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척신을 제거하라!(2)
"하하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조선에는 도자기가 있었어. 도자기!“
이균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웃었다.
“전하!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이균이 한밤중에 잠을 자지 않고 큰 소리로 있자. 밖에 있던 내관이 걱정되는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별일 없다!”
“그래! 도자기. 도자기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유럽인들에게 아름다운 빛깔을 내며 잘 깨지지 않는 중국 도자기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청자에서부터 명청 시대의 청화백자까지 중국 도자기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에 팔려 나갔다.
특히 16세기 후반 아시아에 이르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 에스파냐 등 유럽의 상인들은 필리핀, 마카오 등을 전진기지로 하여 직접 중국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유럽 귀족들은 중국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그들은 도자기가 아무리 비싸도 세계 최고의 품질과 예술적 가치가 있는 중국 도자기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이균은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17세기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가 무려 6,000만 점 이상이라는 기록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중국에서 도자기를 수입해 엄청난 부를 쌓자 네덜란드, 영국 등 대항해시대의 후발주자들도 중국 도자기에 눈독을 들였는데, 이들은 사략선을 통해 도자기를 가득 실은 상선을 약탈하는 방법을 초창기에 썼다.
네덜란드의 사략선이 무역선을 나포한 적이 있는데, 그 배에는 중국의 청화백자가 가득 차 있었고, 청화백자를 암스테르담 경매에 내놓았는데 엄청난 인기리에 팔려나가 엄청난 이득을 취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중국 도자기는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
중국 도자기는 유럽이 흉내 낼 수 없었던 하이테크 산업이었다.
중국 도자기에 매료된 유럽은 오래전부터 중국 도자기를 모방해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네덜란드의 델프트 등 유럽의 거대한 자본을 가진 가문들이 중국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조잡한 수준의 도자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자기를 만들었을 뿐, 중국 도자기의 품질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들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지 못했고 고령토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자기를 만들기 위해 유리나 수정 가루를 배합해 인공적인 고령토를 만들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1708년이 되어서야 독일 마이센에서 처음으로 도자기다운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마이센 자기가 만들어질 때까지 도자기는 오늘날 반도체와 같은 유럽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었던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다.
그런데 제법 조선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송나라 시대 청자를 넘어서는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민족이 아니었는가?”
이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청화백자를 매만졌다.
“그래.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비록 중국 도자기가 대세이긴 하지만, 조선의 도자기 만드는 기술은 유럽에 어필할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이균의 판단이었다.
포르투갈 등 유럽 상인과 접촉해 조선도 중국 못지않은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국가라는 것을 어필하면 도자기 생산량이 부족해 도자기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도 조선의 도자기를 마다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 도자기보다 좀 더 저가에 공급한다면······.”
이균은 다시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도자기 수출로 자본을 축적하면 되겠어!”
이균은 앓던 이가 빠지는 것 같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국제 정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오로지 명나라만을 천자의 나라로 여기며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던 낙후된 농업 국가 조선을 자본을 갖춘 무역국가로 바꾸려는 방법으로 이균은 도자기 수출을 생각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도자기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고민하나를 해결한 이균은 오래간만에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
“주상 전하! 영의정 이준경 대감 입시이옵니다!”
“들라하라!”
잠시 후 노회한 재상 이준경이 편저에 들어와 이균을 바라보며 큰절을 올렸다.
이균도 이준경이 그를 왕위에 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준경을 정성껏 맞이했다.
명종이 승하하며 믿을 사람은 이준경밖에 없다고 한 말이 아직까지 이균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전하!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들었사옵니다. 염려되시는 것이 있사옵니까?”
내관으로부터 이균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이준경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이균을 바라보았다.
“흐음. 영상 덕분에 내가 팔자에 없는 왕이 되었소! 그것이 불행한 것인지 무엇인지 통 알 길이 없구려!”
이균은 골치가 아픈 것처럼 한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이준경을 바라보았다.
“전하 무슨 말씀을 하시옵니까? 전하께 왕통을 있는 것은 선왕의 뜻이었나이다. 마음을 굳건히 다잡으시옵소서!”
백발이 성성한 노회한 재상 이준경은 시름이 한가득한 어린 왕이 안쓰러워 보였다.
문정왕후의 폭정과 척신의 발호로 혼탁한 시대에도 이준경은 강직한 성품으로 꿋꿋이 심약한 왕 명종을 보필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치세에 이준경 같은 강직한 신하가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명종은 그런 강직한 성품의 이준경을 의지했고, 명종은 세상을 떠나며 어린 하성군에게 오로지 이준경만을 믿고 의지하라 했다.
명종의 유지를 받은 이준경이었기에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어린 하성군을 대신해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나, 애초에 그는 오로지 어린 주상이 어떻게 냉혹한 정글과도 같은 궁궐에서 살아남아 성군이 될 수 있을지를 염려할 뿐이었다.
이준경은 명종이 급작스럽게 서거하여 제대로 된 왕위 수업도 받지 못하고 부랴부랴 왕이 된 하성군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어린 하성군이 가엾게 느껴지기만 했다.
하지만 이균은 이준경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그도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그가 현시점에 의지할 곳은 이준경뿐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알았고, 그런 이준경이 정말 믿을만한 인물인지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를 불렀을 뿐이다.
“선왕께서 누구도 믿지 말고, 오로지 영상만을 믿으라 했소. 막막한 구중궁궐에 내 믿고 의지할 곳은 영상밖에 없소.”
이균이 일부러 한숨을 푹 쉬며 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절대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전하께서는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조선의 지존이시옵니다. 노신이 비록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전하를 보필할 것이옵니다.”
하성군이 이준경만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니 그는 감동을 먹은 듯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 같은 눈으로 어린 왕 하성군을 보필하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영상이 그런 든든한 말을 하니 안심이 되오!”
‘이준경은 과연 사심이 없는 자로구나.’
이준경의 속마음을 떠본 이균은 자신이 역사책에서 배운 명재상 이준경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상이 보기에 이 나라의 형편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오!”
이준경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균이 조선이 어떠한 정세인지 물었다.
“전하! 태조께서 조선을 개국한 이래 종종 야인들이 국경을 넘어들어와 소란을 일으키는 하였으나 지난 200여 년간 조선은 큰 변란 없이 태평성대를 누려왔습니다. 전하께서는 내치만 신경 쓰시면 태조와 세종대왕을 능가하시는 성군이 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명재상이라는 이준경도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구나.’
태평성대라는 이준경의 말을 듣자 이균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준경 정도의 명재상이라면 최소한 명, 왜, 여진족 등 동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급변하고 있는지는 알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도 동아시아의 정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태평성대를 외치고 있었다.
“태평성대라! 야인 말고는 외침의 가능성이 없다는 거요? 왜는 어떻소?”
“전하 야인들은 천자의 나라 명에서 통제하고 있고 또 우리의 용맹한 장수들이 경거망동하는 야인들을 격퇴하고 있사옵니다. 야인들의 준동을 염려하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왜놈들은 본디 천박하고 무지하여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사옵니다. 왜놈들은 조선의 안위를 위협할 족속이 되지 못하옵니다.”
이준경 그도 1592년 왜의 침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들을 깔보고 있었다.
그도 여느 조선의 사대부와 마찬가지로 왜는 왜소하고 천박한 남쪽 오랑캐 정도로만 여기로 있었다.
앞으로 명나라를 치고 중원을 차지할 여진족에 대한 인식도 야만적인 북쪽 오랑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준경의 왜와 여진족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니 다른 대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국제정세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대신들을 데리고 정사를 논할 생각을 하니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듣기로는 명이 남만과 교류하며 도자기, 비단 등을 수출하며 국력을 신장시키고 있다고 하던데, 조선도 이제 그들과 교류할 필요가 있지 않겠소?”
“전하! 천자의 나라가 있는데 굳이 남쪽의 오랑캐와 교류하려는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남쪽의 오랑캐는 북방의 야인과 다를 것이 없는 족속들이옵니다. 그들을 경계하소서!”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구나.’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이준경이 세상 물정을 모르고 저런 소리를 하니 이균은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따르는 충실한 신하 이준경을 내칠 수도 없으니 이균은 조선을 어떻게 개조시켜야 할지 골치가 아파져 왔다.
‘조선을 바꾸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이준경이 떠난 후 이균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
영의정 이준경, 인순왕후의 작은 할아버지 심통원, 도승지 이양원 등 대신들이 모여 명종의 뒤를 이어 새로운 왕이 된 하성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순왕후를 설득해 수렴청정을 이끌어 낸 심통원은 의기양양했다.
태종에 의해 가문이 풍비박산 났으나, 이제 그들 가문이 문정왕후를 넘어서 조선을 좌지우지할 큰 힘을 가진 명문가가 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기에 그는 흥분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주상전하 입시오!”
잠시 후 어린 왕 하성군 이균이 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와 옥좌에 앉아 조아리고 있는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즉위식에서 여러 차례 대신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성전의 상차에 머물며 나오지 않다가 인순왕후와 이준경의 간곡한 청을 이기지 못하고 근정전으로 나아가 마지못해 용상에 오른 수줍은 어린 소년 이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심통원은 아주 신이 났구나!’
얼굴에 화색이 가득한 심통원을 바라본 이균은 욕심이 가득한 그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꼈다.
“왕이 될 수 없었던 이 몸이 경들의 도움으로 옥좌에 앉게 되었소. 내 어찌 경들의 은덕을 모를 수 있겠소!”
“전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나이까. 전하께서는 선왕의 뜻에 따라 대통을 이은 것이옵니다.”
이균이 자신을 낮추어 왕이 된 것을 신하들의 공으로 돌리자 이준경이 몸을 조아리며 말했다.
그러자 하성군 이균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심통원이 욕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선왕의 유지는 있었으나, 전하께서 궁중의 법도를 배우지 못하고 용상에 오르셨으니 당분간 왕대비 마마의 수렴청정을 받으시어 궁중의 법도를 배우소서. 다행히 왕대비 마마께서도 이를 수락하셨나이다.”
“전하! 그리하시옵소서!”
심통원이 나서 수렴청정을 권하자, 이준경을 비롯한 다른 대신들도 일제히 하성군을 향해 수렴청정을 받아들일 것을 간청하였다.
하성군이 왕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이준경이었지만, 그도 급작스럽게 왕통을 이어받은 어린 임금 하성군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당분간 수렴청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대신들이 일제히 수렴청정을 요청하자, 하성군 이균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심통을 노려보았다.
“심 대감! 그대는 내가 문정왕후에 의해 임금다운 임금이 되지 못하고 속을 끓여야 했던 선왕의 뒤를 따르는 그런 임금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오!”
“전······.전하!”
수렴청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 심통원은 이균이 뜻밖의 말을 꺼내자 새파랗게 질려 말을 더듬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