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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51화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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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 밀림

거 처음부터 화끈하군. 벨로크는 열대우림을 바라보았다. 매를 넘나드는 시력을 지닌 그에게도 저곳은 미로처럼 보였다. 또한 광활했다. 무엇이 살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식인종? 숲에 사는 원주민 같은 놈들인가?! 하! 그래봤자 인간 아닌가?”

지금껏 괴물들을 숱하게 사냥해온 난쟁이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행동은 어째선지 과장된 것처럼 보였다. 짜식. 쫄았냐? 화린은 쯧 혀를 찼다.

“내 말 흘려듣지 말고 똑바로 들어요. 벨로크씨라면 몰라도 바트릭씨 당신은 조심하지 않으면 산채로 거죽이 벗겨질 테니까.”

지금이야 함께 한다지만 일행은 곧 서로 간에 목적에 의해 따로 떨어질 터였다. 그 사실을 상기시킨 바트릭이 흠칫 놀랐다. 화린이 설명을 계속했다.

“여기서 말하는 식인종이란··· 피그미라고 불리우는 족속들이에요. 키는 우리 절반쯤 오고 덩치는 왜소하죠. 하지만 그만큼 재빠르고 숫자가 많아요. 게다가··· 정글에서 나고 자란 놈들인 만큼 이곳 지리에도 능하고 함정도 쓰죠. 까딱 잘못하면 산 채로 포가 뜨이고 냄비에 집어넣어 질 거에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형편없는 그림 실력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저렇게 생긴 생물체이기 때문일까? 완성된 초상은 썩 기괴했다. 몸체에 비해 큰 머리통과 날카롭게 벼린 이빨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뒤틀린 어린아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에요.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긍지 높은 하이랜드의 전사들과는 달리 야만적이고 폭력적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놈들이 아니에요.”

답지 않게 거친 말을 내뱉은 화린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설명을 이어나가려다가 수풀을 고갯짓했다.

“나머지는 가면서 얘기해 드릴게요.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한 곳이 아니니까.”

정글 속에서는 지금 일행이 있는 곳이 훤히 보인다. 절벽과 바닷가를 뒤에 두고 엄폐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저 안쪽을 보지 못한다. 굳이 적대적인 존재들에게 미리 위치를 노출시킬 필요가 없었기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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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왕국이란 나스 밀림 전체에 퍼져있는 요정 부족들을 한 데 모아 칭하는 말이었다. 야만인도 아니고 봉건제가 버젓이 존재하는 지금 시대에 부족사회라니? 의아함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종족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요정들의 수명은 그들의 기다란 귀만큼이나 길었으니까.

덕택에 시간의 굴레에서 한 꺼풀 벗어난 요정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유지를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왕조가 있었고 문명이 있었으니까.

인간보다 배는 뛰어난 감각을 지닌 요정 전사들은 혼자서 수 명분의 병사 몫을 해낸다. 게다가 인간들의 나라와 동떨어진 지형적인 특징. 그 자체로 천해의 방벽이 되어주는 밀림의 환경까지 더해지자 요정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번성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퍼진 역병이 아니었다면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을 만큼···

여기까지가 벨로크가 알고 있던 기사로서의 상식이었다. 여기에 오래도록 나스 밀림에서 수행한 화린이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요정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들 부족끼리만 생활해요. 이따금 타 부족하고 교류를 하거나 인간 세상으로 나갈 때를 빼면요. 폐쇄적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몇 가지 있어요.”

화린이 앞을 가로막은 덩굴을 콱 집으며 말했다.

“종족의 명운이 걸린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혹은 요정왕으로부터 왕명이 떨어졌을 때.”

그녀의 팔뚝에 근육이 비죽 솟았다. 배꼽을 내보이고 몸에 달라붙는 민소매를 입고 있기에 유난히 더 눈에 띄었다. 그녀가 덩굴을 으드득 뜯어내며 말을 이었다.

“나스 밀림의 중앙에는 아틸란타라고 불리우는 도시가 있어요. 요정 왕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이자 요정왕이 기거하는 왕성이 있는 곳이죠. 전쟁을 막으시려면 그곳으로 가셔야 할 거예요.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왕의 의지일 가능성이 크니까요.

“대악마 사냥꾼의 이름값이 그 오만한 귀쟁이 새끼들한테도 통할까?”

바트릭이 옆에서 휙휙 손도끼를 휘두르며 남은 덩굴들을 뜯어냈다. 벨로크 역시 십자검 대신 배에 놓여있던 커틀러스를 휘두르며 말했다.

“왕의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야 하나?”

그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것 같았다. 난쟁이가 와하하 웃었다. 하지만 화린은 그러지 못했다.

“최선은 역시나 전염병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 아니겠어요? 정말로 인간이 했다면··· 막을 수가 없겠네요··· 아니, 그래도 치료법을 찾아낸다면···”

상황의 중대함을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벨로크가 행하는 일은 어쩌면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시급한 사안이었다. 이를 막지 못하면? 성난 요정들에 의해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보다 배는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후유증을 겪겠지.

오래전 악마들을 상대로 힘을 합쳐 싸웠던 지상 종족끼리 피를 흘리다니! 물론 그의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고, 요정왕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그래도··· 난쟁이인 바트릭 이라면 몰라도 벨로크와 같은 동족인 자신이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

화린은 자신 개인의 사정과 종족 전체의 운명이 걸린 인간으로서의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혼탁한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의로우면서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화린은 굳은 얼굴로 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말했다.

“벨로크씨··· 전쟁을 막으러 가신다고 하셨죠? 저도 도울게요.”

벨로크는 놀랐다. 정말이지 한결같은 여인네였다.

“스승님과 사제들이 걱정되어 찾아뵌다고 하지 않았소?”

“그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도 좀 꺼내주시겠어요?”

벨로크는 베로니카가 챙겨주었던 나스 밀림의 지도를 꺼냈다. 지도는 조악했으며 상세하지 않았다.

규모가 큰 요정 부락, 혹은 특징적인 장소만 몇 개 점으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애초에 이런 오지를 어떻게 다 둘러보고 상세히 그려낼 수 있겠는가? 요정 군인들만이 가지고 있을 군사용 지도면 몰라도. 하지만 화린은 이 개떡 같은 지도를 용케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녀가 지도의 한 부분을 콕 집었다. 요정왕이 기거한다는 도시 아틸란타가 있는 중앙과는 많이 떨어진 외곽 지역이었다. 그리고 현재 일행이 있는 위치까지 대충 가늠해서 집었다.

“바로 여기에 저희 무투관. 강철의 사원이 있습니다. 어차피 요정족들을 피해, 대로를 피해서 아틸란타까지 갈 거라면 그렇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죠. 이곳에 먼저 들르시지 않겠어요? 사제와 스승님이 무사하신 것만 확인한다면 제가 바로 길 안내를 할 수 있을 거예요.”

벨로크는 그녀를 따라 무투관을 감으로써 허비할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이곳의 지리도 제대로 모르는 자신이 조잡한 지도에 의지한 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허비할 시간도 계산했다. 생각할 것도 없군. 그녀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는 지도를 챙기며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잘 부탁하겠소.”

“이봐. 아가씨. 내 것도 좀 봐줘. 여기로 가려면 난 어디로 가야 해?”

그때. 손도끼로 수풀과 잡목을 제거하고 있던 바트릭이 슬쩍 지도를 내밀었다. 화린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집더니 눈을 찌푸렸다.

“바트릭씨가 찾는 던전은 외곽 쪽에 있네요. 게다가 우리 무투관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하지만 그 후로는 길이 엇갈리는데...”

화린이 아쉬워하자 바트릭이 그녀의 손에서 지도를 뺏었다.

“무투관까지는 동행하면 되겠군. 참. 그 후로는 따로 행동하는 거야. 알겠지? 이 세계의 운명을 건 전쟁이니 뭐니 난 몰라?”

혹여 휘말릴까 싶어 바트릭이 다다다 쏘아냈다.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자식아. 너한테는 기대도 안 했어. 화린은 그를 조금 얄밉게 쳐다보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난쟁이, 벨로크와 자신은 인간이었다. 종족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가치관은 더더욱 다르다.

목숨을 건 모험 한 번 같이했다고 도와달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그래,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야. 나와 벨로크씨가 비정상적인 거라고··· 벨로크를 바라본 그녀는 괜스레 얼굴에 묻은 풀을 털면서 말했다.

“다시 움직이죠. 부지런히 간다면 오늘 밤에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마을이 있을 정도라면 사람들이 제법 터전을 잡은 모양이오?”

벨로크가 물었다. 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어찌 됐든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걸요. 모험가, 고행자, 범죄자 출신의 도망자, 자신만의 영지를 갖고 싶어서 온 망상증 환자, 요정들을 잡아다가 팔기 위해 온 노예상들까지. 별의별 인간군상들이 모인 곳이 이곳이죠.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잘 자라고 있고요.”

인간, 요정, 괴물, 식인종이 한 데 모여 살아가는 곳이라 이거지? 썩 질이 좋은 동네는 아닌데···

역시나 인간의 생명력은 얕볼 수가 없다. 주위 환경이야 어떻든,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화린은 그럼 고행자에 속하는 건가? 이런 오지에서 수련했다고 하니까···

벨로크는 제 생각을 뒤로한 채, 손을 휘둘렀다. 거미줄과 함께 주먹만 한 거미가 퍽 터져나갔다. 그는 손을 털면서 혀를 찼다. 거미만 보면 기겁하던 붉은 머리의 여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를 시작으로 일행은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건틀릿이 척 움직이더니 벽처럼 가로막혀 있는 덩굴을 찢어발겼다. 그 사이로 완만하게 휘어진 커틀러스와 손도끼가 날아다녔다. 식물들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콧속으로는 진한 풀 내음이 침투했다.

남들보다 오감이 배는 좋은 벨로크로서는 이게 고역이었다. 2년 동안 지겹게 맡았는데 이걸 여기서 또 맡는군. 암울했던 과거를 떠올린 그가 가시덩굴을 퍽퍽 자를 때. 화린이 외쳤다.

“참! 다들 제가 건드리는 식물만 잘라야 해요! 거슬린다고 함부로 만지면 큰일 나요!”

“뭐, 뭐?”

화린의 말을 한발 늦게 들은 난쟁이가 자신도 모르게 손도끼를 휘둘렀다. 앞을 가리고 있던 새빨간 꽃봉오리를 띄운 식물을 향해서였다. 퍽. 도끼가 틀어박혔다.

끼아아악!

괴성과 함께 꽃봉오리가 펑 터졌다. 안에서 튀어나온 포자를 뒤집어쓴 바트릭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흡 숨을 참은 벨로크가 바트릭의 뿔 투구를 잡아 뒤로 끌었다. 가루가 맨살에 와닿자 약간의 따가움과 함께 저릿함이 느껴졌다. 마비 가루인 모양이다.

“바트릭씨!”

화린이 조치를 취하기 전. 벨로크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아피아가 준 약초를 꺼내 물과 함께 그에게 먹인 것이다. 난쟁이는 몇 분간 경련하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시발···! 뭐 이딴 곳이 다 있어!”

중독당했단 사실은 잊었는지 바락바락 소리치는 그를 보며 화린이 말했다.

“조심해요. 꼭 식인종이나 괴물들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곳의 가혹한 환경 그 자체가 인간한테는 재앙이라구요.”

그녀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위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파리지옥처럼 생긴 식물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다가 펑 터져나갔다. 벨로크 역시 스스스 움직이는 그림자를 향해서 한 쪽 손을 뻗었다. 단검이 날아들었다. 수풀에서 뛰쳐나와 일행을 덮치려던 맹수의 미간에 퍽 구멍이 뚫렸다.

그르으아아···

안 죽었네? 회수하고 다시 던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칼날이 무뎌진 모양이다. 벨로크는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사람 덩치 두 배만 한 호랑이였다. 민가로 내려간다면 대량학살을 저지를 크기였다.

특이한 것은 털이 녹색이라는 건데··· 거참 신박하군. 보호색이냐? 그는 호랑이의 머리를 향해 정글도를 내려찍었다.

털이 우수수 휘날리고, 바르작거리던 일말의 움직임조차 정지했다. 약육강식.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의 땅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은 없었다.

“신발 속과 소매 안쪽! 발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세요! 거머리가 들러붙어 있을지도 몰라요!”

“이곳의 모기는 질병을 옮겨요. 벨로크씨. 저 풀 좀 따서 주시겠어요? 네. 보라색처럼 생긴 그거요. 태워서 연기를 내면 녀석들을 쫓아낼 수 있어요.”

“덩굴을 걷어낼 땐 조심해요! 위에서 독사가 떨어질 수도 있어요!”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화린은 쉴 틈 없이 이곳에 대해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두 사람은 그녀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새기며 뒤를 따랐다. 하지만 꼭 맹독충과 짐승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글 특유의 고온 다습한 공기는 피부에 와 닿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유발했다. 여기에 울퉁불퉁한 길과 잡풀 나뭇가지들이 발목을 잡아끌며 체력을 잡아먹었다.

이 울창한 수림은 대륙에서 난다긴다하는 모험가나 용병들도 몇 시간을 채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가혹한 환경을 자랑했다. 거기다가···

웨에에에엥

쿠우우쿠우우

대자연의 광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숲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풀벌레 소리, 짐승 소리, 정체 모를 무언가의 신음 등. 각양각색의 소음이 벨로크의 감각을 콕콕 찔러댔다. 청각만이 아니었다. 느껴지는 시선들도 수십 개였다.

괴물? 식인종? 뭐지? 뛰쳐나간다면 잡을 수는 있었다. 실제로도 그는 그렇게 행동했고, 웬 팬티만 입은 고블린 녀석의 머리통을 박살 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 마리 잡아도 또 다른 시선이 금방 붙어왔다. 마치 이 장소 전체가 그들을 감시하는 느낌. 여러모로 대륙과는 다른 기분 나쁜 곳이었다.

뭐, 그래봤자 대악마의 앞마당만 할까? 벨로크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었을까.

-사람··· 사람 살려어!

일행의 귓가에 웬 비명이 들려왔다. 난쟁이가 머스킷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갈 건가?”

화린을 바라보는 그는 기대도 안 하는 눈치였다. 역시나 바트릭의 예상대로 화린이 손짓했다.

“잠깐 확인해보고 가죠. 보여줄 게 있어요.”

“후우. 정말이지···”

난쟁이는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지만, 벨로크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린 미약한 분노와 경멸을 감지한 탓이다. 예상이 가기는 한다만···

세 사람은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곧 그들은 가지 위에 달린 밧줄에 발목이 묶여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걸린 모양이었다.

“사, 사람! 사람입니까?! 피, 피그미들은 아니겠지요?”

사내의 얼굴은 묻은 때로 인해 지저분한 걸 넘어 시커멨다. 일행을 식인종으로 착각하는 것으로 봐서 정신 역시 없는 듯했다. 바트릭은 늘 하던 대로 머스킷의 총구를 그에게 겨눈 채, 질문을 던졌다.

“어이, 당신. 뭐 하다···”

“하아. 이 더러운 놈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린이 행동했다. 벨로크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하나 꺼내더니 사내를 향해 휙 던진 것이다. 그녀답지 않은 돌발 행동에 바트릭이 당황했다.

“이, 이봐!”

그 순간. 울고 있던 사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몸을 기괴하게 뒤틀어 단검을 피해내고는 묶여있던 끈마저 손쉽게 풀었다. 이윽고 바닥에 착지한 후. 화린을 보며 혀를 찼다.

“쳇. 뭐야? 현지인이었어? 이봐. 같이 좀 먹고 살자고, 왜 방해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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