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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2화 (12/202)

12화 왜놈한테 도자기 좀 팔아보자!(2)

“장부답구만! 왜에 가지고 갈 막사발과 도자기를 다 선적한 겐가?”

“그렇사옵니다. 이제 올라타시지요!”

푸른 도포를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이는 훗날 여진족이 이름만 들어도 질질 오줌을 싼다는 신립이었다.

얼핏 보아도 그는 헌칠한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용맹한 무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병의 달인으로 니탕개라는 여진족 족장이 난을 일으켰을 때 정예 기병 500기로 1만여 명의 여진족 주력군을 토벌한 용장 중에 용장이었다.

북방의 맹장인 여진족이 벌벌 떠는 조선 최고의 장수였으나, 이제 갓 무과에 급제한 신립은 아직은 애송이 장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갓 20살을 넘긴 그였지만, 환도를 옆에 차고 박순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늠름하게 서 있는 그에게서 제법 무장다운 풍모가 느껴졌고, 박순도 그런 그의 모습을 예의주시했다.

“전하께서 그대를 이번 길에 함께 하라 하셨는데, 그대의 가문이 어떻게 되는고?”

“전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환도를 옆에 차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폼을 잡고 서 있던 신립은 군왕이 직접 자신을 지목했다는 박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평산 신 씨 이옵고 조부께서는 신상이라 하옵니다.”

신립이 예를 갖추어 말했다.

“하하하. 평산 신씨라면 목숨을 바쳐 고려 태조 왕건을 지킨 신숭겸 장군의 집안이 아닌가? 명문가로구먼! 조부께서 이조판서를 지내시지 않으셨나?”

“그렇사옵니다.”

“흐음. 그렇구먼. 과연 명문가로다!”

평산 신씨의 후예라는 말을 들은 박순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신립이 신숭겸 장군의 평산 신씨의 후손이고 그 조부가 이조판서를 지낸 것은 사실이나 그의 아버지는 생원에 불과하여 조정에 출사하지 못하였기에, 명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이균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하성군이 자신을 찍어 통신사 일행에 합류하라고 했다고 하니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립이 북방의 여진족을 벌벌 떨게 만드는 조선 최고의 맹장이 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이균이 그를 콕 찍어 통신사 일행에 합류토록 한 이유가 분명 있었다.

그가 조선 최고의 장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기병 전술에 있어서는 조선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1592년 왜군이 20여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진에 상륙한 후 파죽지세로 도성을 향해 다가오자 아귀와도 같은 왜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신립밖에 없었다.

다급해진 선조는 떨리는 손으로 직접 보검을 하사하며 왜군을 격퇴할 것을 명했고, 신립은 그가 아끼는 8,00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충주로 향했다.

부하 장수들은 왜군이 대군이므로 천혜의 요새인 조령에서 왜군을 상대하자고 하였으나, 신립은 그의 기병을 맹신한 것인지 조총의 위력을 무시한 것인지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로 향했다.

그러나 왜군이 자랑하는 조총의 위력에 신립의 기병은 제대로 왜군을 상대도 해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고, 치욕적인 패장이 된 그는 탄금대에 몸을 던졌다.

이균은 신립이 왜군이 전력이 만만치 않고 왜군의 조총이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무기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직 이균의 의도를 알지 못했던 신립은 무과에 급제하자마자 선조의 선택을 받아 조정의 대신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뿌듯하기만 했다.

수백 점의 막사발 그리고 도자기를 실은 판옥선이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왜를 향해 떠나갔다.

오와리 국을 통일하고 1561년 이마가와 가문의 대병력 3만 명을 3천의 병력으로 격파한 전설적인 오케하자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오다 노부나가는 조선 사신 일행이 엄청난 값어치가 나가는 막사발 수백 점을 가지고 자신을 직접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비록 오케하지마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그의 이름을 알린 노부나가였지만, 이제 기껏 오와리 국을 통일한 정도로 일본 전국 시대의 여러 영웅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라 할 수 있는 그였는데, 조선국 사신일행이 쇼군이나 다른 거대한 영주들이 아닌 자신을 직접 보기 위해 온다 하니, 노부나가는 의기양양할 만 했다.

노부나가는 이참에 자신이 이웃국인 조선에서도 인정하는 왜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조선 통신사 일행을 각별히 대하라고 지시했다.

통신사 일행을 태운 판옥선은 대마도를 거쳐 큐슈지역으로 향했다.

조선에서 막사발을 가득 실은 통신사 일행이 중간기착지인 일본 히라도에 도착했다.

중간 기착지를 히라도 항으로 정하라 한 것도 이균이었다.

히라도는 노부나가의 영지가 아니었으나, 노부나가의 요청을 받은 히라도를 다스리는 영주는 조선 통신사 일행을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막사발을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통신사 일행을 환대했고, 통신사 일행은 환대에 고마워하며 막사발 몇 십 점을 주었다.

그러자 히라도를 다스리는 다이묘는 막사발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통신사 일행에게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미모를 뽐내는 여인들과의 열정적인 하룻밤은 물론 산해진미가 가득한 음식으로 그들을 대접했다.

선조에게 여색을 멀리하라고 조언했던 율곡은 한사코 여인과의 동침을 거부했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앞에 두고 이를 거절할 수 있는 사내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결국, 율곡도 교태를 뽐내는 여인과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그 다음 날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나 사무라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히라도 인근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로구나!”

율곡은 조선과 다른 히라도의 풍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항구에는 거대한 돛을 단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배들이 드나들었고, 그 배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푸른 눈의 갈색 머리를 하고 요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물건을 하역하고 있었다.

통신사 일행의 수장 박순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들에게 왜란 존재는 한없이 미개한 족속이었는데, 그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히라도의 풍경은 그러하지 않았다.

조선은 기껏해야 도성에나 있을 진귀한 물건들이 히라도 인근에는 풍족하게 널려 있었고, 수많은 물자가 교류하며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물건을 흥정하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

“저 큰 돛을 단 거대한 배가 도대체 어디서 온 배요?”

율곡은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돛을 단 배를 가리키며 그를 호위하는 사무라이에게 물었다.

“남만선이라고 하옵니다. 남만인들의 배로 명나라를 거쳐서 이곳으로 와 비단, 명나라 도자기, 향신료 등 진귀한 물건을 팔고 있지요.”

“남만인들의 배라? 그들의 배가 저렇게 거대하다는 거요?”

사무라이가 말한 남만선은 포르투갈의 갈레온선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 배는 남만에서 인도를 거쳐 명나라까지 먼 거리를 오가는 배이니 저렇게 큰 돛을 달고 1년 이상을 항해하옵지요. 그러니 배가 클 수밖에 없사옵니다. 저 배보다 더 큰 배도 있지요.”

“무엇이라. 더 큰 배도?”

율곡과 박순은 더 큰 배도 있다는 말에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조선에서 최근 맹선을 업데이트한 판옥선도 무척 큰 배라고 생각했는데, 저 거대한 돛을 단 배를 보니 판옥선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왜는 언제부터 남만인들과 교류한 것이요?”

“한 20여 년 되는 것 같사옵니다. 남만인들이 진귀한 물건을 내놓고 은을 가져가지요. 왜에는 은이 풍부하니······. 철포도 남만인들이 전해 준 것이옵니다.”

“철포라 했소? 왜의 군사는 철포를 많이 사용하오?”

율곡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활과 도도 많이 쓰고 있지만, 최근에는 철포의 위력이 워낙 대단해 많이 쓰려 하는 것으로 아옵니다.”

“그래요?”

철포라는 말에 무관 신립도 흥미를 보이며 사무라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를 호위하는 사무라이는 왜가 자랑하는 일본도를 차고 있었지만, 항구를 경계하는 왜군의 상당수가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543년 8월 일본 큐슈 남쪽 다네가 섬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낯선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명나라 마카오로 향하던 포르투갈 상선이 풍랑을 만나 좌초된 것이다.

이들이 일본에 처음 온 포르투갈 사람들이었다.

조선 같았으면 놀라 당장 이들을 쫓아내고 문을 굳게 걸어 잠갔겠지만, 새로운 문명을 접한 왜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왜는 히라도를 거점으로 포르투갈과 본격적으로 교류하였는데, 포르투갈 상인들은 7월이나 8월경 서남 계절풍을 타고 일본으로 와 명나라의 도자기, 서적, 동남아의 향신료 등 진귀한 물건들을 은을 받고 왜에 팔았고, 10월경까지 왜에 머물다 다시 토호쿠 계절풍을 이용해 떠났다.

왜와의 교역은 항신료 무역, 도자기 무역과 함께 포르투갈의 중요 수익원이 되었고 그로 인해 교류는 점차 확대되어 갔으며 나가사키 등이 중요 무역 거점이 되는 등 개방되는 항구는 늘어갔다.

포르투갈을 통해 전파된 무기가 조총이었다.

1미터가 안 되는 철통에 납덩이를 화약에 불을 붙이면 잠시 후 우레와 같은 굉음을 내며 조그마한 납덩이가 번갯불과 같이 날아가 사람을 살상하는 당시 사용하던 일본 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파괴력에 일본 사무라이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조총의 위력을 실감한 다네가 섬의 영주 도키타카는 조총 2정을 이천 냥이나 하는 거금을 주고 구입해 조총 제작 방법을 부하들에게 배우게 했고, 이후 수십 정의 조총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위력적인 조총을 본격적으로 전장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익히 아는 것처럼 오다 노부나가였다.

조총이 위력적이기는 하나 장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비가 오면 사용하기 힘들고 연기가 많이 나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에 대부분 암살용으로 사용될 뿐 전장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 유명한 3단 사격 기법을 통해 장전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조총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상전벽해로구나!”

대형 범선들이 드나들며 진귀한 물건이 가득한 히라도의 풍경에 매혹된 통신사 일행은 며칠간 히라도 인근에 머무르며 왜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오랜 내전으로 백성들이 힘겨운 생활을 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왜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로지 명만을 떠받들고 살아온 그들에게 왜의 실상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히라도를 다스리는 영주에게서 극진한 환대를 받은 통신사 일행은 이제 오다 노부나가의 오아리국으로 향했다.

오아리국에 도착한 통신사 일행은 항구에 마중 나와 있는 수백 명의 사무라이 무리들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노부나가가 거쳐 하고 있는 기후성으로 향했다.

오아리국의 백성들은 통신사 일행을 열렬히 환대했다.

오아리국의 가신들과 백성들은 이웃 나라 조선이 그들의 주군 노부나가를 일본을 제패할 영웅으로 인정하고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것이라 여겼다.

수천 명의 오아리국 백성들이 통신사 일행이 지나가는 거리에 나와 그들 일행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생전 처음 왜국에서 이러한 환대를 받은 율곡은 자신도 모르게 우쭐거리고 싶어졌다.

마치 상국이 제후국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막사발과 도자기를 가득 실은 수레, 통신사 일행과 통신사 일행을 호위를 위한 조선과 오아리국 무사들 일행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을 이루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윽고 통신사 일행은 이나바산 정상에 장엄하게 서 있는 기후성에 도착했다.

“흐음. 천혜의 요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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