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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09화 (10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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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착

[네놈! 그냥 칼잡이가 아니었군. 성기사였나?! 아니, 아냐··· 벼락을 쓰는 교단의 개라니··· 들어 본 적이 없어. 대체 넌 뭐지?]

마탑주가 당황하든 말든 벨로크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뚫려있는 탑의 천장을 통해 계속해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끄르르르륵!]

마탑주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비명을 내지르다가 그를 향해 한쪽 손을 뻗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주문이 완성되었고, 벨로크는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 바닥을 나뒹굴었다. 시발. 너도 이거냐? 갈비뼈가 욱신거리는 것을 참아낸 그가 슬쩍 시선을 내렸다. 이리저리 금이라고 흠이간 갑옷은 희미한 빛을 점멸할 뿐. 이전처럼 모든 주문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저 위력을 감소시켜줄 뿐이었다. 벨로크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자리를 박찼다.

요행이 통하지 않는다면 정공법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육체의 굴레를 벗어던진 영혼은 아주 재빨랐다. 마탑주는 반파된 석실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며 그의 칼질을 피했다. 이윽고 한 쪽 손을 뻗으며 외쳤다.

[고르곤의 눈이여!]

망령의 손에서 탁한 녹색의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빛무리에 닿은 마녀들의 시신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돌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벨로크 역시 그렇게 될 판이었다. 미친.

그 순간. 마녀들과 싸우고 있던 카라가 그의 옆으로 달려왔다. 이윽고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아주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녹색빛은 그녀의 손에 틀어막혀 거울에 왜곡된 것처럼 튕겨 나갔다. 오히려 아델과 싸우고 있던 마녀 한 명을 집어삼키며 그녀를 석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괜찮아?”

벨로크가 카라의 말에 답하기도 전. 석실의 천장에 들러붙어 있던 마탑주가 눈을 빛냈다.

[호오. 제법 수준이 높은데. 얘. 붉은 머리 아이야. 너 내 밑에서 배워보지 않으련? 아주 훌륭한 주문들을 가르쳐 주마.]

“개소리! 시체나 뒤적거리며 노는 놈들한테 내가 왜?!”

카라는 코웃음을 쳤다. 마탑주 역시 그냥 시간을 끌려고 한 말인듯 다시금 주문을 외웠다. 푸른 역장이 생겨나고 그 위에 장창이 틀어박혔다. 보호막을 반쯤 뚫은 채,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는 창날을 보며 망령이 입가 미소를 지었다.

[난데없이 남의 집 천장을 부수고 들어온 무뢰배답게 아주 거칠구나. 보통 마법사라면 그 자리에서 머리가 깨졌겠어.]

강자로서의 여유와 오만함이 가득 섞여 있는 말투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방 안의 온도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서리가 낀 것도 모자라 석실 내부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정황은 확실했다. 저년이 무슨 수작질 을 부리려는 것이다. 마법사라는 것은 보통 준비하는 자였고, 준비된 마법사만큼 위험한 것은 없었으니까.

“더 이상 녀석에게 시간을 주면 안 돼. 또 무슨 해괴한 주문이 나올지 몰라.”

그것을 알고 있는 카라가 입가에 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벨로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저년이 하늘을 날아다녀서 말이지.”

그것도 천장이 있어 벼락이 닿지 않는 곳에 녀석은 위치하고 있었다. 일행 중 유일하게 공중을 부양할 수 있는 이자벨은 지금 아델과 함께 마녀들을 막아내고 있었으니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망령이 다시금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시커먼 해골들이 셀 수 없이 뿜어져 나왔다.

“다 막아낼 수는 없어!”

몇 발자국 물러난 카라가 보호막 주문을 외웠다. 벨로크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내면의 힘을 끌어올렸다. 검신의 룬 문자가 다시금 반짝이고, 그는 검을 휘둘러 주문을 베어나갔다. 이를 보고 있던 마탑주가 진하게 미소지었다. 이 새끼가? 주문을 파훼하면서도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벨로크는 흠칫 놀라며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내리쳐라!]

망령이 손을 뻗었고 검은 해골들이 뻥 폭발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벨로크!”

카라의 비명에 아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막 마녀 하나의 가슴을 들이박아 넘어트리고는 도끼를 내려찍는 중이었다. 하지만 자욱한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또 다른 마녀의 주문이 작렬했다.

“데-파르마!”

지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보랏빛의 손아귀들이 발목을 붙들었다. 이에 맞춰. 잡아. 죽여. 같은 소리들이 들려오며 형형색색의 투사체들이 날아왔다. 아델은 이를 으득 갈며 기도문을 외웠다. 성력의 불꽃이 뻥 터지면서 사악한 주문을 파훼했다. 그녀는 쓰러져 있던 마녀의 시체를 홱 집어던져서 주문 몇 개를 막아내고는 나머지는 몸으로 때웠다. 저주는 몸과 정신을 짓눌렀고 투사체들은 갑옷을 뚫으며 살점을 뜯어냈다. 전부 다 제 몸을 돌보지 않은 마녀들이 보호막 대신 공격주문들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흐으으.”

내장이 진탕되는 느낌에 아델은 피를 울컥 토하면서도 계속해서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치료의 기도문을 외우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는 도끼를 휘둘러 마녀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이자벨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찢어진 피막 날개와 쌍검을 종횡무진 휘두르며 마녀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새카만 불꽃이 몸을 태워도 악마의 육체는 수포를 일으키며 금방 그것을 복구해냈다. 갑작스럽게 이뤄진 기습. 거리를 좁히기 쉬운 공간에서의 전투. 이제 마녀들은 몇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놈들은 악착같이 소리치며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마녀는 주문 대신 구불거리는 칼을 들이밀며 덤벼들었다.

“죽여!”

“밀어붙여!”

아델이 보기에 그것은 더럽게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놈들이 동료들의 복수나 의리를 위해서 달려드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핏발선 눈. 질질 흘리는 침. 악에 받친 행동. 막 도끼를 휘둘러 희번뜩거리던 그 눈을 잠재우던 아델은 깨달았다. 공포였다. 저년들은 지금 죽음보다 더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이 무모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의 중심은 석실의 꼭대기.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한 명의 망령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안 좋아. 직감적으로 느낀 아델이 이자벨을 향해 외쳤다.

“이자벨. 이 년들을 빨리 처리하고 벨로크님과 카라를 도우러 가야 한다!”

막 검붉은 벼락 하나를 몸으로 버텨내며 마녀 하나를 세로로 갈라버린 이자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두 사람의 귓가에 쿵쿵거리는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어서 악귀들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도망쳤던 마녀들이 원군을 불러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를 으득 물면서 석실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역시 단 네 명으로 두 개의 거대한 집단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라고 그들이 생각하는 순간.

[캬아아아악!]

망령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까 전보다 우렁차고 거대한 그 울림에 아델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슬쩍 벌렸다. 석실의 중앙에는 거대한 인형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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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념이 담긴 해골들이 폭발했을 때. 벨로크는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검을 방패처럼 앞세우고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기 때문이다. 그냥 뼈마디가 쑤셨고 흙먼지를 마신 목이 턱턱 막혔다. 그뿐이었다.

어떻게 하지? 창을 날리면 보호막 주문을 중첩해서 막아버리고, 검을 휘두르자니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카라가 주문을 부리려고 하면 녀석 또한 재빨리 주문을 외워 막아댄다. 그가 검을 앞세우며 고민할 때. 카라가 불화살을 쏘아냈다. 물론 망령은 깔깔거리면서 이를 피해냈다. 하지만 덕택에 카라는 벨로크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한 번 더 물어볼게. 괜찮아?”

“문제없다.”

말을 내뱉은 카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석실의 온도가 전보다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닥을 굴러다니던 서적이나 의자, 마녀들의 시신과 내장 또한 얼어붙어 있었다. 죽은자인 망령에게는 통하지 않아도 산자인 자신들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이었다.

바닥이 미끄러워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테니까. 어쩌지? 카라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윽고 제 손가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장에 들러붙어 날아다니고 있는 망령과의 거리도 가늠했다. 스으윽 카라는 가방으로 손을 뻗어 안에 있던 내용물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벨로크. 내가 신호를 보내면 거대한 손 하나가 너를 받쳐줄 거야. 아주 빠르고 갑작스럽게 말이지. 그걸 타고 녀석에게 검을 휘두를 수 있겠어?”

그는 눈동자만 굴려서 카라가 쥔 물건을 확인했다. 조각상이었다. 룬 문자가 새겨져 있던 인간을 닮은 조각상. 그렇군. 놈을 발판으로 이용하자 이거지?

“물론.”

[뭘 그렇게 속닥대고 있지? 후회되나?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기어들어 온 것이? 이미 늦었다. 네놈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주지. 그렇게 해서 자매들의 영전에 바치겠다.]

찢어져라 웃은 마탑주가 한쪽 손을 뻗었다. 그녀가 뭐라 주문을 외우자. 얼어붙어 있던 바닥의 표면이 쩍 갈라졌다. 그 속에서 투명한 송곳들이 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미 오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던 벨로크는 쩌저적 소리를 듣자마자 냅다 자리를 박찼다. 이윽고 솟아오르는 송곳을 검으로 잘라내는 동시에 한 팔로 카라를 안아 들며 바닥을 굴렀다.

[하하하하! 마음껏 발버둥 쳐라! 네년 들이 어디까지 피할 수 있는지 편하게 감상해줄 테니까!]

시야가 이리저리 굴러가는 와중에도 카라는 고개를 들었다. 마탑주의 망령은 얼음송곳을 조종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리는 동시에 양손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댔다. 흐릿한 잔상만을 남기며 움직이고 있는 벨로크를 맞추기 위함이다. 기회다. 라고 생각한 카라가 그를 툭 쳤다. 이윽고 입술을 중얼거리며 인형에 새겨져 있던 주문을 활성화시킨 순간.

[쥐새끼 같은 놈! 어디 이것도 피해 봐라!]

망령이 양손을 쭉 뻗으며 강하게 소리쳤다. 그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송곳이 일제히 솟아났다. 검을 휘두르고 할 것도 없었다. 한순간에 얼음으로 된 감옥에 갇혀버린 두 사람을 보며 망령이 조소를 흘렸다.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려고 할 때. 카라가 손에 들린 인형을 휙 던지며 주문의 마지막 단락을 외쳤다.

“부름에 답하라!”

마법진이 반짝였다. 그리고 거대한 손아귀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소환마법? 망령이 생각한 순간. 시퍼런 칼날이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골렘의 팔을 타고 몸을 날린 벨로크가 내지른 것이었다. 망령은 아주 짧은 순간. 보호막 주문을 외워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반투명한 역장을 유리처럼 깨트리고 망령의 영체에 지독한 타격을 입혔다.

[끄에에에엑!]

녀석은 석실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연기처럼 흩어졌다. 벤시의 음성을 정면에서 받아낸 벨로크 또한 양 귀에서 피를 주륵 흘렸다. 더럽게 시끄럽네. 중력의 법칙에 의해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는 그를 받아낸 것은 돌로 만들어진 석상이었다. 골렘의 어깨에 타고 있던 카라가 휴 한숨을 내쉬었다.

“잘 먹혀들어서 다행이야. 괜히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아니었어. 분명 시간을 더 줬다면 훨씬 더 끔찍한 주문들로 우리들을 괴롭혔겠지.”

그녀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이걸로 한 놈은 처리했으니. 이제 다른 한 놈만 남은 건가? 일단 아델과 이자벨부터 도와야···”

“잠깐.”

벨로크가 카라의 말을 막았다. 그는 슬쩍 눈을 감고 있던 상태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 그게 대체 무슨···”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말을 끝으로 석실에 있던 얼음들이 일제히 깨져나갔다. 그리고 강렬한 돌풍과 함께 여인네의 흐느낌이 방안에 휘몰아쳤다. 온몸을 찌르는 칼바람에 카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녀들과 싸우고 있던 아델과 이자벨 또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것인지 재빨리 뒷걸음질을 쳐서 두 사람 근처로 다가왔다. 피투성이가 된 아델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벨로크님! 뭔가 이상합니다. 저 새끼들···”

-끄으으으으으!

-끄에에에에엑!

벨로크는 시선을 내렸다. 허리가 잘려 나가 내장을 흘리고 있던 마녀. 골통이 쪼개져 뇌수를 흘리고 있던 마녀. 주문을 외우거나 악귀를 타고 있던 마녀들 전부. 제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살아있는 놈들은 그렇다 치고, 성대가 잘려나간 놈들이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현대인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마녀들의 이마에 불로 지진듯한 심볼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죽어나자빠져 있던 시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비명이 뚝 끊겼다. 초점 없이 뿌연 눈을 한 그들이 일제히 중얼거렸다.

[놀랐어? 나는 죽지 않아. 내가 곧··· 요람 그 자체니까.]

이거 완전 악덕 업주였네. 양팔을 휘적거리며 달려드는 시체들을 보며 벨로크는 검을 뽑아 들었다. 이윽고 골렘에게서 훌쩍 뛰어내려 한 녀석의 몸통을 조각내며 말했다.

“이번에는 물량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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