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조선을 경계하는 명나라
장거정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융경제를 바라보았다.
“조선이 어찌······. 청화백자를······!”
융경제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에게 있어 청화백자는 명나라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는데, 명에 조공이나 바치는 제후국에 불과한 조선이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허락도 없이 포르투갈에 팔고 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황상 폐하, 최근 들어 파랑국이 구입해가는 청화백자의 수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알아보니 파랑국 상선들이 조선에 드나드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조선은 회회청이 없지 않소?”
“파랑국이 조선에 회회청을 공급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라! 파랑국이······. 이놈들이 미친 것이 아니오. 오문(마카오)까지 그놈들한테 떼어줬는데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고 조선과 교역을 한다는 것이오.”
융경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청화백자가 명나라 황실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청화백자의 수출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황실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융경제는 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황상폐하 청화백자가 황실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파랑국이 청화백자를 사가지 않으면 황실재정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조선을 이대로 두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장거정도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황제가 정사를 나누고 있음에도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명나라의 충실한 제후국으로 항상 고분고분했던 조선이 그렇게 갑자기 명나라의 뒤통수를 칠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라고. 조선의 국왕이 어리다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수렴청정을 하고 있을 터인데······. 누가 조선의 실세요. 그자가 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융경제는 조선의 어린 왕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없기에 분명 조선이 그리 나가는데는 그 배후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황상폐하! 조선의 왕이 비록 어리지만,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아는 것 같습니다. 이미 조정을 장악해 독자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무엇이라! 수렴청정을 하지 않는다고?”
조선왕이 직접 통치를 하고 있다는 말에 융경제는 잠시 놀란 눈빛을 보였다.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명조차 즉위한 왕이 어리다면 수렴청정을 거치는 것이 관례라 할 것인데, 즉위하지 마자 조정을 장악해 직접 통치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영악한 자인 것 같습니다. 조정을 그 나이에 장악한다는 것이······.두고 보아야 할 자인 것 같습니다.”
“감히 조그마한 나라가 대명국에 반하는 짓을 하다니 용납할 수 없소. 조선이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조처를 하시오.”
융경제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황상폐하!”
“흐음. 그건 그렇게 짐의 운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소. 그대가 생각하기에 누가 옥좌를 이어받았으면 하오.”
“황상폐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장거정은 융경제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으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엄연히 황제가 살아 있는데 다음 보위를 논한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으로 자칫 잘못했다가는 역모죄의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그는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아니오! 짐의 몸은 짐이 잘 알고 있소!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소.”
융경제는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최음제를 너무 많이 복용한 탓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여성들과 난잡한 성관계를 해 기력을 소진한 탓인지 최근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그는 자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폐하! 부디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의원의 도움을 받으시면 기력을 회복하시어 대명국을 천세토록 다스리시올 것입니다.”
“하하하! 그대는 과연 충신이오. 흐음. 하지만 아무리 황제라 해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보위를 이어받을 아들놈인 익균 이놈밖에 없는데······. 나약해빠지고 아둔해서 걱정이오. 제국을 넘겨받을 놈이 아니거늘.”
자신의 몸이 쇠약해지지 그는 서둘러 셋째 아들 익균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첫째, 둘째 아들이 모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마지못해 셋째 아들을 적통으로 삼았으나, 사실 익균은 게으르고 아둔해 거대한 제국을 통치할 인물이 되지 못했다.
비록 중원을 지배하고 있으나, 사실 명나라는 그다지 강한 왕조가 아니었다.
비천한 신분의 주원장은 한족을 괴롭히던 몽골족을 몰아내고 다시 중원을 지배하게 되었으나, 몽골족과 타타르족 등 북방 민족이 지긋지긋하게 명나라를 괴롭혔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족은 옛 영광을 다시 찾고 싶은지 힘이 생기면 수시로 명나라를 침입했다.
명나라 초기 명의 몽골족을 통일한 오이라트는 그들의 용맹스러운 군대를 이끌고 명나라 변방인 산시성을 침략했고, 이에 명 황제 정통제는 직접 친정에 나섰으며 몽골군에 사로잡히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또 몽골 부족 중 가장 세력이 큰 부족 중의 하나인 타타르부의 알탄 칸은 세력을 모아 1547년 기병을 이끌고 명을 급습해 명의 북방을 마음껏 유린하며 수십만 명을 살해하며 남진해 명의 수도 북경까지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명의 북방은 이토록 몽골족 등 북방 민족의 침략으로 한때도 조용한 적이 없었고, 명 황실은 항상 그들의 침략을 걱정하며 근심 속에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남쪽이 편안한 것도 아니었다.
수시로 왜구들이 명나라 서남해를 침략해 약탈을 일삼아 명의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척계광, 유대유를 통해 왜구를 토벌하고, 북쪽의 몽골족도 잠시 잠잠해졌으나, 융경제는 그들이 언제 또다시 발호해 국경을 어지럽힐지 근심이 되었다.
그런데 황통을 이어받을 익균은 어린 데다 어리석고 게으르기까지 하니 황제의 자리나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장거정도 융경제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황태자가 어리석어 황통을 이어받을 재목이 아니라고 여겼으나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흐음. 그대가 황태자를 잘 이끌어 주어야 하오. 이 넓은 자금성에 믿을 만한 자는 그대밖에 없소!”
융경제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상폐하!”
장거정은 제대로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
****
“흐음. 도자기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고!”
이균이 인자한 눈빛으로 조선 도자기를 만드는 총 책임자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이균은 직접 이준기를 궁궐로 불러들여 도자기 제작현황을 체크하고자 했다.
생전 처음 궁궐을 찾은 이준기는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그렇습니다. 전······. 하! 도공들과 화원들이 합심해 청화 백자를 만들고는 있으나, 남만국 상인들이 워낙 많이 주문해서······.”
이준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그대가 자기를 잘 만드니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균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 과찬이시옵니다. 전하!”
“그래! 막사발도 잘 팔리고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왜인들이 부산포에서 막사발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청화백자도 많이 사가고 있사옵니다.”
왜놈들이 좋아하는 막사발도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다.
3포가 다시 열리고 조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막사발을 팔기 시작하자 노부나가 뿐만 아니라 다른 영주들도 상선을 보내 막사발을 대량으로 구매했고, 막사발뿐만 아니라 청화백자나 분청사기 등 다른 조선의 자기도 요구했다.
청화백자와 막사발이 대량으로 유럽, 그리고 왜에 수출되자, 빈약했던 왕실의 재정도 풍족해졌다.
“흐음. 도공을 양성하는 학교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도공이 부족한 것이냐?”
“네. 전하. 워낙 자기를 요구하는 이들이 많아서······.”
자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도공 양성 학교를 만들어 도공을 공급했으나, 그럼에도 도공의 숫자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일을 분업해서 하면 효율성이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준기는 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자기의 모양을 만드는 사람, 그림을 그려 넣는 화공, 유약을 바르는 자, 가마에 불을 때는 자 등 역할을 구분해 자기 할 일만 하면 더 능률이 오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균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장처럼 도자기 만드는 공정을 나누어 공정마다 자기일 만 하도록 하는 방법을 이준기에게 제안했다.
마치 도자기를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 생산하는 공산품처럼 신속하고 빠르게 만들어 내자는 제안이었다.
“전하! 탁월하신 발상이옵니다. 그리하면 청화백자를 배는 빠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준기는 이균이 낸 아이디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일을 나누어서 하게 되면 그 분야에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더욱 빠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그리하도록 해보거라!”
“알겠나이다!”
“흐음. 그리고 남만국이 전해주는 회회청은 품질이 좋은가?”
포르투갈이 코발트를 공급해주어 청화백자를 만들고는 있으나, 코발트의 공급이 끊기면 청화백자를 만들 수 없기에 항상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전하! 쓸 만하옵니다.”
“다행이구나. 음. 그리고 그래도 생산량이 부족할 수 있으니 일정량은 조정에서 도급을 주어 백성들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지금까지 청화백자는 모두 왕실에서 관리하는 관요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가마 숫자를 늘리고 도공의 수의 수를 늘려도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일정량은 상인들에게 위탁해주는 묘안을 이균은 생각해냈다.
그렇게 되면 청화 백자를 일정량은 민간인들도 만들게 되어 도자기 수익을 근거로 꽤 큰 민간기업도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균의 의도였다.
모든 경제적 활동을 왕실이 주도해서는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에 한계가 있고 그 혜택이 모든 백성에게 돌아가지 않기에 민간 경제도 함께 키워나가야만 했다.
“전하! 그리되면 도자기를 많이 생산할 수는 있으나, 자기의 질이 떨어질까 염려되옵니다.”
이준기는 관요가 아닌 민간요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되면 청화 백자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질이 떨어지는 자기를 수출하게 되면 그동안 쌓아온 남만국 상인들과의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것이다.
“흐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왕실에서 품질을 검사해 인증을 받은 도자기만 유통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아······. 그리하면 될 것 같사옵니다.”
이준기는 또다시 무릎을 쳤다.
왕실에서 품질 인증만 해주면 품질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래! 아들 녀석이 이삼평이라 했지? 아들놈은 잘 크고 있느냐?”
“전하! 어찌 비천한 제 아들 녀석 이름까지······.”
이준기는 조선의 최고 지존이 자기 아들 이름까지 기억하자 감격에 겨워 훌쩍거렸다.
“받거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살림에 보태 쓰거라!”
이균은 은괴가 들어 있는 작은 상자를 이준기에 건네주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은괴가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받은 이준기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지금까지 받은 재물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정도인데, 국왕께서 직접 은을 하사하니 이준기는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
“전하!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들라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