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나스 밀림
범상치 않은 몸놀림에 짜증 난다는 듯한 어조. 일부러 잡혀있었다는 듯 손쉽게 푼 함정까지. 벨로크는 상황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 말했던 식인종보다 더 문제라는 놈들이 이놈들이오? 인간 사냥꾼?”
화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경멸이 한가득 이었다.
“네, 맞아요. 스스로를 미끼 삼아 함정을 파고 희생자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악질들이죠. 사람의 선의를 이용해 동족을 팔아넘기는··· 더러운 놈들!”
사내는 멋쩍게 웃었다. 그 가벼운 웃음은 지금껏 자신이 행한 일에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듯 보였다.
“하하하. 같은 현지인끼리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요새 이곳 사정이 많이 안 좋아져서 말이지··· 고깃값도 올랐고... 성인 남성은 은화 한 주머니, 여성은 두 주머니라네. 아, 거기 난쟁이 친구는 반 주머니쯤 되겠군. 작으니까.”
“뭐? 이 새끼야?”
잡아다가 노예로 쓰는 게 아니라 먹잇감으로 쓴다고? 벨로크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돌아갔다. 인간을 먹는 식인종, 인간을 사냥하는 인간 사냥꾼. 돈주머니. 그렇게 된 거였어? 이거 진짜 개새끼들이 따로 없군. 벨로크가 말했다.
“괴물 밑에서 기생하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로군.”
사내가 씨익 웃었다. 시커먼 얼굴 사이로 누런 이빨이 빛났다.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입 냄새가 참기 힘들 정도였다.
“아까 전부터 느낀 건데. 거기 덩치 큰 형씨는 눈치가 제법이시군. 대륙인 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이다음에 벌어질 일도 알고 있나?”
느물거린 사내가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벨로크의 눈동자가 사내의 발끝이 향하는 풀숲 사이를 꿰뚫어 보았다. 기관 장치였다. 이 주위에 함정이 즐비하게 깔려있는 듯싶었다. 자신감의 원천이 그거였냐?
생각을 마친 그는 재빨리 땅을 박찼다. 파앙.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수풀이 터져나갔다. 공기 찢는 소리가 들리고 머리칼이 휘날렸다. 사내는 반응하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웃던 얼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내장을 쏟아 냈다.
쿠르르
한발 늦게 사내의 주변에 있던 함정들이 작동했다. 탕 소리와 함께 벨로크의 십자검이 불똥을 튀겼다. 사출된 쇠 구슬이 반으로 갈라져 바닥을 굴렀다. 검을 휙 터는 그를 보며 바트릭이 당황해서 물었다.
“이, 이런! 형씨! 괜찮나?”
바트릭이 기겁했다.
“좀 더 빨리 쐈어야지.”
피식 웃은 벨로크는 위에서 떨어지는 통나무를 주먹으로 후려치고, 수풀 속에서 덮쳐오는 그물망을 베어냈다. 이윽고 숨 한 번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화린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놈들의 방식은 잘 알았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주먹구구식 같은데?”
일행이 접근하지 않았다면? 저 사내는 이곳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녀는 양주먹을 꾸욱 쥐며 주변을 힐끔거리다가 답했다.
“사냥꾼들은 결코 혼자 행동하지 않아요. 언제나 다수로 움직이죠. 처음부터 저희들을 목표로 삼고 감시했을 거에요.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타난 거죠.”
아까 전부터 느껴졌던 시선들에 이놈들도 끼어 있었나 보군. 벨로크는 오감을 확장시켰다. 그러자 귓가로 들려오는 온갖 소음들이 훨씬 더 커졌다. 그중에서 인간의 언어만을 따로 감지해냈다.
-시발! 내가 저놈들은 건드리지 말자고 했잖아! 늪 호랑이랑 네펜데스를 단칼에 죽이는 놈들이라고!
-저 여자! 강철의 사원 출신이야! 그 꼰대 새끼들!
-그 새끼들 요새 잠잠하다 싶더니··· 이, 일단 튀자! 지금 도구 아낄 때가 아니야!
잡풀이 바스락거리며 요란한 부츠 소리가 뒤를 이었다. 잡아 죽일까? 벨로크는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놈들을 쫓기 위해 덩굴 숲을 헤치기는 귀찮았고, 나무를 타넘는 것은 더더욱 귀찮았다. 벨로크는 상승시켰던 오감을 다시금 가라앉히며 말했다.
“나머지들은 도망친 모양이오. 그래서 화린. 이 녀석들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우리를 데려온 거요?”
화린은 반 토막 난 시체를 노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꼭 성인 남성만이 아니에요. 여인, 할머니, 소녀, 소년 등. 이곳에서는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인간 사냥을 해요. 물이나 음식에 약을 타거나 도움의 손길을 주는 척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비수를 꽂죠. 게다가 그들은 이 정글 전체에 고루 퍼져있어요. 개척 마을에도 숨어있을 정도니까.”
어디를 가든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바트릭이 한마디 했다.
“먼저 설명해줬어도 괜찮았잖아?”
화린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악의란 것은 때때로 괴물이나 악귀보다도 더 끈적하고 끔찍하죠. 녀석들이 흉포하고 잔인하다면 이들은 간교하니까요. 말보다 직접 겪어보는 게 머릿속에 더 잘 박혀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화린은 벨로크보다는 바트릭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조심하란 뜻이었다. 난쟁이는 그녀의 마음씨가 고마웠지만, 여전히 튀어나오는 말은 퉁명스러웠다.
“시발... 이 땅의 주인은 요정들 아니었어? 그 새끼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화린은 다시금 길 안내를 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요정들이 인간들 일에 왜 끼어들겠어요? 그들은 우리들을 자신들보다도 더 아래로 보는데?”
난쟁이는 손도끼를 거칠게 휘둘렀다.
“아니, 내 말은 자기 앞마당에 그 피그미인가 뭔가 하는 괴물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왜 가만히 냅두냐는 거지.”
벨로크가 말했다.
“방패가 되기 때문이지.”
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그미들은 요정들을 두려워해요. 이 밀림의 지배자니까. 하지만 인간은 두려워하지 않죠. 그러니까 요정들은 굳이 녀석들을 처리할 필요가 없어요. 악어가 악어새를 물어뜯는 것 봤어요?”
바트릭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발. 내가 그 귀쟁이 새끼들을 안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적어도 우리 난쟁이들은 자기 집은 깔끔하게 청소하고 산다고!”
그의 투덜거림을 뒤로한 채, 일행은 움직였다. 벨로크가 걸어가면서 하늘을 쳐다봤다. 울창한 수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끗희끗 거뭇한 게 보였다. 그리고 물 냄새가 났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이곳 날씨가 원래 이래요. 안 내리는 날이 드물 정도죠.”
폭우 속에서 화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의 말총머리와 민소매티, 타이츠가 우수수 젖어갔다. 난쟁이의 판금 갑옷에도 물방울이 떨어지며 마치 팝콘처럼 튕겨 나갔다.
“젠장··· 아가씨는 이런 곳에서 대체 어떻게 산 거야?”
바트릭이 푸념했다. 안 그래도 엉망이던 길이 완전히 진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츠를 끈적하게 잡아끄는 이 손길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뭐···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쳤죠. 조금만 참아요. 이제 곧 마을이니까.”
수풀을 걷으며 말하던 화린이 얼굴을 굳혔다. 눈앞에 공터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터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던 모닥불과 올려져 있던 냄비가 문제였지. 벨로크가 말했다.
“사냥꾼 놈들의 캠프인가?”
“잠깐만요···”
화린은 무언가를 알겠다는 듯 심상찮은 얼굴로 냄비로 다가갔다. 이윽고 웩 헛구역질을 하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 안 보는 게 나을 거에요!”
벨로크와 바트릭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냄비를 살폈다. 오래도 끓였는지 진한 사골 육수의 색을 띠고 있는 냄비 속에는 뼈들이 한가득 이었다. 그 사이로 녹아내리고 있는 두피와 머리카락, 손가락과 눈알 등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시발!”
꿈틀거리는 내장과 살점은 잘만 보던 바트릭이 비명을 내질렀다. 지성종족의 끔찍한 최후, 냄비 속에 담긴 야만적인 행태에 기가 질린 탓이었다.
이건 다시 봐도 역겹군. 벨로크 역시 미간을 찌푸린 채, 냄비를 걷어찼다. 끓고 있던 희생자의 유골이 흙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대자연의 이빨이 망자의 유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어느 쪽이든 무덤은 필요 없을 듯싶었다.
“이게 여기 있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소?”
벨로크가 십자검을 들어 올렸다. 오감을 끌어올리고 말 것도 없었다. 땅이 두두두 울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거친 숨소리와 알 수 없는 괴성이 들려왔다. 시끄럽던 숲이 대번에 조용해졌다. 정글의 포식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몸을 사리는 것이다.
“네. 이제 곧 들이닥칠 거에요. 녀석들은 캠프에서 결코 멀리 떨어지지 않으니까. 차라리 넓은 곳에서 상대하는 게 나아요.”
화린도 다리를 넓게 벌리고 주먹을 꽉 쥔 채,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바트릭은 머스킷을 천으로 둘둘 말아 가방 안에 넣고는 대신에 손도끼를 들었다. 벨로크와 등을 맞대고 있던 화린이 힐끔 살피며 물었다.
“그거 안 써요?”
대답은 벨로크가 했다.
“화약은 물에 젖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오. 발화가 되지 않거든.”
“시벌··· 형씨는 어떻게 된 게 고대 난쟁이 유물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 나중에 우리 한번 깊은 토로의 시간을···”
바트릭은 말을 하다 말고 손에 들린 도끼를 휙 던졌다. 빗물을 가르고 날아간 도끼가 수풀 속을 튀어나오던 무언가에 홱 틀어박혔다.
-우끼악
습격자의 골통이 쪼개졌다. 벨로크는 망막 위에 맺히는 물기 너머로 놈을 쳐다보았다. 새카만 피부에 풀잎으로 하체만을 겨우 가린 왜소한 체구의 인간이 혀를 내밀고 죽어있었다. 뒤틀린 어린아이처럼 생긴 외양. 화린이 말했던 식인종 피그미였다. 그리고 곧 수풀이 우르르 흔들리더니 튀어나온 새카만 파도가 동족의 시체를 밟으며 바퀴벌레처럼 달려들었다.
-오로로로!
-으라라라라!
“대롱에서 나오는 마비 침을 조심해요! 기어 오는 놈들도요!”
소리친 화린이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주먹을 뻗자 무형의 힘이 되어 날아갔다. 팡. 공기 찢는 소리와 함께 피그미 다섯이 산산조각났다. 직후 바닥을 기어 오는 녀석을 향해 앞발을 내려찍었다. 땅이 쿠웅 울렸다. 균형을 잃은 놈들은 뒤집어진 벌레처럼 버둥거렸다.
“으아아아!”
새로운 도끼를 꺼내든 바트릭이 마무리를 했다. 두더지를 잡듯 녀석들을 후려친 것이다. 진흙이 퍽 튀며 난쟁이 갑옷에 묻었다. 끈적한 피와 살점 역시 그 강철의 색을 더럽히고자 했다. 하지만 쏟아내리는 비로 인해 이 모든 것은 쉽사리 쓸려나갔다.
벨로크 역시 움직였다. 그는 동료들과 등을 맞대며 후방을 경계하기보다는 그냥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는 예전부터 이렇게 싸워왔고 이게 익숙했으니까. 그러자 식인종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먹잇감을 먼저 노리는 것은 야만인들도 알법한 상식이었다.
-우캬아!
원숭이처럼 뛰어오른 놈이 돌도끼를 찍어왔다. 벨로크는 십자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덤벼들던 녀석의 상체가 조각났다. 덩치가 작은 만큼 쏟아지는 내부 장기들도 작았다. 그는 힘을 빼지 않은 채, 검을 아래로 찍어 내렸다. 그러자 돌창을 들고 그의 종아리를 찍으려던 피그미의 골통 역시 갈라졌다. 여기에 몸을 휙 돌리며 회전 베기를 하자, 후방을 노리던 녀석 역시 쩍 반 토막이 났다.
셋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자 녀석들은 머리를 썼다. 후방에 있던 녀석들이 긴 대롱을 일제히 발사했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벨로크는 이를 다 막지 못했다. 독침 몇 개가 갑옷을 뚫고 몸에 박혔다. 이를 본 나머지 녀석들이 일제히 땅을 박찼다.
부서진 돌조각을 들고 있는 놈, 인간의 뼈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있는 놈, 어디서 구한 건지 쇠붙이를 들고 있는 놈까지. 벨로크에게 덤벼들던 괴물들은 누가 뭐라 한 것 마냥 일제히 웃었다. 자기들이 제조해낸 마비침의 위력을 알고 있던 탓이다.
그리고 웃고 있던 얼굴 그대로 목이 달아났다.
녀석들은 몰랐다. 눈앞의 사내는 고래도 기절시키는 맹독을 몸뚱이 하나로 버텨낸단 걸.
-우아?
그리고 그들은 무지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텅 비어 버린 공간 사이로. 기사의 비정한 칼날이 폭풍처럼 몰아쳤기 때문이다. 십자검이 요란하게 번쩍거리고 그가 휘두른 칼은 한 줄기 선이 되어 날아갔다. 이윽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선이 쉼 없이 날아들었다. 그의 칼날은 화린과 바트릭을 제외하고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그 속에는 이 엿 같은 날씨 속에서 칼질을 해야 한다는 귀찮음, 부츠 속에 가득 찬 빗물에 대한 찝찝함, 배고픔 등이 섞여 있었다. 한 마디로 벨로크는 이 전투를 빨리 끝내고 쉬고 싶었다는 얘기였다. 해신 때처럼 힘을 비축해 둘 필요도 없었으니까.
“맙소사···”
강철의 사원에서 전해져 오는 비기. 파동의 묘리를 이용해 피그미들의 골통을 깨부수던 화린이 입을 벌렸다. 어릴 때부터 무술인이자 전사로 커온 화린이 한눈을 팔 만큼, 눈앞에 있는 광경은 파괴적이며 또한 매력적이었다.
지금 벨로크가 벌이고 있는 행동들. 검을 이용해 수백 개의 곡선들 그려내고. 그 끝에서 괴물들의 피를 뽑아내고 있는 저 행위가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섞여드는 피는 물감이었고, 궤적을 따라 그려지는 핏줄기는 그림이 되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피그미들의 시체는 잎사귀였다. 마치 한 떨기의 장미를 보는 것 같았다.
“이봐! 위험해!”
바트릭은 멍하니 있던 화린을 노리던 피그미의 명치에 퍽. 도끼를 박아넣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보며 한마디 하려다가 역시나 벨로크가 벌이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무슨 마법을 보는 기분이군··· 극의에 달한 살육은 예술이라도 된단 말인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기만 할 뿐인 사람 죽이는 기술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후우우.”
차가운 입김을 내뿜은 벨로크가 검을 휙 털었다. 그의 발밑은 토사가 잔뜩 헤쳐져 엉망이었다. 사람 잡아먹던 식인종들의 시체는 믹서기에라도 갈린 듯 비료처럼 뿌려져 있었다. 그렇게 정글의 최대 포식자 중 하나인 괴물들을 일거에 쓸어버린 기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