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먹거리 찾기(3)
“전하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이균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영의정 이준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균의 용안을 살피었다.
“흐음. 별것 아니오! 회회청만 구할 수 있다면 경덕진이 청화백자를 능가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냐?”
“제가 어찌 전하께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회회청만 충분하면 능히 가능하옵니다.”
“회회청 걱정은 하지 말거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회회청을 풍족하게 마련해줄 것이니 경덕진의 청화백자를 뛰어넘는 도자기를 만들어 보거라!”
이균이 천자의 나라 명을 뛰어넘는 도자기를 만들라 하자, 그를 수행해 온 관료들이 술렁거렸다.
천자를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인데, 이균이 대수롭지 않게 명나라를 뛰어넘는 도자기를 만들라 하니 명나라를 무슨 신처럼 쳐 받들고 있는 대신들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균은 심기가 불편한 대신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코발트를 마련할 수 없어 청화백자를 당장 수출할 수 없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코발트를 구해보는 것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안정적인 코발트 공급망을 확충할 때까지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그때까지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청화백자를 수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청화백자말고 뭔가 다른 것이 없을까?’
이균은 고민에 빠졌다.
청화백자를 당장 수출할 수 없다면 청화백자 수출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그의 계획이 수포가 된다.
그런데 그 순간 관여 한구석에 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막사발이 이균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막사발!’
“저것은 막사발이 아니냐?”
조금 전까지 어두운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이던 이균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자, 이준기는 다시 어안이 벙벙했다.
“네. 그렇사옵니다.”
“그래. 듣자하니 왜놈들이 막사발을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던데······.”
“네······.전······.하. 왜인들이 막사발을 다기로 쓴다 하옵니다.”
고령토로 정성껏 만든 백자에 비해 투박하고 볼품이 없어 막사발로 불리며 막걸리 사발, 국그릇, 밥그릇 등으로 조선 백성들이 사용하던 흔해빠진 그릇에 불과하지만, 일본에서는 고급 다기로 사용되며 일본 지배층은 막사발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시 일본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차 문화가 유행하였는데, 다른 도자기에서 볼 수 없는 그 소박함이 다이묘들과 일본 지배층을 매료시켰다.
일본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모두 막사발에 환장했다.
조선에서는 워낙 흔해빠져 막사발이 금이 가거나 깨지면 개밥그릇으로 쓸 정도로 버려지는 물건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워낙 귀하고 비싸 금이 가거나 깨져도 이를 수리해서 다시 사용할 정도로 당시 왜에서는 고귀한 물건이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막사발의 매력에 푹 빠져, 그의 측근들이나 다이묘들에게 막사발을 하사하며 그들을 자기 품으로 끌어들였고 막사발을 하사받은 다이묘들도 그 막사발을 히데요시의 가신의 증표로 받아들여 소중하게 가보로 여겼다.
막사발은 일본 지배층 사이에서 이도다완이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이를 구하기 어려워 고귀한 이도다완은 성 한 채를 주고도 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막사발에 대한 집착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도공 납치로 이어졌다.
히데요시는 사가번주인 나베시마 나오시케에게 조선인 중 손재주 있는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납치해 올 것을 지시했고,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왜군은 수만 명의 조선 도공을 납치했다.
결국, 우수한 도공들을 왜에 빼앗긴 조선의 도자기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왜는 조선 도공들을 기반으로 도자기 산업을 일으켜 유럽에 수출하며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래 청화백자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막사발을 왜놈들한테 팔아먹으면 돼!’
“그래 막사발을 지금도 왜인들이 사들이고 있느냐?”
“저······.을묘왜변이 있었던 후로 왜인들이 막사발을 못 사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준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농토가 없고 척박한 땅 대마도를 근거지로 하는 왜구는 조선과 명에 대한 노략질을 멈추지 않았고, 이에 조선은 대마도 정벌을 통해 그들을 응징하기도 하고 부산포, 창원의 내이포, 울산의 염포 등 3포를 왜인들에게 개방하여 교역을 허하는 등 회유책도 병행했다.
그러나 본래 난폭한 성격의 왜인들은 수시로 왜란을 일으켰는데, 삼포왜란, 사랑진 왜변 등이 대표적이었다.
왜인들이 약탈을 할 때마다 조선은 문호를 걸어 잠갔는데, 그럴 때마다 대마도주는 왜란 주동자를 처형하고 다시 삼포를 열어줄 것을 간청했고, 조선 정부는 그들의 청을 못 이겨 하며 포구를 열어주었으나 교역의 규모를 줄여나갔다.
그러다 1555년 왜인들이 70여 척의 선박을 이끌고 와 큰 변을 일으켰는데, 그들은 전남 영암, 강진 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백성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등 만행을 저질렀는데 그것이 을묘왜변이었다.
조선은 을묘왜변을 일으킨 왜놈들을 어렵게 토벌한 후 왜인과의 교류를 전면 중단하였는데, 이때 대마도주는 또다시 을묘왜변의 주동자를 처형하고 세 견 선의 증가를 호소하여 조선은 다시 생필품과 식량 등 일부 물자에 대해서만 교역을 허용했으나, 그 밖의 물품 반출은 엄격히 제한해 일본 다이묘들이 사랑하는 막사발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밀무역이라도 하는 자들이 꽤 있겠구나!”
“전······.전하······.그것은 제가 잘······.모르겠사옵니다.”
이준기의 등줄기가 써늘해졌다.
왜인들인 왜란 등으로 조선의 막사발을 구하기 더욱 어려워지자 밀무역을 통해 막사발을 구입했는데, 큰돈을 벌 수 있기에 조선 도공들 중 상당수가 왜인들과 결탁해 막사발 밀무역에 가담하고 있었다.
밀무역은 국법에서 엄하게 규제하고 있어 자칫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목이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기에 이준기는 주저했다.
“하하하!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 먹고 살자 하면 밀무역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전······.전하!”
“을묘왜변으로 폐쇄되었던 삼포를 모두 열어 왜인들과 교류할 것이다. 왜놈들한테 막사발과 도자기를 팔 것이다!”
이균은 코발트를 안정적으로 구해 청화백자를 싼값에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왜놈들이 죽고 못 사는 막사발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균이 느닷없이 삼포를 다시 열 것을 천명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신들이 술렁거렸다.
“전하! 왜인들은 본래 난폭하고 천박한 오랑캐입니다. 삼포를 다시 열면 왜인들은 그 은혜를 잊고 또다시 난을 일으켜 수많은 무고한 백성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할 것이옵니다. 왜구들을 믿지 마시옵소서!:
병조판서 원혼이 앞으로 나와 삼포를 열게 되면 왜인들이 다시 난을 일으킬 것이라며 삼포를 여는 것에 반대했다.
삼포를 다시 여는 것을 격렬히 반대하는 병조판서의 입장이 이해는 갔다. 하지만 도자기를 팔아 나라를 부강하게 할 자본을 축적하고자 하는 이균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병조판서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하오! 하지만 대마도의 왜구가 아닌 왜국 본토와 직접 교류할 것이오. 그리고 삼포 주변에 수군을 보강해 왜란을 대비하면 되지 않겠소. 영상의 생각은 어떻소?”
“전하! 병조판서의 말처럼 왜인들은 본래 난폭하고 교활하여 믿을 만한 족속이 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왜인들을 강경하게만 대하면 오히려 더 큰 난을 일으킬 수 있사옵니다. 역대 군왕께서도 강경책과 회유책을 번갈아 쓰셨으니, 전하의 말씀대로 삼포 주변에 수군을 증강하여 왜인들은 엄하게 감시하면 도자기를 팔아 나라의 조세 수입도 늘릴 수 있고, 왜인들의 불만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준경이 그의 뜻을 따르자, 이균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대신을 이끌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관요까지 온 이유를 영의정 이준경은 알고 있었다.
대신들 앞에 공식적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팔겠다는 것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
본래 사람이라기보다는 훈구대신에 가까운 이준경은 끝까지 이균을 지지할 것이다.
고지식한 면이 있는 그였기에 한번 군주는 영원한 군주이다.
하지만 이준경은 하성군의 파격적인 행동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왕이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찌 되었건 소년왕 이균이 강력하게 삼포를 다시 열겠다고 주장하고, 영의정 이준경마저 지존의 뜻에 따르자 다른 대신들은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그대의 이름이 이준기라 했는가?”
“그······.그렇사옵니다.”
“내 그대에게 도자기 제조에 관한 모든 권한을 맡길 터이니 그대는 조선을 위해 명을 뛰어넘는 도자기를 꼭 만들도록 하라!”
“전······.전하! 그리하겠나이다!”
이준기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평생을 바쳐 자부심을 가지고 도자기를 만들어왔지만, 천한 신분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왕이 직접 그를 알아보고 명을 뛰어넘는 도자기를 만들라 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균은 엎드려 눈물을 훔치는 도공 이준기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내! 모든 것을 지원할 것이나 꼭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도록 하라!”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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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균은 도성으로 돌아왔다.
소년왕 하성군이 삼포를 다시 열고 왜에게 도자기를 팔겠다고 하자 도성의 신진 관료들과 대신들은 갑론을박했다.
특히 하성군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던 사림들은 왜 왕이 미개한 남쪽 오랑캐 왜놈들에게 도자기를 팔기 위해 삼포를 열겠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성군이 학문에 전념해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원했는데, 하성군이 뜻밖의 행보를 보이자 혼란스러웠다.
이균도 25년 후 조선을 침략한 왜놈들에게 그깟 막사발을 팔기 위해 삼포를 다시 여는 것이 맞는 일인지 잠시 고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이 지지리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 나가기 위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왜놈들에게라도 팔 수 있는 것은 팔아야 한다고 여겼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조선에 돈이 돌게 하면, 조선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유럽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삼포를 다시 열라는 어명이 내려지자, 부산포, 웅포, 내이포를 다시 왜에 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또다시 왜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삼포 주변에 수군 병력을 증강 배치하고, 왜인들이 삼포에 칼 등 무기를 들고 출입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균은 부산포를 막사발을 만들어 팔기 위한 수출 전진기지로 하고 부산포 주위에 관요를 대규모로 확충해 왜인들이 좋아하는 형태의 막사말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전하!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흐음. 들라하라!”
도승지 율곡 이이가 이균의 호출을 받고 편저에 들어왔다.
“전하. 부르셨나이까?”
율곡이 예를 갖춘 후 이균을 향해 자신을 부른 연유를 물었다.
“도승지가 왜에 좀 다녀와야겠소!”
이균이 다짜고짜 왜에 다녀오라 하자 율곡은 흠칫 놀라며 이균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