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22화 (22/202)

22화 마카오 사절단(1)

“전하! 병조판서라 하셨나이까?”

율곡이 놀라 다시 반문했다.

“그렇소. 그대가 평소에도 우리 군에도 관심이 많지 않았소. 그대가 병권을 잡아 조정을 안정시키시오!”

이균은 사람들이 준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고 자신의 최측근인 율곡을 병조판서로 삼아 군부를 확고히 틀어지려 하는 계획을 세웠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심을 다해 전하를 받들겠습니다.”

“하하하. 좋소! 우리 군도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오! 조선군 태반이 군적에만 이름이 올라 있을 뿐이라 들었소. 이렇게 나약해 빠져서 어찌 외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겠소!”

“신 목숨을 다 바쳐 조선군을 최강의 군대로 만들겠나이다!”

율곡이 자기 뜻을 수락하자,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그럼 그대의 후임을 누구로 정하면 좋을꼬? 영상! 추천해줄 인물이 있소?”

이균이 새롭게 도승지가 될 자를 추천해 달라 하자, 이준경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전하! 이번에 마카오로 가는 류성룡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그도 지금은 사람의 뜻에 동조하고 있으나 융통성이 있고 총명한 자이옵니다.”

영상 이준기가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류성룡을 새로운 도승지로 추천했다.

류성룡은 1564년 과거에 합격한 인물로 어릴 적부터 총명하기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이황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인물로 그 또한 성리학 근본주의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른 사림들과 달리 융통성이 있는 인물로 이준기는 그를 일찍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가 생각을 바꾸어 이균과 뜻을 함께 같이한다면 어린 왕 이균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선조의 총애를 받고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류성룡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흐음. 그래요! 영상께서 추천하니 마땅히 도승지로 삼아야겠지요.”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준기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자! 그럼 우리 본격적으로 사냥을 즐깁시다!”

이균은 조선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국궁을 잡고 말을 힘껏 달렸다.

왕의 말이 힘껏 치고 달리자 몰이꾼들은 다시 요란하게 꽹과리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동물들을 몰아갔다.

그리고 곧 몰이꾼들에게 쫓긴 꿩이 날개를 푸드덕거렸고, 이를 본 이균은 있는 힘껏 활시위를 당겨 날아오르는 꿩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전하! 명중이옵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꿩을 정확히 명중시켰고 꿩은 날개를 퍼덕이며 땅에 고꾸라졌다.

“전하 태조 대왕께서 재림하신 것 같사옵니다.”

꿩을 그대로 관통시킨 이균의 활 솜씨를 본 이준경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궁으로 소문난 이성계가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잠시 할 정도였다.

스스로 활을 쏜 이균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조선이 자랑하는 국궁을 처음 써보는 것이었기에 제대로 날아가기나 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뜻밖에 결과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성계의 후손이 맞긴 맞는가보다.’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군대에서 사격 훈련을 할 때도 20발을 모두 맞힌 기억이 있는데, 이성계의 후손이 맞긴 한 모양이다.

기분이 좋아진 이균은 더욱 말을 달려 사냥을 즐겼고, 저녁노을이 질 때쯤에야 금군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로 돌아왔다.

****

강화도

구스타프 상단의 주선 산타리나호에 류성룡과 이번에 과거에 급제한 이들이 올라탔다.

그리고 그 무리 속에는 원균도 함께 있었다.

오래간만에 강화도에 온 구스타프 상단은 갤리온선에 조선의 청화백자를 가득 실었다.

조선이 명나라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청화백자를 저렴하게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포르투갈 상선들은 마카오뿐만 아니라 강화도에 들러 조선의 청화백자를 구입해갔고, 조선 자기를 독점하던 구스타프 상단은 이제 다른 상선과 경쟁하며 자기를 구입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조선의 청화백자는 그에게 큰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특히 그는 조선 정부와 각별히 지내고 있었기에, 과거에 급제한 조선 관리들의 마카오 견학을 기꺼이 도와주기로 했다.

“감축 드립니다. 도승지로 승차하셨다 들었습니다.”

수염이 제법 멋있게 자라있고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갑판에 올라 일꾼들이 분주하게 청화백자를 싣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류성룡에게 말을 걸었다.

“아. 감축은 무슨······. 그대가 원균이요?”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갑자기 명나라의 오문(마카오)에 다녀오라 하시니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원균은 류성룡이 자신보다 2살이나 어렸으나 그가 왕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도승지로 승차했다는 소식을 들은 탓인지, 류성룡을 깍듯이 대했다.

“하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왜 갑자기 과거에 급제한 이들을 이끌고 남문국이 지배하는 오문(마카오)을 다녀오라 하시는지······. 북방에 있었다 들었는데······.”

“조산보에 있었지요.”

류성룡은 원균을 흘깃 보았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용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흐음. 그래요? 최전선에서 북방을 지키는 장수였구려. 그래. 야인들의 동태는 어떻소!”

“야인들이야 뭐! 틈만 나면 약탈이나 하려고 하고 있지요. 하하하 생각 같아서는 말을 달려서 야인 놈들을 확 쓸어버리고 싶은데 말이죠. 야인 놈들이 있는 만주, 요동 땅이 다 사실 우리 조상님들 땅이 아니었습니까!”

원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음. 그렇기는 하지요!”

원균은 무인다운 기개가 있었으나, 류성룡은 왠지 원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의 기세를 무서워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매섭게 돌격하는 돌격장의 이미지는 있었지만, 앞뒤 사정을 가리지 않는 단순무식한 인물인 것 같았다.

“그런데 북방에 가있는 동안 강화도가 천지개벽했군요. 요상한 모양의 건물도 많고, 이놈들이 다 남만 놈들인가요?”

북방에서 거친 야인들을 상대하다 마카오에 가는 조선관리들을 호위하라는 어명을 받고 부랴부랴 강화도에 온 원균은 뾰족한 첨탑이 있는 성당, 유럽풍의 건물이 곳곳에 들어선 강화도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흐음. 그렇소. 전하께서 다 이렇게 만들었지요.”

류성룡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왕이 그를 도승지로 간택했지만, 이황의 문하에 있던 그도 이념을 중시하는 성리학자였기에 어린 왕이 추구하는 급격한 개혁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경연장에서 이균이 행한 난동을 전해들은 류성룡은 군자의 도리를 수행해야 할 조선의 왕이 그런 망나니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성군도 류성룡이 이황의 문하에 있던 인물로 사림과 그 뜻을 같이한다는 것을 분명 알 터인데, 그가 왜 자신을 도승지로 임명한 것인지 류성룡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전하의 의도가 무엇인가? 사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런데 저놈들이 그렇게 도자기에 환장한다는 겁니까? 이 배에도 도자기가 가득 실린 것 같던데······.”

이균이 생각에 잠겨 있는 류성룡에 다시 말을 걸었다.

“흐음. 뭐 그렇다고 하오! 남만국인들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구려. 그래서 명나라 자기를 사 왔었는데, 전하께서 명보다 자기를 싸게 주겠다고 하니······. 조선으로 몰려드는 것 같소.”

“미개한 놈들이군요. 도자기 하나 못 만들고. 배 모 양은 왜 이렇게 요상한지······. 참.”

원균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도 명나라 이외에 나라는 야만적인 오랑캐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포르투갈인들의 요상한 복장과 배의 모양 등 하나하나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먼 바다를 가기 위해 그리 만든 것이라 하더이다. 저 커다란 돛을 자유자재로 조정해 바람을 타면 아주 먼 곳도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흐음. 그렇습니까? 제법 튼튼하게는 생긴 것 같기는 한데······.”

류성룡과 원균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그들을 태운 산타리나호가 닻을 올리고 마카오를 향해 출항했다.

바다는 사납지 않았고, 때마침 마카오 쪽으로 향한 바람이 불어주어 갤리온선이 항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강화 앞바다를 벗어난 산타리나호는 돛을 높이 올리고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

포르투갈의 동아시아 무역의 거점 기지인 마카오의 모습은 강화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류성룡과 과거에 갓 급제한 이들은 마카오의 휘양 찬란한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연결하는 입지를 갖춘 곳에 있는 마카오는 포르투갈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곳이었다.

도자기, 비단 등 동아시아의 진귀한 물건을 교역하여 얻은 이익이 향신료 무역보다 많은 돈을 벌게 해주기에 마카오는 포르투갈에게 그 어느 곳보다 소중한 곳이었다.

수십 여척의 거대한 갤리온선이 마카오 항에 정박해 비단, 청화백자, 향신료 등 진귀한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었고, 강화도에 있는 성당보다 훨씬 규모가 큰 거대한 성당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었으며, 커다란 유럽풍의 상점 건물들이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며 명나라의 진귀한 물건을 흥정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새빨간 등을 켜놓고 반라의 여인들이 목숨을 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마카오에는 포르투갈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 상인, 일본 상인, 향신료를 가지고 온 동남아 상인, 이탈리아인, 유대인 그리고 그들의 노예인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까지 온갖 인종이 모여드는 국제도시였다.

“여기가 명나라의 땅이 맞는가?”

류성룡도 생전 처음 보는 포르투갈의 이국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지는 매한가지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생전 처음 보는 진귀한 물건이 가득했고, 피부가 새까만 흑인들까지 처음 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원균도 마카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특히 마카오를 둘러싸고 있는 요새와 요새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화포 그리고 병사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에 관심이 많았다.

마카오에 도착한 류성룡과 그 일행은 총독 조르제의 지시로 환대를 받고 마카오 곳곳을 견학했다.

마카오 곳곳을 둘러본 과거에 급제한 유생들도 충격을 받은 것은 매한가지였다.

태어나자마자 붓을 잡고,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사서삼경을 죽어라 외우며 과거 준비를 했던 그들에게 세계는 오로지 천자의 나라 명밖에 없었다.

그 외의 나라는 야만적인 오랑캐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상인들이 만나 자유롭게 교역하는 풍요로운 마카오의 풍경은 그들이 얼마나 세상을 알지 못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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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환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류성룡이 견학단을 대표해 조르제 총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선은 우리 포르투갈 제국의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조르제 총독도 조선이 청화백자의 중요한 공급처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조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남만국이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까?”

“하하하! 아주 먼 곳에 있지요.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조르제가 포르투갈이 어디에 있는지 총독실에 걸려 있는 세계 지도를 보여주며 알려주자, 류성룡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조르제의 설명을 들었다.

“이곳이 남만 국이 발견했다는 새로운 땅입니까?”

류성룡이 손으로 가리키며 물어본 곳은 브라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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