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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동굴
아무렴요. 나의 주인님. 칼라의 속삭임을 뒤로한 채, 벨로크는 고개를 돌렸다.
[끄으으으으! 이, 등신 같은 놈들아! 뇌까지 소금기에 절여져 버린 거냐! 대체 누구 말을 듣는 거야!]
[네놈들은 자랑스러운 뱃고동호의 선원들이다! 정신 차려라!]
선장모를 쓴 망자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칼라가 중얼거렸다.
‘제가 방금 행한 일은 저 망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맹목적인 고리를 끊고 그 자리에 저를 새겨넣은 것입니다. 허나 자기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무지렁이들과는 달리 저들의 정신은 꽤나 온전한 모양이군요.’
쪼렙들은 제압이 가능한데. 한가락 하는 놈들은 안 된다 이거지? 벨로크는 칼라의 권능을 단순하게 함축시켰다.
‘그러니까 격의 차이가 심할수록···’
칼라는 뭐라 입을 열려다가 그냥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벨로크는 그녀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망령 선장을 향해서였다.
[감히 내 선원들을 강탈해가다니! 너. 삿된 힘을 사용하는 인간! 너에게 바다의 저주를! 노르드님의 저주를!]
망령 선장이 칼을 휘둘러왔다. 벨로크는 이를 가볍게 피하고는 놈의 목을 틀어쥐었다.
“네놈들이 잡아 온 인간들을 어떻게 했지? 어디에 있나?”
[크흐흐. 내가 말할 것 같으냐!]
그래, 순순히 들을 것 같지는 않았지. 망자니까 고문도 안 통할 테고. 벨로크가 손아귀에 힘을 줄 때. 어느새 다가왔는지 칼라가 말했다.
“주인님의 명이다. 하찮은 것아. 바른대로 답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선장은 컥 소리를 내더니 몸을 떨었다. 어둠에 물든 타락한 영혼이 그보다 더한 어둠을 만나자 굴복한 것이다. 놈이 말했다.
[이곳을··· 넘어가면 바로 의식의 제단이다. 인간들은 거기에··· 해신님의 부활을 위한 제물로···]
망령 선장의 목이 뚜둑 부러졌다. 녀석의 두개골에 십자검이 박혔다. 벨로크는 검을 휙 털면서 말했다.
“서둘러야겠소.”
세 사람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난쟁이가 엎드려 있던 해골을 텅 걷어차면서 말했다.
“시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형씨 덕분에 살았구만 게다가 이 녀석들··· 형씨의 명령을 듣는 것 맞지? 그렇다면 이놈들을 이용해서 물고기 놈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는 거 아닌감?”
뭐. 시발. 내가 네크로맨서냐? 하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확실히 일이 쉬워지겠는데··· 벨로크는 과도한 힘을 끌어낸 여파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칼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영체는 아까전보다 한층 더 투명해져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이들의 심령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의 원래 주인이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간의 꼼수를 부려 그 틈새를 파고든 것 뿐이구요. 그러니까···”
“짧게.”
“이들은 곧 원래의 정신을 되찾고 다시 산자를 향한 증오심을 불태우거나 뼈 무더기로 돌아갈 겁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군.”
좋다 말았네. 두 번째 직업은 물 건너간 건가? 그가 머리를 긁적일 때. 후드 아래 칼라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나의 주인이시여.”
벨로크는 칼라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죽였던 마녀가 느닷없이 몸속에서 튀어나와 주인님. 부르짖는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도 시스템 창에서부터 파생된 힘이 아닌가? 영혼마저 속박당한 것인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나? 벨로크는 잠깐 생각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칼라. 길을 열어라.”
“기꺼이···”
꾸벅 고개를 숙인 그녀가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이윽고 제 무기를 꼬나쥐고는 배의 무덤을 난폭하게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악!
수 천의 망령들이 일으키는 파도는 소름이 돋으면서도 감탄을 자아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편이 든든했다. 그들은 갑판을 휙 타고 넘어가 일행을 노리던 심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쿠우우우?
느닷없이 같은 편이 달려들자 녀석들도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곳 몸 전체에서 격통이 느껴지자 심해어들은 거칠게 저항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지느러미라도 한 번 휘두르면 수십의 망자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아귀 때처럼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공포와 고통이란 감정이 결여된 괴물들이었으니까.
기기긱기기긱
비늘 아래에 칼을 꽂고, 녹슨 배를 움직여 작살을 쏘아냈다. 그도 안 되면 이빨과 손톱으로 질질 매달리기까지 했다. 심연의 물고기들은 결국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일행은 그 틈에 이 무덤가를 헤쳐나갔다. 망령들이 몸뚱이로 빚어낸 다리를 타고 말이다.
“염병··· 왜 미치광이 마법사들이 사악한 주문에 손대는지 알겠군.”
소름이 돋는지 난쟁이는 수염을 떨어댔다.
“저들의 행위에는 그 어떠한 신념이나 정의도 없어요··· 그저 원망과 살의 증오심만이 가득해요···”
화린 역시 무참한 살육의 현장을 질린 얼굴로 보다가 화들짝 놀라 벨로크를 쳐다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경험치가 안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죽이지 않으면 인정 안 해준다 이거냐? 좋다 말았군. 허나 화린은 이 뜻을 잘못 알아차린 건지 양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베, 벨로크 씨를 나쁘게 본 게 아니에요! 벨로크 씨가 아니었다면 우리들이 저 꼴이 났을 테니까요. 사악한 힘이면 뭐 어떤가요. 쓰는 사람에 따라서 그 힘이 정의가 될 수도 있는 법이죠!”
“그 표정부터 풀고 얘기하지 그래?”
“제, 제가 뭘요?”
“아니, 얼굴이 붉어진 것 같아서.”
“바트릭씨!”
화린이 소리치자 난쟁이는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뭐 사령술 좀 쓰면 어떤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부활시킨 것도 아니잖나?”
두 사람은 혐오감, 공포, 거부감 등을 얼굴에서 싹 지워냈다.
“Diablo···”
하지만 리쿠는 아니었다. 그는 애써 표정을 풀고는 있었지만, 못내 꺼림칙하다는 얼굴이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대자연의 뜻을 따르는 전사의 사고방식에는 맞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근데 니들은 날 얼마나 봤다고 그렇게 생각하냐? 벨로크는 시큰둥한 그들을 바라봤다. 그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가진 믿을 수 없는 힘과 잔인한 손속 때문에 그를 두려워한다. 거기다가 사령까지 다뤘으니 꺼림칙하게 바라봐도 할 말 없었다. 하지만 저 둘의 얼굴에는 그것이 안 보였다. 정말이지 또다시 특이한 인연들을 만들어버렸다.
“부디 가시는 길에 무운을···”
네 사람은 동굴 바닥에 발을 디뎠다. 벨로크가 뒤를 돌아봤다.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칼라의 몸이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힘이 다한 것 같았다. 그녀는 손짓으로 망자들을 바닷속으로 처박고는 고개를 숙였다.
사라지는 칼라를 뒤로한 채, 네 사람은 다급히 움직였다. 역시나 종유석들이 가득한 넓은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특이한 점은 일자로 된 통로 곳곳에 구멍들이 뻥 뚫려있단 거였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아아아아!”
“흐으으. 흐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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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성이었다. 괴상한 울부짖음도 같이 섞여 있었다. 일행이 얼굴을 굳혔다. 그들은 어인의 특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니까.
“이 발정 난 물고기 새끼들이···”
머스킷을 꽈악 쥔 바트릭이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탕 소리가 울리더니 다시 밖으로 나온 그의 등에는 전라의 여인이 업혀있었다.
물론 화린과 리쿠 벨로크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도 구멍으로 들어가 괴물들을 도살하고는 핍박받던 여인들을 구해냈다. 망토를 깔고 생존자들을 눕혀보니 그 숫자가 열은 넘어갔다.
“흐흐흐흐···”
“아파, 아파요···”
괴물이나 악귀들의 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실성한 듯 눈동자는 멍하니 풀려있었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나 하복부 쪽에는 푸른 색깔의 끈적한 무언가가 잔뜩 묻어있었다.
“시발... 이 꼴 만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고개를 돌린 바트릭이 침을 퉤 뱉었다. 리쿠는 애매한 표정이었다. 여동생이 이곳에 없어서 안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슬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놔두고 갈 수는 없어요. 혹시나 괴물들이 습격해오면 다 죽을거라구요!”
화린이 여인들의 몸에 포션을 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을 다 챙길 수는 없네. 잊었나? 우리들은 해신인지 뭔지 하는 놈의 부활을 저지해야 하잖나!”
악신이 부활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고작해야 여인 열 명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둔 채, 희생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것도 이미 한 번 구하고 다시 버린다니··· 화린이 망설일 때. 바트릭이 후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자네의 그 착해빠진 심성은 좋아지지를 않아. 옆에서 보기만 해도 내 명줄도 같이 줄어드는 느낌이라고.”
그가 여인 한 명을 업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지. 내가 이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준 후에 따라가겠네. 어떤가?”
벨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이 분산되는 것은 조금 그랬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래,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겠지.
“조심하시오. 잔당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고마워요. 바트릭씨. 내 억지를 들어줘서요.”
화린이 안심하자 난쟁이가 피식 웃었다.
“아니, 난 늘 최선의 행동을 할 뿐이야. 저 비린내 나는 놈들을 잡는 데는 나보다도 자네가 더 적임자니까. 게다가···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병자 몇을 옮기는 게 더 쉬운 일이지.”
거, 틱틱대기는. 일행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난쟁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휙 던져주었다.
“참. 이것을 가져가게.”
코르크 마개처럼 생긴 스펀지 두 쌍이었다. 화린이 물었다.
“이게 뭐예요?”
난쟁이가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안에 들어가면 필시 괴물들이 우글거리겠지. 우리들이 지금껏 만나온 놈들도 있을 테고, 새로운 놈들도 있을 거야. 그중에서 제일 위험한 놈을 꼽으라면 역시나 그 노래 부르는 년 아니겠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무것도 못 하고 인형처럼 끌려가 버릴 테니까.”
인어의 노래에 저항하기 위한 귀마개라는 뜻이었다.
“이런 건 언제 또 준비하셨대? 그나저나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화린과 리쿠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귀마개를 꼈다. 벨로크는 베로니카가 준 수호부가 있으니 거절했다. 난쟁이는 여인을 등에 업으면서 말했다.
“시도는 해봐야지. 뭐, 소용없으면 저 형씨가 구해주길 손가락 빨면서 기다려야겠지만···”
화린은 그의 말을 못 들었는지 멍한 표정을 짓다가 그냥 웃었다. 이윽고 세 사람은 낑낑거리는 바트릭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 일행은 넓은 공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옆으로 석주 기둥이 놓여있고 끝자락에는 제단이 놓여있는 신전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기둥을 따라 주르륵 놓인 횃불들이 사뭇 음침하다. 여기에 산호초와 암모나이트 문양의 장식품이 그 기괴함을 더했다. 예상대로 안에서는 끔찍한 의식이 한창이었다.
므라오오오
놀드!놀드!
어인, 인어, 거인 등. 지금까지 마주쳤던 괴물들 수백 마리가 제단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올리고 있었다. 돌로 된 제단 위에는 구부러진 칼을 든 어인 주술사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 괴물들의 밑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라의 몸뚱이가 된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몇몇 여인들의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단 것이었다.
[*&$#%[email protected]]
주술사가 양팔을 펼치며 뭐라 소리쳤다.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공동을 강타했다. 그러자 정신을 못 차리던 여인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윽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던 여자들이었다.
“아아아아악!”
그녀들의 비명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돌바닥을 벅벅 긁어댔다. 하지만 비린내 나는 괴물들은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주문을 외울 뿐이었다. 부욱 가죽 찢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주문이 멈췄다.
“끄르르륵···”
여인들의 배가 터지고 내장이 비산했다. 그 안에서는 작은 물고기들이 애벌레처럼 튀어나왔다. 괴물의 아이를 밴 여인의 최후가 눈앞에서 재현된 것이다. 씨받이가 된 여인들은 그렇게 배가 터져서 죽었고, 수컷들은 산채로 심장이 도려져 나갔다.
주술사들은 제단의 끝에 세워져 있는 기괴한 우상에 심장과 피를 바쳤다. 선혈과 살점이 덕지덕지 묻을수록 우상은 기이한 빛을 흩뿌렸다.
우우우우우우!
라비니쿠!와칸타!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대양인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실핏줄이 새겨진 눈동자는 환희에 가득 차 있었으며 입에서는 연신 침을 튀겨댔다. 마치 즐거운 축제를 보는 듯했다.
비인간적인 살육의 현장이었다. 마치 인간성 그 자체를 상실한 것만 같았다. 아니, 이것은 인간들만의 잣대이니 놈들은 그들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한 것일 뿐이리라. 이것이 인간과 악귀가 공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고고헨로!
그렇게 한 차례 의식을 마친 주술사들이 또다시 손짓했다. 그러자 괴물들이 어디선가 또 다른 인간들을 끌고 왔다. 압도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기에 반강제적으로 이를 시청한 벨로크를 빼고 막 괴물들의 전당에 도착한 리쿠와 화린이 눈을 부릅떴다.
“···!”
제물들 중에 주황 머리의 야만족 소녀가 끼어있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그녀의 상태에 눈이 갔다.
머리는 잔뜩 풀어 헤쳐져 있었고 역시나 온몸에는 상처와 함께 끈적한 무언가가 가득했다. 눈이 돌아버린 리쿠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Aaapiiiiaaaa!!!”
끼이익?
고개를 돌린 어인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깨져나갔다. 그럼에도 힘을 잃지 않은 리쿠의 도끼는 옆에 있던 다른 놈들의 상체도 분쇄시켰다. 하지만 괴물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대비하고 있던 모양새였다.
아-아아아아!
아름다운 얼굴에서 흉측한 인면어의 모습으로 탈피한 인어들이 현혹의 노래를 불렀다. 바다 거인들은 자신들의 무식한 근력을 자랑하며 바위들을 휙휙 던졌다. 어인 들은 그 틈새로 작살을 휙휙 날렸다.
하나같이 병사 수백 명쯤은 일거에 토막 낼 수 있는 강맹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공격들도 분노한 야만인과 격투가, 붉은 갑주를 입은 기사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Donu al mi forton!”
리쿠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제 문신을 매만졌다. 그러자 그의 근육이 울퉁불퉁 커지고 핏줄이 샘솟더니 덩치가 두 배쯤 커졌다. 한순간에 거인이 된 야만인이 제 도끼를 휘둘렀다.
화린 또한 모든 힘을 다 쏟아내려는지 제 비전을 마음껏 퍼부었다. 그녀의 팔과 다리가 현란하게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펑 터졌다. 멀리 있는 괴물들의 몸체가 산산조각났다.
여기에 벨로크까지 가세하자 놈들은 맥을 못 췄다. 거인 수 명분의 괴력을 가진 그의 용력에 길쭉하고 넓은 십자검의 칼날이 더해지자 마치 검의 채찍이 휘몰아치는 듯했으니까.
거인은 큼직하게 토막 나서 바닥을 굴렀고, 그 사이로 어인과 인어들의 내장과 살점이 끼얹어졌다. 푸른 판석이 깔린 공동 바닥은 대양인들이 흘린 피와 비늘이 합쳐져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선박을 습격해 선원들을 납치하고, 종래에는 섬 하나를 통째로 점령해 기괴한 의식을 일삼던 괴물 무리들이 그렇게 죽었다. 그들의 저주받은 육신과 영혼이 다시금 심연속에서 부활할지 혹은 그대로 잠들어버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후우. 후우.”
정리를 마친 세 사람은 제단 위에 놓여 있던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Appia!”
리쿠가 아피아를 흔들었다. 그녀는 약에 취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포션을 마시자 가까스로 눈을 떴다.
“Frato···”
리쿠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를 조심스레 안았고 아피아 또한 그의 등을 끌어안으며 흐느꼈다. 화린은 안심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응급조치를 했다.
“어이! 이봐! 벌써 다 끝냈어?!”
바트릭 또한 통로 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남매의 해후를 잠깐 바라보던 벨로크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인들이 의식을 일삼던 구조물. 기괴하게 솟은 물고기 우상에서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석상으로 다가갔을 때.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듯 아피아가 소리쳤다.
“맞아··· 벨로크님! 그 석상을! 석상을 부숴야 해요! 더 늦기 전에! 빨리요! 제물들만이 아닌, 어인들이 흘린 피로 인해 의식이··· 의식이! 완성되고 있어요!”
진작 말해주지 그랬냐.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벨로크가 다가갈수록 석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거세지고 있었다.
뼛속마저 시리게 만드는 한기와는 좀 다른··· 영혼을 끈적하게 휘감으면서 어딘가로 끌어내리는 듯한 기이한 기운이었다. 그의 육감도 경고하고 있었다. 이걸 가만히 놔두면 결코 좋은 꼴을 못 볼 거라고.
벨로크는 이를 악물면서 땅을 박찼다. 이윽고 온 힘을 다해서 십자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석상에 닿기 직전. 물고기 우상에서 빛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