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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206화 (20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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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세계

“생일··· 파티?”

아델이 당황하고 있을 때. 벨로크가 나섰다.

“그렇소. 하이네 가문에서 온 벨로크요.”

그냥 던져본 말이었다. 쫓겨난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하지만 하인은 미소를 지으며 크게 허리를 숙였다.

“어려운 시기에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이네 경. 아가씨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하-이네 가문의 벨로크 경께서 오셨습니다-! 소리친 하인이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쭉 뻗으며 연회장을 가리켰다.

번쩍이는 샹들리에 아래. 고급스러운 요리들과 오래 묵은 술들.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이 춤추거나 먹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머.

그들은 갑주를 입고 이곳에 온 두 사람이 신기한지. 잠깐 바라보다가 곧 자기들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릴 때부터 마탑에서 수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델이 속삭였다.

“귀가 뭉툭합니다. 카라의 의식세계인 듯합니다.”

벨로크가 고갯짓했다.

“그런 것 같군. 저기를 봐라.”

연회장의 정중앙. 불처럼 타오르는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웃으면서 서 있었다. 성숙해 보이고 싶은 건지 나이에 맞지 않게 머리칼을 틀어 올린 채 였는데. 화려한 이목구비와 붉은 머리색이 합쳐져 썩 잘 어울렸다.

아니, 왜 또 소녀의 모습이야? 게다가 이때의 기억이 카라한테 큰 트라우마가 되었나? 행복해 보이는데?

“그래서 이번에 재미있는 유흥거리를 하나 준비했어.”

소녀가 말하자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부채를 내리며 물었다.

“뭔데요?”

“수수께끼를 낼 거야. 다 맞추면 소원을 이루어주는 거지!”

“우와. 정말요? 뭐든지 이루어주시는 건가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그래도 대단한 영광이네요. 아가씨는 로젠바흐 가문의 적자시잖아요? 사생아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사생···아?”

귀족 여인이 말할 때. 소녀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 마치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킨 듯했다. 하지만 곧 소녀의 갈색 눈동자가 멍해지더니 그녀는 다시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쉽진 않을 거야. 꽤나 공정한 것도 있지만, 나머지 둘은 내 사심들이 듬뿍 들어간 질문들이니까. 그러니···”

소녀가 말을 멈췄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물러섰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자 건장한 체구의 기사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얼굴도 준수했고, 입고 있는 갑옷도 명품인 듯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누구?”

“데리러 왔다. 카라.”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누구시죠? 거기다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 거고?”

아델과는 달리 그녀는 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얘는 또 왜 이래? 벨로크가 머리를 긁적일 때. 아델이 나섰다.

“카라. 시간이 없다. 이 모든 건 환상이다. 어서 떠나야 한 단 말이다.”

카라가 발끈했다.

“아까부터 정말 무례하시군요! 다짜고짜 제 이름부터 부르시지 않나! 어디를 가야 한다지 않나! 귀공들은 대체 누군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인가요!”

“윽.”

그 순간. 벨로크와 아델은 강대한 압박감을 받았다. 숨이 턱 막히고 마치 어딘가로 튕겨져 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나 호의만을 주던 동료로부터 받는 적의는 꽤나 낯설었다.

[한 세계의 주인이 내리는 추방령이다. 더 이상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돼.]

마음만 먹으면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벨로크가 슬며시 신성을 끌어올리려 하자 노르드가 만류했다.

[그랬다간 강대한 힘의 파장에 의해 이 세상이 뒤틀릴 것이고, 저 아이는 내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겠지. 게다가··· 저들을 보거라. 우리는 이미 놈의 함정에 걸린 게야.]

벨로크는 주변에 있던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쟁반을 들고 있던 하인,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있던 귀부인, 와인잔을 들고 입을 축이던 신사까지.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인간들의 반 정도는 눈동자 속에서 검은 불길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절대신의 하수인들.

키킥.

한 여자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아까 전 카라와 대화를 나누던 여인이었다.

[저들의 의도가 이해가 가느냐? 신성의 소모를 유도해 네 힘을 빼놓을 생각이다. 더군다나 네 동료를 여기에 붙잡아둔 채, 너희들이 추방당한다면 전력의 공백까지 유도할 수 있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를 좀먹고 있는 환상은 본인 스스로가 떨쳐내야 하지만,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이지. 보나 마나 저기 있는 녀석들이 그녀의 기억을 교묘하게 왜곡시켜서 이 미혹에 더 빠져들게 만들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로군. 저 마법사가 원하던 대로 해주거라.]

‘원하던 대로?’

[예로부터 말에는 강한 힘이 있다. 아까 그녀가 말하지 않았느냐? 수수께끼를 풀면 소원을 이뤄준다고. 문제를 풀고 우승해 정신을 차리라고 빌거라.]

졸지에 퀴즈대회라니. 벨로크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여태까지 사특한 속임수를 쓰는 괴물이나 마법사들, 영주들을 상대했었지만, 언제나 그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를 처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머리를 쓰라니.

게다가 수수께끼라는 것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모호한 구석도 많으니. 쉽지만은 않을 텐데. 벨로크가 우려할 때. 노르드가 말했다.

[걱정말거라. 이쪽은 머리가 셋이지 않느냐? 게다가 나는 수만 년 역사와 함께 해온 지식의 보고다. 나를 믿거라.]

“왜 말이 없으시죠? 이제서야 본인들의 실수를 새삼스레 자각하신 건가요?”

“벨로크 님. 일단 한 대 후려쳐서 기절시킨 다음에 끌고 가는 건···”

카라가 소리치고, 아델이 속삭일 때. 벨로크가 말했다.

“우선 큰 실례를 저지른 점 사과하겠소.”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카라는 벨로크를 가만히 올려다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용건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소. 이곳 연회장에서 수수께끼 대회가 열린다지? 거기에 참가하고 싶소.”

“벨로크 님?”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해다오. 이게 최선이다.”

아델은 그 말에 곧바로 수긍했다.

“당신도 소원권이 탐나나 보죠? 뭐, 좋아요. 참여에 제한 같은 것은 따로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카라가 손뼉을 짝 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나타난 하인들이 연회장의 중앙에 탁자를 세우고, 그 위에 조각상 두 개를 올려놓았다. 모양도 크기도 똑같은 황금으로 이루어진 쌍둥이 석상이었다.

“모두 들으세요! 이번 파티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인 내가 재미있는 유흥거리를 하나 준비했으니까!”

뭐 하는 짓인지 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카라가 말했다. 그녀는 높고 분명한 어조로 자신이 낸 질문들을 맞춘다면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며 선언했다.

사람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절대신의 하수인이든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이든 모두가 말이다. 어린 카라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 시선들을 즐기다가 탁자 위에 있는 동상을 매만졌다.

“그럼 첫 번째 문제에요. 이것들은 저희 가주님께서 최근에 구매하신 순금으로 된 조각상입니다. 가주님이 무척이나 아끼시는 거죠. 그런데 최근에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글쎄. 이 두 조각상 중 하나에 은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어머나. 세상에. 같은 추임새들이 옆에서 들려왔다. 이제 벨로크로서는 저놈들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존재에게 기생해 그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카라가 다시 말했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가시죠? 간단합니다. 이 조각상들을 녹이지 않고, 주문을 사용하지 않고 은이 섞여 있는 조각상이 어떤 것인지 밝혀주세요. 제가 납득할 수 있게 과정도 설명해주셔야 됩니다. 참고로 전 이미 해답을 알고 있어요.”

카라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답!”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재빨리 나섰다. 콧수염을 기른 귀족 사내였다. 그는 저울에 두 조각상을 올려놓고 무게를 측정했다. 물론 똑같았다. 그러자 귀족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둘 중에 하나를 콕 집었다.

“이겁니다.”

“이유는요?”

“어, 음. 이쪽이 좀 더 광택이···”

“땡.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굳이 힌트를 주자면 연금술과 비슷하죠.”

주위 사람들과 아델은 골머리를 썩였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녹여보지도 않고 어떻게 금속의 성분을 파악할 수 있는 겁니까?”

하지만 노르드는 웃었다.

[셈에 능한 장사치들이나 할법한 발상이구나. 알아냈느냐?]

벨로크 역시 피식 웃었다. 내가 공부는 못했어도 교양 수업에 졸지는 않았거든. 여기서 이걸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정답을 말해도 되겠소?”

카라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머. 아까전의 그 무례한 기사로군요? 칼잡이인 당신이 정말 이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다구요? 이렇게나 빨리?”

카라의 얼굴은 시큰둥했다. 그가 정말로 이 문제를 맞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하는 듯했다. 쟤한테서 저런 반응을 받아보는 건 또 처음인데. 잘 알던 사람이 자신을 기억 못 한다는 상황은 꽤나 기분이 나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면 혼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말로 하기는 좀 그러니 예를 들어서 보여주지.”

벨로크는 하인을 시켜서 양동이 두 개와 사발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사발 두 개에는 똑같은 양의 물이 가득 들어있었고, 석상을 담을 정도의 크기였다. 양동이는 그 사발을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컸다. 카라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호오?”

벨로크는 두 개의 양동이 안에 사발을 넣고 그 안에 제각각 석상들을 담갔다. 그러자 물이 흘러넘치며 양동이에 주르륵 떨어졌다. 물의 양은 동일하지 않았다. 왼쪽에 있는 것이 더 많았다.

“저울로 석상 두 개의 무게를 쟀을 때는 분명 똑같았지. 하지만 넘친 물의 양은 다르오. 부피의 차이지. 금은 은보다 무겁고, 같은 무게를 맞추기 위해선 금보다 많은 양의 은이 필요했을 테니. 왼쪽에 있는 것이 모조품이군.”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새로운 지혜에 전율한 사람들, 유레카. 라고 소리친 노르드와 일단 고개부터 끄덕이고 보는 아델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튀어나왔다. 카라는 박수를 쳤다.

“대단해! 완벽한 예시야! 세상에 이 방법을 어떻게 알아냈죠? 상인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나름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건데!”

벨로크는 교양 시간에 배웠던 고대 시대의 노인네와 왕관에 대해서 떠올렸다. 이걸 이런 식으로 써먹을 줄은.

“그냥 목욕하다가.”

“그렇군요! 생각의 전환이란 것은 언제나 별것 없는 일상 속에서 태어나는 법이죠! 보기보다 똑똑하신데요?”

넌 그럼 지금까지 날 멍청이로 생각했냐? 벨로크는 묻고 싶었지만, 카라는 웃는 낯으로 박수를 치며 손을 올렸다.

“일단 여기 계신··· 음. 이름이 뭐죠?”

“벨로크. 벨로크 하이네.”

“벨로···크?”

그 이름을 들은 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색을 잃고 멍해졌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절대신의 하수인들이 무언가 손을 써둔 모양이다. 암시? 세뇌?

“아가씨. 다음 문제는요?”

그때. 부채를 들고 있던 귀부인이 말했다.

“아··· 아. 그렇지 참. 응. 그래, 문제··· 내야지.”

화들짝 놀란 카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멍한 눈동자를 숨기며 말했다.

“자. 두 번째 문제에요. 참고로 이건 아까전처럼 계산적이며 논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와 정반대죠.”

글쎄. 그리스 시대의 그 대발견도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허술한 점이 몇 개 보이는데. 벨로크가 생각할 때. 카라가 말했다.

“여기 두 자매가 있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고, 다른 하나가 또다시 그 하나를 낳는 것은 무엇이죠?”

뭔 개소리야? 넌센스에 약한 벨로크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슬쩍 아델을 쳐다보자 그녀 또한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노르드가 말했다.

[하나가 지면 하나가 떠오르고, 그 하나가 다시 지면 또 다른 하나가 떠오른다. 정답은 해와 달이다. 헬레나는 태양을 셀레네는 달을 상징하지 않느냐.]

의인화였어? 벨로크가 손을 들려는 순간. 부채를 들고 있던 여자가 발 빠르게 나섰다.

“정답은 해와 달 입니다.”

“정답. 첫 번째 문제에 비해서 너무 쉬웠죠? 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금방 맞출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

카라의 말에 긍정하는 듯.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아쉬움에 탄식하고 있었다. 벨로크는 현대인과 이 시대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너무도 다르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저들이 귀족으로서 교양과 예법, 춤, 정치 등을 배울 때. 자신은 영어단어와 문법을 뒤적거렸으니까. 뭐, 그 마저도 잘 되지는 않았지만,

“후후. 이로써 일대일 인가요?”

부채를 든 여자가 벨로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역시나 눈동자 속에서 검은 불길을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 새끼가?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저 아가씨는 이 환상에 점점 더 잠식될 것이다. 그리된다면 우리는 주문 없이 맨몸으로 놈의 영역에 가게 될 것이고, 네 부인될 사람 또한 잃게 되는 것이다.]

부인 아니라니까. 벨로크는 생각했지만, 그것을 구태여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먹먹한 검은 눈동자를 한층 더 가라앉혔을 뿐이었다.

"자. 이렇게 두 분이 결승전에 오르셨네요. 과연 둘 중에 누가 로젠바흐 가문 적자의 소원권을 가지게 될 것인가."

소녀는 새하얀 장갑낀 손을 접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마지막 문제입니다. 여기 당신과 미래를 약속한 애인과 평생토록 당신을 뒷바라지 해온 어머니가 동시에 물에 빠졌습니다. 두 사람 다 애타게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고 있네요. 하지만 당신은 한 사람밖에 구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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