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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36화 (13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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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성기사, 마녀, 악마

“커어어억!”

철가면은 피를 울컥 토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는 당황하고 있는 카라와 아델,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탁한 피부의 요정을 보고는 벼락처럼 소리쳤다.

“이, 이단, 이단이다! 이-컥!”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자신의 내장을 찌르고 있던 악마의 피막 날개가 무자비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두터운 중갑주가 쩌어억 찢어지며 그 주인 역시 찢어졌다. 식어가던 핏자국 위에 또다시 뜨거운 선혈이 끼얹어졌다.

이 광경을 만들어낸 이자벨은 히죽 웃고 있었다. 로브와 붕대를 벗어 던진 그녀는 제 육감적인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피가 뚝뚝 흐르는 날개를 입가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끝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선혈을 꿀꺽 꿀꺽 마셨다.

“아, 아아아···!”

악마가 부르르 떨며 환호하자 이를 보고 있던 다른 심문관들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에노오오옥!”

“악마아!”

제일 먼저 행동한 것은 검은 베일을 쓴 여자였다. 그녀는 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몸에 달라붙어 있던 천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쏘아져 왔다.

궤적에 걸린 살점과 돌멩이가 분쇄되는 것으로 보아 무슨 칼날처럼 보였다.

그 속도 역시 대단히 빨랐다. 하지만 이자벨은 슬쩍 뒷걸음질 치는 것만으로 이를 피해냈다. 악귀의 강화된 각력이 순식간에 그들과의 거리를 벌린 것이다.

뒤이어 거인이 휘둘렀던 쇠바퀴 역시 애꿎은 바닥만 찍었을 뿐이었다.

“하아아···”

이자벨은 카라와 아델의 옆에 착지하고는 열기 띤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눈동자에 담겨있는 감정은 역력했다. 허기였다.

“이, 이자벨?”

“이자벨! 물러서라!”

카라가 당황하고 검을 뽑아 든 아델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자벨은 두 사람을 향해 손톱을 휘두르려다가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리듯 제 시선을 심문관들에게로 고정했다. 그녀는 고장 난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배고파, 배고파요. 나, 배고파. 근데··· 동료는 먹으면 안··· 약속했는데.”

그 순간.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렸다.

“감-히 신의 사도 된 자가 악마와 결탁하다니! 이-더러운 배반자아!”

사자탈을 쓴 거인이 거대한 바퀴를 앞세우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를 죽인 이자벨보다 아델에게 더 분노한 듯했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 역시 제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덤비고 있었다. 곱추는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허나 이자벨은 그런 생각 따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섭취한 인간의 피와 살점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시야는 온통 붉었다. 목구멍은 모래라도 낀 듯 까슬거렸다.

그녀는 거스를 수 없는 파도를 타듯 이 욕망을 채우고자 했다. 손대면 안 되는 두 명의 여인들을 빼고.

“흐으···”

비릿하게 웃은 이자벨이 허리춤의 쌍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만큼이나 탁한 녹색빛을 띤 룬검이 그 예기를 뽐냈다.

그녀를 악마로 만들었던 마녀 하르모아가 준 무기. 우레우스의 쌍날검이라 불리우는 이 곡도 들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때마다 그 사이로 독기를 흘려보내는 사악한 마검이었다.

마검을 든 악마는 쏜살같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윽고 제 검을 휘둘렀다.

거인의 차륜과 쌍날 검이 맞부딪쳤다. 번개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 반발력이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허나 비틀거린 거인이었다. 무시무시한 괴력이었다. 하지만 신의 집행자는 물러서지 않고 입을 쩍 벌렸다.

“죽어라! 악마!”

사자탈 안에서 새하얀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성력이 담긴 불이었다. 그 매스꺼운 기운에 이자벨은 날개를 움직여 피하려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같이 달려온 베일의 여인이 주문을 외웠기 때문이다.

“광명이여!”

섬광이 번쩍였고 땅에서 뻗어 나온 빛의 사슬이 그녀의 몸을 사로잡았다.

“끄으으으!”

이자벨은 쇠사슬을 잡아 뜯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인은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입으로는 연신 불을 내뿜었고 손에 들린 바퀴를 무자비하게 내려찍었다. 그녀의 모습은 화염에 휩싸여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땅이 쩍쩍 갈라지는 것으로 보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굉음에 아델과 카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생각은 하나였다. 뒤에 대한 일은 제쳐두고 일단 동료를 구해야 했다..

이를 악문 아델이 제 검을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

“헬레나여!”

부름에 응답한 여신의 불꽃이 검신을 타고 넘실거렸다. 카라 또한 제 지팡이를 내보이며 주문을 외웠다. 아델은 이자벨을 상대하고 있는 두 명의 심판관을 노리는 대신. 카라의 옆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챙. 카라의 목으로 향하던 갈고리 손톱이 튕겨 나갔다.

으으으으

곱추는 꿰매어져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몸을 빙그르르 회전 시켜 땅에 착지했다. 녀석이 자세를 잡기 전 아델이 땅을 박찼다. 그녀는 달려드는 와중에도 기도문을 외웠다. 몸 주위로 성력의 보호막이 생겨났고 천상신의 가호가 육체를 강화시켰다. 아델은 한층 더 강해진 손아귀 힘으로 자신의 칼날을 내려찍었다.

불티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곱추는 이를 막아내거나 피하는 대신. 제 한쪽 팔을 내주었다. 살점이 지지직 타올랐고 녀석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놈은 자신의 목을 보존할 수 있었다.

키이이이

외팔이가 된 녀석은 잠깐 기우뚱거리는 듯하다가 날다람쥐처럼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이 개 같은 놈이!”

더 이상 거슬릴 게 없었기에 아델은 마음껏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속으로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엿같은 놈들을 청소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가 놈을 쫒기전 카라가 아델의 어깨를 탁 잡았다. 지팡이를 내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문이 완성된 것 같았다. 녀석이 아무리 재빨라 봐야 빛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벼락이-읍”

카라가 주문의 마지막 단락을 외우려는 그때. 돌연 그녀의 입이 꾸욱 닫혔다. 덕분에 손에서 피어나려던 뇌전이 푸른 불똥만 튀다가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으으으읍!”

카라는 당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허둥댔다. 그녀의 앞을 다시금 아델이 막아섰다. 이번에는 한쪽 손을 뻗어서 헬레나의 문장 방패를 띄운 채였다. 역장이 쾅 흔들리고 새카만 불꽃이 이에 부딪혔다. 아델은 여전히 정면을 주시한 채, 소리쳤다.

“카라! 진정하고 검을 뽑아라!”

그녀의 호통에 카라는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리춤의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아리안에서 구했던 난쟁이제 무구였다.

잠시 후. 역장을 덮었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주변을 둘러본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떴다. 이자벨에게 토막 났던 철 가면의 심문관이 우두커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에녹이라 불린 심문관은 더 이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잘려 나간 두 다리 대신 상체에서 돋아난 촉수 다발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으르르르르

아델에게 한쪽 팔이 잘려 나갔던 곱추 역시 사라진 팔 대신 촉수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친 짓거리를 일삼기는 해도 사람 새끼들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 아니라 괴물 새끼들이었군.”

철 가면은 몸을 꾸물거리다가 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에는 경전이 쥐어져 있었다. 허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표지가 시커멓고 중앙에 눈알이 하나 나 있었다. 무슨 이교의 흉물을 보는 것 같았다.

“%^*”

에녹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예의 그 시커먼 불꽃이 경전에서 피어올랐다. 카라의 입을 다물게 한 술수도 놈이 행한 것 같았다. 그가 으르렁거렸다.

“아델경. 아니, 이 더러운 지옥의 작부야. 감히 빛의 탈을 뒤집어쓴 채, 악마하고 내통을 일삼는단 말이냐?”

아델은 코웃음을 쳤다.

“아가리 닥쳐라. 이 괴물아. 외양만 놓고 본다면 악마의 똥꼬를 핥고 있는 것은 네놈들처럼 보이니까. 거울을 좀 가져다 주랴?”

두 심문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정곡을 찔린 듯했다. 에녹은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내려 철 가면을 벗었다. 문둥병 환자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씹어뱉듯 말했다.

“감히···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의 숭고한 희생을··· 감히이이!”

그가 경전을 높이 들어 올렸다. 알 수 없는 기괴한 음성들도 다시금 외워댔다.

으르르르라아아아!

이에 화답하듯 눈알이 새겨져 있던 경전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나중에 가서는 톱니 같은 이빨도 돋아나서는 피워져 있던 불꽃의 크기를 점차 키워나갔다. 집채만 했다.

“읍읍!”

달려들던 곱추에게 세검을 휘둘러 놈을 물러서게 한 카라가 아델의 팔뚝을 쳤다. 뭐라도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녀의 갈색 눈이 다급하게 돌아갔다. 이자벨 역시 괴물이 된 배일의 여인과 거인 두 놈과 싸우고 있었다.

아델은 카라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카라의 말대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머리칼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하늘로 치솟고 있었으며. 갑옷을 포함해 목덜미와 뺨에서는 미형의 문자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불의 거인과의 격전을 치를 때. 기절해있었던 카라는 아델이 무엇을 행하는지 몰랐다. 허나 기괴한 주문을 외우던 수도승. 철 가면 에녹은 이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저, 저것은··· 여신의···”

아델은 사람 혹은 정체불명인 무언가의 반응 따위 관심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벨로크가 이따금씩 말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가르침을 떠올렸다.

-아델. 명심해라. 맞기 전에 때려라.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아델은 피식 웃으며 제 손을 꾸죽 쥐었다. 섬광이 피어올랐고 태양이 사라졌다. 이윽고 균열과 함께 나타난 문장검이 수도승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대악마를 상대했을 때보다는 작은 크기였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집채만 한 검은 불꽃을 소멸시키고, 기괴한 흉물인 꿈틀거리는 책 역시 타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던 괴물. 일그러져 있으나 형태는 유지하고 있던 철 가면의 얼굴 또한 검에서 뿜어지는 광채에 진흙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

빛을 받아내고 있던 이단 심문관 에녹은 양팔을 펼치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배교자들을 보은하는 신을 저주하는 말인지. 아니면 죽기 전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고해성사를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성대가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바라던 신의 힘에 의해 타죽었다. 곱추 역시 이에 휘말렸는지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회색빛의 재들만이 나풀거릴 뿐이었다. 헬레나의 빛이 사라지고, 사술이 풀린 카라가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그녀는 심문관이 사용했던 기괴한 주문과 아델이 소환해낸 문장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허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으으음···”

과도한 성력의 사용 때문인지. 얼굴이 창백해진 아델을 부축한 카라가 고개를 돌렸다. 이자벨은 시체들의 틈바구니 위에 털썩 앉아있었다. 아니, 시체 위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아델과 카라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거인과 베일을 쓴 여인은 이리저리 토막 나 있었다. 주변에 흩뿌려진 촉수들로 보아 그냥 검을 휘둘러서 냅다 썰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이자벨은 그들의 몸에서 꺼낸 핏덩이. 심장을 씹어먹고 있었다.

“이자벨!”

“카라! 잠깐!”

아델이 제지하려 했지만 카라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윽고 카라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이자벨은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심장을 씹어먹고 있었다.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했기에 흘리는 자책의 눈물 같았다.

“흐으으으··· 흐으으으으.”

심장의 마지막 살점까지 꿀꺽 삼킨 그녀는 제 얼굴을 부여잡으며 소리 질렀다.

“아아아아아악!”

그 안에는 진한 슬픔이 있었다. 한 번 정리되었던 감정이 다시금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카라는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끌어안으려 했다.

“이자벨. 쉬이. 괜찮아··· 어차피 죽어도 싼 놈들이었어··· 잘한 거야. 잘한 일이라고.”

카라는 어떻게든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하지만 뿔 달린 요정은 마녀의 손길을 조심히 쳐냈다.

“미안해요··· 나···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

이자벨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땅을 박찼다. 피막 날개를 펄럭거린 그녀는 두 사람이 말릴 틈도 없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향하는 곳이 남쪽이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왜,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왜 일이 이렇게···”

카라는 망연자실하게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델은 욕설을 내뱉으며 자책했다.

벨로크가 있을 때는 그녀의 상태가 좋아 보였기에 안심했다. 허나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간 억눌려 왔던 것이 이번에 폭발했을 뿐이었다.

주변에 산재해 있는 잿더미, 식어가는 시신들 만큼이나 입맛이 썼다. 이 모든 광경들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들은 괴팍한 마법사들의 안식처, 지식과 진리의 창고, 카라가 수학했다는 마탑. 라-틸트 학파의 건물에 들어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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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자리를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이 현장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대단한 수련을 쌓았는지 눈에서 연신 빛을 뿜어내고 있는 판금 갑옷의 기사 한 명과 때가 탄 로브를 입고 있지만 역시나 눈동자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노인 한 명이었다.

그는 기괴한 모습으로 죽어있는 거인과 배일 쓴 여인의 시체를 슬쩍 만지고는 쯧 혀를 찼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의 가르침을 믿고 따라야 할 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불경한 모습을 꾀한단 말인가. 이 나라의 미래가 어찌 되려고 하기에···”

로브 쓴 노인을 고개를 젓다가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뿌려져 있는 재를 향해서였다. 노인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한 쪽 손을 재에 담그고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의 몸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온 것도 잠시. 노인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것은···!”

그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당황하자 뒤편에 있던 기사가 다가왔다.

“성자님.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네. 아니, 굉장한 문제가 있군! 이 정도의 성력이라니··· 신의 사도, 아니 그 이상이다. 이분이라면! 이성국에 들이닥친 파국을··· 악에 물든 그 끔찍한 의회를 해산시킬 수도 있겠어!”

성자라고 불린 노인이 흥분하자 기사 역시 눈이 이채를 띄웠다.

“그 말씀은···?”

“성녀의 출현일세. 저스틴경.”

“성녀!”

노인은 굽혔던 무릎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성호를 그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지옥의 권좌들이 이 땅에 강림할 때. 믿었던 천상신들은 침묵하리라. 사람들은 시기 질투에 빠져 죽어 나가고 온 대륙이 피투성이가 될지니··· 지옥이다.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 펼쳐지고 마는 것이다. 허나··· 그림자가 있으면 빛도 존재하는 법.”

“검은 머리칼의 성녀. 계시의 그분이 이 땅에 강림하시니. 대륙을 뒤덮은 암흑을 걷어내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구원자를 자처하시리라.”

성자는 자신의 꿈에서 나타났던 예언을 중얼거렸다. 이윽고 손에 들린 십자가 목걸이를 꾸욱 쥐고는 빛의 자취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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