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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67화 (16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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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일행은 요정 순찰대의 호위 아닌, 호위를 받으며 이자벨의 고향. 몰아치는 폭풍 부족의 마을에 도착했다.

서로 간에 불편한 동행이 이어졌건만, 코로 와닿는 바람은 상쾌하기만 했다. 새벽이슬이 내지르는 꿈틀거림이었다. 저편에서는 막 여명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남들보다 시력이 좋은 벨로크는 슬쩍 눈가를 찌푸렸다.

희끄무레한 그 빛은 숲 깊은 곳 요정들의 마을을 한층 더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겹겹이 쌓인 나뭇가지와 그 위의 잎사귀들은 빛을 받아 더 반짝거렸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간직한 나무집들은 기름칠 없이도 번들거렸다. 하지만 자세히 살핀다면 이 광경이 좀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요정들의 거주지는 두 개로 나뉘었다. 거대한 나무 옆에 넓은 판을 붙이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은 곳이 하나.

적당한 크기의 나무 속을 파내고 그것을 지붕 삼아. 창문과 문짝을 달아놓은 것이 둘.

고층에 있는 집들은 덩쿨이나 흔들다리를 이용해 서로를 연결시켜 놓았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이건 환경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파괴한 것에 가까웠다.

‘트리하우스?’

인간들이 다 부수고 새롭게 재조립한다면, 이들은 적당히 부수고 이에 얹혀사는 모양새라고 할까? 자연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실용적인 면이 강했다. 하긴 마을 주위에는 굵은 통나무와 덩쿨로 만들어진 목책도 있었다. 그리고 요정들 역시 채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도 뜯었으며 사냥도 즐겨했다.

그 괴리감에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내가 사는 곳의 통념이었을 뿐이지.’

벨로크는 이 세계에 떨어져서 만났던 요정들을 생각했다. 이자벨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긴 인연은 없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만으로도 그들의 일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요정들이라고 해도 별다를 게 없었다. 생긴 것만 천사처럼 이뻤지. 원색적인 비난이나 칼부림, 선동, 남을 속이려 드는 것까지. 할 건 다 하는 놈들이었다. 저 고고한 척하는 녀석들 역시 이 땅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는 생명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세상에! 인간이잖아?!”

“가만··· 저건 악마 아니야?! 뭐? 저게 이자벨이라고? 그게 무슨···”

“장로님은 대체 왜 저놈들을 여기까지 들이신 거지? 거기다가 무장도 해제시키지 않으시고?”

일행이 마을로 들어오자 당연히 그곳에 있던 요정들은 난리가 났다. 하물며 밧줄에 묶인 것도 아닌, 보무도 당당히 손님 행세를 했으니 충격은 더 컸다. 화린과 벨로크는 어깨를 떡 벌린 채,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장로는 이를 으득 물었다. 에밀이 생각하던 방식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정에 못 이겨 자신의 말을 듣는 악마와 죽기 싫어서 혹은 동료를 위해 제압된 인간, 이를 이용해 어수선한 마을 분위기를 환기시킨 자신, 그리고 그들을 미끼 삼아 괴물들에게 던져준 후. 왕의 군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미래.

결국 모든 일이 수월하게 해결되고 다시금 주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권위를 단단히 다진 자신.

다 물 건너갔다. 저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보여줬던 그 힘. 그 파괴적인 기운은 그녀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느끼게 해버렸다. 덕분에 저들은 포로가 아닌 한 명의 당당한 전사로서 마을의 땅을 밟았고, 주민들은 의아해하고 있다. 그건 대체 무슨 힘이지? 마력이나 성력은 아닌데...

‘젠장.’

에밀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은 이제 주민들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했다. 이것 또한 문제였다. 거짓을 말하기에는 저들의 태도와 지금의 상황이 매치가 안 된다. 결국에는 진실을 말해야 했는데. 이것도 애매했다.

저 사내가 대악마 사냥꾼이라니. 인간과 요정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지금. 이 파장이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설령 그의 업적을 낮춘다 해도. 만약에 놈이 정말 그 괴물을 죽이고 돌아온다면? 자신을 포함한 순찰자들은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했다. 그 사내라면 정말 해낼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마을의 위협은 사라져도 장로로서의 권위는 모래성처럼 흩어질 것이다. 감히 전염병을 퍼트린 원흉들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되니까.

‘어떻게··· 어떻게···’

에밀은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과 이름을 걸고 한 맹세에 대해서 생각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는 주문을 다루는 자 특유의 음침함을 여실히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최선을 뽑자면 저들이 그 괴물을 죽이고, 같이 죽는 것인데··· 에밀은 세 사람이 정비를 위해 집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 역시 거처로 들어갔다. 이윽고 주민들이 들이닥치기 전. 부하들 몇을 그리로 불러들였다. 아주 충성스러운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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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오래된 나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쿰쿰하다기보다는 산뜻했다. 말린 약초 향기도 섞여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저와 이든. 둘이서 살던 집이었어요. 제가 아틸란타로 가서 병사가 됐을 때는 이든 혼자서 사용했겠지만···”

중얼거린 이자벨은 아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덩쿨이 자라난 천장 아래. 작은 원형 테이블과 소파, 옷장이 몇 놓인 거실은 단출했다. 하지만 먼지 쌓인 그 초라함이 그녀의 기억마저 퇴색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더 옛 추억을 자극했으며 그 날의 광경들을 속속들이 떠오르게 했다.

잠시. 테이블을 손으로 쓸던 그녀는 몸에 걸치고 있던 후드를 벗어서 내려놓았다. 이윽고 벨로크와 화린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은 세 개의 방문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잠시. 위아래로 가죽 갑옷을 차려입은 이자벨이 밖으로 나왔다. 허벅지에는 화살통이 달려있었고, 허리춤에는 쌍검, 등에는 활을 매고 있었다. 손에는 화린이 빌려주었던 옷가지가 들려있었다.

“잘 입었어요. 화린씨. 세탁해서 돌려드리는 게 예의겠죠?”

“괜찮아요. 그건 이자벨씨가 입으세요. 저 옷 많아요!”

화린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애매하게 웃었다. 이자벨 역시 비슷하게 웃고는 짐가방에 옷가지를 넣었다. 이윽고 그녀는 두 사람을 마주보며 자리에 앉았다.

“다들··· 음. 그러니까···”

이자벨은 괜스레 머리에 나있는 뿔을 슥슥 만지며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일단 고맙다는 말이 먼저겠네요. 원치 않는 만남이었지만 덕분에 동생과 마을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었어요. 아니, 오히려 제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군요”

화린은 뭐라 입을 열려다가 꾹 닫았다. 마을 사람들의 심한 행동거지에 대한 비판이었던 모양이다. 벨로크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이자벨은 다시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꼭 도와주실 필요는 없어요. 이건 우리 마을··· 음. 마을의 일이니까. 두 사람이 구태여 시간과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 나보고 내 입으로 했던 약속을 깨란 말인가?”

피식 웃은 벨로크가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자벨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다만 두 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신경 쓰여서 그래요. 인간에 대한 악감정이 극에 달해있는 지금 마을의 위협을 해결한다고 해도 좋은 말을 듣기는 어려울 테니까. 아니, 어쩌면···”

이자벨은 말끝을 흐렸다. 그녀 역시도 장로의 성정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벨로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자벨은 눈을 파르르 떨다가 힘없이 미소 지었다.

“나 역시도 그렇죠. 난··· 이제 요정이 아니니까. 설령 일이 잘 해결되서 오해가 풀렸다 한들. 내 본질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사람들은 겉으로는 사과하며 날 위로해도 속으로는 꺼림칙해 할 거예요. 살점과 피를 탐하는 악귀에 대한 취급은 그런 거예요. 언제 정신이 회까닥 돌아서 이웃을 해칠지 모르니까.”

그녀는 체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두 손은 충실히 무장을 점검했다. 마을의 위협이라는 그 괴물을 처리하러 갈 생각인 듯했다.

왜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까지 그들을 도우려는 건데? 왜 이렇게 미련해?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게 가족이란 것이고, 친구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잘해 주느냐도 중요했지만, 그저 함께 지내온 세월만으로도 정이 쌓이기에는 충분했다. 안 그런 놈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리고 벨로크 역시 그동안 이자벨과 쌓아온 정은 차고도 넘쳤다. 그녀가 도와달라 말하지 않아도 구태여 나서서 한 손 거들어 줄 만큼. 벨로크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목에 걸린 인어 모양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자벨. 당신 몸 말이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어찌하겠나?”

“네? 그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 날 원래대로 되돌린다구요?”

눈을 부릅 뜬 그녀가 말을 더듬거렸다. 벨로크가 허튼 말을 할 사내도 아니니. 어지간히 놀란 듯했다. 그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착 가라앉은 눈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저 여자를 떠나보내는 것은 싫다. 하지만 저 여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맞겠지.

“벨로크? 방금 당신이 한 말··· 무슨 뜻이에요? 네?”

이자벨이 재촉했다. 그는 화린의 팔을 예로 들어 그가 가진 신성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불구가 된 팔도 재생시켰을 만큼 강력한 힘이지. 어쩌면 네 몸에 있는 마력 역시 정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희망은 있다는 얘기지.”

옆에서 듣던 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벨로크씨가 보여주신 능력은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어요. 부작용도 컸지만요.”

화린은 그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아···”

이자벨은 입술을 꾸욱 씹으며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윽고 쪼그려 앉아 약하게 흐느꼈다. 몸속을 타고 흐르는 이 역겨운 피 때문에 얼마나 끔찍한 나날들이 이어졌던가.

평범한 음식은 구역질이나 손도 대지 못하고, 오직 지상 생명체의 생혈과 살점만을 탐했다. 가끔 동료들을 보며 식욕을 느끼거나 욕구를 느끼기도 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고, 죽이고 싶고··· 경멸의 눈초리를 받고, 나 자신을 꽁꽁 숨기고···

그간 겪어온 모진 생활들이 어젯밤을 기점으로 결국 폭발했다. 그녀는 한참이나 눈물 흘리다가 슬며시 벨로크에게로 가서 안겼다. 이자벨은 울먹이며 말했다.

“부작용··· 부작용은요? 그 힘 쓰면, 당신 몸. 망가진다면서요···”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뭐, 죽기야 하겠나?”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몸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그는 요정의 회색 피부를 매만지며 머리칼에서 은은히 나는 과일 향기를 맡았다. 이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

“늪에 산다는 그 괴물을 죽이고나면 바로 시작하지. 그럼 당신은 자유야. 더 이상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일도 없을거고. 이 마을을 구한 영웅으로서 편하게 살 수 있다.”

“아···”

그 한마디에 이자벨의 떨림이 멈췄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자유··· 더 이상··· 당신을 따라가지 않아도··· 고향에··· 정착···?”

목소리가 너무 작았기에 뜨문뜨문 끊겨서 들렸다. 그렇게 좋나? 그럴 만도 했다. 그간 그녀가 겪어왔던 일들은 가혹하다는 말로 밖에 설명이 불가능 했으니까. 벨로크는 이자벨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더 이상 고통받는 일도 없을거고, 슬퍼할 일도 없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악마든 절대신이든 모조리 다 날려버리면 그만이야.”

그는 씁쓸한 마음을 애써 호탕하게 포장하며 말했다. 듣고 있던 이자벨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벨로크.”

“왜?”

“그 의식이라는 거···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요.”

벨로크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이자벨은 그의 품에서 슬며시 벗어났다. 이윽고 그의 가슴을 슥슥 매만지며 희미하게 웃었다.

“좀 더 생각해볼게요. 일단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부터 해결하죠.”

음. 그는 조금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좋아할 줄 알았던 이자벨은 얼음이라도 끼얹은 듯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겼고, 화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어젯밤에 봤었던 요정 순찰대들이 집을 둘러싼 채, 경비를 서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그들을 자극할까 봐 걱정한 모양이었다.

“더러운 인간들! 콜록! 네놈들 때문에! 아벨이!”

“네놈들! 무슨 낯짝으로 이곳까지 온 거냐! 무슨 속셈이야!”

몸에 반점이 돋아난 요정 몇 명이 기침하며 그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병에 걸렸다고는 하나 요정답게 아주 빨랐다. 하지만 순찰대는 굳건하게 선 채, 그들의 접근을 불허했다. 잠시 후. 마스크를 쓴 자들이 와서는 그들을 제압해서 끌고 갔다. 뿐만 아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자벨을 보기 위해 몇 명이 달려왔다.

“이자벨! 네가 악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자베엘!”

“이 더러운 년! 왕의 병사가 됐다고 기고만장하더니 결국 영혼마저 타락했구나! 죽어어!”

“내 친구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쌍년아!”

계란이나 썩은 과일 같은 것들이 머리 위로 휙휙 떨어졌다. 몇몇 분노한 주민들이 집어던진 것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또 다른 요정 몇은 얼굴을 붉히며 그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혐오하고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순간에 평화롭던 요정 마을은 난장판이 되었다.

순찰대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주민들의 다툼도 그랬고, 날아오는 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방관할 뿐이었다. 그것에는 벨로크 일행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고, 군인답게 내려온 명령만을 따른다는 고리타분한 위계질서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화린이 파동의 힘을 뿌려 쓰레기들을 튕겨냈다. 그녀는 요정의 민낯을 속속들이 알게 되자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아름다움과 기품이 부럽다고 생각했던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으깨진 계란과 썩은 과일들을 뒤로한 채, 후드를 뒤집어 쓴 이자벨은 고개를 푹 숙이며 그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러다가 한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금발 머리에 녹색 눈. 이든이었다.

"..."

"..."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움찔 어깨를 떤 이든은 홱 고개를 돌렸고, 그녀는 슬며시 고개를 내렸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세 사람은 부지런히 발을 놀려 마을을 벗어났다. 그들의 뒤편에서 요정들의 고함과 욕설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그러고 있자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니었으나 조금 괴상하기도 했다.

일행은 곧 나스 밀림의 북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고리마 늪지. 머리 아홉 달린 거대 물뱀. 성체는 웬만한 용만큼이나 위험하다는 불사의 괴물. 히드라가 그들의 목표였다.

'용과 맞먹는다니. 거 존나게 위험한 놈이구만.'

벨로크는 걸어가며 생각했다. 장로가 정말 그 괴물을 자신들끼리 죽일 수 있을 줄 알고 보냈을까? 아니면 그저 놈의 배를 채워주고 시간을 끌기 위해서 보냈을까?

뭐가 됐든 상관 없는 얘기였다. 현실은 언제나 미지로 가득 차있고, 그녀의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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