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1화 (11/202)

11화 왜놈한테 도자기 좀 팔아보자!(1)

“전하! 왜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왜 본토와 교류를 하기로 했으니, 이번 기회에 공조 판서로 임명된 박순과 함께 가서 왜의 사정이 어떤지 보고 오시오?”

이균은 영의정 이준경의 추천으로 새롭게 공조판서가 된 박순과 함께 왜의 정치 상황이 어떤지 보고 올 것을 율곡에게 명했다.

이균은 왜와 교류를 재개하는 김에, 똘똘한 율곡을 보내 왜가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지 과연 조선을 침략할 군비를 갖추었는지 살펴보고 깨달음을 얻기를 원했다.

정통 성리학자인 율곡도 자신이 지지했던 영민한 소년왕 하성군이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 달리 학문을 멀리하고 장사치 일이나 관심을 기울이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했고 그러한 율곡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빠른 이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똑똑하기로 소문난 율곡이 일본에 가 수백 년간 지속된 피비릿내 나는 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남만(포르투갈)과 교류하며 얻은 조총을 기반으로 무섭게 군사력을 증강시키며 성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 그의 생각도 달라질 것이라 여겼다.

율곡이 왜의 실상을 보고 생각을 바꾸면, 그는 이준경과 함께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하! 신이 듣기로는 왜는 왕은 껍데기에 불구하고 서로 각 영주들이 나누어져 다투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하던데, 굳이 그런 미개한 왜놈들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가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각 지역의 영주가 다투고 있다는 사실쯤은 율곡도 알고 있었다.

율곡은 여전히 미개하다고 여기는 왜에 자신을 보내려는 하성군이 못마땅했다.

“흐음. 듣자하니 직전 신장(오다 노부나가)이라는 자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들었소. 그자 즉 노부나가의 기세가 조선을 위협할 수준이 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소.”

“전하! 아무리 그자가 왜에서 기세가 높다 하더라도 일개 무부에 불과합니다. 크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율곡에게 왜는 미개한 노략질이나 하는 왜소한 오랑캐에 불과했다.

고려와 조선이 왜구들의 침략에 큰 피해를 보았으나 그때마다 왜구를 격퇴해서 그런 것인지 조선에게 왜는 노략질이나 하는 해적일 뿐이었다.

율곡은 그런 해적질이나 하는 왜구를 경계하는 주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대의 말처럼 노략질이나 하는 왜구에 불과한지, 아니면 조선을 위협할 정도의 군사력을 갖춘 것인지 직접 확인해 보면 되는 것이 아니요! 왜놈들은 대대로 조선 바다를 침략해 백성들을 괴롭혀 오지 않았소. 이번 기회에 왜놈들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보자는 것인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것이오! 왜에 가기 싫은 것이오?”

율곡이 자신이 하는 말에 태클을 걸자 이균도 더는 참지 못하고 역정을 냈다.

“아······. 아니옵니다. 전하!”

이균이 짜증을 내자 그제야 율곡은 조용해졌다.

할 말을 하고야 마는 그의 성격이었지만, 한나라의 국왕이 역정을 내니 그도 왕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왜의 동태를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가는 김에 직전 신장(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히데요시) 라는 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자를 만날 수 있으면 만나보고 그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시오.”

“풍신수길이라는 자가 누구인지?”

“직전신장이 아끼는 가신이라 하니, 한번 만나보시오. 흐음. 그리고 막사발을 판매한 대금은 은으로 받았으면 하오!”

“전하 굳이 은을 받으시려는 뜻이 있으시온지?”

“조선은 아직도 원시적으로 물물 교환을 하고 있소. 백성들도 세금으로 미곡이나 그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고, 관료들의 녹봉도 땅으로 지급하고 있지 않소. 돈이 돌아야 상업이 발전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거늘. 아직도 물물교환이나 하고 있으니 어찌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겠소.”

조선도 화폐를 만들기는 했으나, 화폐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여전히 물물교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는 경제구조였다.

돈이 돌지 않으면 그 나라는 절대 부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균은 도자기 판매 대금을 은으로 받아, 조선에 은이 많이 유입되면 명나라처럼 은본위제를 채택하고자 했다.

은은 이미 국제통화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이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인들은 아시아를 분주히 오가며 아시아 각국과 교류하였는데 이들은 그 대금으로 대부분 은을 지급했다.

중국도 도자기와 비단을 수출하며 그 대금으로 은을 받아 은이 무척 풍족해졌고 그로 인해 은본위제를 시행할 수 있었다.

한편 조선은 16세기 초 단청에 은광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은광개발에 소극적이었고 그나마 생산되는 은도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비단이나 고급 청화백자를 수입하는데 다 쓸 뿐 이를 유통하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성리학 원리주의에 빠져 사서삼경만 읽고 있었으니 은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반면 일본은 1530년경 세계 최대의 대규모 이와미 은광이 발견되는 축복을 받았다.

이와미 은광에서 매년 생산되는 은의 양은 전 세계 은생산량의 30%를 넘는 거대한 것이었다.

이와미 은광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은을 가지고 일본은 포르투갈 등과 교류하며 격변하는 세계무대에 뒤처지지 않았고, 그 은은 임진왜란 당시 군자금을 충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하!”

율곡은 어린 왕의 생각이 깊자 자신이 몸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철부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왜로부터 조총도 한 300여 정 받아올 수 있으면 받아오셨으면 하오.”

“전하 조총이라면 선왕 때에 왜인 평장친이라는 자가 가지고 왔던 총포가 아니옵니까?”

율곡도 조총을 알고 있었다.

1555년 평장친이라는 자가 조총을 가지고 와 귀화한 일이 있었다.

“그렇소. 듣기로는 조총이 남만인들이 만든 무기로 아주 화력이 강력하다고 하오. 직접 보고 그게 사실이면 우리 병졸들도 조총을 사용해야 하지 않겠소.”

“전하! 평장친이라는 자가 조총을 가지고 왔을 때에도 그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발포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가 오면 사용할 수 없어 국궁에 미치지 못한다 하여 사용하지 않기로 했나이다. 조총이 그렇게 위력적인 무기는 아니온 듯하옵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

앞으로 전장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모르고 헛소리만 하니 이균은 답답한 노릇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도 조총의 파괴력을 보고 이를 사용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장전하는 데 오래 걸리고 비가 오면 제대로 사용하기도 힘들어 조선이 자랑하는 활에 비해 효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명종은 조총을 무기고에 처넣고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한번 가져와 보시오! 직접 봐야겠소.

“알겠나이다!”

그럼에도 이균이 조총을 가져오라고 하자 율곡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부산포

“어이 빨리들 움직이게. 조금 있으면 출항해야 해!”

“아이고 뭔 쓸모도 없는 막사발을 이렇게 많이 싣는 겐가?”

“하하하! 아 왜놈들이 그렇게 막사발에 사죽을 못 쓴다는구먼!”

“별 희한한 놈들이구먼!”

“아이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옮기게. 왜놈들 덕분에 품삯도 두둑이 받고 얼마나 좋나! 빨리 일마치고 오늘 밤은 기방에라도 가서 어여쁜 계집년 엉덩이라도 만져보세!”

“하하하. 그러세!”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일꾼이 부산포에 모여 정성껏 포장된 막사발과 조선백자를 땀을 뻘뻘 흘리며 판옥선에 옮겨 실었다.

판옥선은 명종시대에 맹선을 대신해 개발된 군선이었는데, 맹선보다 그 효용성이 좋아 이번 왜로 가는 통신사 일행이 타고 가기로 했다.

“영감! 오셨습니까?”

짐꾼들이 막사발을 옮겨 싣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율곡이 함께 통신사로 가는 공조판서 박순이 오자 허리를 꾸벅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흐음. 도승지 아주 날이 좋구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바다는 한없이 잔잔했다.

먼 바다로 떠나기에는 아주 적격인 날씨였다.

이준경이 추천해 공조판서가 된 박순

그는 명종 8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천재이다.

명종시대 을사사화를 이끌었던 임백령의 시호 제정 문제를 놓고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윤원형에 반대했던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윤원형에 맞섰던 그는 결국 파직을 당했으나, 명종은 그를 총애했고 결국 이듬해 복귀해 홍문관 직제학, 동부승지 등을 역임했고 서슬이 퍼런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대사헌 이탁과 함께 윤원형 축출에 앞장섰다.

이준경은 그런 강직한 성품의 박순을 이균에게 추천했고, 이균 또한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그를 공조판서로 임명해 율곡과 함께 통신사로 왜에 갈 것을 명했다.

“영감 왜에 가서 얻을 것이 있겠습니까?”

“흐음. 글쎄.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있지 않겠소!”

박순도 기껏 막사발이나 팔겠다고 조정의 중신들을 왜에 보내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서슬이 퍼런 문정왕후의 눈치나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명종보다는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소년왕 이균이 그나마 낮다고 생각하기에 어명을 따르기로 했다.

“전하께서 학문을 멀리하고 장사치가 보는 잡서만 읽고 있다 하시니 심히 염려되옵니다.”

본래 선조는 학문에 관심이 깊은 임금이었다.

왕이 되고 나서도 이황, 기대승, 이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들에게서 성리학을 배웠고, 성리학에 흥미를 느꼈던 임금이다.

이이도 하성군이 총명하고 학문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들어 잘 알고 있었는데, 직접 대면한 하성군은 은연히 성리학을 못마땅해했고 경연에도 자주 나오지 않으며 장사치나 읽은 책이나 병법서 등에만 관심을 기울였기에 실망감에 컸다.

“금상께서 어떤 세상을 꿈꾸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척신을 단칼에 제거할 때만 해도 금상께서 태평성세를 이룰 것이라 여겼는데, 왜놈들에게 막사발을 팔아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사옵니까?”

율곡은 비록 이균의 강력한 어명에 승복하여 통신사가 되었으나,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흐음.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전하께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일 수 있네. 즉위식을 한사코 거부하시던 그런 겸손한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커다란 호랑이 발톱을 숨기고 있으셨던 게야. 허허.”

박순이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영감!”

박순이 모호한 말을 하자 율곡의 눈빛이 미묘하게 떨렸다.

‘가슴속에 원대한 뜻을 품은 채 자신을 한없이 숨겨왔다는 것인가?’

율곡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갓 15살에 불과한 어린 임금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신을 한껏 낮추며 기회를 기다려 온 것이라면 그는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폭군이 되거나 아니면 성군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영감! 출항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율곡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푸른색 도포를 입은 젊은 군관이 다가와 출항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흐음. 그대가 이번에 무과에 급제한 신립이라는 자인가?”

“그렇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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