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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40화 (1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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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비린내

화린, 난쟁이, 리쿠. 선실 안에 있던 베릭우드까지 눈동자가 멍해진 사람들은 누구 할 것도 없이 물 위로 몸을 던졌다. 갑판 뒤에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사람들, 멀쩡한 사람들은 두 명뿐이었다. 아피아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외쳤다.

“Fuck! 삿된 노래!”

벨로크는 해수면을 살폈다.

“히히히히···”

“부르신다.날그분이.오.아름다워라.”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헤엄치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벨로크는 그들이 일으키고 있는 물보라의 방향을 살폈다.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한밤중이기도 하고,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눈가를 찌푸리며 안력에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자 보였다. 수면 위로 솟아오른 바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인영의 모습이.

아-아아아아!

동화나 영화에서 흔히 보던 인어였다. 밤바다에 휘날리고 있는 금색 머리칼을 보자니 사뭇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승에서 나온 얘기대로라면 녀석은 인간을 홀려대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놈이 하고있는 행동을 보면 사람들은 곧 물고기 밥이 될 것 같았다.

“Vento!”

아피아는 바람의 주술을 사용해 인어 쪽으로 헤엄치던 사람들을 어떻게든 선박 쪽으로 끌고 왔다. 하지만 그녀의 주술에는 텀이 있었고 인어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결국 시간 벌이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피아는 벨로크를 보며 절박하게 말했다.

“벨로크님! 일단 놈의 위치를 알아야 제가 손을 쓸 수 있어요. 노랫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거로 봐서 쉽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퍼뜩 소리쳤다.

“선장이나 항해사의 방으로 가면 망원경이 있을 거예요! 그걸 사용해서 주변을 둘러봐 주세요. 그리고 놈을 발견한다면 그 방향을 저한테···”

“아니, 그럴 필요 없소.”

“네? 그게 무슨··· 한시가 급하다니까요!”

짧게 답한 벨로크는 내면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몸 주위로 치지직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는 선박과 인어의 거리를 가늠해보고는 검지 손가락을 올렸다. 끝에서 전류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가급적이면 이 힘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 내면속의 시스템 창이 부여한 힘이었으니까. 스탯이야 뭐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제발요! 벨로크님! 오빠를 구해야 해요! 제발···”

그의 몸 주위에서 피어나는 전류를 못 본 것인지, 혹은 별 소용이 없다 느낀 것인지 아피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애원했다. 벨로크는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힘을 모았다. 너무 강력하게 내리친다면 저곳에 있는 사람들은 잿더미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괴물 하나만 죽일 정도의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어렵네. 이거.

“흐하하하!”

그때. 원체 수영 실력이 좋았던 건지. 두건을 뜬 선원 한 명이 인어에게 닿았다. 인어는 미형의 얼굴을 자랑하며 싱긋 웃었다. 이윽고 양손으로 선원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돌연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요정 같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추악한 톱니 이빨을 가진 괴물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냐. 그게 네 본모습이다. 이거지?

“오···오오오.”

그런데도 선원은 좋다고 인어에게 들러붙었다. 인어는 자신의 송곳을 선원의 목덜미에 틀어박았다.

“끄르르륵···”

목의 살점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가고 눈은 고통으로 하얗게 까뒤집어졌다. 하지만 선원은 여전히 히죽거리며 인어를 만지작거렸다. 죽어서까지 매혹에서 풀려나오지 못하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집채만 한 괴물보다 더 두려운 악귀였다.

끼리리-릭

죽어가는 선원을 잘근잘근 씹어먹은 인어는 씨익 웃었다. 피 묻은 주둥이가 씰룩거렸다. 그녀가 먹던 고기를 내던지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으려는 찰나. 별안간 시야가 환해졌다. 이윽고 꽈르르릉 소리와 함께 그녀의 의식은 저 깊은 바닷속으로 잠들어버렸다.

“Fulmo···세상에 방금 그건···”

벨로크가 벼락을 내리쳐 괴물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자 아피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돌아가는 상황을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일순 섬광이 내리친 덕분에 주변이 환하게 보였으니까. 저자는 아무리 봐도 칼잡이처럼 보이는데. 저 힘은 대체···

“헤엄을 못 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오.”

아피아의 경악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벨로크는 오크통이나 기다란 밧줄을 바닷속으로 휙휙 던졌다. 여기에 아피아가 다시금 주술을 펼치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배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자신들이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허억, 허억. 죽어버린 마누라가 저기서 손짓하는데··· 도저히 거스를 수가···”

“이런 시발. 별안간 난쟁이 유물이 보이길래 뭔가 했는데. 뒤질 뻔했군. 잠깐 그보다 내, 내 폭탄들이!”

“감사합니다. 벨로크씨. 그리고 아피아씨.”

“Kapturna···”

사람들은 흠뻑 젖은 수염과 머리칼을 정리할 생각도 못 한 채, 우에엑 토를 하거나 갑판에 드러누웠다. 그 잠깐 사이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줄어있었다. 절반도 채 되어 보이지 않았으니까. 괴물과의 전투에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심연으로 끌려가고.

요정왕국까지의 여정을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이 선박은 불과 며칠도 안 되어 난파선 꼬라지가 나고 말았다. 그렇기에 선장인 베릭우드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는 옷의 물기를 짤 생각도 못 한 채, 십 년은 늙어 보이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돌아간다.”

“어디로 로벤으로?”

베릭우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쟁이가 침을 튀겨가며 항변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마쇼. 난 어떻게든 요정왕국까지 가야 하니까! 나는 뱃삯을 냈소. 거기다가 칼을 뽑아 들고 싸우기까지 했지. 나는 의무를 다했으니. 당신도 의무를 다하시오!”

“베릭우드씨! 생각을 재고해 주세요! 손님들에 대한 신용과 그··· 당신의 재산피해를 생각해서라도···”

무역선이 무역을 못 한다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싣고 있는 짐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하물며 요정들한테만 귀하게 여겨진다는 물품들이라면야 다시 되팔기도 힘들다. 화린은 이를 내세우며 어떻게든 선장을 설득하려고 했다. 리쿠와 아피아 또한 말은 안 했지 같은 뜻이었다.

“후우···”

베릭우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속이 쓰린지 그 숨은 깊고 무거웠다. 하지만 안도감 역시 서려 있었다. 그는 헐떡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듯 주먹으로 쿵쿵 치고는 말했다.

“반론은 받지 않겠소. 난 돌아가야겠소. 지금과 같은 꼴을 한 번만 더 당한다면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젠장. 내 수십 년 물질하면서 해적, 폭풍, 정체 모를 바다 전설들도 몇 마주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끔찍한 괴물들은 난생 처음 본단 말이오!”

어인들이 나타난 것 또한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얘기였다. 이것도 악마들의 출현과 연관이 있는 건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벨로크가 말했다.

“약속이 틀리군. 선장.”

“벨로크경.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보하듯이 말한 베릭우드였지만 벨로크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것은 곧 베로니카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뜻. 로벤에서 영영 발 붙이고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벨로크 역시 그에게 말 안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요정왕국이 인간들과의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것. 무역을 하러 가봤자 좋은 꼴 못 볼 거라는 사실이었다.

허나 그 사실을 밝힌다면 어느 미친놈이 요정왕국까지 가려고 할까? 이들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벨로크는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이기적으로 변모할 수 있는 사내였다. 그는 이 감정을 담아 말했다.

“선장. 나는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자를 좋아하지 않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 그것이··· 조타수도 죽고, 항해사의 몸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돌아가서 재정비를 하는 것이 최선···”

그가 변명할 때. 느닷없이 선실의 문이 열렸다. 이윽고 나무판자 몇 개를 손에 들고 온몸이 흠뻑 젖어있는 선원 하나가 소리쳤다.

“선장! 배 하단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습니다. 아까전의 그 괴물들 짓인 거 같은데···”

선원은 잠깐 말끝을 흐리다가 말했다.

“꼬라지를 봐서 로벤까지 가기도 전에 침몰할 것 같습니다. 정비가 필요합니다.”

베릭우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줌과 동시에 겁박하고 있는 귀족을 보다가 갑판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까지 입은 재산피해들을 생각했다.

죽은 선원들, 용병, 모험가들. 그들에게 보내줘야 할 위로금. 배의 수리비. 다시금 항해를 나가는데 필요할 또 다른 선원들을 고용하는데 필요한 금화. 그리고 내 목숨.

머리가 지끈거렸다. 언제나 맡아왔던 이 짠 내 가득한 공기가 오늘따라 유독 역겨웠다. 이제 진짜 이 짓거리를 때려칠 때가 온 것인가. 허탈하게 웃은 그는 쓰고 있는 선장모를 매만지며 갑판장에게 손짓했다.

“지도.”

갑판장이 지도를 가져왔다. 그는 지도를 살피는 동시에 나침반과 별자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근처에 초승달 섬이라 불리우는 섬이 하나 있습니다. 항구도 없는 작은 섬이지만 포구는 있죠. 게다가 그 땅을 다스리며 지키는 영주 역시 있으니. 멀쩡하기만 하다면 정박해서 배의 수리를 하고, 비어버린 인원들을 새롭게 채워 넣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베릭우드는 벨로크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항해를 계속하려면 저희들은 우선 이곳으로 가야 합니다.”

선장은 어째선지 벨로크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초승달 섬.

위에서 쳐다본다면 완만하게 휘어진 지형이 꼭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섬.

대륙과 나스 밀림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이 작은 섬은 근처를 지나다니는 상선이나 해적선의 보급소 역할을 자처,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금화로 먹고 살아온 곳이었다. 그리고 현재 다섯 명의 인원이 초승달 섬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각각 벨로크, 난쟁이, 리쿠, 화린, 섬의 지리를 안다는 갑판장이었다.

“젠장! 우리들은 손님이라고! 엉? 세상 어느 천지에 손님한테 일을 시킨단 말인가! 이건 법도는 물론, 도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쪽배에서 내려 절벽으로 난 계단을 오르던 난쟁이가 투덜거렸다. 뒤에서 걸어가던 리쿠는 포구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에 정박해 있는 배를 슬쩍 돌아보았다. 배에 남아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아피아가 걱정되는 모양새였다. 뒤에 있던 화린이 툭툭 치자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금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저들, 겁먹었다. 용기 있는 자. 나서야 한다. 이거 명예로운 것.”

“아니지. 그건 명예가 아니라 호구짓 이라고 하는걸세. 자네는 어서 그 삿된 생각을 버리는 게 좋을 것 같군. 왕국 사람들한테 그렇게 시달려놓고도 모르겠나? 그렇게 순진해서야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을걸?”

신랄한 난쟁이의 말에 리쿠는 콧방귀를 꼈다.

“반 토막. 작아서, 그런가? 명예도, 작군.”

“이 야만인 친구가··· 기껏 생각해줬더니 막말을!”

“쉿. 두 사람 다 조용히 하세요. 저희들의 목적을 잊었어요? 정찰이잖아요.”

화린이 핀잔을 주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들은 정찰을 위해 이곳으로 먼저 왔다. 괴물이 없거나 적다면 강행 돌파하고 너무 많다면 몰래 잠입해서 배의 수리를 위한 도구들만 챙겨올 속셈이었다.

갑판장을 제외하고는 배에 있던 인원들 누구 하나 나서려는 자가 없었기에 그들이 나선 것이었다.

화린의 말에 난쟁이는 투덜거리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일행은 귀신처럼 조용해졌다. 다섯 사람은 그렇게 계단을 오르고 돌길을 지나쳐 마을의 초입에 도착했다. 섬의 크기만큼이나 마을 역시 작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니, 정찰하고 말 것도 없이 이 마을은 이미 초토화된 것 같은데? 쥐새끼 하나 안 보이잖아.”

난쟁이의 말에 네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물에 걸려있는 물고기들은 진즉에 썩어빠져 파리를 흩날리고 있었다. 기와를 올리고 회반죽을 쌓아 지은 석집들 역시 해풍에 닳아버린 흔적들만 보일 뿐. 인기척 하나 안 느껴졌다. 마치 사람들만 어디로 증발한 것 같았다.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벨로크는 섬에 들어올 때 느꼈던 기묘한 위화감을 떠올렸다.

바닷냄새는 매섭게 코를 찔렀고 염분 가득한 공기는 촉을 무디게 했다. 게다가 불어닥치는 바람으로 인해 귀 역시 먹먹했다. 한 마디로 이 섬 자체가 그의 감각을 교란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섬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그러한 현상은 더 커져가고 있었다.

결계? 그는 허리춤의 십자검을 슬쩍 매만졌다. 빛이 나고 있었다.

“조심하시오. 아무래도 이 섬은 이미 놈들이 둥지를 튼 모양이니까.”

벨로크의 말에 난쟁이가 기겁했다.

“염병할.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린 지금 사지로 기어들어 온 거야! 지금이라도...”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화린이 외쳤다.

“뭐, 뭐야! 다들 저길 봐요!”

그녀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은 부두 쪽이었다. 네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정박해있던 배가 출항하고 있었다. 세 개의 돛을 전부 다 활짝 편 것이 최고 속력을 내고 있었다.

이놈이? 벨로크의 시각에는 양팔과 입이 꽁꽁 묶인 아피아가 선실에 처박히는 모습, 선원들을 호통치고 있는 베릭우드의 모습도 보였다.

“어? 어? 야··· 야 이! 개새끼들아! 어디가!”

“아피?”

“서··· 선장님?!”

일행이 도저히 고집을 꺾을 것 같지 않자 그냥 버려두고 도망칠 속셈인 것 같았다. 배에 뚫려있는 구멍은? 우릴 속인 건가? 갑판장도 여기 있는데? 그들이 당황할 때. 범선은 유유히 섬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다가 돌연 크게 휘청거렸다.

쏴아아아

배 아래로 이리저리 치고 있는 파도 때문이었다. 이윽고 그 파도는 기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르더니 범선을 쩍 조각냈다.

돛대, 갑판, 선수상,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바닷가로 떨어졌다. 흩날리는 물방울 속. 수면을 가르고 튀어나온 거대한 팔 하나가 보였다.

쿠우우우우

바다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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