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나스 밀림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미려한 얼굴. 봉긋 솟아있는 가슴과 아래로 나 있는 지느러미까지. 수면 위에서 파닥거리고 있는 존재는 인어였다. 일행을 습격하고 잡아먹고 제물로 바치려 했던 그 괴물.
당연히 바트릭과 화린, 그들을 마중 나온 리쿠와 아피아 남매는 기겁했다. 모습을 드러낸 인어가 벨로크의 앞에서 아양을 부리고 있어도 말이다.
-아하하하하
-까르르르르
벨로크는 한 손을 물가에 담근 채 각양각색의 머리색을 가진 인어들과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의 팔에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정확히는 제 안의 새로운 힘. 신성을 다루는 법을 연습 중이었다.
자신과 계약한 고대신 노르드는 바다를 다스리는 해신. 심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대양인들의 지배자였다. 덕택에 그의 힘을 일부분이나마 사용할 수 있는 벨로크는 이들의 호감을 얻어내기가 굉장히 쉬웠다. 그래서 한 번 실험해본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손끝에 와닿는 파도 속으로 인어들의 살갗이 스칠 때마다 그들의 생각이 전해져왔다. 맹목적인 추종, 믿음, 사랑, 등의 호의적인 감정들이었다. 이거 사이비 교주가 된 기분인데.
“형씨··· 그럼 저 녀석들보고 끌게 할 생각으로 저 배를 준비한 것인가?”
바트릭이 인어들 옆에 떠있는 선박 하나를 가리켰다. 쪽배보다는 크고 장거리 항해용 범선보다는 작은 애매한 크기의 선박이었다. 그 안에는 보급품들이 잔뜩 실려있었다. 벨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녀석들이 끌고 가기에는 저만한 크기가 적당할 것 같아서 말이오. 너무 작으면 물살을 못 버틸 테고 너무 크면 속도가 안 날 테니까.”
물장구를 치며 웃고 있는 인어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도저히 전의 그 괴물들과 동일인이라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화린은 알 수 있었다. 저 미소 속에 감춰져 있는 치명적인 비수를.
저건 괴물이다. 내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한 더러운 악귀들이었다. 그녀는 이 꺼림칙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벨로크의 얼굴을 봐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대신에 질문을 던졌다.
“어··· 음. 벨로크씨는 저··· 괴물들하고 언제 저렇게 친해지신 거죠···?”
답은 아피아에게서 나왔다. 그녀 역시도 저 괴물들이 혐오스럽다는 듯 리쿠의 등 뒤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벨로크님. 역시나··· 해신의 힘을 받아들이신 거군요. 그 존재와 계약을 맺으셨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외면해왔던 진실을 마주친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벨로크는 제 손에 얼굴을 부비고 있는 인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해신 노르드와 계약을 맺었소. 위대한 의지라는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았지.”
차라리 거짓으로라도 얼버무려 주었으면 모르는 척 보내주었으련만, 벨로크가 순순히 시인하자 아피아는 입술을 씹었다. 이윽고 소리쳤다.
“벨로크님···! 저는 위대한 의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놈은 악신이에요! 벨로크님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당신을 이용해서 이 세상에 무슨 해악을 끼칠지 몰라요!”
“시발. 신의 대전사라고? 그것도 악신? 이 형씨. 점점 사람이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 자식이? 바트릭의 중얼거림을 뒤로한 채, 벨로크는 인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은 좋다구나 하고 달려들었다.
-아! 아아아아!
조금 전까지 칼을 뽑아 들고 싸웠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나 아름다운 외양이 주는 매력은 치명적이다. 괴물이든, 인간이든 말이다. 생선 대가리가 이런 아양을 떨고 있었으면 혐오감부터 들었을 텐데··· 처자식을 버리고 바닷속으로 끌려간 선원들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이런 건 현대나 이곳이나 똑같단 말이지.
나중에 가면 바다 거인도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말했다.
“나는 이 세상의 평화니, 질서니 하는 것들은 잘 모르겠소. 난 이기적인 인간이거든. 나는 내 원수한테 복수할 수 있는 힘을 원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소. 녀석과 이해관계가 일치한 셈이지. 그뿐이오.”
벨로크의 무심한 어조는 이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노르드와의 계약은 그게 아니었지만, 앞날은 모르는 것이었으니··· 그는 굳이 오해를 정정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런···”
아피아가 입술을 씹었다. 바트릭을 제외한 두 사람 또한 얼굴을 굳혔다. 아피아가 또다시 소리쳤다.
“지하에서는 다섯 권좌가 바깥으로 기어 나와 지상을 유린하고 있고, 이를 막아야 할 인간들은 한 줌 권력을 위해 서로 간에 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난쟁이들은 광산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고. 요정들은 인간들을 죽이려 하죠. 네. 개판입니다. 아주 개판이죠! 여기에 고대신마저 끼어들게 하다니요! 벨로크님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정녕 경각심이 들지 않으십니까?!”
탓하는 듯한 그 목소리에 벨로크는 인어에게서 손을 뗀 다음 그들을 바라봤다. 이윽고 변명 혹은 반박보다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꺼냈다.
“정보가 조금 느리군. 대악마의 숫자는 줄었소.”
“네. 압니다. 타락의 재림은 현왕인 게오르그 공작과 군대의 손에 의해 죽었다고···”
“아니, 하나 더 줄었소. 남은 것은 셋이오.”
처음 들어보는 정보에 아피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게 무슨···”
벨로크는 피식 웃으며 남일 얘기하듯 말했다.
“동부 아리안에 있는 룽겐 대사막. 그곳의 지하에 한 마리가 더 있었소. 노왕이라 불리우는 데몬족 우두머리가 제 군대를 모아 사막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 했었지. 하지만 녀석은 죽었으니 남은 것은 셋이오. 광기, 공포, 거짓.”
“형씨가 그걸 어떻게···”
“세상에··· 설마.”
아피아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벨로크를 바라봤다.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퍼즐이 돌아가고 있었다.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군대의 손이 아닌, 한 개인에게 쓰러졌다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
증오의 화신이라 불리우는 또 다른 대악마. 노왕에 대한 정확한 정보. 이를 알고 있는 벨로크. 그의 초월적인 무력.
그녀가 떠듬거리며 벨로크를 손짓했다.
“대악마 사냥꾼···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수천의 악귀들을 도살하고 지하의 권좌들을 도로 지옥으로 끌어내렸다는 전설적인 전사가 바로 당신이었군요.”
“뭐, 뭐? 대악마 사냥꾼? 그건 그냥 헛소문이라고···”
“뭐라구요!”
“음?!”
바트릭이 침을 뱉었고, 화린은 양팔로 입을 가렸다. 리쿠 역시 삐끗 발을 헛디뎠다. 어지간히 충격적인 듯 했다. 일행이 당황하든 말든 벨로크는 신성을 이용해 인어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이 배를 끌고 나를 나스 밀림까지 데리고 가도록.’
인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쪼르르 헤엄쳐 선박에 붙었다. 타기만 한다면 곧바로 출발할 수 있을 듯했다. 속도가 얼마나 나오려나. 벨로크는 슬쩍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일행을 바라봤다. 그가 허리에 손을 짚은 채 말했다.
“그래서··· 아피아. 나를 막고 싶소? 그렇다면···”
“아니요.”
아피아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까 전의 반응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에는 벨로크가 조금 당황했다.
“음?”
아피아는 안심했다는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악마를 둘이나 무찌르신 전설 속의 영웅께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실 리가 없지요. 진작에 말씀해 주셨으면 걱정을 덜었을 거예요.”
“진정 명예로운 전사다. 나중에 대련. 하고 싶다.”
이게 그렇게 쉽게 납득이 가능한 얘기인가? 이방인 출신의 기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대륙에 다섯 대악마가 강림한 직후. 그들의 악명은 끔찍할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악마들의 범람, 그로 인한 치안의 부재, 벌어진 전쟁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사상자와 난민들이 발생했으니까. 벨로크는 그런 괴물들의 수괴를 둘이나 죽였다. 그리고 귀족답지 않게 권위적이지도 않았으며 약자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행이 안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역시 벨로크씨에요··· 세상에 그런 비밀을 간직하고 계시다니··· 얼굴도 잘생기고··· 부족한 게 뭐야.”
화린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벨로크가 이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이놈의 몸뚱이는 진짜 인기가 넘쳐나는군. 그는 그 말을 애써 무시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 더 늘어나면 큰일이니까.
“아무튼 리쿠, 아피아. 몸조심해서 돌아가시오. 베로니카에게 내 안부도 좀 전해주시면 고맙겠소.”
아피아는 자기 하복부를 만지며 말했다.
“네. 벨로크님. 배 속에 있는 어인들의 씨를 지우는 즉시 떠나겠습니다. 물론 섬 내에 있는 여인들 역시 손을 써야 하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요. 참··· 이것을 가져가십시오.”
그녀가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안에서는 풀 냄새가 났다.
“이건?”
“온갖 동식물들이 즐비한 나스 밀림의 환경은 무척이나 가혹해요. 무력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죠. 파란 건 해독 및 해열에 좋은 약초입니다. 물이랑 삼키면 됩니다. 빨간색은 독사나 독충들을 쫓는데 효능이 있어요. 찧어서 몸에 바르면 됩니다.”
높은 체력 스탯으로 인해 그의 육체는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만약의 사태란 것이 있었다. 마법과 신 악마들이 실존하는 이 세상은 온갖 불가해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상비약은 많을수록 좋지.
“고맙소. 그럼 가보겠소.”
벨로크는 감사를 표하고는 배에 올랐다.
“어이, 아가씨. 그리고 형씨. 몸조심하라고. 그리고··· 너무 낙담하지 마. 살아만 있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오는 법이니까.”
바트릭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오글거렸는지 침을 퉤 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배에 올랐다. 남은 것은 화린이었다. 그녀는 리쿠와는 악수를 하고 아피아를 조심히 껴안았다. 이윽고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피아씨. 비록 우리 만남은 짧았지만 난 당신들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대륙인들에게 차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이 내보인 선의는 진짜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그때까지 몸조리 잘해야 해요?”
그녀의 상냥함에 아피아는 싱긋 웃었다. 이윽고 화린의 뺨에 입 맞추며 부족의 전통 인사를 건넸다.
“화린언니, 벨로크님. 그리고 바트릭씨에게 대지모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언제까지나 빌겠습니다.”
“Patrino의 가호. 용기 있는 그대들에게!”
리쿠가 와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화린은 그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짓다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배에 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악몽만이 남은 곳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얻은 곳이 많은 곳이었다. 새로운 힘.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목적 등등.
딱
벨로크는 손가락을 튕겼다. 인어들이 보글보글 물거품을 일으켰고 배는 순식간에 멀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초승달 섬이 콩알처럼 보일 정도였다. 벨로크는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따갑다.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할 정도였다.
“시, 시발! 형씨 이거! 너, 너무 빠르다고!”
“자, 잠깐만요! 나 속이··· 우욱.”
난쟁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화린이 갑판에 기대어 구역질을 했다. 벨로크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무슨 쾌속선을 타는 기분이었다. 시발. 이 속도라면 내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도착하겠는데?
#
그의 예상대로 인어들의 도움을 받은 선박은 목적지인 요정왕국이 있는 나스 밀림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원래라면 석 달은 족히 걸렸을 여정이 3주로 쑤욱 줄어들어 버렸으니까. 물론 일행의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과는 별개였다.
-하하하하!
-아!아아!
벨로크는 울창하게 솟아있는 나무들을 뒤로한 채, 떠나가는 인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연한 그의 모습과는 반대로 얼굴이 반쪽이 된 바트릭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파이프에 담뱃잎을 채워 넣고 있었다.
“시, 시부럴··· 내 인어들이 모는 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상과 현실은 늘 다른 법이군.”
“그 꼬라지가 돼서도 그걸 필 생각이 들어요?”
마찬가지로 피골이 상접해진 화린이 딴지를 걸었다. 뱃멀미에 어찌나 시달렸는지 쏟아져나온 위액 때문에 목구멍이 시큰거렸다. 바트릭은 반박할 기운도 없다는 듯 부싯깃으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답했다.
“후우우. 좋은 일이 생기면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 대 피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걸 떨쳐내기 위해 한 대 피지. 내가 밥은 안 먹어도 이건 못 끊어. 암, 그렇고말고.”
혈관 내로 니코틴이 돌자 바트릭의 얼굴이 좀 나아졌다. 아니, 애초에 저 안에 타르나 니코틴이 들어는 있나? 어떻게 되어 먹은 성분일까? 벨로크는 잠깐 궁금증이 생겼지만, 굳이 지금 그것을 풀어야 할 필요성은 못 느꼈다. 화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흡연자들의 단골 멘트잖아요··· 참. 이해가 안 돼. 담배를 대체 왜 피는 거람? 몸에 나쁘고 냄새만 나는 걸···”
“난 자네보고 이해해달라고 한 적 없네. 나한테 하나 사줄 생각 없으면 이만 신경끄시지.”
콧방귀를 뀐 난쟁이는 자신의 짐을 챙겼다. 화린과 벨로크 역시도 짐가방을 들었다. 개인 물품 및 약간의 식량과 식수 등이 담겨있었다.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던 바트릭이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형씨. 우리 제대로 온 거 맞아? 이거 위치가 영···”
위로는 숲이 보이는데. 어디를 봐도 배를 댈 곳이 안 보였다. 깎아지른 석회 절벽들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벨로크는 난간을 밟고 날카로운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그는 압도적인 괴력으로 양손을 바위에 박아넣고는 말했다.
“잊었소? 요정들은 인간과의 전쟁을 준비 중이오. 제대로 나 있는 길로 갔다가는 그들의 공격을 받을 거요.”
“한 명 죽이면 두 명. 그다음에는 수십 명. 수백 명이 몰려오겠죠. 벨로크씨의 말이 맞아요. 충돌은 최소화해야죠.”
화린 역시 타고난 균형감각과 힘으로 수월하게 바위를 타고 넘어갔다. 두 괴물은 15미터 높이의 석회 절벽을 담 넘듯 넘었다. 그리고는 아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오시오?”
“바트릭씨 뭐해요?”
바트릭은 절벽의 초입에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소리쳤다.
“시발! 니들이 난쟁이의 슬픔에 대해서 알아?! 팔다리가 짧아서 오는 불편함에 대해서 너희들이 아냐고!”
“변명하지 마요. 맨날 뒤에서 총이나 쏴대니까 근육이 퇴화한 거죠.”
화린이 키득거렸다.
“이 고릴라가?!”
“어머? 계속 거기 있고 싶어요? 안 도와준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야?”
두 사람의 언쟁은 벨로크가 밧줄을 던져주면서 끝났다. 화린이 아쉬워하고 바트릭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난쟁이의 눈에 나스 밀림의 광경이 들어왔다. 아니, 사실상 그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광경은 몇 없었다. 그저 나무와 그보다 더 큰 나무, 그보다 더 더 큰 나무들만이 빼곡하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으니까.
끼이이익! 끼이이익!
때맞춰 괴성과 함께 새 한 마리가 위로 날아올랐다. 작은 새였다. 하지만 곧 그들과의 거리를 가늠해보자 새의 크기가 인간의 몸뚱이만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벌···
바트릭의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동네 뒷산이나 대륙의 유명한 산맥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그 어디를 봐도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별세계처럼 보이는 땅이었다.
나스 밀림.
대자연의 야만과 흉포함이 서로 공존하는 곳.
인간의 발길이 허락되어 있지 않은 오지.
요정만이 아닌, 다양한 인종, 이교도, 괴물, 혹은 그 비스무리한 무언가들이 넘쳐흐른다는 기괴와 신비의 땅.
위대한 모험가나 탐험가들을 숱하게 잡아먹었다는 괴물의 숲에 온 것을 난쟁이는 비로 서야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가 꿀꺽 침을 삼킬 때.
“으차차차!”
화린이 기지개를 켰다. 이윽고 그 가벼운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동자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자. 두 분 다 이곳은 처음이시죠? 그렇다면 제가 우선 주의 사항부터 알려드릴게요. 요정이나 괴물들 말고도 조심해야 할 게 많거든요. 우선 첫 번째.”
화린이 검지손가락을 폈다.
“식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