로 충원했다.
당보군은 조선에서 가장 무예가 출중하며 날렵한 자들로, 무예뿐만 아니라 신분조회까지 거친 자들로 왕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들로 구성된 조선 최고의 정예군이었다.
이들은 금군과 함께 왕을 밀접 경호하며, 왕에게 위급한 상황이 초래할 경우 왕을 끝까지 책임지는 든든한 후원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보 수집을 주된 업무로 하는 원후병 1,000여 명을 선발했다.
이들도 기본적으로 무예가 출중하고 중국어, 일본어, 만주어 등 외국어에 능한 자들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우선 이균에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기대승, 노수신, 심의겸 등 사림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투입이 되었고, 나머지는 명, 왜, 여진족이 활동하고 있는 만주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동북아 거점 기지인 마카오까지 침투해 정보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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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이균은 홀로 구중궁궐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침소에서 독한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눈여겨보았던 궁녀를 들여 품었을 것이겠지만, 오늘은 혼술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아른거리는 촛불 사이로 혼자 소주를 들이켜니 외롭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운치도 있었다.
‘졸지에 조선으로 와 팔자에도 없는 왕 노릇을 한 지도 5년이 다되어 가는구나.’
잘나가는 중앙지검 검사가 느닷없이 조선으로 회귀에 조선의 절대 암군 선조가 되어 버린 자신의 운명이 어처구니가 없는 듯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는 소주잔을 단숨에 비운 후 잔을 내리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왕이 되자 왕권을 위협하는 척신 심통원과 그 일파를 제거하고 왕을 지지했던 사림과 척을 지면서까지 조선의 문호를 왜와 포르투갈에 열어 청화백자와 막사발을 팔았다.
조선은 유럽과 일본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하이테크 기술이 필요한 도자기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그의 예상대로 도자기는 불티나게 유럽과 왜에 팔려나갔고 그로 인해 조세 수입은 급증해 빈약했던 왕실 재정은 제법 튼튼해졌고, 백성들도 고수입이 보장되는 도공이 되거나, 만들어진 자기 운송업, 도자기 위탁 생산업 등을 하였고 전국 곳곳에 상업이 부흥하며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림들은 불만이었다.
이균이 성리학이 원하는 이상적인 군주가 되기를 원했던 사림들은 어느새 이균을 군자의 도리를 저버린 이단으로 간주하고 그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이제 왕권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척신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전하! 영의정 대감 입시옵니다!”
이균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당직 내관이 영의정 이준경이 왔다고 알려 왔다.
“뭐라! 이 늦은 시간에 영상 대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