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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3화 (3/202)

3화 선조가 되었어요.(3)

잘나가던 검사에서 졸지에 조선의 국왕 그것도 그가 가장 경멸하던 선조가 된 이균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왜 자신이 조선에 온 것인지 무엇 때문에 선조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비추는 촛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이균은 자리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미 조선으로 돌아와 왕이 된 자신의 운명을 되돌릴 방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찌 되었건 조선의 국왕으로 살아야 했다.

‘그런데 많고 많은 왕 중 왜 하필 선조일까?’

재위 기간 내내 왕권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신하들을 의심하며, 질투하고 결국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쫓겨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주한 무능한 왕.

세종, 정조 등 성군도 많을진대 그가 가장 경멸했던 선조가 된 자신이 운명이 야속하게만 여겨졌다.

‘왜놈들이 조선을 침략하기까지 25년 남은 건가?’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된 것이 1567년.

그리고 혼돈의 시대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을 정벌하겠다는 야욕을 가지고 17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한 것이 1592년.

‘시간이 부족하다.’

이균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록 한정적이긴 하나 포르투갈 등 유럽 세력과 교류하며 상업을 발전시킨 일본은 이미 국력 면에서 조선을 앞서고 있었고, 더욱이 피비린내 나는 전국시대를 겪으며 조선은 보지도 못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은 건국 이후 큰 전쟁 경험 없이 허송세월해 그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조선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대로 무방비 상태로 10만이 넘는 왜군을 상대했다가는 조선의 국왕은 또다시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주해야 할 것이다.

왜놈들을 압도할 수 있는 국력과 군사력을 가지기에 25년의 기간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한없이 짧은 기간이다.

또 지금의 국제정세는 어떠한가?

조선은 오로지 명나라만을 천자의 나라로 받들며 다른 나라와의 교류는 전혀 하지 않고 성리학에만 빠져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알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나라였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이교도 오스만 투르크가 1453년 영원할 것 같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유럽은 거대한 충격에 빠졌다.

오스만이 지중해를 차지하면서 유럽은 인도와 아시아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인도 등 아시아와의 교류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횡포에 서유럽 국가들은 인도 등 아시아와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대항해 시대였다.

무모한 모험가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믿음으로 대서양을 거쳐 서쪽으로 나가면 언젠가는 인도에 이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아 초라한 범선을 타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

반면 포르투갈은 아시아와의 교역을 위한 새항로 개척만이 조국이 번영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긴 엔히크 왕자의 지원 아래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연결되는 항로 개척에 국운을 걸었고, 1497년 7월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바스코다가마가 리스본을 출발해 아프리카 서해안을 돌아 희망봉, 모잠비크, 말린디를 거쳐 1498년 5월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하며 마침내 아시아로 이어지는 새항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새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은 뒤이어 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고아, 페르시아만 연안의 호르무즈, 말라카 등을 연달아 점령하며 동남아시아와 일본까지 연결되는 항로를 열어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하고 동아시아와의 향로 무역을 독점하며 단숨에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되었다.

한편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 인도 일부라고 여겼던 신대륙을 발견한 스페인은 남아메리카를 차례차례 점령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펠리페 2세 시대에 오스만 투르크의 함대까지 격파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들에 자극받은 후발주자 네덜란드, 영국 등의 도전으로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한 포르투갈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각자 동인도 회사를 차례 포르투갈에 도전한 네덜란드, 영국 등은 포르투갈의 독점해온 향신료 무역을 야금야금 빼앗아 갔고, 이제 포르투갈의 해양제국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가고 네덜란드, 영국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해 신대륙 그리고 허약한 구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를 열 것이다.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중심은 아시아였다.

중국, 인도의 경제규모가 세계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바라보았을 때 유럽은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항해 시대가 도래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모험가 정신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 각국은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을 발견하고 무역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대포, 총 등을 개량해 무기 혁명을 이룩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해 제국주의 시대로 향해 나아갔다.

왜놈이라고 깔보던 일본도 세계와 교류하며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전국시대에 이미 포르투갈과 교류하며 조선은 접해보지도 않았던 조총이라는 소총을 사용하며 활과 칼로 대변되던 동아시아의 전투방식 판도를 바꾸어 놓았고, 에도막부 시대에는 쇄국정책을 펼치기는 했으나 네덜란드와는 계속 교류하며 유럽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인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서 고령토를 발견하고 중국의 청화백자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며 도자기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명, 청 교체기로 청화백자 최대의 생산단지인 중국의 경덕진이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지 못하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그 대안으로 일본의 도자기를 사들여 유럽에 판매했다.

일본 도자기는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일본 특유의 정서가 가미되고 유럽의 원하는 스타일이 첨가된 에나멜 백자가 탄생했는데 에나멜 백자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본은 도자기를 유럽에 판매하며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비록 쇄국주의 정책으로 그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네덜란드와 교류하며 상당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기에, 미국에 굴복해 뒤늦게 개방해 근대화를 시도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은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세 살배기 아기와 같은 존재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는지,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신항로 개척에 성공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며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했는지, 스페인이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사대부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고리타분한 주자학 경전을 온종일 외우고 있을 뿐이고, 조선개국 이후 큰 외침 없이 태평성대를 누린 군대는 제대로 훈련조차 되지 않은 오합지졸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임진왜란을 막을 수 없고, 설령 막는다 해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겠지.’

‘악몽이구나! 악몽!’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이균은 돌아가고 싶었다.

앞으로 펼쳐질 역사를 모르면 졸지에 왕이 되었다고 좋아라 했겠지만, 조선의 가혹한 운명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정말 미치겠네.’

“전하! 몸이 불편하시나이까?”

이균이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책상에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자, 밖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늙은 상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오.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상선은 이제 물러가도 좋소.”

“알겠나이다. 전하!”

그러나 낡은 상선은 잠 못 드는 어린 왕이 걱정되는지 알겠다는 말만 하고 상궁들과 함께 문밖을 지켰다.

“이준경 이외에는 믿지 마라!”

태풍은 명종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 원래 왕이 될 자가 아니었으니······.”

이균은 명종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제법 잘해 두꺼운 법서를 달달 외워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그였기에, 암기과목인 한국사도 당연히 잘했다.

선조가 원래는 왕이 될 수 없는 신분이라는 것을 이균은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왕위를 차지한 인물은 모두 적통을 이어받은 왕후의 자식에서 나왔다.

정종과 태종은 신의왕후의 소생이었고, 세종은 원경왕후, 문종과 세조는 소헌왕후, 단종은 현덕왕후, 예종은 정희왕후의 소생이었고, 성종은 정희왕후 소생 의경 세자의 둘째 아들이었으며, 연산군은 폐비 윤씨, 중종은 정현왕후, 인종은 장경왕후, 명종은 문정왕후의 소생이었다.

조선 개국 후 왕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모두 왕후의 자식들이 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조선 왕조 최초로 왕후의 자식 즉 대군 출신이 아닌 방계 출신의 왕이었다.

명종이 낳은 순회세자가 13세의 나이로 졸하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 왕이 될 수 없는 몸이었다.

‘적통이 아니니, 나를 왕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겠지.’

왕이 될 자가 아닌 자가 왕이 되었으니, 신하들 상당수는 그를 왕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인순왕후의 작은 할아버지뻘인 심통원은 이균이 명종의 왕위를 넘겨받는 것에 미온적이었으나, 영상 이준경의 노력 덕분에 왕이 될 수 있었다.

아마도 이준경이 이균을 적극 지지하지 않았다면 이균은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어찌 되었건 왕이 되었으니,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마음껏 펼쳐보자!”

그가 가장 경멸했던 선조로 회귀한 것이 분명 저주라고 생각했던, 이균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조선의 14대 국왕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마음껏 뜻이라도 펼치고 한세상 살다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 선조시대에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고 볼 수도 있어! 이 인재들만 잘 활용한다면······. 조선은 달라질 수도 있지!”

이균은 책상을 손바닥을 크게 내리치고 결의를 다졌다.

그의 말대로 이황, 기대승, 이이, 정철, 유성룡, 이덕형, 이항복, 허준 그리고 이순신까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인재들이 모두 선조시대에 출현했다.

당파에 휘둘리지 않고 이들 인재를 잘 활용한다면 이균이 알던 무능한 왕 선조가 아닌 성군 선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왕권을 공고히 해야겠지. 왕권을 저해하는 세력은 먼저 제거해야 해!’

이균은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이 누가 있을까?’

제대로 된 세자수업도 받지 못하고 급작스럽게 왕이 된 그였기에 궁궐 내에 그를 후원해줄 자를 찾지도 못했다.

자칫 잘못하면 신하들에게 농락당하는 허수아비 왕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준경은 본래 권력욕이 없는 자이다! 그래 지금 왕권에 도전할 자는 심통원밖에 없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사이로 이균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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