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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49화 (14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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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

“세상에··· 리쿠씨! 아피아 씨는 환자잖아요!”

치즈를 집어 먹던 화린이 놀라서 리쿠를 타박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여동생을 노려보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아피. 너. 지금 행동. 옳나?”

“···”

아피아는 자기 뒤통수를 친 리쿠에게 화내지 않았다. 아프다고 신음성도 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벨로크를 바라보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예 무릎을 모으고 상체를 숙여 절을 했다.

“죄송합니다. 벨로크님. 저를, 그리고 고통받던 사람들을 구해주신 은인에게 몹쓸 의심이라니요. 어머니의 딸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모래사장에 박은 채 말을 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얼음 사자 부족의 아피아. 당신께 받은 이 은혜.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리쿠 역시 시뻘게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양손을 모으며 벨로크를 향해 꾸벅 절했다.

“벨로크. 아피아를 구해줘서. 정말, 정말 고맙다. 나. 얼음 사자 부족 리쿠. 이 은혜 꼭 갚도록 하겠다. 내 목숨. 바치겠다.”

달빛이 내리쬐는 모래사장에서 두 야만인이 결의를 내보였다. 그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충성맹세처럼 보였으니까. 술자리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뒤바뀌자 럼주를 꿀꺽이던 바트릭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았다.

“나, 나도 꿇어야 하나?”

“그,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도 벨로크 씨가 아니었다면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

화린마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무릎을 꿇으려 할 때. 벨로크가 그들을 제지했다.

“그만. 다들 일어나시오.”

“앗.”

발을 헛디딘 그녀가 그의 품에 안겼다. 얼굴이 시뻘게져 있는 것이 거나하게 취한 것 같았다. 벨로크는 화린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조심스레 앉히고는 야만인 남매에게 다가갔다.

“나도 당신들을 구했고, 당신들도 나를 구해주었소. 그러니까 서로 비긴 셈 칩시다.”

리쿠와 아피아 둘 다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틀리다. 난 내 목숨, 아피아의 목숨 두 개 빚졌다. 셈. 맞지 않다.”

“원수는 두 배로 은혜는 그 몇 배로 갚는다. 저희 얼음 사자 부족의 율법이에요. 이건 저희들의 긍지와 명예와도 관련된 일이니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거참. 인생 피곤하게 사는군. 벨로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계속 거절한다면 언제까지라도 저렇게 있을 것 같았다. 리쿠라면 몰라도 아피아는 환자였다. 따스한 모닥불을 쐬면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알았으니 어서 일어나시오.”

씨익 웃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아피아가 리쿠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윽.”

아까의 복수인 듯했다. 아픈지 그녀는 손을 휘휘 젓다가 말했다.

“비장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의 저희들로서는 몸으로 때우는 것 말고는 해드릴 게 없어요. 사정이 좋지 않거든요.”

아피아가 멋쩍게 웃었다. 벨로크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설산 너머에 산다는 북부 야만인. 그것도 남매 둘이서 왜 이 먼 곳까지 왔겠는가? 그가 말했다.

“고향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정답이었는지 아피아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우려다가 후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들이라면 믿고 말 할 수 있겠죠. 맞아요. 저희는 사실 고향에서 도망쳐왔어요.”

도망이라니 악마들의 손길이 대설산까지 뻗어왔단 말인가.

“괴물 때문인가?”

바트릭이 끼어들었다. 아피아가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우리 부족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지하의 족속들과의 혈투는 명예로운 일. 우리들은 죽어서도 어머니의 곁으로 가서 영면을 취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좀··· 더럽고 추잡한 일이죠.”

일그러진 아피아와 리쿠의 표정. 그리고 벨로크가 그동안 겪어왔던 이 시대의 보편적인 통념을 적용하면 답이 금방 나왔다.

“권력다툼이군.”

아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출신이신 분은 역시나 다르시군요. 맞아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빨, 대족장 자리에서 밀려난 군타까지. 명예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들이 차기 대족장을 죽이고 저와 오빠까지 죽이려 들었죠. 우리들은 겨우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반역이 실패하면 반역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교수대뿐이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그들은 새로운 권력의 축이 되는 것이었다. 아피아와 리쿠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셈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화린이 망설이면서 물었다.

“저기 이빨이란 것은 대체···”

“전사들, 서열이다. 대전사아래, 열두 이빨 있다.”

리쿠는 본인을 첫 번째 이빨이라고 소개했었다. 대전사 아래의 제일가는 전사였단 말이다. 듣고 있던 바트릭이 다시금 술잔을 입에 대며 말했다.

“거 자네들도 만만치 않은 일들을 겪어왔구만··· 그래서 지금 추적자들을 피해 요정 왕국까지 가려는 건가?”

“우선은 살기 위해 그들의 피하려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대전사를 찾아가려는 게 가장 큰 이유에요. 아둔 리메르. 나스 밀림으로 수행을 떠났던 그 분이 돌아오시기만 한다면 그 반역도 무리들을 징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으···으으윽.”

말을 하던 아피아가 돌연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자신의 하복부를 매만졌다. 어인에게 겁탈당했던 상처였다. 포션으로 외상 대부분은 치유했다지만 내상은 깊게 남아있는 듯했다. 리쿠는 그녀의 몸을 덮고 있는 모포를 고쳐주며 얼굴을 굳혔다.

“원래라면 대전사 찾아.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피 상태. 너무 안 좋다. 그래서 일단 요양할 생각이다.”

세 사람을 따라 곧바로 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렀다가 간다는 얘기였다. 아피아는 바닷가 쪽으로는 눈도 주지 않은 채, 덜덜 떨리는 몸으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때의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녀가 말했다.

“벨로크님. 은혜를 곧바로 갚지 못하는 걸 양해해 주세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반드시.”

괜찮다니까 그러네. 벨로크는 그들을 잠깐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배낭을 뒤져 양피지와 잉크통 펜을 꺼내 들었다. 이윽고 양피지를 무릎에 대고는 유려한 필체로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그가 종이를 남매에게 건네주었다. 아피아가 그것을 읽어내렸다.

“기사 벨로크 하이네의 이름으로 이들의 신원을 보증한다. 받는 사람은 베로니카 로벤?”

아피아가 종이를 든 채 물었다.

“이건··· 신원 보증서처럼 보이는데요? 이걸 왜?”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은 이제 끝장났소. 많은 사람이 죽고 영지의 기반 시설 자체가 박살 났으니까. 그들은 이제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항구로 떠나겠지. 그리고 그곳은 로벤이 될 테고.”

아직도 영문 몰라하는 두 사람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들도 그곳으로 가시오. 요양을 취하려면 이곳보다는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도시가 나을 테니까.”

대륙에서 천대받는 야만인들이라고 하여도 베로니카는 벨로크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거절하지는 않으리라. 아피아는 그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벨로크님 말씀은 감사하나 저희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몸을 추스르는 대로 바로 나스밀림으로···”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 네 명에게 진실을 말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가 꺼져가는 불씨에 장작을 휙 넣으며 말했다.

“요정들은 지금 인간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소. 갈 곳이 못 된다는 뜻이지.”

“뭐, 뭐라구요?”

“시벌? 형씨!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느닷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소식이 들려오자 화린과 바트릭이 술을 푸 뿜으며 외쳤다. 그들 역시 요정왕국이 있는 나스 밀림이 목표였으니까.

초인적인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해낸 벨로크는 자신의 내면 속 시스템 창이 알려주었던 정보를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요정들 사이에 원인 모를 전염병이 퍼졌소. 치사량도 높고 그 범위도 무척이나 광범위하다더군.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오. 게다가 전염병을 퍼트린 원흉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더군.”

이건 그 나름대로 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선의였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가? 자네가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피어나는 불안감 아래 바트릭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잘 생각해보시오. 요 몇 달간 대륙 어딘가에서 요정을 본 적이 있소? 그들의 숫자가 갑자기 확 줄어들지는 않았냐는 말이오.”

“그, 그러고 보니까··· 요사이 그 건방진 귀쟁이 녀석들을 본 적이 없어! 왕국 남부에만 오면 버글거리는 놈들이 그놈들이었는데 말이야!”

“저도 몇 달 전. 용병 일을 할 때. 피부에 반점이 나있는 요정을 본 적이 있어요. 안색이 나빠 보였죠. 고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해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꺠달은 듯 바트릭과 화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벨로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믿으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소. 다만 나는 이러한 소문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오. 조심하라는 뜻이지.”

벨로크의 한 마디는 네 사람의 마음속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지나가듯이 툭 내뱉었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저 말은 진실이다. 괴물 수백 마리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으며, 끝끝내 악신과도 마주했던 전사의 말은 황금보다도 무거웠으니까.

“Damn···”

“아···”

리쿠가 욕설을 내뱉으며 머리를 짚었다. 아피아 역시 얼굴을 우울하게 물들였다.

두 사람은 선택을 해야 했다. 자신들 부족의 미래 혹은 반역자들에 대한 복수를 우선시할지. 아니면···

“벨로크님 이거···”

결심한 아피아가 벨로크에게 추천장을 되돌려주려고 할 때. 리쿠가 그것 잡았다. 그는 추천서를 조심스레 품 안에 넣더니 벨로크에게 말했다.

“고맙게, 잘 쓰겠다. 우리 로벤으로 돌아가겠다. 가서 몸 추스른다. 베로니카 돕겠다.”

“Riku···!”

아피아가 소리쳤다. 하지만 리쿠는 그녀의 모포를 조심스레 정돈해주며 눈을 빛낼 뿐이었다. 의무보다 제 혈육을 더 우선시하겠다는 뜻이었다.

“흐으으··· 흐으으!”

아피아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자신 때문에 발목이 잡혀 비참해서 울었고, 몸이 아파서 울었다. 마지막으로 오빠의 마음씨에 감동해서 울었다. 벨로크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모닥불에 꽂혀있던 육포를 다시금 뜯었다. 술도 마셨다.

마냥 선의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저들은 자신에게 은혜를 입었고 이를 갚고자 했다. 하지만 아피아의 몸을 추스를 때까지는 이 섬에 남아있겠다 했으니 데리고 가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베로니카에게 보내면 된다. 전란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그녀는 큰 곤란에 빠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저 남매가 힘을 보태준다면 필시 큰 도움이 되리라.

‘이용해 먹는 건가?’

벨로크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냥 술이나 마셨다. 자신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 남보다는 나를 더 우선시하고, 가까운 사람과 덜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더 우선시하는··· 평범한 인간.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만 실례한다.”

얼굴이 퉁퉁 부은 아피아를 안아 올린 리쿠가 자리를 떠났다. 모닥불에는 벨로크와 화린 바트릭 세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화린이 말했다.

“벨로크씨는··· 이 사실들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요정왕국으로 향하시려 했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연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의 얼굴은 다시금 본래의 색을 되찾아있었다. 취기가 싹 가신 것이다. 그는 착 가라앉아있는 화린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내 개인적인 궁금증의 해결과 전쟁을 막기 위해서.”

바트릭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쟁을 막는다니··· 어떻게? 보아하니 자네 혼자서 가는 것 같은데."

벨로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방법 좀 알고 싶다.

"일단 가서 부딪쳐 볼 생각이오. 상황을 둘러본다면 뾰족한 수가 생기겠지."

그 뻔뻔함 혹은 대범함에 화린과 바트릭은 잠시 그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두 사람은 피식 웃었다. 그의 무력을 떠올린 탓이다.

"뭐, 벨로크씨 정도라면 진짜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나 자네는 제정신이 아니야. 난 이해가 안 되는군."

바트릭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릴 때. 화린이 끼어들었다.

“저는 어릴 때 괴물들에게 가족들을 잃었어요. 아빠, 엄마, 남동생, 제가 보는 앞에서 무참하게 죽어 나갔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침대 밑에 숨어 무력하게 가족이 살해당하는 걸 볼 수 밖에 없었죠."

그녀는 조금 뜬금없이 치고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비극적인 개인사였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지는 얘기이긴 했다. 어두운 밤바다와 미약한 달빛이 여인의 얼굴을 처량하게 비추었으니까.

벨로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전란과 혼란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제 나름의 굴곡을 영혼 깊이 새기고 있었다.

“어, 어이···”

바트릭은 당황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화린은 양팔로 무릎을 감싼 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한 번 정리되었던 감정이 음울하게 빠져나왔다.

“다행히 어느 마음씨 좋은 중년인에게 구함을 받았어요. 격투술도 그분께 배운 거죠. 이다음 이야기는 별 게 없어요. 나스 밀림에는 제 은사께서 사범으로 계시는 무투관이 있고, 저는 그들이 걱정되어 찾아가려는 것 뿐이에요. 악마니, 괴물이니. 요즘 시국이 뒤숭숭하니까요.”

화린은 걱정스런 얼굴로 술병을 집었다. 이윽고 병나발을 불었다.

“그런데 이제는 요정들까지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니··· 그곳까지 가는 길이 더 힘들어지겠네요.”

화린은 바트릭을 슬쩍 쳐다봤다. 담긴 감정은 명확했다. 자신의 목적을 밝혔으니 그도 밝히라는 뜻이었다. 난쟁이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자기 수염을 헤집으며 말했다.

“나는 남들처럼 거창한 소명 의식이니 복수니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세. 그저··· 욕심이야. 그래, 탐욕.”

난쟁이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불길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이 아닌, 감춰져 있던 감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난쟁이 유물들을 찾아다니고 있네. 다른 난쟁이들이 망치니 모루니 쥐고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릴 때. 나는 땅굴을 헤집으며 잊혀졌던 선조의 지식들을 탐구했지.”

그는 옆에 놓아두었던 머스킷을 사랑스럽게 만지작거렸다.

“나스 밀림에는 오래된 유적지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던전들이 즐비하다더군. 그 속에는 난쟁이 유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 또한 존재해. 나는 다행스럽게도 신빙성 높은 정보를 얻었고 그 위치 또한 알지. 그렇다면 뭐가 남았겠는가? 가서 그걸 파내기만 하면 그만이야. 그렇다면··· 나를 무시했던 그 새끼들한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무시? 누구로부터? 동족으로부터? 괴짜 취급을 받는 건가··· 결의를 다지는 두 사람을 보며 벨로크가 말했다.

“따라오겠다는 이야기로군.”

바트릭이 피식 웃었다.

“이봐. 내가 애야? 나는 자네를 따라가는 게 아니야. 그냥 서로 간에 가는 방향이 같을 뿐이라고.”

화린 역시 베시시 웃었다.

“저는 웬만하면 벨로크 씨와 같이 가고 싶어요. 옆에 있으면 안전할 것 같거든요.”

“이 아가씨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뭐가 되긴요. 허세 부리는 난쟁이가 되는 거죠. 그 폭탄이라는 것하고 총? 그게 없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시벌. 말 다 했어?”

쫑알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벨로크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각자 가는 방향이 일치할 때까지만 동행합시다. 다들 어서 자두시오.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할 테니까.”

화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에 구조해낸 생존자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저, 벨로크씨. 우리가 저들의 목숨을 구해준 만큼 요정왕국까지는 데려다줄 것 같은데··· 곧 바로는 무리지 않을까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요.”

이웃이 산채로 찢겨나가고, 아내와 자식들마저 살해당했다. 배를 몰 줄 아는 선원들은 다들 그 기억을 잊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이를 추스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리라. 하지만 벨로크는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들어 올려 보였다. 해신의 영혼이 담겨있는 수호부였다.

“걱정 마시오. 다 방법이 있으니까. 선박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그곳에 도착할 것이오.”

“엉? 또 무슨 요술을 부리려고?”

의아해하는 바트릭과 화린을 뒤로한 채, 벨로크는 모포를 깔고 누웠다. 내일부터는 강행군이 될 테니 쉬어둬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일행은 입을 쩍 벌렸다.

“젠장···”

“이런 걸 타고 간다고요?! 이건 좀···”

수면에서 헤엄치고 있는 지느러미를 보며 내뱉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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