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청화백자를 유럽으로!(1)
포르투갈 상단 일행이 명나라 청화백자의 품질에 뒤지지 않는 청화백자를 보고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이자,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조선이 이런 훌륭한 청화백자를 만들 것으로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코발트를 공급하면 정말 이와 같은 자기를 공급해줄 수 있는 것입니까?”
상단의 책임자 구스타프는 몹시 흥분되어 있었다.
빨리 조선의 청화백자를 가져가 유럽에 팔아 큰돈을 벌고 싶은 듯했다.
“그럼 우리 조선에 코발트를 저렴하게 공급해줄 수 있겠소? 그대들이 코발트를 공급해주면 우리 조선은 청화백자를 명나라의 그것보다 더 저렴하게 공급하겠소.”
구스타프는 횡재를 한 듯싶었다.
명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조그마한 나라 조선에서 노다지를 발견한 것 같았다.
다른 상단이 눈독을 들이기 전에 조선의 청화백자를 자신들이 독점하고 싶었다.
게다가 명나라보다 도자기를 싸게 공급하겠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하겠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국왕께서 신경을 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제 포르투갈 상단의 누구도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조선 국왕의 마음이 바뀔까 봐 이균의 비위를 맞추려 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하하하. 좋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조선과 남만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자 도성에서 며칠 더 머물다 가시오.”
이균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구스타프를 비롯한 포르투갈 상단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조아렸다.
포르투갈 상단은 조선에서 융성한 대접을 받으며 도성에서 약 한 달여 동안 머무르다 포르투갈 교역의 전진기지인 마카오로 떠났다.
포르투갈 상단이 청화백자의 원료인 코발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겠다고 약속하자, 이균은 곧바로 강화도에 커다란 갤리온선이 입항할 수 있는 항구와 경기도 광주 일대에 있는 관요의 숫자를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또 조선 팔도에 흩어져 있는 도공과 도화원의 화원 또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았다.
일본에 막사발을 팔아 이문을 남기고 있지만, 막사발만으로는 조선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막대한 자본을 만들어줄 청화백자를 반드시 유럽에 팔 수 있는 판로를 뚫어야만 했는데, 다행히 포르투갈이 청화백자의 원료는 코발트를 공급해주고 조선의 청화백자를 사주겠다고 하니, 이균으로서는 주저함이 없이 청화백자를 만들기 위한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균은 도성과 거리가 가까운 강화도를 완전히 개방하여 유럽, 아라비아 등 수많은 타국 상인들과 상선들이 드나드는 동북아 최고의 무역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균이 유럽의 오랑캐와 본격적으로 교류하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조정 대신들은 서로 나누어져 명나라를 배제하고 오랑캐와 교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다투었다.
이균을 왕으로 추대한 이준경도 실상은 이균이 오랑캐와 교류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그를 왕으로 추대한 것이 자신이니 일단 지켜보며 이균을 지지하기로 했고, 왜에 통신사로 다녀온, 율곡과 박순 등도 왕을 지지하며 유럽과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상당수의 조정 관리들은 천자의 나라인 명의 허락 없이 그들과 교류하면 명의 노여움을 살 것이라며 교역을 반대하는 상소를 하루가 멀다 하고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상소를 올리건, 입에 게거품을 물고 교역을 반대하건 어쩌건 이균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청화백자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
“어르신 가마에 불을 넣을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흐음. 그래. 가보세!”
가마에 불을 넣을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들은 조선 최고의 도공 이준기가 긴장된 모습을 하고 청화백자가 가득 든 가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준기의 모습이 보이자, 불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던 도공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포르투갈 상단이 약속한 회회청(코발트)이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준기는 이균의 어명에 따라 조선 제일의 도공들을 모아 명나라에서 구한 회회청으로 우선 청화백자 200여 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가마에 구울 준비를 마쳤다.
도공들은 지엄하신 어명을 받들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자기를 만들었다.
유럽인들이 좋아할 만한 찻주전자, 접시에서부터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자기까지 다양한 청화백자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들어지는 자기라 해도, 불 조절에 실패해 가마에 들어간 도자기가 잘못 구워지면 그 자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준기는 도자기가 가득한 가마를 잠시 바라보더니, 가마를 향해 절을 올렸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도공들도 바닥에 넙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이준기는 부디 천하를 빛낼 도자기를 만들어 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어르신 이제 불을 넣을까요?”
“그리하도록 하게!”
도공 이준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불을 넣으라 하자, 횃불을 들고 있던 이들이 장작이 가득한 가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고, 잠시 후 청화백자가 가득한 가마의 장작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르신 전하의 마음에 드는 자기가 나와야 할 터인데.”
이준기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도공 윤철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러게 말일세. 비천한 신분인 우리를 믿어주신 전하의 성은을 갚아야 하는데······.”
활활 타오르는 가마를 바라보는 이준기는 초조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첫 자기이니만큼 누구라도 그 매혹에 빠질 수 있는 그런 자기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마 안의 일은 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최소한 3일 이상을 1,300도가 넘는 가마의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이겨내야만 유럽인들이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 청화백자가 탄생할 수 있다.
“어르신, 전하가 우리를 이용만 하고 버리시지는 않겠지요?”
윤철기는 이제 갓 보위에 오른 어린 왕이 천한 도공을 믿고 큰일을 맡겨 준 것이 감사하면서도 자신들이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허. 가마 앞에서 어찌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하는가? 사대부들이 또 왕들이 그동안 우리를 한 번이라도 사람 취급한 적이 있는가? 그러나 전하는 몸소 이곳까지 찾아와 비루한 도공의 손을 잡아 주셨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명분이 있는 것이야!”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
여의주를 문 용처럼 꿈틀대는 가마 속의 뜨거운 불길을 이준기는 말없이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저 뜨거운 불길을 부디 견디어 승천하는 용과 같은 걸작이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다른 도공들은 자신들이 불길을 볼 것이니 이만 들어가 쉬라 했지만, 이준기는 3일 밤 내내 가마 곁을 지켰다.
3일 밤을 활활 타오르던 가마의 불이 꺼져갔고, 이준기는 눈이 퀭하니 들어간 초췌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식어가는 가마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가마가 식어가자 이준기를 보조하는 도공들이 조심스럽게 가마 안으로 들어가 1,300도가 넘는 뜨거운 열을 견딘 푸른색 빛깔을 띠는 청화백자를 끄집어냈다.
청화백자의 자태가 보이자, 이준기는 긴장된 모습으로 천천히 가마 앞으로 걸어가 청화백자들을 어루만졌다.
“어르신! 백자가 아주 잘 구워졌습니다.”
수제자 윤철기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준기의 거친 손을 꼭 잡았다.
하늘이 감복했는지 청화 백자 상당수가 가마의 뜨거운 열을 잘 견디어 내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청화물감으로 수놓은 매화, 새, 대나무가 금방이라도 살아 나갈 것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흐음······!”
이준기는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뱉고 거친 손으로 잘 구워진 청화백자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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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이양선이 온다.”
수많은 인파가 강화도에 몰려들어 커다란 돛을 단 갤리온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 밥을 하다 말고 온 여인내, 글을 가르치다 온 훈장, 마치 강화도 주민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보는 배와 요상한 옷을 입은 유럽인들을 처음 보는 강화 주민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왁자지껄 떠들었다.
게다가 평생 한 번도 보기 어려운 자신들의 왕을 이렇게 직접 볼 수 있으니 이보다 큰 구경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소년왕 이균도 조총과 환도로 무장한 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갤리온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포르투갈 상단 구스타프 일행은 동방 무역의 거점인 마카오에 들렸다가 약속한 코발트를 한가득 배에 싣고 6개월 만에 다시 강화도로 돌아왔다.
“전하! 이렇게 몸소 먼 강화도까지 와주시니 영광이옵니다.”
조선왕이 직접 강화도까지 와 자신을 반겨줄 것으로 생각하지 못한 구스타프는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래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약속한 회회청(코발트)은 가지고 온 것이요?”
“그렇습니다. 저희 배에 가득합니다. 당분간 코발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스타프는 약속한 대로 청화백자의 원료인 코발트를 그들의 갤리온 선에 가득 싣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갤리온 선에 코발트가 가득 들려 있다는 말을 들은 이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말대로 당분간 코발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하하. 그대 덕분에 청화 백자를 마음껏 만들 수 있겠군요.”
“조선이 청화백자를 많이 만들면 저희도 큰 이문을 얻을 수 있으니 양국에 모두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대들이 가져갈 청화백자를 우리 도공들이 만들었으니 한번 보시지요!”
이균은 포르투갈 상단에게 팔 첫 청화백자를 직접 포르투갈 상단에게 보여주었다.
구스타프와 그의 상단은 조선 도공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청화백자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조선 도공들은 매화, 용, 대나무 등이 그려진 동양적인 작품부터 유럽인들의 구미에 맞는 회화적인 색채가 가득한 작품까지 다양한 청화백자를 만들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명나라 자기에 비에 손색이 없습니다.”
구스타프는 청화백자를 어루만지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처음 조선을 방문했을 때 조선이 만들었다는 청화백자를 보며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선이 청화백자를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인데, 강화도에 수백 점의 청화 백자를 직접 확인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만족한다니 다행이군요. 유럽 귀족들한테 인기가 충분히 있을 것 같소?”
“전하!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이 조선의 청화백자를 구하기 위해 안달이 날 것입니다.”
유럽의 귀족과 왕족들은 이미 명나라의 청화백자에 열광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예술적 작품이기에 명나라가 수출하는 청화백자는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런데 조선에서 명나라에서나 만들 수 있는 청화백자를 만들어 내니, 구스타프는 조선의 도자기로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전하!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다음에는 청화백자를 더 많이 생산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그대가 코발트를 풍족하게 전달해주었으니 청화백자를 만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내 이곳 강화도를 그대들 나라에게 개방할 터이니 그대의 나라로 돌아가거든 그대의 왕께 꼭 전해주시오.”
이균은 자신의 친필로 쓴 친서를 구스타프에게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