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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31화 (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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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방법이 있다고? 벨로크는 기대감을 품은 채, 베로니카를 바라봤다. 그녀가 말했다.

“벨로크.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고대신 혹은 위대한 의지라고 불리우는 존재들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다. 그렇지?”

“그렇소.”

“그렇다면 그들에 대해서 그나마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인간보다 오래 살며 더 많은 역사를 남길 수 있는 종족이 있지 않느냐?”

난쟁이는 아니다. 그들은 인간과 비슷한 수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

“요정족을 말하는 거로군.”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귀 큰 생물체들. 어딘가 비틀린 듯하면서도 묘한 구석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 수 백 년의 세월을 거뜬히 살아가는 그놈들이라면 인간들이 남긴 종이 쪼가리나 유적지를 탐사하는 고고학자들보다 더 정확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허나··· 문제가 있다.”

“현재 도시 내에는 요정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그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렇다. 로벤은 바다 건너 있는 요정왕국과 제일 가까이 붙어있는 접경지 중에 하나다. 헌대 요정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인간들간에 전쟁이 벌어져서 몸을 피한 건가? 하지만 난쟁이들은 교역을 위해서 잘만 방문하거늘···”

베로니카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야, 당연하지. 게네들은 지금 인간왕국을 침공하려고 준비 중이거든. 벨로크는 회색 도시에 빠졌을 때. 내면속 시스템이 보여주었던 퀘스트 창을 떠올렸다.

[역병의 진상을 파헤쳐라!]

아드리아 왕국의 남쪽. 바다 건너 나스 밀림의 한복판에 있는 요정왕국. 유구한 세월을 자랑하고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에 정체불명의 역병이 퍼진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습니다. 요정들은 역병의 진상 혹은 그 치료제를 찾기 위해 대륙 곳곳으로 동족들을 파견했지만, 그 실마리조차 잡히지가 않습니다. 요정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현재 인간들의 왕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운이 감돕니다. 대륙에 한바탕 피보라가 불기 전. 플레이어는 요정왕국으로 가 역병의 진상을 조사하고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흑막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흐르는 숲에서 이자벨을 처음 만났을 때 또한 그랬다. 그녀 역시 동족들에게 퍼진 역병의 치료제를 찾기 위해 온 대륙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같이 행동했었지.

아니, 그녀에게 있어서는 악연인가? 죽는 것보다 끔찍한 고통을 겪었으니···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얄궂은 운명의 장난을 느꼈다.

그에게 퀘스트를 툭 던진 시스템 창은 그로 하여금 요정왕국으로 향하라고 명령했었다.

자신은 이를 거절했고 동료들과 동떨어져 홀로 로벤 땅에 떨어졌다.

그로서는 자신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려는 녀석에게 맞서 나름의 저항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놈에 대한 대항법을 찾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지. 헌데···

벨로크는 쓰게 웃었다.

이제는 그 정보 또한 요정들에게 물어봐야 한 단다. 하지만 현재 아드리아 왕국에는 요정들이 없다. 요정왕이 명령을 내렸는지 혹은 동족 의식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말은 곧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스스로가 요정들의 땅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디 저명한 역사학자라던지. 아니면 미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요정들을 찾아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둘 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으며 불확실했다.

그들 간에도 정보의 격차는 존재할 테니까. 지금으로서는 요정 왕국으로 가서 놈에 대한 정체를 캐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

벨로크는 바로 여기서 엿 같음을 느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시스템이라는 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놈이 정한 운명대로, 가이드대로 게임 캐릭터처럼 나아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시발.

그는 고뇌했다. 그냥 전쟁이든 뭐든 상관하지 않은 채,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 은거라도 할까? 그러면 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는 곧 자신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통받은 아델과 카라, 이자벨을 떠올렸다. 그리고 요정들과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침공받게 될 항구도시의 영주와 청년기사 또한 떠올렸다.

모두 다 그에게 있어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벨로크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베로니카가 조심스레 손을 잡아 왔다.

“벨로크. 괜찮으냐···? 얼굴빛이 안 좋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너한테는 엄청 중요한 일인가 보구나··· 내 사람들을 풀어보겠다. 조금만 기다려다오. 곧 답이 나올 것이다.”

새하얀 장갑을 낀 손 너머로 그녀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따스한 열기였다. 웃기게도 벨로크는 바로 거기서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그녀를 사랑한다던가 하는 그런 마음은 아직 아니었다.

허나, 이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거면 충분했다. 놈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이유에 그것만 더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벨로크는 베로니카를 슬며시 껴안았다. 느닷없이 낯선 세상에 떨어지고, 정들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등. 쌓여만 갔던 고독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당황했는지 그녀는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베, 벨로크?!”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떠날 때가 온 거 같소.”

“···”

베로니카로부터는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심장 고동 소리가 점차 커져가고 있다는 것. 굳어있던 몸이 부르르 떨린다는 것. 코와 입에서는 연신 거친 숨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벨로크의 가슴께를 탁. 치고는 냅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드레스 자락을 흩날리는 그녀의 뒷모습 사이로 투명한 실선들이 엿보였다.

#

“아가씨께서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오고 계세요. 영주의 직인이 필요한 서류들이 한가득 쌓여있는데도 말입니다. 경.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거에요?”

눈 밑에 거뭇한 데비안이 벨로크에게 푸념했다. 그는 베로니카의 방 안에서 물건 깨지는 소리가 연신 울린다. 하인과 하녀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온다며 말을 이었다.

벨로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식탁 위에 놓인 잔을 들어 올려 술을 마셨다. 사과주는 달지 않았다. 씁쓸하기만 했다. 그는 벨로크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다시금 말했다.

“경. 부부싸움을 하시는 것도 좋지만요. 그래도 아랫사람들을 조금은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 정말 힘들다구요. 아가씨는 좀처럼 다른 가신들에게 중역을 맡기지 않으시니까요··· 뭐, 사랑받는 것 같아서 좋기는 한데.”

데비안은 너스레를 떨듯 가볍게 얘기했다. 벨로크는 답하지 않았다. 데비안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엉덩이를 자리에 꼭 붙인 채, 계속해서 잡담을 내뱉었다.

“경. 미인을 울린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얘기도 모르십니까?”

“아가씨가 한 성격 하시기는 하지만··· 경 앞에서는 순한 어린 양 아닙니까? 오히려 반전매력도 있고 좋지 않나요?”

“두 분의 문제만 뺀다면 영지의 상황은 순조롭다 할 수 있겠네요. 교회의 잔당들도 다 토벌되거나 도망쳤고, 베이츠와 칸티오 또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같으니까요. 그러니까 언제 화해하실 건데요?”

벨로크가 술에 취해서 속마음을 얘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의 수다스러움에 지쳐서 말을 해주기를 노리는 걸지도 모른다. 새끼. 존나 시끄럽네. 생각할 것도 많은데. 벨로크는 잔에 담겨있는 술을 휘휘 돌리다가 한입에 들이키고는 말했다.

“떠나기로 했소.”

데비안은 잠깐 그의 말을 못 알아듣다가 벨로크의 진지한 표정. 그리고 손에 들린 술잔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로벤을 떠나신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아니, 대체 왜 떠나신단 말입니까? 이제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경을··· 가진 재산은 물론 목숨마저 바치실 정도로 사랑하신단 말입니다. 경은 사실상 이 영지의 주인이나 마찬가지라고요.”

데비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미친놈처럼 보이겠지. 번성한 도시의 주인 자리를 내팽개치다니 말이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베로니카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인듯했다. 가벼운 입담과는 달리 그는 정말이지 충성스러운 젊은이였다. 데비안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경. 다시 한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한 번 따스함에 취했던 자는 그것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어요. 경이 이렇게 떠나신다면, 이번에야말로 아가씨는 무너지실지도 모릅니다.”

벨로크는 굳은 얼굴 그대로 술을 마셨다. 아무런 설명도 안 했다가는 이 청년 기사는 그를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사정을 설명했다.

자신이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는 고대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와 연관되어있다. 게다가 저 멀리 있는 요정들의 왕국에서는 인간왕국으로 향한 전쟁을 준비 중이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막으러 갈 생각이다. 라는 얘기까지.

“···그야말로 영웅적인 행보로군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제가 더 이상 설득할 수가 없잖아요.”

데비안은 후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에 놓여있는 또 다른 술병을 땄다.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보였지만 그가 보여준 무력을 생각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아. 불쌍한 우리 아가씨. 영웅들의 아내는 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던데. 데비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병나발을 불었다. 잠시 후. 끅 트림까지 한 그는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명하신 분이니 분명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는 비틀거리며 출입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나서기 전 한 마디 덧붙였다.

“일이 끝나고 나면··· 돌아오실 거죠?”

“장담할 수는 없소.”

데비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경은···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임과 동시에 나쁜 사람이에요. 왜 여자들은 나쁜 남자들에게 빠져드는 걸까요?”

문이 끼이익 닫혔다. 벨로크는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높은 체력 수치가 맛이 갈 때까지 입에 술을 들이부었다. 허나 정신과 육체 모두 다 멀쩡했다. 마음대로 취할 수도 없는 이 몸뚱이는 자욱한 술 냄새만 풍길 뿐이었다.

염병. 그는 무의미한 짓거리를 한참 동안 하다가 양촛불을 끄고는 침대에 누웠다.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일단 배를 잡아야겠지? 그보다도 전쟁 중인데 요정왕국까지 가는 선박이 있으려나? 베로니카에게도 찍혔는데. 만약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가 생각할 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달큰한 향기 하나가 코를 자극했다.

스으윽 발소리와 함께 향기는 점점 진해졌다. 그 향기의 주인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로크는 양팔로 머리를 받친 채 고개를 돌렸다. 그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푸른 눈동자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입은 얇은 속옷과 맨발까지도. 그가 말했다.

“나한테 실망했소?”

“···”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와 그의 옆에 앉고는 말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배신감과 허탈함 역시 다시금 느꼈다. 마치··· 네가 나를 버려두고 떠났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다.”

“미안하오. 본의 아니게 당신한테 큰 상처를 줬구려.”

스으윽 소리와 함께 어둠이 흔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네가 아니었다면 난 1년 전이든 혹은 몇 주 전이든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미안해야 할 것은 나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는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너한테 부담감을 주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말끝을 흐린 베로니카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이윽고 그의 손을 맞잡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차마··· 요동치는 이 감정을 끊어낼 수가 없었다. 네가 너무 좋다. 너를 너무 사랑한다. 동시에 너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슬프다. 그래, 그럴 수밖에··· 악마에게 순결을 잃은 더러운 년을 그 누가 좋아할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벨로크의 손에 제 이마를 비볐다. 손가가 축축했다. 침대보 역시 금방 물기로 가득 찼다. 벨로크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줄 수도 없었다. 어설픈 위로는 더 큰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베로니카는 한참이나 훌쩍거리며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벨로크를 바라보지 않으려는 듯 몸을 뒤돌린 채 말했다.

“데비안에게 네가 처해있던 상황에 대해서 들었다. 요정 왕국으로 떠나야 한다면서?”

“그렇소.”

“배를 준비하도록 하겠다. 필요하다면 군대 또한 내어주마. 그리고 네 검과 갑옷이 많이 상했더구나. 새 걸로 받아 가는 게 좋겠다. 창고를 뒤져보마. 또··· 뭐가··· 뭘 더 주어야···”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보며 벨로크가 말했다.

“베로니카.”

“···왜 그러느냐?”

“나한테는 이미 세 명의 여인들이 있소. 나머지 둘은 모르겠지만 한 명과는 이미 몸을 섞었지. 그녀와 관계를 맺기 직전에 나는 말했소.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책임질 수는 없다고. 언제 외딴곳으로 떠날지 모르는 이방인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소? 나는 무책임한 한량이자 건달 같은 놈이오. 그리고 당신은 좋은 여인이지. 나는 당신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소. 그러니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사랑···이라고 말하였느냐?”

“음?”

“내가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좋은···여인?”

베로니카의 속삭임에 벨로크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어느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기가 덜 마른 푸른 눈에는 기묘한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벨로크는 조금 당황했다. 그래서 손을 뻗으며 뭐라 말을 하려고 했다. 그는 그러지 못했다. 베로니카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덮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이러라고 검술을 가르쳐준 게 아닌데?

벨로크는 그녀의 입맞춤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방금 말했던 대로 자신이 무책임한 한량 같은 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베로니카의 필사적인 몸짓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히 굶주렸던지···

잠시 후. 베로니카는 입술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자신이 먼저 키스를 해놓고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잔뜩 빨개져 있었다. 그녀는 아까 전 보다 더 횡설수설했다.

“그···벨로크. 이건 말이다··· 내가 잠시, 미쳤···”

“먼저 불을 붙인 건 당신이오.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시오.”

피식 웃은 벨로크가 다시금 그녀의 뺨을 잡아당겼다. 달큰한 향내가 머릿속을 마비시킬 것 같았다. 물망초 꽃의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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