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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8화 (8/202)

8화 먹거리 찾기(1)

“전하! 무어라 하셨나이까?”

이균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내관이 흠칫 놀라며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음식이 가득 든 상을 들고 온 나인 한명!

그녀는 이균의 첫사랑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대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배화 여자대학교 무용과와의 첫 미팅!

그때 나왔던 소유빈!

이균은 미팅 때 처음 보았던 청순한 그녀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눈부신 미모에 한눈에 반한 그는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 그녀를 매일 쫓아다녔지만, 이미 그녀의 미모는 배화여자대학교에서 출중했고, 수많은 내놓으라 하는 남자들이 그녀를 노렸다.

결국, 그녀는 당시 여당 원내총무의 사촌 동생으로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두어 매일 고가의 독일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옆자리에 앉은 여자를 소모품처럼 바꾸던 대학 선배의 차지가 되었고, 이균의 첫사랑은 그렇게 상처만 남겨둔 채 끝나버렸다.

그런데 그의 첫사랑과 너무나 닮은 한 여자가 상을 들고 오니, 이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녀. 박말년이라 하옵니다!”

“아니! 너 말고 그 옆에 있는 나인의 이름이 무엇인고?”

그런데 이균이 마음에 두지 않은 주근깨가 가득한 나인이 화색이 돌며 입을 열었고, 이균은 짜증이 나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첫사랑과 닮은 나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최······.옥정이라 하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떨리고 있었다.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지존이 직접 그녀의 이름을 물으니 떨리고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 옥정이라. 어여쁜 이름이구나!”

이균은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난 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최옥정이라는 이름의 나인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만! 가보거라.”

‘어떻게 저렇게 닮을 수가 있지.’

이균은 홀로 남은 방에서 야식을 챙겨 먹으며 생기가 넘치며 수줍어하던 그녀를 생각했다.

‘외로운데······.’

혈기 방자한 이균은 점차 차오르는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조선의 밤은 너무 길기만 했다.

대한민국이라면 외롭고 여자 생각이 나면 야동이라도 보면서 혼자 풀 수 있겠지만, 조선은 해만 지면 어둠이 짙게 내리어져 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뭐 내 맘대로 여인을 품을 수 있는 것 아냐?’

허벅지를 홀로 꼬집으며 독수공방하던 이균은 최옥정이라는 소주방 나인의 얼굴이 점차 또렷이 아른거렸고,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차올랐다.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 왕 노릇을 하는 건데, 어때 뭐 왕이잖아!’

이균은 점차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비록 명종이 승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히 국상 중인 상황이어서, 정식으로 중전을 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왕이 나인이나 무수리와 함께 보내는 것을 탓할 이는 없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균은 당직을 서고 있는 내관을 불렀다.

“여봐라!”

이균이 근엄한 목소리로 내관을 부르자, 젊은 내관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하! 부르셨나이까!”

“조금 전에 온 나인의 이름이 최옥정이라 했는가?”

“아. 네······. 그렇사옵니다만.”

“내. 오늘은 그 나인과 함께하고 싶구나······.”

“전하! 나인과 함께 침소에 드시겠다는 말씀이신지?”

내관이 당혹스러워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 뭐 잘 못된 것이라도 있느냐?”

이균이 시치미를 뚝 떼고 내관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옵고. 그게······.국상 중에 있고······.또 어찌 천한 것과 침소에 드시려는지······.”

‘뭐야! 내관 주제에 남자의 고통을 알기나 해! 그렇다고 후궁을 지금 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상 중에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정식으로 들인 후궁도 아닌 신분이 미천한 소주방 나인과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왕이 말하자, 내관은 당혹스러운 듯 땀을 흘렸다.

“뭐가 그렇게 말이 많은 게냐? 준비나 하도록 해라!”

“알겠나이다.”

이균이 강한 어조로 나오자 내관도 더는 어찌할 수 없었다.

****

‘정말 이쁘구나. 몸매도 큭큭······.’

침소에 다소곳이 있는 나인 최옥정을 바라본 이균은 저절로 미소가 나왔고, 처음 보는 미녀와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어왔다.

“전하!”

소주방 나인으로 있다가 갑자기 왕가 함께 있게 된 최옥정은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흐음. 어여쁘구나! 한잔 따라 보거라!”

이균이 술잔을 내밀자 최옥정은 떨리는 손으로 소년왕 이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이균은 오래간만에 예쁜 미녀와 함께 있으니 그동안 그를 짓눌렀던 근심과 걱정이 깡그리 사라지는 것 같았다.

졸지에 조선으로 와 팔자에 없는 왕노릇을 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어색하고 답답할 지경이었는데, 왕으로서 이런 호사라도 누리니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렸다.

“손이 아주 보드랍구나!”

이균은 최옥정의 손을 확 잡아 끌었다.

“전하! 부끄럽사옵니다.”

손을 잡힌 최옥정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무엇이 그렇게 부끄럽다는 것이냐!”

이균은 최옥정이라는 미모의 궁녀와 함께 오래간만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니, 그는 대학 시절 첫사랑과 함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왕이 되니 이런 것 하나는 좋구나.’

이균은 밤이 늦도록 최옥정과 함께 했고, 오래간만에 짓눌려왔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만 같았다.

****

조선으로 회귀해 첫사랑을 닮은 나인과 함께한 이균은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맛에 왕노릇을 하는구나.

자기가 원하는 여인을 함께 할 수 있는 권력.

그 권력의 달콤함을 맛본 이균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대학 시절 가슴 아픈 시련을 안겨준 첫사랑과 닮은 소주방 나인을 원하면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이 권력이다.

이균은 한동안 소주방 나인 최옥정의 처소를 들락날락하며 그녀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이 다 그러하듯 한 여인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이균은 다른 여인을 찾아 나섰다.

‘오늘은 누구와 함께 보낼까?’

이균은 아직 해가 기울지도 않았는데, 오늘 밤은 또 누구와 지낼까 하는 생각에 저절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전하! 영의정 대감 그리고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그가 침을 질질 흘리며 헛된 망상에 빠져 있는 사이 내관이 영의정 이준경과 도승지 율곡이 왔다고 알려왔다.

“흐음. 그래! 들라하라!”

이균은 그제야 정신을 바로 차리고 서책을 보는 척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이준경과 율곡을 들라 했다.

잠시 후 영의정 이준경과 도승지 율곡이 들어와 이균에게 예를 갖춘 후 자리에 앉았다.

이준경과 율곡이 자리에 앉자 이균은 손수 그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품질이 좋은 명나라에서 들여온 녹차를 따라 주었다.

“한 잔씩 하시오. 녹차의 향이 아주 좋아요!”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왕이 직접 녹차를 따라 주자 이준경과 율곡은 몸둘바를 몰랐다.

“흐음. 그대들은 짐의 든든한 버팀목이요. 아직 궁중의 법도를 몰라 아는 것이 없으니 그대들이 많이 도와주도록 하시오!”

“전하!”

이균은 이준경과 율곡과 녹차를 주고받으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권을 위협하는 척신 심통원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를 성공적으로 제거한 후 이균은 그를 지지하는 이준경과 젊은 사림들을 발판 삼아 조정을 장악했다.

이제 대신들의 입에서 수렴청정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율곡이 들고 있던 녹차 잔을 내려놓은 후 이균을 바라보았다.

“듣건대 최근 전하께서 여색을 가까이하신다 들었습니다.”

‘뭐야!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이이의 입에서 여색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균은 잠시 당황했다.

“도승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요.”

“전하께서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천한 궁중 나인이나, 무수리의 처소에 드나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하 아직 국상 중이옵니다. 여색을 멀리하옵소서. 전하의 옥음이 매우 맑지 못한데 이는 여색을 너무 가까이하셔서 그런 것이옵니다. 청컨대 여색을 경계하시고 학문과 정사에 힘을 쓰시 읍소서!”

‘도승지까지 시켜줬는데 무슨 헛소리야.’

여색을 멀리하라는 당돌한 율곡의 말에 이균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나라의 왕으로써 궁중 나인과 함께하는 것조차 태클을 거는 율곡이 얄미웠다.

그러나 자신의 할 말은 꼭 하고만 마는 율곡의 기계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도승지. 아무 일 없었소. 그냥 나인이 술 시중을 한 것뿐이오.”

“전하! 어찌 구차한 변명을 하시나이까?”

율곡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균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자식이. 사실이라는데 왕의 말을 믿지 않고······.”

“흐음. 도승지, 왕이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데 왕의 말을 믿지 않는 거요. 그리고 짐은 난 이 나라의 왕이요. 자고로 후사가 든든하여 왕통이 튼튼해지는 것이요. 선왕께서 후사가 많으셨으면 나 같은 사람이 왕이 될 수 있겠소.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난 왕실을 번성하게 할 의무가 있는 자요. 이것은 왕실이 문제이니 그대가 관여할 바가 아니요.”

이균은 더는 여자 문제는 관여하지 말라고 율곡에게 엄중히 경고했다.

이렇게 경고하지 않으면 율곡이 계속 여색을 멀리하라며 자신을 귀찮게 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하! 하지만······.”

“도승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소. 내가 국상 중에 중전을 간택한 것도 아니고 후궁을 둔 것도 아니요. 더는 사사로운 문제에 관여치 마시오.”

이균이 다시 강력하게 여자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고 하자, 율곡은 더는 이를 말할 수 없었다.

‘완전히 여자도 모르는 샌님인가? 왜 저러는 거야.’

이균은 혈기왕성한 청년인 자신을 수도승처럼 살라고 하는 것인지 자꾸 여색을 멀리하라는 율곡이 얄밉게 느껴졌다.

“자. 경들을 부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백성은 물론이고 조정과 왕실이 너무 곤궁하오. 듣기로는 명나라는 도자기나 비단을 팔아 조세 수입이 꽤 된다고 하던데, 우리 조선도 도자기나 이런 것을 팔고 무역을 장려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균의 입에서 무역이라는 말이 나오자 영의정 이준경과 도승지 율곡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때부터 조선은 농업을 중시하고 무역을 엄격히 규제하는 쇄국정책이 나라의 국시였다.

그러한 정책으로 일부 왜관이나 명나라를 통한 무역만이 일부 허락되었을 뿐 무역은 엄격히 금지되었고, 밀무역하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엄히 처벌했다.

“전하! 태조께서 창업한 이래 조선의 근간은 농업이었사옵니다. 백성이 농사를 등한시하고 금전에 눈이 멀어 상업에 빠져든다면 조선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옵니다. 상업과 무역은 천한 것이오니 이를 멀리하셔야 하옵니다.”

영의정 이준경이 정색하며 쇄국 정책을 풀고 무역을 하겠다는 이균에 반대했다.

‘어휴 고리타분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이준경이 무역을 전면적으로 하자는 자기 뜻에 반대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의 말을 듣고 이균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승지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전하 사사로이 선비는 물욕을 탐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는 군자도 마찬가지고 백성도 마찬가지이옵니다. 군자와 백성이 물욕을 탐하게 되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게 되옵니다.”

‘율곡도 어쩔 수 없는 성리학자구만.’

이균은 자기 뜻을 몰라주는 이준경과 율곡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물욕을 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부들은 물욕을 탐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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