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60화 (160/222)

-죽어라! 이 괴물!

-맙소사! 이게 과학이라는 놈의 힘인가? 형씨! 형씨가 있는 세계에서는 정말 이런 게 발에 채일 정도로 굴러다닌 다는 거지? 정녕 두려운 곳이군.

-이제 둘 남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따르고 있어요.

다섯 영웅이 고대신을 쓰러트린 순간. 녀석의 몸에서 터져 나온 미증유의 힘이 그들에게 깃들었다. 존재를 뒤흔들고, 섭리를 비트는 힘. 신성이었다. 그들은 그 신성을 이용해 신비로운 권능을 부렸고, 자연히 추종자들은 더 늘어났다. 이제는 온 대륙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남은 고대신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이시스가 나와 동맹을 맺기 위해 천공의 성을 벗어났다. 하지만 끝끝내 심연에 다다르지 못하고 놈들의 손에 의해 사냥당했지. 신성을 손에 넣고 드높은 격을 쌓은 그 다섯은 이미 반신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거든.”

수면의 거울이 그 참혹했던 전장을 다시금 비추었다. 고대 난쟁이의 솜씨와 현대인의 지식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병기. 비공정들이 하늘을 새카맣게 수놓았다. 눈치를 보던 고룡들 역시 뜻을 함께했다.

이시스는 온몸에서 벼락을 뿜어내며 거칠게 저항했지만, 개미처럼 달려드는 그들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헬레나는 신성을 이용해 태양을 지배했고, 셀레나라는 요정은 달을 지배했다. 샤트라라고 불린 거인은 죽음과 부패의 기운을 다루었다. 결국 이시스마저 온 몸의 털들이 다 뽑혀 비참하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역시나 그로부터 신성을 흡수한 다섯은 이제 완전히 필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온전한 신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이방인 사내의 경지는 월등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끝까지 저항할지 아니면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해야 할지. 내 본체는 굴종 대신 저항을 택했다. 바다라는 공간. 심연이라는 공간은 아직 놈들이 정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까.”

거울이 푸른 피부를 가진 심연의 족속들을 비추었다. 수만의 어인들과 수천의 나가들이 일어났다. 쉴 틈 없이 해일을 일으키고 폭풍을 몰아쳤다. 노르드의 힘은 다른 두 고대신들을 합친 것만큼이나 독보적이었다.

-끄아아악!

고대 난쟁이 신이 죽었다. 녀석의 기괴한 발명품들은 다 부서지거나 땅에 파묻혔다. 네 영웅은 격분했고, 그 분노를 힘으로 뒤바꿨다.

결국에는 수천 개의 머리를 가진 뱀 역시 사냥당했다. 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죽일 수는 없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바다 그 자체가 그녀에게 끝도 없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으니까. 결국 이방인 출신의 영웅은 놈을 차원의 틈에 봉인하기로 결심했다.

“육체는 초승달 섬에 영혼은 차원의 틈으로. 나 역시도 그렇게 끝을 맺었지.”

고대신들의 몰락과 현 주신들의 탄생에 관한 비화가 벨로크의 귓가로 들려왔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 만담이 새어나간다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서들의 뿌리 자체가 뒤흔들릴 테니까. 하지만 이방인 출신의 기사는 삐뚜름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다 한통속이었나?”

“처음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닐 터다. 위대한 의지는 자기 동료들의 손에 의해 봉인되었다. 고대신들을 쓰러트리고 스스로 격을 쌓아 신이 된 그 이방인이 종래에는 미쳐버렸거든.”

노르드가 손짓했다. 파도가 또다시 기억들을 재생시켰다. 벨로크가 본 것은 드높은 왕좌에 앉아 고통받고 있는 동향 사람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그를 추앙하고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그의 마음속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차원 이동에 대한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자 냄새를 맡은 몇몇이 사악한 음심을 품고 그에게 접근했다.

-위대한 의지시여 당신의 힘을 조금만 나눠주신다면··· 내 기꺼이 당신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신이 된 이방인은 그 말이 거짓인 걸 알았다. 하지만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채울 수 없는 이 공허함은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고, 영혼마저 찌부러 트리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그는 자신의 신성을 쪼개 그들에게 건네주었고, 지하에 거대한 연구실마저 만들어주었다. 실험에 필요한 인력과 자본 역시도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다섯 대악마가 탄생했다.

천상 대전의 시작이었다.

진실

“신성은 쉽사리 정의하기 힘든 미증유의 힘이다. 이를 품은 자가 어떤 마음을 먹냐.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그 성질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법이지. 지하로 내려간 그 다섯이 무슨 생각을 품고 신성을 다루었는지 이해가 되겠지?”

노르드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벨로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들이 박살 나는 것을 느꼈다.

마력에 탐식 된 괴물들의 시조가 지상 종족이었다는 것. 천상신과 대악마의 힘의 근원이 고대신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 있었다는 것.

“이다음 이야기는 너도 아는 것들이다. 많은 왜곡이 있을지언정 말이야. 무수한 피가 흘렀지만 결국 대악마들은 패배했고,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 수감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일의 주범이자 만인의 영웅. 위대한 의지에 대한 처분뿐이었지.”

그녀가 손짓했다. 해수면이 꿈틀거리며 또다시 장면을 띄워냈다. 검은 머리의 신은 옥좌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고대신들과의 전투의 후유증과 대악마들에게 나눠준 신성으로 인해 동면에 빠진 것이다. 나머지 세 명의 신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고민했다. 이방인 출신의 영웅은 그들의 동료이자 친구였으며 이 세계의 구세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곧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 그를 이대로 둔다면 위험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또다시 이런 터무니 없는 짓을 저지른다면 이번에야말로 대륙은 멸망할지도 모르니까.”

-이게 최선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에게 이런 짓을 할 수는···

-마음 독하게 먹으세요. 헬레나. 당신을 따르는 신도들을 생각해서라도.

요정 여인의 말에 붉은 머리의 여인은 이를 악물었다. 인간 출신의 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잘 흔들리고 잘 휘말렸다. 그들은 초월자인 동시에 다분히 인간적이었다.

-날 용서하지 마세요.

눈을 질끈 감은 헬레나가 검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내려쳐 그의 팔과 다리를 잘라냈다. 셀레나는 그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꺼냈고, 머리를 갈라 뇌와 눈동자를 뽑았다.

강대한 힘을 가진 이방인 신은 불사였기 때문에 이렇게 토막 내서 봉인시킬 수밖에 없었다. 신체는 각각의 봉인구에 담겼고, 근육과 뼈는 땅에, 피는 바다에 흩뿌려졌다.

이제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위대한 의지라 불린 구세주는 동료들의 손에 의해 짐승처럼 토막 당해 버려졌다.

쿠르르르

해수면은 거대한 기둥을 타고 구름 너머 하늘 끝으로 향하는 세 신의 모습을 비추고는 스르르 사라졌다. 바다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여기서부터는 내 추측이다만 그들은 지상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신성이 가진 힘은 워낙에 강대하여 이 세상에 반동을 일으키기 때문이지. 고대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재앙이 일어나거나··· 지하에 봉인해준 대악마들이 풀려날 위험이 있었거든. 그래서 차원의 틈으로 간 것이다. 반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 그곳에서 궁전을 짓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관음중인게지. 호사가들이나 세 신들의 신도들은 그걸 천상이라고 부른다. 왜? 있어 보이니까. 겉 포장은 신앙을 모으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법이지. 역사를 왜곡시킨 것도 필히 그 이유 때문 일터.”

말을 마친 노르드는 비죽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녀는 늘씬한 다리를 까딱거리며 벨로크를 가만히 바라봤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듯했다.

벨로크는 삭막한 얼굴이었다. 또한 지독시리 피곤해 보였다. 그건 지금껏 이 혼란한 세상을 방랑하며 쌓인 세월의 흐름, 갑작스럽게 알게 된 충격적인 진실에 대한 여파.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나타난 감정의 표현이었다.

“머리가 아프군.”

미간을 찌푸린 벨로크가 한숨을 쉬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시스템 창, 아니, 위대한 의지라 불린 이놈도 정말이지 불쌍한 새끼였다. 하지만 벨로크는 놈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놈이 불쌍하든 말든 자신에게 개짓거리를 한 것에 대한 면죄부는 되지 않았으니까. 그가 물었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소.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 개 있는데. 왜 하필 나요? 그리고 처음에 내가 이 세상에 빠질 때는 게임을 통해 들어왔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거지?”

노르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에 말했었지? 네 몸에 있는 것은 그 이방인 신의 사념이라고, 너의 몸과 영혼을 빼앗아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꾀하고 있다고··· 우리는 여기서 봉인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 이제 재미있는 추측을 하나 해보마.”

노르드는 탁자에 상체를 기댄 채, 그의 가슴을 쿡 찔렀다.

“놈은 영혼만 남아서도 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그 의지를 차원의 틈 너머 우주 전체에 퍼트렸지. 이는 곧 무수히 많은 세계와 세계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그곳에 살고 있던 지성 생명체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네가 살았던 세계이자 녀석의 고향. 지구 역시 이에 포함되어 있었지.”

“뭔 말이야?”

벨로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노르드는 테이블 위에 슥슥 그림을 그렸다. 아드리아 대륙과 그 너머 무수히 많은 별들과 죽음의 강이 존재하는 외우주 차원의 틈. 거기서 수없이 많은 거리가 떨어진 세계. 푸른 별 지구의 광경이었다.

“신 중의 신. 절대신의 단호한 의지는 인간에게 암시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하지. 어느 날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깃거리들을 현실에 실체화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터. 그 중에는··· 그래, 게임 개발자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했던 게임 자체가 놈이 파놓은 함정이었다는 건가? 하지만 이곳에 있는 건 내 육체가 아닌데?”

노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곳은 선별소이자 일종의 차원 이동 통로였던게지. 게다가 그 몸뚱이는 너의 아바타가 아니더냐? 너와 동일시하고 너를 이입시킨 선택의 결과.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니라.”

뭐가 이상하지 않다는 거냐? 벨로크는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따지고 든다면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됐다.

그녀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포기하라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너를 계속해서 지켜봐 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네가 자신의 영혼을 안착하기에 딱 좋은 제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야. 이건 놈의 순수하고도 끈적한 욕망의 결과물. 몇 만 년 전 망령의 꺼지지 않은 갈망이 일구어낸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

벨로크 역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허탈과 분노의 으르렁 이었다.

“당신 입으로 확답을 들으니 더 엿 같군. 난 대악마들이 풀려난 것에 내 책임이 조금이나마 있다고 생각했소. 내가 불지옥 모드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벨로크. 얼핏 냉정해 보이지만 네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사내야. 넌 아무런 죄가 없다. 대악마의 봉인도 위대한 의지 그 빌어먹을 자식이 풀어버린 것이 분명하니까.”

노르드는 투명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마치 자신 역시도 그가 만들어 놓은 고리 안에 들어가고 싶다 어필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와의 신뢰를 단단히 구축하기 위한 행동이었거나.

벨로크는 그녀의 손을 탁 치우며 말했다.

“놈이 쪼개준 신성으로 인해 다섯 대악마가 탄생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나보고 녀석들을 사냥하라고 한 것에는 흩어졌던 그 힘을 모으는 것이 이유였겠군?”

노르드는 제 손을 쓸면서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벨로크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푸우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렇다. 과거의 업보도 청산할 겸 미래에 자신의 육체가 될 그릇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방도이니라. 육체를 가지고 차원 이동을 하는 것에는 거대한 힘을 필요로 하니까.”

그녀는 탁자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가진 시스템창. 괴물을 죽이고 스탯과 스킬을 얻는 그 기상천외한 권능. 그 모든 것 역시 이를 위한 안배이니라.”

그래, 그는 지금껏 스탯 하나를 찍은 것으로 남들이 평생을 수련해서 얻을 수 있는 힘을 얻어냈다. 강력한 괴물을 죽이면 그에 따른 강력한 스킬 역시 따라왔다.

RPG 게임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데이터가 아닌 진짜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현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벨로크는 녀석에게 분노가 치솟다 못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만약 노르드를 만나지 못하고 놈과 여신의 뜻대로 대악마들을 계속해서 사냥했다면,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육체를 빼앗길 뻔했지 않은가?

물론, 노르드의 말을 온전히 다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껏 자신이 겪어왔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말해준 이 이야기들은 진실 같았다.

그는 자신이 머리통을 깨줘야 할 복수 대상에 태양신 헬레나를 새겨넣었다.

“이제 궁금한 것은 다 해결됐느냐?”

“한 가지 더. 당신의 말대로라면 헬레나, 셀레네, 샤트라 이 세 명의 신은 위대한 의지를 제 손으로 처리했소.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놈의 이 행동을 방관하고 있는 거요? 아니, 내가 헬레나를 만났을 때는 오히려 나를 격려하기까지 했소.”

노르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그것까지는 내가 알 수가 없다. 옛 동료에 대한 죄책감을 풀기 위해? 혹은··· 우리들은 모르는 제약이 그들에게 걸려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심연의 눈은 차원의 틈까지는 닿지 않으니까.”

“어찌 됐든 결론은 하나로군. 놈을 박살 내야 한단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둘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지?”

노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벨로크는 후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그래, 서로 간에 신뢰는··· 차차 쌓아간다 칩시다. 방안이라면 역시 당신이 가진 그 힘. 신성이겠지?”

“그렇다. 자신보다 격이 낮은 존재에게 강제에 가까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능. 신성. 이것이 있기에 현재 놈은 예전처럼 너를 뜻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게다. 아마 지금쯤 녀석은 네 내면 속 세계 회색 도시에서 똥줄을 태우고 있을 것이다. 후후.”

벨로크는 슬며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먹을 꾸욱 쥐었다.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주먹을 쥔 채 물었다.

“이 힘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오? 그냥 끌어올려서 후려치면 되나?”

“네가 인어들과 교감한 것처럼 바다의 종족들에게 명을 내리게 하거나 신체를 강화하는 것은 신성의 부 차원적인 능력일 뿐이다. 그것의 진정한 힘은···”

노르드의 말이 끊겼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요하던 해수면이 요동치고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건...?"

하늘을 쳐다보자 거대한 눈동자 두 쌍이 투명한 막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이윽고 그 막은 쩌억 균열이 생기며 깨져가고 있었는데. 마치 무언가를 막아내고 있던 보호막이 한 꺼풀씩 벗겨져 가는 느낌이었다.

“네 속에 있는 오래 산 망령이 우리의 데이트를 방해하는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몸에서 푸른 기운을 뿜어낸 노르드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 역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맞춰 벨로크의 몸에서도 파지직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 스파크는 목에 걸린 해신의 목걸이와 반응하며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내장이 진통되자 그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노르드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다급히 말했다.

“벨로크. 네가 점점 경험치와 스킬을 모으고 레벨업 한다면 놈은 강해진다. 하지만 나 역시도 강해진다. 언젠가는 이 육체의 지배권을 놓고 놈과 싸워야 할 시기가 올 것이야.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너한테 달렸다. 스탯과 스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너 자신만의 능력을 기르거라. 이 대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식. 힘. 비전. 뭐든 좋다. 그들이 몇 세기에 걸쳐서 쌓아온 능력들을 네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 게임 속 기사인 벨로크가 아닌! 아드리아 대륙의 전사. 기사 가문의 벨로크 하이네로서의 역량을 채우라는 소리다!”

노르드가 그의 가슴을 탁 쳤다. 벨로크는 또다시 시야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빨주노초파남보 요란한 색채가 눈앞을 채운다. 그 사이로 바코드 같은 것들도 둥둥 떠다녔다. 그는 자신이 이 요상한 공간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깨져가는 세상의 파편 사이로 한 손에 창을 든 노르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한 침입자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나를 놈으로부터 지켜낸 것인가?

그의 귓가로 노르드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신성은 정해지지 않은 미증유의 힘임을 기억하라! 세상의 법칙을 비틀고 존재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나에게서 빌려 쓰는 것이 아닌, 너만의 신성을···”

세상이 깨졌다. 기사는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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