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이로운 군주 선조대왕 일대기-1화 (1/202)

1화 선조가 되었어요(1)

“저 계장님, 그 공소시효 다되어가는 사건 있죠. 조사 다 마친거에요?”

20대 후반의 남자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에게 다그치듯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아. 검사님, 아직 조사를······.내일 조사할 예정입니다.”

“계장님, 아직도 조사를 안 하면 어떻게 해요. 그러다 공소시효 만료되면 계장님이 책임지실 거예요. 좀 신경 좀 써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검사님!”

40대 후반의 계장이 쩔쩔매는 검사.

그의 이름은 이균이다.

조선 14대 왕 선조의 이름과 같다.

왜 선조의 이름과 같냐고?

그건 순전히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그의 집안은 조선 14대 왕 선조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억지로 따지고 보면 여러 다리를 걸친 선조의 방계 후손쯤 된다.

남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신하들이나 견제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서는 백성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망간 어이없는 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안이 선조임금의 후손이라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고,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선조임금의 이름과 같은 이균으로 지어버렸다.

하지만 이균 그는 그의 이름이 절대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그도 남들이 보는 시선처럼 선조라는 임금을 무능하고 전란을 막지 못한 어이없는 임금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아버지가 선조의 이름을 따온 것이 맘에 들 리 없었다.

그리고 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기에 어릴 적부터 그의 별명은 세균, 병균,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넘겨받은 함대를 수몰시켜버린 원균이 되어 학창시절 내내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는 성인이 돼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개명신청일 정도로 그의 이름을 격멸했다.

하지만 선조 임금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에 당분간은 이균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자 그가 가장 존경하는 선조의 이름을 따 그의 아들 이름을 이균이라고 지었고 아들이 큰 인물이 되기를 원했다.

그의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이름 때문인지 이균은 어릴 적부터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줄곧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이균은 대학교 2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해 이른바 소년 급제를 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이균이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그의 아버지는 선조의 능에 찾아가 모든 것이 다 선조 대왕 덕분이라며 절을 올렸다.

이균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창피해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기억이 있었다.

‘어휴 검사도 이거 못해 먹겠구만. 완전히 서비스 센터야 서비스.’

사법고시에 당당히 합격한 이균은 어릴 적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검사의 모습에 매료돼 연수원 입소부터 검사 임관을 생각하며 열공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꽤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연수원 담당 교수는 판사로 임관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검사는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것이었기에 담당 교수의 권유를 뿌리치고 검사 임관을 했다.

그러나 검사는 그가 드라마에서 보던 악당을 때려잡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검사 생활 몇 개월 만에 그런 환상은 완전히 산산 조각났다.

멋들어지게 사건을 인지해 사회 부조리를 찾아 깨부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밀려드는 고소, 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만 했다.

‘이러려고 내가 검사한 거야 뭐야 어휴.’

이균은 서류뭉치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균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균아, 오늘 약속한 것 잊지 않았지?”

“약속이요?”

이균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의 자식. 그럴 줄 알았다. 오늘 선조대왕의 일대기에 대한 전시회가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니.”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아차. 그날이 오늘이었나?’

이균은 그제야 아버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함께 가자고 신신당부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 아버지. 그런데 제가 오늘 너무 바쁜데? 아버지 혼자 가시면 안 돼요?”

“이 녀석이.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너 지금 다 컸다고 이 아버지 무시하는 거냐!”

그의 예상대로 수화기 넘어 아버지의 목소리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아. 알았어요. 갈게요. 가.”

이균은 아버지에게 아무리 사정을 말해봐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전화를 끊어 버리고 옷걸이에 걸려 있는 양복 상의를 걸쳐 입었다.

“미친다. 미쳐 내가 아버지 때문에. 무슨 선조 대왕이야. 대왕은······. 어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 계장님.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그 공소시효 만료되는 사건 좀 빨리 처리해주시고요.”

“네. 검사님! 걱정하지 마시고요. 얼른 아버님께 가세요!”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계장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어휴. 내가 미쳐요. 미쳐. 그럼 내일 봐요.”

이균은 계장에게 인사를 한 후 빠른 걸음으로 검사실을 나섰다.

****

국립중앙 박물관

“아버지!”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이균의 아버지는 여전히 노여움이 가시지 않은 눈치였다.

그에게 있어 선조 대왕은 절대적 존재와 마찬가지인데, 선조 대왕 일대기에 대한 전람회 약속을 잊어버린 아들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 저 요즘 무지 바빠요. 매일 야근하는 거 아시잖아요. 제가 지금 한가롭게 전람회 이런 걸 볼 처지가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이런 데는 여자 친구랑 와야지. 남자 둘이 이게 뭐하는 거예요.”

이균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은지 툴툴거렸다.

“이 녀석이 아직도. 선조 대왕께서 안 계셨으면 니가 지금 검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다 선조 대왕께서 보살펴 주셔서 사법 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거야. 항상 선조 대왕의 후손이라는 걸 잊지 말고 살라고 했냐? 안했냐?”

“아휴 아버지도 참. 무슨 선조 대왕의 후손이에요. 솔직히 가까운 후손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면 피도 하나도 안 섞인 남남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했는지 아세요. 이름이 균이 뭐에요. 세균도 아니고······.”

이균이 씩씩 거리며 말했다.

“이 녀석이 정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 들어와!”

이균은 결국 아버지 손에 이끌려 국립중앙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아버지는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선조 대왕의 일대기라는 이름답게 선조 재위 기간 동안의 도자기, 서적, 선조가 입었던 곤룡포, 임진왜란 당시 사용되었던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달리 이균은 별 관심 없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그냥 눈으로 흩고 지나쳤다.

“참나. 이런 전시회는 왜 하는 거야! 우리나라에 위대한 인물이 얼마나 많은데, 무능의 절정에 있던 선조한테 뭘 배울 것이 있다고.”

이균은 선조가 여전히 못마땅했다.

당파싸움에 빠져 임진년 일본의 침략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부산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도성을 향해 진격하자 도성을 지켜달라고 자신을 지켜달라고 울부짖는 백성을 버리고 도주한 임금.

그것도 모자라 그는 나라를 위해 홀연히 일어나 맨손으로 왜군과 맞서 싸운 의병장 김덕령 장군 등을 역적으로 몰아 처형했다.

두려웠던 것이다.

도성을 버린 왕을 백성들이 왕으로 여기지 않고 역성혁명을 일으켜 그를 몰아내려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는 죽는 순간까지 백성과 신하들을 의심했다.

“저런 자가 무슨 왕이라고. 아버지는 그런데 왜 그렇게 선조를 좋아하시는 건지.”

이균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별생각 없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대충 보고 지나가던 이균은 도자기 앞에 멈추어 섰다.

용이 도자기 전체를 휘감고 있고, 연꽃과 국화꽃 문양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분청사기였다.

“그래. 그나마 도자기 만드는 기술이라도 있었는데, 저런 도자기라도 유럽에 수출했으면 조선이 그렇게 나약한 국가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유럽은 당시 중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에 미쳐있었다.

유럽도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으나 도자기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 조악했다.

고온에서 흙을 다루는 기술이 없었다.

당시 도자기는 하이테크 산업이었다.

명 그리고 청의 도자기는 유럽에 엄청난 양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유럽에서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제법 도자기를 잘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성리학 원리주의에 빠져 빗장을 걸어 잠그고 은둔했었다.

조선에게 명 이외에 다른 국가와 민족은 오랑캐에 불과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성리학에만 빠져 있었으나 나라가 망할 수밖에······.”

이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균아. 저기 봐라. 선조 대왕의 어진이야!”

이균의 아버지는 선조대왕의 어진을 감격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완전 내시 같아요. 수염도 가늘고, 얼굴도 쪼잔 해 보이고. 그러니까 그렇게 신하하고 백성을 의심한 거지······.어휴.”

이균은 선조의 어진에 감격을 금치 못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독설을 날렸다.

“이 녀석이! 정신을 못 차리네. 지금 선조 대왕 어진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의 아버지는 노여움에 불타는 목소리로 이균을 꾸짖었다.

‘도대체 언제 집에 가는 거야. 할 일도 많은데.’

하지만 아버지가 꾸짖든 말든 이균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진짜 못생겼네. 왕의 기품이 하나도 안 느껴져?’

“얘끼 이놈! 니가 그러고도 내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균이 선조의 어진을 못마땅하고 있는 사이 느닷없이 천둥 같은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뭐지. 어디서 나는 소리야?’

이균은 깜짝 놀라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저한테 무슨 말씀 하셨어요?”

“이 녀석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그의 아버지는 이균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이 녀석아! 왕 자리가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 내가 그렇게 못마땅하면 니가 직접 왕을 해봐라! 내 얼마나 왕 노릇을 잘하는지 지켜보마!”

그런데 또다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도대체 이게. 설마 어진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목소리는 선조의 어진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이균은 자신도 모르게 선조의 어진을 바라보았다.

어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놈! 어서 왕 노릇을 해보래도!”

‘뭐야 정말 어진이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균의 등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진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의 손이 어진이 전시되어 있는 유리 벽에 닿은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어진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뭐야! 살려줘! 아버지 제발!”

선조의 어진이 그의 몸을 강하게 빨아들이자, 그는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버지는 듣지 못했고, 그는 깊은 어둠의 회오리에 갇힌 것처럼 빙빙 돌며 사라져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성군 나으리!”

“하성군 나으리 기침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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