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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81화 (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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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일

느닷없이 동족들이 사라지자 뿔 달린 괴물들이 으르렁거렸다. 생긴 것과는 달리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벨로크는 괴물들의 틈바구니에 자리하고 있었고, 놈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대악마에 의해 잉태된 신생아들은 인내심이 부족했다.

크-라아아아!

그래서 녀석들은 달려들었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그냥 무언가를 찢어 죽이고 싶어서. 종래에는 이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 등등. 살육에 대한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놈들의 피 속에서 들끓는 지하의 악의가 꼭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지는 않았다.

벨로크는 바위 같은 같은 주먹을 휘둘렀다. 뱀의 머리를 가진 거인의 상체가 사라졌다. 끝이 아니었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힘. 동방의 비전이 공기를 일그러트렸다.

그러자 뒤편에 있던 다른 악귀들, 배가 볼록 튀어나온 구울, 머리에 뿔 달린 해골, 음부만 가리고 있는 악마 여인까지. 하수인들이 줄줄이 터져나갔다. 벨로크는 그런 주먹과 발길질을 쉴 틈 없이 날렸다.

하수인들은 그의 몸에 닿지도 못한 채, 정육점의 고기처럼 도축되기 시작했다. 초마다 수십 마리의 악마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전사는 그렇게 무차별적인 살육을 이어 나갔다. 이윽고 길이 열리자. 폐허가 된 신전 위로 몸을 날렸다. 타락한 세계수를 향해서였다.

“신이여··· 제가 정녕 돌아버린 겁니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친위대장이 두 눈을 껌뻑거렸다.

전장의 소음도, 죽어가는 부하들의 비명도, 악마들의 괴성도 잠시나마 잊을 만큼. 그는 눈앞의 광경에 몰두했다. 하지만 곧 그는 기겁하며 방패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탱.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둘 달린 늑대가 강철을 집어삼키는 것을 넘어, 그의 손목마저 앗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다리에 힘을 굳건히 준 채,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이런!”

그가 눈을 부릅떴다. 늑대의 머리통이 세로로 갈라지며 검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그사이에는 뾰족한 이빨들이 가득했다.

으드득. 왕국 최고의 장인이 빚은 장검이 순식간에 폐품이 됐다. 그리고 남은 머리통에 의해 자신 역시 그 꼴이 날듯 했다. 그 순간.

쏘아진 빛덩이가 늑대를 불태우고 뒤편의 악마들 또한 재로 만들어버렸다. 친위대장이 뒤를 돌아보자 엘가르가 한 손을 뻗고 있었다. 옆에서는 카타리나와 요하네스가 룬검을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었다.

“헉, 헉. 친위대장···”

왕이 자신을 구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숨이 넘어갈 것 같아도 눈동자를 불태우는 그에게서 어떠한 광기, 혹은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친위대장이 얼른 답했다.

“네, 네. 폐하.”

엘가르는 무너진 폐허 위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고목을 가리켰다. 두 개의 인영이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쏘아지는 뿌리며 괴물 같은 것들을 도살하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벼락과 바람을 쏘아대고 있었다.

“우리도 저곳으로 가야 한다. 다시 봉인진을 펼쳐야 해. 저건 칼잡이와 악마, 반푼이 마법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건 싸움에 패배한 전사가 내보이는 추태가 아니라, 경지를 이룬 마법사로서의 훈계였다.

친위대장은 반문하지 않았다. 지금도 하늘에서는 알덩이가 떨어지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괴물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허리춤의 뿔피리를 불었다.

뿌우우우

아름다운 선율이 혼란한 전장 속에서 울려 퍼졌다. 병사들은 살기 위해, 혹은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날붙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앞을 가로막는 늑대인간을 머리 채로 부숴버리고, 그 힘을 동력 삼아 한층 더 도약한 벨로크는 금세. 괴물이 된 신목 앞에 설 수 있었다.

쿠우우우!

왕국의 탄생 때부터 함께 해왔다는 거목은 그 명성만큼이나 드높고, 거대했다. 크고 작은 가지는 수백 개가 넘었으며, 뿌리 조직은 그보다 수십 배는 더 많았다. 곧 이것들 전체가 일행의 목숨을 노리는 송곳이 되어 날아들고 있었다.

“피해요!”

“대체 어떻게 피하란 말이야? 사방에서 날아드는··· 으아!”

에밀은 자신의 눈앞과 오감을 가득 채우는 촉수들의 향연에 다급히 주문을 외웠다. 반투명한 역장이 생겨났다. 하지만 장막은 꿈틀거리는 살덩이 하나를 막아내자, 파지직 균열을 일으켰다. 이윽고 그와 똑같은 것 수십 개가 날아들자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았다.

유리창처럼 떨어지는 역장과 악의가 담긴 뿌리의 끝. 마치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흉물이 아주 천천히 보였다. 에밀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을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 역시도 느리게, 아니, 촉수보다도 더 굼뜨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상념들이 휘몰아쳤다. 좋은 일, 나쁜 일, 애매한 일 등. 겪어왔던 인생의 굴곡들이 태엽처럼 지나갔다. 그 끝에는 원망이 있었다.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오고 협박한 인간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원망이 저주로 바뀌려는 순간.

촤악- 에밀의 얼굴에 뜨뜻한 피가 튀었다. 그 따가움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앞을 가득 채운 것은 악귀의 피만큼이나 시커먼 검은 머리칼이었다.

“괜찮나?”

벨로크는 반토막 난 검을 비스듬히 누인 채, 말했다. 그의 발밑에는 잘려 나간 촉수들이 한가득이었다. 몸에서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인간!”

에밀이 뭐라 입을 열기 전. 거목이 외눈을 부릅떴다. 핏줄이 선 불그스름한 그 눈은 벨로크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이 기운은···? 아아··· 그래, 냄새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만 알 수 있어. 하하하! 아스타로트의 마력을 이은 요정에다가 옛신의 파편을 가진 인간이라니!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신목을 집어삼킨 대악마가 와하하 웃었다. 너저분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다가 저릿하게 전신을 압박했다. 속에 담긴 것은 대부분 끈적한 탐욕이었다.

녀석이 벨로크를 가만히 주시하자 주변에 널려있던 악마들 역시 행동을 우뚝 멈췄다. 그 틈에 이자벨과 화린이 숨을 돌리며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둘 모두 머리칼이 산발이 되어있고, 전신에 상처가 가득이었다.

“도저히 접근을 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어요.”

화린이 피 섞인 침을 퉤 뱉었다. 복부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이자벨 역시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끼워맞췄다. 달빛 아래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져 있었다.

“강력한 성력을 타락시키면 강력한 마력이 되죠. 놈은 달의 여신의 유산을 제 마음대로 취하고 물어뜯어 지금의 형태를 취했어요. 거기다가 안에 도사리고 있던 정령들 역시 먹어 치웠죠. 저런 건 본 적도 배워 본 적도 없어··· 저건 이제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 괴물이에요. 안에서부터 샘솟는 사악한 힘이 가늠도 되지 않아···”

자신과 함께 여정을 하는 동안. 어지간히 단련된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짓다니.

벨로크는 피딱지가 굳은 십자검을 쥐었다 폈다 하며 신목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그 잠깐 사이. 더 거대해져 있었다. 또한 뒤틀려 있었다.

뻗은 가지들은 무슨 가시로 된 요새를 보는 것 같았다. 땅속에 있던 뿌리들 또한 밖으로 삐져나와 기괴한 춤사위를 흘려댔다. 그 아래에는 녀석이 잉태한 군단이 있었는데. 마치 어미를 지키는 아이처럼 제각기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끼-야아악!

뿐만 아니었다. 꼭 악마만이 아니라. 그 주변으로 점액질로 이루어진 살덩이들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저것이 악마에 의해 타락한, 놈에 의해 모든 것을 강탈당한 정령들임을 깨달았다. 거, 존나 많네. 저것들을 언제 다 족치지? 그가 녀석을 살필 때. 융합한 존재 역시 관음을 끝내고 말했다.

[너. 어디서 온지 모를 전사야. 너는 옛 신을 모시는 사제인가? 아니면 무슨 유물이라도 얻은 것인가?]

“알아서 뭐 하게?”

시큰둥하게 답한 벨로크는 억제해왔던 신성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몸 주위를 미약하게 맴돌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는 내면에 있는 절대신의 권능과 육체가 가진 힘까지 뒤섞여 폭풍처럼 그의 몸을 내달렸다. 지금 벨로크의 몸 상태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화약고와 같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없이 맹렬하며 파괴적이었다.

[오오오··· 그래, 그 힘이다! 세상의 법칙을 비틀고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힘! 하하하! 오늘은 정말 운이 좋군! 새장 속에서 풀려난 것도 모자라! 귀한 신붓감과 먹잇감을 동시에 찾다니 말이야! 널 잡아먹-]

웅웅 울리던 고목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괴물들의 파도가 일렬로 갈라졌다. 사이를 가로지른 빛줄기 때문이었다.

끼에에엑!

가속을 끝마친 그 빛은 어느새 반토막 난 십자검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흉물의 외눈을 가볍게 가르고 피와 비명을 뿜어내게 만들었다. 어미의 고통에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발광했다. 창자와 살점, 검은 피가 물방울처럼 퍼져나갔다. 그 어지러운 현장 속에 있던 벨로크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꾸우욱. 이제는 짐작조차 불가능한 괴력이 손끝을 지나 칼끝에 담겼다. 그리고 이 맹목적인 파괴행위는 흉물의 눈을 갈라버린 것으로 모자라 몸 전체에 쩍 균열을 만들어냈다.

[크으··· 그래, 고대신의 사도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사냥할 맛이 나겠구나.]

성력을 삼킨 신목은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러자 수천 개의 촉수들이 오직 벨로크 하나만을 노리고 쏘아져 왔다. 그 기괴한 살덩이의 향연은 자기 권속들이 쓸려나가도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벨로크!”

소리친 이자벨이 양손으로 마력탄을 쏘아냈다. 화린 역시 손바닥 모양의 파동을 쉴 틈 없이 사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은 저 파도의 물길조차 바꾸지 못했다. 압도적인 질량차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벨로크는 그 살덩이의 폭풍에 휘말렸다. 폐허가 된 신전이 우르르 흔들렸고, 몇 톤짜리 비석이 사방으로 날아다닐 정도였다.

[하하하!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녔다한들. 이를 담는 그릇이 저리 약해서야. 이래서 필멸자들은···]

그 순간. 펑-소리와 함께 살덩이의 폭풍에 구멍이 뚫렸다. 이윽고 빛줄기가 쉴 틈 없이 반짝이더니. 흉물의 육체에 순식간에 실선들이 생겨났다.

쩌저적. 육신이 허물어지고, 검은 피가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폭우 속에서 전사의 두 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물리법칙조차 무시한 그의 기세에 대악마는 다급히 힘을 끌어올렸다. 그 틈을 벌기 위해 권속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키에에엑!

벨로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내면의 신성을 한층 더 불태우며 마주 달려 나갔다. 괴물들의 이빨과 손톱, 악의가 담긴 주문은 그의 몸에 생체기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저 몸뚱이를 욱여넣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저 전사의 발걸음을 막게 위해서였다.

“크으으으!”

이를 알아차린 이자벨이 마력을 폭주시켰다. 이윽고 한층 더 짐승 같은 외형이 된 채, 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화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코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내면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몸 주위로 파지직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건 그녀가 그토록 원해왔던 새로운 경지. 스승이 남긴 비전에 자신도 모르게 입문하게 된 셈이었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두 사람의 옆에 따라붙었다.

머리와 심장을 달아오르게 하는 이 전투의 열기는 이성으로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쌍날검이 괴물들의 근육을 가르고 뼈를 갈랐다. 레이저처럼 쏘아진 마력탄은 녀석들을 세포 단위로 분해시켰다.

“흐읍!”

마안이 번뜩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악마들이 자기 동료들을 물어뜯었다.

굳은살 박힌 주먹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머리 셋 달린 악마의 심장을 가볍게 부수고, 그 너머 괴물의 머리까지 취했다. 이윽고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주변 녀석들의 피를 역류시켰다.

끄어어억!

그 어지러운 혼잡함 속에서 벨로크는 다시금 거목의 몸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신성, 동방의 비전, 절대신의 권능, 인간을 벗어난 상식 외의 힘.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구름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고목이 사방팔방으로 휘날렸다.

[끄으으아!]

융합한 존재는 거칠게 저항했다. 말라비틀어진 녀석의 고목 껍질에서 눈동자가 하나둘씩 떠올랐다. 이윽고 수 백 개의 눈이 부릅떠지며 검은 광선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이자벨이 화린의 몸을 감싸며 바닥을 굴렀다.

벨로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흡 숨을 들이쉬며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느려졌다.

에밀과는 달리, 그는 이 느려진 공간 속에서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전사의 눈에 어지러이 쏟아지는 공격들이 보인다. 날카로운 뼛조각, 모든 것을 분해하는 광선, 남은 촉수, 뭐가 됐든 자신들을 찢어 죽이겠다는 괴물의 의지 등등. 하나같이 흉포하며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일격들이었다.

벨로크는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뒤틀린 이 공간이 다시금 변화했다. 모든 것들이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도형으로 바뀐 것이다. 동시에 그의 감각에 한 가지가 걸려들었다.

복잡하고 난잡한 도형들 사이로 난 작은 길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길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느려졌던 세상이 다시금 제 모습을 찾았다. 그의 몸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대악마의 사각지대에서 나타났다.

[이게 무슨···억!]

부릅뜬 수 백 개의 시선을 향해. 신성을 머금은 주먹이 쉴 틈 없이 작렬했다. 눈알이 펑 터져나가고, 깨어난 고대신의 힘이 악마의 피에 담긴 마력을 겹겹이 구속했다. 그러자 놈은 거체를 휘두르며 저항했다. 하지만 벨로크에게 있어 이 녀석은 덩치 큰 괴물일 뿐이었다. 때릴 곳도 많았고, 피 흘릴 곳도 많은 사냥감.

[내가··· 내가 어떻게 이 땅으로 다시 올라왔는데!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어!]

소리친 녀석이 시커먼 마력을 뿜어냈다. 그 심상치 않은 기운에 벨로크는 판석을 부수며 떨어져 나갔다. 새끼가. 침을 퉤 뱉은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다 죽어가는 사냥감의 발악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난폭하고 무슨 변수를 부릴지 모른다.

반토막 난 난 검을 꾸욱 쥔 벨로크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거목의 행동이 더 빨랐다. 놈은 제 손으로 잉태했던 악마들을 촉수들을 이용해 꿰뚫었다. 이는 수도 전체에 퍼트려놨던 괴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마치 숨겨놨던 음식을 먹듯. 퍼트려놨던 힘을 흡수하듯. 게걸스럽게 자기 아이들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몸을 비틀어가며 형태를 뒤바뀌었는데.

나타난 것은 몸 전체가 시커먼 마력으로 되어있는 얼굴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푸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안개처럼 퍼져나간 마력이 주변의 공기를 떨리게 했다. 덩치는 2미터 남짓으로 작아졌지만, 전해져 오는 기운은 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진정한 합일을 이루어냈다. 여신의 부산물은 완전히 나의 자양분이 됐으며, 내리쬐는 달빛조차 나한테 그 힘을 내려주는구나.”

검은 인간은 폐허가 된 신전 위에 우두커니 선 채,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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