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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7화 (7/202)

7화 척신을 제거하라!(4)

명종의 비 인순왕후는 얼핏 보아도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수척해 보였다.

자신의 작은할아버지 심통원을 탄핵하라는 심지어 죽이라는 젊은 유생들의 외침이 밤낮으로 궁궐에 울려 퍼지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왕대비 마마, 어찌 이른 아침에 몸소 찾아오셨나이까?”

이균은 인순왕후가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상! 심 대감을 어떻게 할 셈이요?”

인순왕후는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하성군이 영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즉위하자마자 심통원과 그 일족을 제거하려 하자 그의 대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비마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이균은 몸을 낮추어 인순왕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주상! 심 대감은 사사로이 나의 작은 할아버님이 돼요. 작은 할아버님이 큰 죄를 지은 것은 잘 알고 있어요. 그분이 본래 욕심이 많아서, 하지만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 목숨만은 살려 주시구려”

인순왕후는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심통원의 목숨을 구명했다.

그녀는 자신이 전생이 무슨 업보를 졌기에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는지 하는 생각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지아비는 문정왕후의 눈치만 보며 마음고생 하다가 왕다운 노릇 한번 못해보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하성군은 왕이 되자마자 왕실의 외척 심씨 가문을 척신으로 몰아 제거하고자 하니 걱정이 한가득일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이 왕권 강화를 위해 왕실의 외척인 심씨 가문을 요절낸 이후 가문의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기에 그녀는 스스로 하성군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마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설마 제가 마마의 작은 할아버님 목숨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심려치 마시옵소서!”

“주상! 정말이오. 목숨만은 살려주시는 것이오?”

하성군이 심통원의 목숨은 살려 줄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이자, 인순왕후가 눈물을 글썽이며 하성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혈기왕성한 젊은 유생들과 관리들이 심 대감을 죽이라 하나, 제 어찌 사사로이 마마의 작은 할아버님이 되시는 심 대감을 사할 수 있겠습니까!”

인순왕후의 어진 인품을 잘 알고 있는 이균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또다시 찾아온 가문의 위기에 새파랗게 젊은 국왕에게 몸을 한껏 낮추어 하소연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보였다.

이균도 왕권 강화를 위해 심통원과 그를 추종하려는 세력을 조기에 제거하려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를 왕이 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녀이기에 그녀의 딱한 사정을 보아서라도 그녀의 작은 할아버지 심통원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주상! 정말 고맙구려. 내 주상이 영민하여 수렴청정할 필요가 없다고 극구 말렸건만······.”

인순왕후는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무리하게 수렴청정을 하려 했던 심통원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나마 하성군이 심통원의 목숨만은 살려준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가문의 멸문지화만은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비마마. 하지만 선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척신 세력을 이참에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할 것이옵니다. 심통원 대감께서는 다시는 도성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이점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내 어찌 주상의 뜻을 모르겠소. 선왕처럼 가엾은 왕은 두 번 다시 나와서는 아니 되오!”

심통원을 죽이라는 상소가 빗발치는 상황이었기에 목숨만이라도 보전되는 것은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인순왕후는 어린 이균의 손을 다시 꼭 잡으며 눈물을 떨구었다.

이균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그녀의 가문이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 기회에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하성군이 가엾은 남편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인순왕후는 하성군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마마! 이렇게 저희 뜻을 알아주시니······.”

이균도 심씨 가문을 희생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자기 뜻을 알아준 인순왕후가 고마웠다.

****

경복궁 근정전

영의정 이준경을 비롯한 정승들과 육조의 판서 등 조선을 움직이는 관료들이 모여 이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이균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근정전에 모습을 보였다.

이균의 모습이 보이자 이준경을 비롯한 대신들은 몸을 조아렸다.

“경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것은 척신 심통원과 그 일당을 처결하기 위함이오! 척신 심통원과 그 일당은 윤원형과 문정왕후에 빌붙어 선왕을 능멸하였음에도 아직까지 마땅한 처벌을 받지 않고 조정에 빌붙어 왕권을 찬탈하려 하니 어찌 벌하지 않을 수 없겠소! 경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이균이 어좌에 앉아 몸을 조아리고 있는 대신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전하! 마땅히 왕위를 찬탈하려 한 척신 심통원과 그 일당을 척결하여야 합니다. 대역죄인 심통원을 사사하고 그 일당을 모조리 처벌하여 다시는 반역을 획책하는 무리들이 없도록 본보기를 새우소서!”

영상 이준경이 나서 심통원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척결을 외쳤다.

율곡의 상소 이후 혈기 왕성한 젊은 유생들과 관리들이 들고일어나 심통원을 죽이라 외치고 있고, 소년왕 이균도 이들을 척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니 이준경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하! 그리하시옵소서!”

영상 이준경이 앞장서자 다른 대신들도 눈치를 보며 심통원을 척결하라 외쳤다.

대신들이 심통원을 척결하라 외치자, 이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이 마지못해 심통원을 척결하라고 외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균이었다.

“경들의 뜻이 그러하니 경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심통원은 왕위를 훔치려고 한 도적이니 마땅히 능지처참해야 할 것이오. 하지만 사사로이 왕대비 마마의 작은 할아버님이 되시니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겠소. 지금 즉시 심통원을 삭탈관직하고 제주로 위리 안치 시키도록 하고 살아서는 도성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며 그가 부정 축재한 재산은 모두 국고로 귀속시키시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이 인순왕후와 약속한 대로 그의 목숨만은 살려 주자, 대신들이 벌벌 떨며 몸을 조아렸다.

“그리고 윤임을 무고하여 을사사화를 일으킨 광평군 김명윤도 마땅히 사사해야 하나 이미 80을 넘은 노인이니, 삭탈관직하고 부정 축재한 재산을 모두 국고로 환수시키시오!”

“그뿐만 아니라 윤원형에 아부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대호군 윤인서도 삭탈관직할 것이며, 기묘사화를 일으킨 남곤의 관직을 추탈하시오!”

소년왕 이균이 이미 세상을 떠난 남곤의 관직까지 추탈하라하자, 대신들은 술렁거렸다.

통쾌한 과거사 청산이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에 빌붙어 왕권을 위협하며 권세를 누리던 남아 있는 척신세력을 일거에 제거하게 되었다.

이제 이균은 왕권을 위협하던 척신 심통원과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을 제거하고 자기 뜻을 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균을 왕으로 추대하는데 큰 공헌을 한 재상 이준경은 그의 대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심통원과 그 추종세력을 제거하기는커녕 그들에게 호되게 역습을 당해 왕권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제 갓 16살이 된 솜털이 보송보송한 이균은 율곡을 내세워 혈기 왕성한 젊은 유생들과 사림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상황을 순식간에 역전시켰다.

이균은 다시 냉철한 눈으로 몸을 조아리고 있는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척신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유배를 떠났던 노수신, 유희춘, 김난상 등 조정 중신들을 모두 사면 복직 시키도록 하겠노라!”

척신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이균은 곧바로 명종 초 척신세력이 일으킨 을사사화 등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한 노수광 등을 복직시켰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이 억울하게 유배생활을 한 조정 중신들을 모두 복직시키겠다고 하자, 이준경을 비롯한 대신들은 일제히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대신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균이었지만 이균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척신들 일로 조정이 당분간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영상 이준경, 우의정 권철, 좌의정 이명 대감은 계속 정승직을 맡아 함께 국사를 논의하도록 하시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균은 척신제거로 조정이 혼란스러울 수 있기에 그의 든든한 지지세력인 이준경을 비롯한 우의정 권철, 좌의정 이명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다만! 이조좌랑 율곡을 도승지로 임명해 짐을 보필하도록 하겠소!”

이제 갓 40이 넘은 젊은 관리 율곡을 도승지로 임명하겠다고 하자 대신들은 술렁거렸다.

하지만 이균의 강한 카리스마 앞에 대신들은 나서서 반대하지 못하고 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검사 생활을 잘하다 조선으로 회귀에 팔자에 없는 왕노릇을 하게 된 이균은 성공적으로 왕권을 위협하는 심통원 일파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했다.

선조를 그렇게 욕했던 그지만, 막상 왕이 되고 보니 왕이란 자리는 고독하고 외로운 자리였다.

얼핏 보면 왕이 되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조그만 허점이라도 보이면 승냥이처럼 달려들어 왕권을 위협하려 하는 조정 중신들을 견제해야 했고, 항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따라다니는 궁녀들과 내관들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어려웠다.

‘이거야 원! 왕이 이렇게 외로운 자리야!’

특히 아침마다 불끈불끈 일어날 정도로 혈기 왕성한 시기로 회귀했기에, 여인의 품이 너무 그리웠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는 어찌되었건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며 왕통을 이어받았기에 명종의 3년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혼인할 수 없었다.

물론 왕이기에 결혼하겠다고 우기면 어찔할 수 없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연산군과 같은 폭군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기에 참아야만 했다.

‘그래도 이렇게 차오르는 욕정을 억누르고 있어야 하는 건가? 이건 본능에도 반하는 건데. 우선 후궁이라도 들일까?’

밤이 외로운 이균은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하지만 후궁을 먼저 들이면 후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이 있기에 인순왕후는 중전이 정해질 때까지 후궁을 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거야 원 독수공방이 따로 없구만!’

이균은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허벅지를 긁적이다,

“내관 있는가? 배가 출출하니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라!”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이균은 뭐라도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내관에게 야식을 준비하라 시켰다.

“알겠사옵니다!”

이균이 야식을 주문하자, 왕의 음식을 준비하는 소주방 나인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잠시후 소주방 나인 2명이 상을 들고 내관의 안내에 따라 이균이 있는 침소로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며 상을 내려놓았다.

“뭐야 유빈이?”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인을 본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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