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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17화 (11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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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도시

온통 시커먼 공간 속. 빛나고 있는 숫자들과 글귀들. 그는 자신이 내면 속 세계로 가라앉았음을 인지했다.

제일 먼저 보인건 두 개의 잔여 스탯 포인트였다. 예상대로 두 번의 레벨업을 한 것이다.

그래, 마녀들의 우두머리도 죽이고 괴물도 죽이고 대악마라는 놈까지 죽였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정신력을 찍어서 고갈된 벼락의 힘을 다시 채워 넣을까? 망령의 칼날 또한 이에 영향을 받을 텐데? 그는 잠깐 고민했지만 곧 힘만 두 단계 올렸다.

단순한 이유였다. 불의 거인과의 싸움에서 근력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놈을 상대하기 더 편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사실 지금은 스탯보다도 중요한 게 있었다. 여러 가지 스킬들 옆에 번쩍이고 있는 새로운 힘이 하나 보였다. ‘꺼지지 않는 심장’

벨로크는 재빨리 그 스킬을 살폈다. 하지만 게임시스템 같으면서도 아닌, 이 불친절한 세계는 역시나 아무런 설명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냥 추측할 뿐이었다. 첫 번째 대악마 타락용 아스타로트를 죽였을 때. 벼락의 힘을 얻었던 것처럼. 두 번째 대악마를 죽였으니 그 나름의 보상이 들어왔다고 말이다.

‘꺼지지 않는’ 이란 수식어와 계속해서 신체를 재생하던 악마와의 연관 관계. 벨로크는 뭔가 알 것 같았지만 더 확실한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그는 그냥 스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내면속의 글귀가 화르르 이글거리며 가슴 부근이 뜨뜻해졌다. 심장이 거세게 뜀으로서 생겨난 일이었다. 이윽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칠게 맥동하는 심장에 맞춰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들이 재빨리 가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편안해졌다. 몸속에 흐르는 이 피가. 악마와의 격전으로 조각났던 내장과 뼈, 찢어진 근육들을 어루만지며 다시금 원래의 형태로 재생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체력 수치를 감안하더라도 며칠은 걸렸을 상처의 수복이 이대로라면 몇 시간도 안 돼서 끝날 것이다. 그는 이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이자벨의 것과 비슷한 능력이다. 고등한 악귀들 특유의 죽음도 거부할 수 있는 생명력. 초재생력.

이 말은 곧 더 많이 더 맹렬하게 싸워나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점점 더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 같은데.

벨로크는 그의 생존성을 확고히 해줄 새로운 힘이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찝찝하기도 했다. 앞으로 닥쳐올 고난들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뭐, 지금 고민해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슬슬 나가볼까?

그가 내면세계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시커먼 공간에 쩌적 균열이 일어났다. 이윽고 반짝이던 글귀와 숫자들. 이 모든 것들이 유리창마냥 와르르 깨져 나가며 주변의 풍경들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벨로크의 의식 역시 그 기이한 세계 속을 부유하게 되었다.

촤아아아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시커먼 바닷물들이 가득했다. 그 주변에는 반짝이는 별무리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마치 심해와 우주를 끌어다가 합쳐놓은 듯한 기이한 공간. 벨로크는 끝도 없이 늘어져 있는 이 공간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게 뭔지 알고 있었다. 경계를 다루는 악마. 타락용 아스타로트를처리했을 때. 그는 전투의 여파로 회색빛 도시에서 튕겨져 나와 이 장소를 떠돌아다녔었다.

[차원의 틈. 다른 말로는 경계의 통로라고 한단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벨로크의 시선이 돌아갔다. 별 무리와 어둠의 파도 너머로 무언가가 그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몸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하고 주변에 꼬리 같은 불의 선이 넘실거리는 광원체. 현대인의 관점으로 본다면 수소와 헬륨 덩어리로 이루어진 행성. 아드리아 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자면 태양과 정의를 관장하는 여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셨군.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던 광원체는 곧 꾸물꾸물 줄어들더니 제 모습을 바꾸었다. 2미터 가까이 되는 벨로크가 어린아이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체구를 가진 여인으로 변한 것이다. 쓰고 있는 하얀색 면사포 너머로 주황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신비로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담고 있는 그 눈이 벨로크를 오롯이 직시했다. 그러자 숨이 턱턱 막혀왔다. 불의 거인을 마주했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한 압박감이 몸을 옥죄는 것이다.

염병, 이건 또 뭐야. 첫 번째 만남에서는 이러지 않았다. 아마 저년이 무슨 수를 쓰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이 여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알아챌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이겠지. 그가 이를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헬레나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다. 벨로크. 두 번째 옥좌 역시 아주 훌륭하게 처리했구나.]

그녀의 손길을 따라 하늘거리는 주름 옷 또한 이리저리 나부꼈다. 벨로크는 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주먹을 꾸욱 쥐었다. 그는 그때의 결심을 잊지 않고 있었다. 수틀리면 신이고 뭐고 다 날려버리겠다는 광전사의 마음가짐을. 게다가 싱글싱글 웃고 있는 여신의 얼굴을 보니 없던 분노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투쟁을. 그 발버둥을 그냥 유희 거리 취급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당사자인 그는 그렇게 느꼈다. 시발.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턱을 억지로 움직여 한 마디 내뱉었다.

“어째서요?”

[응?]

“어째서 내가, 여기에 온, 거요?”

[···]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싱글거리던 미소 역시 싹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벨로크는 여신이 뭔가를 알고 있기는 하구나 생각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이번에는 조금 길게 말했다.

“또 세 번째. 네 번째. 같은 회피성 대답일랑 할 생각도 마시오. 나는 내 의문을.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알아야겠소.”

핏발선 검은 눈동자를 헬레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한쪽 팔로 턱을 괴면서 후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대악마를 무찌르고··· 정의를 바로 세우십시오. 네가 선택한 길 아니더냐 벨로크.]

그래, 그랬지. 최고 난이도인 불지옥 모드를 선택해서 악마라는 종족들을 추가하기는 했지. 따지고 보면 내가 대륙에 혼란을 일으킨 주범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건 모니터 밖에서 행한 일이었다. 이처럼 현실감 넘치는 세상이 아닌, 패널 밖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로 딸칵거렸던 행동이었다고. 그가 말했다.

“내가 바라는 답은 그게 아니란 걸 알텐데? 내가 왜 게임 속 세상에 빠진 거냐니까?”

단도직입적인 그 말투에 여신은 다시금 입을 꾸욱 다물었다. 이곳에서는 전지전능한 자신이 한낱 폴리곤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게 아니면 뭔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서?

그는 수천 년 먹은 악마. 노왕이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아주 오래전. 악마와 지상 생명체들 간의 전쟁. 위대한 의지. 전쟁에서 패배해 지하에 유배당한 악마와 업을 쌓아서 승천한 승천자. 뭔가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았다.

“왜 답이···”

[나로서는 말 못 한다. 네가 그분에게 직접. 아니, 그것에게 물어봐라. 하지만... 별 소용 없을 것이야. 오히려 지독한 꼴을 당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여신은 단호한 얼굴로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몸에서 느껴지던 부유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윽고 누군가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강력한 인력 하나가 느껴졌다. 시발. 이건 또 뭐야? 둥둥 떠다니던 벨로크의 몸뚱이가 어딘가로 휙 날아갔다.

불경한 사내에 대한 여신의 벌일까? 어떻게 된 건지. 그는 날아가던 와중 아래에 흐르고 있는 시커먼 바닷물에 얼굴을 푹 처박았다. 물은 뼛속까지 시리고 차가웠다. 이상한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취해 멍했던 정신이 확 깰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예리한 오감. 매의 그것을 능가하는 시력과 이따금 기이한 존재들을 탐지하고는 했던 육감은 물 안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희끄무레한 것들을 포착해냈다. 수천 개를 넘어 수만 개는 될법한 작은 빛 덩어리들이 물고기처럼 바닷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그중에서 하나가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이윽고 벨로크를 향해서 다가왔다. 둘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벨로크는 한 사람의 생애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별것 없는 촌부로 태어나 출세를 위해 도시로 나간 사내의 뒷모습. 운 좋게 몇 번의 전장에서 살아남아 흉터 몇 개와 돈 조금을 손에 쥐게 된 모습.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나 지을까 고민하던 와중 눈먼 화살을 맞아 죽어버린 모습. 흔하디흔한 용병의 생애였다.

그러니까 이건··· 영혼? 벨로크가 그렇게 생각할 때. 빛 덩어리가 꿈틀거렸다. 이윽고 날카로운 팔이 돋아나고 입을 쩍 벌린 해골 형태가 된 영혼이 그에게로 팔을 스윽 뻗었다.

몸··· 네 육체를··· 나한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자신의 몸을 밀어붙이고 있는 인력 때문에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던 벨로크는 그냥 물을 푸컥 마셨다. 그러는 와중에도 물속에 있던 영혼들은 그를 향해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기괴하며 끔찍한 모습들로 팔을 뻗어오고 있었다.

미친. 그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때.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놈-들! 어서- 움직여라!]

뒤를 이어 쿠웅하며 거대한 진동 역시 울렸다. 바닷속이 거세게 요동쳤다. 몰려들었던 영혼들이 먼지처럼 흩어져 버렸다. 시커먼 물길 속. 산처럼 거대한 기둥 두 개가 보였다.

벨로크는 유일하게 돌아가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웬 거인이 물 위에 두 다리를 받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대한 기둥은 거인의 다리였다.

거인은 벨로크를 힐끔 바라보다가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녀석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노가 수면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저 거인에게서도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거로 봐서 신이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인 것 같았다.

염병, 대체 어떻게 된 세상이야. 여긴? 그가 인상을 와락 찌푸릴 때. 그리고 막혀오는 숨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벨로크는 영혼의 바다를 벗어났다. 곧이어 그의 눈으로 깨진 유리창처럼 어긋나있는 틈 여러 개가 보였다. 몸뚱이 역시 그곳이 목표라는 듯 맹렬하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틈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틈 안의 세상이 확고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꽃과 나비, 찻잔과 대저택이 존재하는 세상, 흘러내린 내장과 피, 창과 검날이 넘실거리는 세상. 쏟아지는 빛과 여신상, 흰색 법복을 입은 자들이 가득한 세상 등.

일그러지고 조각난 유리창 너머로 각양각색의 광경들이 보였다. 기이하며 신비로웠다. 하지만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저 멀리 홀로 떨어져 있는 통로 너머. 그에게는 익숙한, 칙칙하고 스모그 가득한 회색빛 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벨로크는 그 도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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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벨로크 하이네

직업 : 기사

레벨 : 25

능력치 : 남은 포인트 : 0

힘 : 21 체력 : 5

정신력 : 2

스킬 :

‘기사의 검술 Max’ ‘꺼지지 않는 투지 Max’ ‘육감 Lv4’ ‘용살자의 벼락 Lv2’

‘망령의 칼날 Lv1’ ‘꺼지지 않는 심장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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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델

직업 : 성기사(헬레나의 검)

레벨 : 17

힘 : 9 체력 : 2

신성력 : 8

스킬 :

‘신성한 불꽃 Lv3’ ‘여신의 문장방패 Lv2’

‘치유의 기도 Lv1’ ‘태양신의 축복 Lv1’

‘심판의 검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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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카라

직업 : 원소술사

레벨 : 16

힘 : 2 체력 : 2

정신력 : 13

스킬 :

‘얼음창 Lv4’ ‘서리 폭풍 Lv2’ 사슬 번개 Lv3’ ‘화염구 Lv4’

‘용의 숨결 Lv1’ ‘비전 화살 Lv1’ ‘점멸하는 빛 Lv1’

‘충격파 Lv3’ ‘보호막 Lv Max’ 고르곤의 훔쳐보는 눈 Lv2’

'포탈 Lv1' ‘연금술 Lv2’ ‘골렘 소환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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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자벨

직업 : 악마(아스타로트의 마력을 이은 자)

레벨 : 22

힘 : 15 체력 : 4

마력 : 6

스킬 :

‘악귀의 끈질긴 생명력 Lv3’ ‘망자 부활 Lv1’

‘마력 폭주 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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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멸하고 있는 모니터 속 화면을 보며 벨로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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