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왜놈한테 도자기 좀 팔아보자!(3)
이나바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기후성은 얼핏 보아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가파른 산 정상에 철옹성 같은 성벽이 둘러싸여 있어, 쉽게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이 철옹성과 같은 미노국의 산성을 공략해 미노국을 손에 넣었다.
그의 나의 불과 33살이었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노부나가는 나카지마까지 공략해 오와리국과 미노국의 다이묘가 되어 일본 전국시대의 새로운 영웅이 되어 다이묘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국과 미노국 백성들을 동원해 통신사 일행을 열렬히 환대하도록 했고, 수많은 인파의 환대를 받은 율곡과 박순은 여전히 기분이 좋은 상태로 기후성에서 노부나가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군기가 대단하구나!”
통신사 일행의 호위를 맡은 신립은 기후성에 주둔하고 있는 노부나가 군의 군기를 보고 놀랐다.
신립이 생각하던 왜군은 벌거벗고 망나니처럼 칼춤이나 추는 왜구의 모습이었는데, 직접 본 왜군은 조총과 창, 칼로 제대로 무장이 되어 있었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오랜 전란으로 실전을 경험해서 그런지 무척 군기가 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총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칼로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 무장의 도리라 여겼던 신립은 왜군 상당수가 조총으로 무장한 것을 보고, 조총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토록 많은 왜군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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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드시지요.”
노부나가의 가신이 통신사 일행을 안내했다.
기후성에 도착해 이틀 동안 풍성한 대접을 받으며 노부나가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노부나가를 만나게 되었다.
가신의 안내에 따라 율곡과 박순은 기후성 본성으로 향했다.
잠시후 30대 초반의 젊은 왜인이 가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났다.
‘저자가 직전신장이로구나.’
율곡은 오와리국의 다이뇨 오다 노부나가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제법 사내다운 호탕한 외모에, 총명하면서도 야망이 가득한 눈빛을 가진 그는 얼핏 보아도 영웅호걸의 모습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오다 노부나가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박순이 예를 갖추어 말했다.
아무리 젊은 장수라 해도 한 지방의 영주이기에 박순은 가능한 예를 갖추기로 했다.
“조선국의 국왕께서 이렇게 먼 곳까지 사신을 보내어 주시니, 감격스럽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왜가 서로 나누어져 피비릿내 나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이 건재하고, 이름뿐이기는 하지만 교토에 왕이 있는데, 이웃국 조선에서 쇼군과 왜왕을 제쳐놓고 자신을 찾아와 교류를 청하니, 우쭐할 만도 했다.
노부나가는 자신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지방 다이묘들에게 조선 통신사가 온다는 소문을 퍼트려 자신이 조선국으로부터 왜를 대표하는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며 떠벌렸고, 이 소식을 접한 다이묘들은 심기가 몹시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저희 전하께서 영주님께 보내는 친서이옵니다.”
율곡이 비싼 중국산 비단 보자기에 정성껏 포장된 조선 왕 이균의 친서를 조심스럽게 노부나가에게 건넸다.
“하하하! 조선의 국왕께서 보잘것없는 다이묘에게 친히 친서를 보내시니 이 기쁨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이균이 보낸 친서를 천천히 읽어 본 노부나가는 흡족한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며 그 앞에 있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이균은 오와리국을 통일하고 미노국까지 단숨에 점령한 젊은 다이묘 노부나가를 난세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조선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는 제안을 했다.
조선의 젊은 국왕이 자신을 난세의 영웅으로 치켜세우자 그는 한 컷 고무되었다.
초라한 오아리국의 망나니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승리하고 미노국까지 단숨에 정리하였으니 노부나가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내 기꺼이 조선국과 교류할 것이오. 우리 왜국은 섬나라여서 부족한 물자가 많소. 조선과 교류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노부나가는 새로운 세상과의 접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포르투갈 인이 가져온 조총의 가치를 바로 알아차리고 조총을 본격적으로 전장에 사용했고, 용병의 사용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상업을 중시해 포르투갈 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조선이 스스로 귀한 막사발과 도자기를 주겠다고 하니, 노부나가로서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주님께서 이리 교류를 승낙하여 주시니, 저희 국왕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기 국왕께서 영주님께 전해드리라 한 다완이옵니다.”
노부나가가 흔쾌히 조선과의 교류를 승낙하자 박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정성껏 포장된 막사발을 노부나가에게 건넸다.
이균은 잘 구워져 왜놈들이 좋아할 만한 이도다완을 직접 노부나가에 선물하도록 했다.
“오호! 이도다완이구료!”
잘구어진 막사발을 받아든 노부나가는 막사발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히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신을 놓고 막사발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불완전한 것 같으면서도 완전하고 쓸쓸하면서도 고독한 아름다움이······. 과연 천하제일이오. 어찌 우리는 이런 명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지!”
노부나가는 황홀 지경에 빠져 혼잣말을 내뱉었다.
‘참 나 어이가 없구나. 흔해 빠진 막사발이 무엇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건지.’
백성들의 밥그릇, 막걸리 사발로 사용되며 이가 나가면 개밥그릇으로 던져 버리는 흔해 빠진 싸구려 막사발을 마치 진귀한 보물처럼 받들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노부나가를 율곡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심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율곡의 싸늘한 시선을 못 느끼는지 막사발을 어루만지며 황홀지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는 그의 가신들도 막사발에 감탄한 듯 막사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화려한 연회를 강조하던 문화에서 탈피하여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검소한 다도문화가 유행하고 있었다.
절제되고 고요하며 무엇인가 쓸쓸함을 강조하는 일본의 새로운 다도문화에서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조선의 막사발은 그야말로 다기로서 적격이었고, 왜는 조선에서는 천대받는 막사발을 최고의 다기로 치며 막사발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전국시대에 수많은 살상을 했던 아귀와 같았던 왜의 사무라이와 다이묘들은 투박하고 검소해 보이는 조선의 막사발에 녹차를 마시며 살인을 해야 하는 그들의 업보를 위로받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조선의 흔해 빠진 막사발은 왜에서 최고의 다기가 되어 최고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막사발은 성한 채 값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왜의 다이묘들은 그러한 고가의 막사발을 가신들에게 하사하여 그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징표로 쓰기도 했다.
가신들과 조선에서 온 막사발로 함께 차를 마신다는 것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혈맹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조선의 국왕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오. 이렇게 아름다운 다완을 보내 주시니······. 아름다움을 초월한 무심과 같소. 하하하. 이런 순결한 다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선이 부럽소!”
노부나가는 세상을 품은 것 같은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선이 부러운 듯했다.
왜는 당시로써는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이라 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값어치가 있는 도자기 전부를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서 고령토를 발견해 도자기를 만들어 낼 때까지 조선의 이도다완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전량 수입해야만 했던 것이다.
“영주님께서 이렇게 극찬을 해주시니, 전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노부나가가 이균이 선물한 막사발을 무척 맘에 들어 하며 감탄사를 남발하자, 통신사 일행의 수장 박순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희 국왕께서 영주님께 드릴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청이요? 조선의 국왕께서 하시는 청이라면 마땅히 들어드려야지요. 그래?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맘에 드는 막사발을 선물 받고 기분이 한껏 좋아진, 노부나가는 껄껄거리며 박순을 바라보았다.
“영주님께서 남만국인들과 교류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왕께서는 청화백자도 많이 만들어 영주님의 오와리국에 공급하고자 하나, 조선에서는 회회청(코발트)이 나지 않아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하하! 남만인들을 통해 회회청을 구해 달라 이 말씀이군요.”
노부나가는 조선의 왕 이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명을 통해 회회청을 받고 있으나, 워낙 고가여서 청화백자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명나라에게서 공급받는 회회청이 워낙 고가여서 청화백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균은 포르투갈과 교류하는 일본을 통해 회회청을 보다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 언젠가는 유럽에 청화백자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무역 패권을 장악한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야 할 것이므로, 일본을 통해 포르투갈 상단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기에, 이균은 통신사 일행에게 회회청을 핑계로 오나노부나가에게 부탁을 해보라 한 것이었다.
“흐음. 어려운 부탁이 아니군요. 우리 왜는 일찍부터 남만인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남만 상인들에게 연통을 하겠습니다. 명나라가 가뜩이나 폭리를 취하며 청화백자를 넘기고 있어서 난감해는데, 조선이 청화백자를 싸게 공급해준다면 우리도 나쁠 것이 없지요.”
예술미가 넘치는 고가의 막사발에 고무된 노부나가는 회회청을 구하기 위해 포르투갈 상인을 주선해 달라는 통신사 일행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자. 이제 우리 여흥을 즐겨 보시지요. 먼 바닷길을 건너오셨으니 얼마나 노곤하겠습니까. 회포를 풀어야지요. 여봐라! 기녀들을 들라 해라!”
조선 통신사 일행이 자신을 영웅으로 쳐 받들어주고 또 성한 채를 주고도 구하기 힘든 고귀한 이도다완을 선물로 받아 흥이 오른 노부나가는 오와리 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녀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야릇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인들이 나타나 통신사 일행 옆에 한명 한명 붙어 앉아 애간장을 녹이는 미소를 날리며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여인들은 조선에서 볼 수 없는 쇄골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숨이 막힐 것 같은 여인의 향기를 내뿜으며 통신사 일행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술시중을 했다.
율곡도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은 미녀의 술시중을 받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율곡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은 술을 따라주는 척하며 율곡의 허벅지에 손을 쓱 집어넣었고, 율곡은 갑자기 들어온 손에 움찔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그 여인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술잔을 단숨에 비우며 자신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의 가슴을 움켜쥐며 큰 소리로 껄껄거리고 있었고, 그의 가신들도 흥건히 취하여 여인들의 육체를 탐닉했다.
‘이곳이 천국인가!’
하성군에게 여색을 멀리하라 했던 율곡은 분위기에 한껏 취해 스스로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의 노골적인 유혹을 거절할 사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정신을 차린 율곡은 술병을 들고 노부나가의 곁으로 다가갔다.
“영주님! 제잔을 받으시지요!”
“하하하. 그리하지요.”
노부나가는 이미 술에 만취한 듯 자신 옆에 앉은 기녀의 상의를 이미 모두 벗겨버리고 그녀의 육체를 탐닉하고 있었다.
“영주님! 오와리국의 병졸들이 왜에서 천하제일이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