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물 비린내
끝이 뾰족하고 피막이 달린 지느러미 귀에 20미터는 넘어가는 덩치, 복실한 수염과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초록색깔의 비늘까지. 범선을 조각낸 괴물은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시. 시발. 불칸이여. 저게 대체 무슨···”
“거인···? 아니, 저렇게 큰 놈은 처음이야···”
거인의 머리통은 해무가 끼어있는 하늘까지 닿아있는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난쟁이와 화린이 기겁했다. 허나 리쿠는 아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산산조각난 배를 보고 있었다. 숨소리는 짐승처럼 거칠었으며 도끼를 쥐고 있는 손은 울긋불긋 핏줄이 솟고 있었다. 분노였다. 이윽고 리쿠는 벼락처럼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갔다.
“Aaapiiiiaaaa!!!”
“자, 잠깐! 그렇게 함부로 갔다간···”
“맞아··· 아피아씨!”
머뭇거린 난쟁이와는 다르게 어느새 정신을 수습한 화린은 리쿠의 뒤를 따라 부두로 향했다. 벨로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괴물 놈을 잡아서 얻게 될 경험치, 마음씨 착한 야만인 소녀에 대한 걱정, 이 두 가지의 감정이 혼재되어 그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결국, 남은 것은 오줌을 지린 채, 주저앉아있던 갑판장과 난쟁이였다.
“이, 이런 시발!”
난쟁이는 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인은 바다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놈이 서 있는 바다는 녀석의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이 말은 곧 날개라도 달려있지 않은 이상. 뭣도 못 해보고 수장된다는 뜻이었다.
미친 짓거리 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아니면 하다못해 전략이라도··· 소리치려던 난쟁이는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스산한 기운이 해안마을로부터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는 후 한숨을 내쉬고는 갑판장을 내버려둔 채 뒤뚱뒤뚱 세 사람의 뒤를 따랐다.
별것 없는 인간과 둘이 남는 것보다는 저 괴물 같은 친구들을 따르는 것이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다듬어져 있는 암석 길을 뛰고 다시금 계단을 내려왔다. 부서진 배의 잔해가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바닷가는 이미 붉게 물들어있었다. 거인의 식사 흔적이었다. 그리고 끔찍한 식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녀석은 크흐흐 웃으며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을 집채만 한 손으로 건졌다. 그리고는 과자 털어먹듯 입으로 우겨넣고 오물거렸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피가 주르륵 흘렀다. 빨간 바닷물에 다시금 뻘건 물감이 덧칠해졌다. 마침 태양이 떠오르고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났기에 그 광경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좀 더 끔찍하게 보였다. 하지만 분노한 야만인은 멈추지 않았다.
“Vi! Monstro!!!”
리쿠는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들을 재주 좋게 타고 넘더니 금세 거인의 종아리에 도착했다. 이윽고 부서진 갑판을 발판 삼아 손에 들린 도끼를 벼락처럼 내려찍었다. 거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고통 때문이었다.
[음?]
거인이 고개를 내렸다.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다리를 연신 후려치고 있는 인간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바다에 몸을 던지고 있는 긴 머리칼의 여인도.
[이건 또 뭐야? 섬에 남아있던 놈들인가?]
고통을 짜증으로 바꾼 거인이 흥 콧방귀를 꼈다. 놈은 털이 숭숭한 제 손을 머리까지 들어 올렸다.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하지만 눈이 돌아간 리쿠는 계속해서 도끼질만 할 뿐이었다.
“리쿠씨! 피해요!”
화린의 외침과 함께 거인이 손을 내려쳤다. 아니, 내려치려고 했다. 콰르르릉 소리와 함께 머리에서 느껴지던 뜨거움만 아니었다면.
[마법···?]
흠칫 놀란 거인이 주변을 살폈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 벨로크가 혀를 찼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 꽤나 터프했다. 장소 때문에 힘 조절을 했다고는 해도···
“자네가 한 짓인가?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였어?”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스파크를 보고 옆에 있던 난쟁이가 놀랐다. 새꺄. 지금 그게 중요하냐?
“말을 할 시간에 움직이시오.”
벨로크는 대충 답하고는 허리춤의 검을 뽑고 땅을 박찼다. 아무래도 이놈이 아니면 타격을 주기 힘들 것 같았다. 칼잡이 태생이 다 그렇지. 뭐. 그가 부유물을 밟고 놈에게로 향하던 순간. 여인의 조각상 하나가 날아왔다. 거인이 집어던진 배의 앞머리에 달려있던 선수상이었다. 그리고 그 선수상은 벨로크에게 닿기도 전에 박살 났다.
“흐아아압!”
화린이 공중에서 날린 발차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기행을 선보인 그녀는 공중제비를 돌며 다시금 부유물에 착지했다. 이윽고 다가온 벨로크와 함께 거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저게 사람 새끼들이야? 아, 아니. 그보다 마법사라면 차라리 원거리에서··· 시부럴.”
난쟁이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욕설을 내뱉다가 뒤뚱거리며 바닷가로 향했다. 하지만 육중한 갑옷과 그의 균형감각으로는 도저히 저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하는 짓을 했다. 매고 있는 가방을 뒤적거려 그가 지금까지 수집해온 유물을 꺼낸 것이다.
홈이 패여 있는 기다란 나무 받침대에 손잡이가 달려있고, 뒤편에는 작은 돌 하나가 올려져 있는 물건이었다.
“염병, 남은 탄환도 얼마 없는데···”
투덜거린 난쟁이는 그 요상한 물건에 쇠 구슬을 집어넣고 흑색 가루도 넣었다. 그리고는 어깨에 견착해서 한쪽 눈만 뜨고는 거인을 노려보았다. 좁아진 시야 너머로 파도를 일으키는 거인과 야만인의 모습이 보였다. 리쿠가 막 거인의 집채만 한 손바닥을 피해내고 있었다.
“우어어어!”
리쿠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부유물로 재빨리 옮겨탔다. 이윽고 무방비하게 노출된 놈의 손등에 도끼를 내려찍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거인의 손짓은 피했지만, 녀석이 일으킨 파도는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짠물이 들어왔고 조각난 배의 잔해가 그의 몸뚱이를 찔렀다. 원수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자 리쿠는 피 토하듯 외쳤다.
“Dastardly! 덤벼라!”
거인은 바다 한가운데 오롯이 서서 그를 비웃었다.
[뭐라는 거냐. 야만인. 너희 하등한 종족의 편의를 내가 왜 봐주어야 하지?]
거인은 실실 쪼개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금 발을 굴렀다. 그러자 또다시 수면이 요동치며 폭풍이 몰아쳤다. 압도적인 체급 차가 일으키는 재앙이었다. 리쿠는 또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그를 구한 것은 화린이었다. 그녀는 예의 날쌘 몸놀림으로 오크통이나 상자 등을 밟고 그에게 다가가더니 용케 끌어올렸다.
“괜찮아요?”
“놔, 죽인다! 놈!”
리쿠는 부축한 화린을 거칠게 밀어내고는 다시금 놈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거인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놈은 웃는 얼굴로 세 사람을 보더니 슬쩍 뒷걸음질 쳤다. 발을 디딜 부유물도 없는 바다의 한가운데였다. 게다가 아래가 시커먼 걸로 봐서 아주 깊어 보였다. 녀석이 말했다.
[하하하. 어떠냐? 이곳까지 올 수 있겠느냐? 헤엄이라도 쳐보지 그러느냐?]
“이··· 괴물이!”
빈정거리는 그 말투에 화린이 입술을 씹었다. 리쿠 역시 이를 뿌득 물었다. 오직 벨로크만이 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거인이 붉은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너. 마법사. 사지에 제 발로 기어들어 왔구나. 이제 어떡할 테냐? 하늘을 날테냐? 아니면 이 바다 전체를 얼려 버릴 테냐?]
와하하 웃고 있는 거인을 향해 벨로크가 말했다.
“바로 맞췄다.”
그는 십자검을 한 손에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거인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놈은 제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날아오른다고? 친구들을 버려둔 채, 도망 칠테냐? 오냐.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
“아니, 얼린다고.”
툭 내뱉은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칼라.”
단검에 시퍼런 룬 문양이 새겨졌다. 소름 끼치는 망령의 귀곡성이 파도 소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결국 이게 없으면 안 되는 건가? 그는 단검을 슬쩍 살피다가 휙 던졌다.
칼날의 손잡이가 해수면에 박혀 들었다. 안에 담겨있는 망령의 한기가 넘실거리던 파도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그러자 웃고 있던 거인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녀석은 상반신만 내놓은 채, 빙판 아래의 다리를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이, 이 한기는! 뭐, 뭐냐! 이건!]
뭐긴 새꺄. 스킬 레벨 올린 망령의 칼날이지. 벨로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땅을 박찼다. 바다 거인은 크오오오 소리를 지르면서 제 양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이 얼음을 깨부수고 물속으로 들어갈 속셈이었다. 그때. 탕. 소리와 함께 녀석이 눈을 부여잡았다.
[끄어어어어!]
난쟁이가 쏘아 올린 탄환이었다. 벨로크는 흐읍 숨을 몰아쉬며 검을 꾸욱 쥐었다. 양손에 들린 십자검이 그의 의지에 화답하듯 광채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거인 수명 분은 합친 괴력. 단단한 지면이 주는 안정감. 사람을 꿀꺽꿀꺽 삼키는 괴물에 대한 분노를 이 칼 한 자루에 담았다. 그리고 휘둘렀다.
섬광이 번뜩였고, 바다 거인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물론 크기가 크기인 만큼 한 번에 토막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으로 안 된다면 여러 번 베면 그만이었다.
벨로크는 그것을 행했다. 선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거인은 푸줏간의 고기처럼 팔, 허리, 가슴, 목이 토막 난 채, 빙판길을 굴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거 봐라. 내 힘을 사용하면 이렇게 편하지 않나? 어째선지 내면속의 시스템 창이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벨로크는 미간을 슬쩍 찌푸리고는 검을 휙 털었다. 무언가 놈의 의도대로 놀아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벨로크씨는 전사가 아니셨나요?”
“Ho mia Dio···”
뒤편에서 경악한 얼굴을 한두 사람이 다가왔다. 벨로크는 검을 허리춤에 차고는 빙판에 박혀있는 단검을 빼내려고 했다. 그의 괴력에 힘입어 단검은 손쉽게 빠졌다. 물론 칼날은 엉망이 된 채였다.
다른 걸 구해야겠군. 베로니카가 알면 화내겠는데? 그는 후 한숨을 쉬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혹은 더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오. 아피아부터 찾아봐야 하지 않겠소?”
네 사람은 엉망이 된 바닷가를 다급히 뒤졌다. 그리고 주인 잃은 뼈 목걸이 하나만을 파도 속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
화린은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친 채, 양팔을 내밀며 불을 쬐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모닥불이 만들어내는 음영 때문이 아니더라도 퍽 음울해 보였다.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었다고는 하나 같이 싸우던 동료가 죽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목적지에 도달하기는커녕 요상한 괴물들이 넘실거리는 섬에 고립되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후우 한숨을 내쉬고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문 바깥을 살폈다. 타닥거리는 불씨 소리 너머로 울부짖음. 술병 굴러다니는 소리, 흐느낌. 사람의 슬픔이란 슬픔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소음들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난쟁이가 육포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방음 한 번 오지게 안 되는 곳이구만. 시부럴.”
화린이 난쟁이를 노려봤다.
“바트릭씨.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바트릭이라 불린 난쟁이가 화들짝 놀랐다.
“뭐, 뭐?! 난 그냥 이 집이 존나게 구리다고 말한 거야! 저 친구를 욕한 게 아니라고!”
어찌 됐든 저 울음이 듣기 싫다는 말이잖아. 이 철없는 새끼야. 화린은 말을 내뱉으려다가 제 입술을 툭툭 쳤다. 그녀가 말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었잖아요. 얼마나 괴롭겠어요. 우리가 이해해줘야죠.”
바트릭은 제발 나도 좀 이해해 달라고 말 하고 싶었다. 이 섬은 사방이 절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 바위들에 부딪혀 웅웅 울리듯이 그 소음을 바꾸고는 했다.
그러니까··· 마치 귀신의 울부짖음 같은 괴상한 소리로 바뀐다는 뜻이다. 여기에 가족 잃은 야만인의 절규가 섞여들자 난쟁이는 팔뚝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시벌, 너만 힘드냐? 나도··· 난쟁이는 투정을 부리고 싶었지만, 벨로크, 갑판장. 화린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없이 파이프를 턱 물었다. 이윽고 부싯돌을 툭 튀겨 연기를 뻐끔 피워냈다.
한대 피워물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트릭은 이 침묵을 깰 겸 질문을 던졌다.
“이보시오. 벨로크. 이제 와서 물어보는 건데 당신이 아까 사용했던 그 힘은 무엇이오? 역시나 마법인가?”
벨로크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답했다.
“마법 비스무리한 힘이라고 해두지.”
허나 그의 눈동자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법이면 마법이고 주술이면 주술이지. 그 비스무리한 힘은 또 뭐요?”
벨로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면 마법이라고 알고 있으시오. 설명하기 귀찮군.”
“거, 매정하시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시오? 우리들은 현재 이 섬에 갇혔단 말이오! 조난, 난파! 라고도 부를 수 있겠군. 무인도 대신 괴물들이 넘쳐나는 섬이기는 하지만!”
난쟁이는 씩씩거리더니 다시금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소? 힘을 모아서 헤쳐나가야지! 그리고 그러려면 서로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니요? 손발을 맞춰야지!”
난쟁이의 말이 맞기는 했다. 허나 녀석의 말투가 왠지 띠껍게 들려왔다. 저 난쟁이의 말투가 원래 저런 것도 있겠지만, 어제 술잔을 나누었던 사람이 죽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감상적인 놈이었나? 옛날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동료들은 무사할까? 그는 잠깐 자신에게 되묻다가 말했다.
“능력이라고 해봤자 방금 봤던 벼락, 얼음. 그리고 칼솜씨. 이게 내가 가진 전부요. 별거 없지.”
“별거 없기는 개뿔. 산처럼 큰 그 괴물을 일거에 토막내더만··· 당신이 그저 그런 전사라면 이 세상에 있는 칼잡이들은 다 갓난애기 수준일 거요.”
추켜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벨로크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래서 난쟁이는 뻐끔 담배를 피워올리다가 화린을 쳐다봤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으니. 이번에는 그녀에게 물어볼 참인 듯 했다. 하지만 화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한테 질문하기에 앞서 바트릭씨가 먼저 말해보세요.”
“뭐, 뭘 말이오?”
그녀가 난쟁이의 옆에 있는 배낭을 가리켰다.
“당신이 들고 다니는 그 요상한 물건들에 대한 정체 말이에요.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뭔가를 쏘아내거나 펑. 터지는 것들.”
난쟁이는 자기가 말을 꺼내놓고는 말하기 꺼려진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물품들이 들어있던 배낭을 등 뒤로 숨겼다. 그 모습을 보던 화린이 코웃음을 쳤다.
“하! 남의 비전을 신나게 캘 때는 언제고 막상 자기 패는 또 보여주기가 싫은 건가요? 이봐요 당신! 지금 우리랑 장난해요?!”
“그게··· 음. 이게 좀 복잡해서 말이오. 마, 말한다고 당신들이 아나? 이 위대한 유물들의 작동원리를···”
난쟁이가 말끝을 흐릴 때. 듣고 있던 벨로크가 피식 웃었다.
“폭탄이랑 화승총 한 자루 들고 있는 것 가지고 유별나게 구는군.”
“뭐, 뭣?! 당신이 그··· 그걸 어떻게···”
난쟁이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화린은 폭탄이니 화승총이니 하는 말은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저 시건방진 난쟁이가 당황하자 키득거렸다.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함께 의견을 통일하고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벨로크를 제외하고는 다들 한껏 예민해진 상황이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 순간. 목덜미를 차갑게 스치는 듯. 음침한 목소리 하나가 귓가로 들려왔다.
[바치리라···]
“뭐, 뭐? 뭘 바쳐?”
[그분이 오신다. 그분이 오신다. 그분이오신다그분이오신다그분이오신다그분이오신다]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그 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돌아갔다. 고개를 팍 숙인 갑판장이 광인처럼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