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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06화 (10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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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험한 자들

내가 업혀야 하나? 아니지. 날개가 등에 있으니까··· 얘가 날 들어야겠지? 재밌는 그림이 그려지겠군. 생각은 짧았다. 아델과 카라가 기겁하든 말든 벨로크는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턱 꽂았다. 이내 투구마저 벗고 왕의 장창만을 한 손에 든 채, 말했다.

“준비됐다.”

“검을 가져가도 상관없는데요? 저 힘 세요.”

“없으면 속도가 더 빨라지겠지.”

“뭐, 그건 그렇네요.”

고개를 끄덕인 이자벨이 벨로크의 뒤로 걸어왔다. 이내 양팔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출발할게요?”

그녀의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실타래 같은 머리칼 또한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 좀 아쉬운데. 실없는 생각을 하던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허벅지를 살짝 접은 이자벨이 폭발적인 기세로 땅을 박찼다. 이내 피막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보통 반대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멍한 눈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던 카라의 어깨를 아델이 툭 쳤다. 응? 카라가 고개를 돌리자 아델이 마을 바깥을 손짓했다.

“우리도 얼른 괴조를 타고 쫓아가자.”

“왜? 그래 봤자 한 마리잖아. 두 사람이면 순식간에 죽여버릴 텐데?”

아델이 혀를 쯧 찼다. 그녀는 팔짱을 딱 낀 채 오랜만에 카라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뭐, 뭐, 왜?”

“한 번 우리를 속이려 든 놈들이다. 어쩌면 저 도망 자체도 놈들의 함정일 수도 있다. 놈은 미끼고 매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거기다가··· 이 마을에서 다시 묵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나?”

아. 입술을 동그랗게 만든 카라가 시선을 돌렸다. 데몬들의 덩치가 덩치였던 만큼. 부서진 건 여관만이 아니었다. 건물 사이의 작은 담벼락도 우르르 무너졌으며 텃밭들도 불타버렸다.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와 내장 등도 바닥을 지저분하게 수놓고 있었다.

개판이군. 게다가··· 그녀의 눈에 한 가지가 더 걸려들었다. 창문과 문틈 사이로 그들을 힐끔거리고 있는 주민들의 시선이었다. 괴물 사자를 죽이고 나서 축제를 열고 있는데. 갑자기 왕자의 병사들이 들이닥쳤고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죽어 나갔지. 평범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광경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카라가 말했다.

“이거··· 뭐라도 보상을 하고 가야겠지?”

“일을 해주고 손해를 입은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고개를 저은 아델이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이윽고 안에서 작은 보석과 금화 몇 개를 꺼내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여관주인에게 건넸다. 그러는 동안 카라는 여관의 잔해를 뒤져 일행의 짐 가방을 찾아냈다. 대충 상황을 수습한 두 사람은 곧 마을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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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의 도움을 받은건지 아니면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건지 이자벨의 비행은 빨랐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허공을 넘나들며 높은 고도까지 도착했다. 이윽고 시커먼 밤 구름을 가르며 유영하자 곧 저 앞에서 날개를 팔락거리고 있는 괴물을 볼 수 있었다. 벨로크를 안은 채, 날고 있던 이자벨이 팔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놈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얼추 따라잡았군요.”

“네가 빠른 게 아니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벨로크가 말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전에 봤던 만티코어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이자벨은 피식 웃었다.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힘 좀 썼어요. 배고파 죽을 지경이거든요.”

“이거 끝나면 못다 한 식사라도 해야겠군.”

그녀의 웃음이 진해졌다.

“알잖아요. 내가 평범한 거 못 먹는 거.”

인간밖에 못 먹었었지. 아니면 악마나. 벨로크가 생각할 때. 이자벨이 웃음을 거두면서 말했다.

“그보다 준비해요. 놈한테 붙을게요.”

그녀의 피막 날개가 휙 꺾였다. 이윽고 한 차례 더 가속했다. 펑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데몬을 향해 순식간에 접근했다. 점처럼 보이던 녀석의 거대한 덩치와 외양이 확실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 순간. 벨로크가 손에 들린 창을 휘둘렀다. 표정을 굳힌 이자벨 역시 다급히 어깨를 젖히며 몸을 틀었다. 앞에서 쏘아져 나온 화살 때문이었다.

[엿같은 새끼들! 꺼져라!]

뼈로 만들어진 활과 화살을 들고 있던 녀석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날개를 움직여 도망치는 동시에 끊임없이 화살을 쏘아댄 것이다. 아직 비행이 익숙치 않은 것인지 아니면 매달고 있는 벨로크 덕분인지 이자벨은 좀처럼 놈한테 접근하지 못했다. 그녀가 말했다.

“미쳐버리겠네. 더 이상의 접근은 무리해요. 차라리 창을 던져서···”

“더 좋은 게 있지.”

벨로크는 슬쩍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데몬과의 거리도 가늠했다. 이 정도라면 될 것 같은데? 그의 한쪽 손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일어났다. 시커먼 하늘 역시 한층 더 어두워지며 쿠르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아간파! 내 반드시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소. 반드-끄에에엑!]

데몬이 결의를 다지고 있던 순간. 번쩍! 벼락이 쳤다. 녀석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이게 무슨···]

추락하던 와중 정신을 차린 녀석이 황급히 날개를 움직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 잠깐이면 충분했다. 이자벨의 피막 날개가 한 차례 더 가속했다. 한 줄기 섬광이 된 두 사람이 데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주인을 잃은 몸뚱이가 날개를 휘익 접으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벨로크의 창에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데몬의 머리가 달려있었다. 그는 창을 휙 털어 녀석의 머리통 역시 바닥으로 내던졌다.

설마 이놈도 저번의 그 마녀처럼 망령이 되거나 머리통만 남아 둥둥 떠다니지는 않겠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이 주문을 쓸 수 있는 놈이었다면 진작에 썼겠지. 그때. 이자벨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놈을 후우. 잡아서,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벨로크.”

“왜 그러지?”

이자벨이 끙끙거리며 말했다.

“미안한데, 후우. 우리도 좀··· 내려가야겠어요. 나. 더 이상은···”

그녀의 피막 날개가 축 처졌다. 이윽고 두 사람 역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자벨 역시 곤죽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떨어지는 와중 느릿하게 날갯짓을 했다. 건조한 사막의 모래가 풀썩 치솟았다. 활강하듯 천천히 내려온 두 사람은 곧 지면에 받을 내디뎠다.

“하아. 하아. 미안해요. 조금만 쉬다가··· 마을로 돌아가죠.”

이거 검까지 들고 왔었으면 큰일 날 뻔 했군. 이자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벨로크는 주변을 둘러봤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흩뿌려진 살덩이들이 보였다. 데몬의 사체였다. 완전히 박살이 났네. 가만 이곳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는 시선을 돌렸다.

달마저 흐릿한 밤이었다. 주변의 광경은 시커멓게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음영에 젖어있는 물체들의 윤곽을 확실하게 꿰뚫어보았다. 바위산이었다. 그것도 사람 유골이 흩뿌려져 있고 손톱자국이 군데군데 나 있는 붉은 바위 무덤이었다. 그 사자 새끼가 있던 곳이잖아? 몇 분 사이에 멀리도 왔군. 벨로크는 잠깐 고민하다가 앉아있던 이자벨을 훌쩍 안아 들었다. 깜짝 놀란 그녀가 팔을 버둥거리며 말했다.

“뭐, 뭐에요 갑자기?”

“기왕 쉴 거면 모래가 적은 곳이 낫겠다 싶어서. 냄새는 좀 나겠지만.”

“여기 그런 곳이···”

벨로크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동굴 하나가 보였다. 그가 동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적당히 깨끗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는 이자벨을 제 무릎 위에 앉히며 말했다.

“어때? 괜찮지?”

그녀는 주변에 흩어져있는 털과 핏자국 등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노린내가 좀 나기는 해도 눈이 따가운 것보다는 낫군요. 목에 걸고 있는 그 반지도 여기서 얻었나 보죠?”

“사자 뱃속에서 나왔지. 어느 돈 많은 부호를 잡아먹기라도 했던 모양이야.”

섬뜩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꺄르르 웃었다. 이자벨이 숨을 고를 때까지 두 사람은 한가롭게 잡담을 나눴다. 슬슬 일어날까 생각하던 와중. 그녀의 배가 꼬르르 울렸다. 벨로크가 가만히 바라보자 얼굴을 붉힌 그녀가 변명하듯 말했다.

“요 이주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해서 그래요! 그렇다고 내가 당신들을 잡아먹을 수는 없잖아요?!”

말 그대로였다. 악마가 된 이자벨은 평범한 식사를 하지 못한다. 아니, 먹을 수는 있어도 배를 채울 수가 없으며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고 했다. 말 그대로 괴물이 된 것이다. 장난스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 한 편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슬픔이 있었다. 한순간에 뒤바뀌어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비애였다.

얘를 진짜 어떡하면 좋을까? 이 꼴로는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할 텐데. 벨로크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건틀릿을 벗었다. 이윽고 허리춤의 단검을 꺼내 느닷없이 제 손바닥을 그었다.

“벨로크?”

이자벨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가 만류하기도 전.

“부족한 거 같은데.”

고개를 까딱거린 벨로크가 다시 한 번 더 단검을 휘둘러 제 손에 상처를 입혔다.

“미, 미쳤어요?! 갑자기 뭐하는 짓이에요!”

그가 멈출 기미가 안 보이자 이자벨이 다급히 손을 뻗어서 단검을 잡아챘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손바닥을 틀어막았다. 얼마나 세게 그었는지 피는 그녀의 손을 주르륵 타고 흐르며 바닥을 적실 정도였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단검을 홱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 붕대가 어디 있지? 아니, 포션이···”

아무리 품을 뒤적거려도 뭐 나오는 게 없자. 이자벨은 제 갑옷을 찢으려 했다. 그녀의 팔을 벨로크가 탁 잡았다.

“앉아. 다 흐르기 전에 마셔야지.”

“네? 그게 무슨···”

당황하는 그녀의 앞으로 그가 팔을 휙 내밀었다.

“배고프다면서? 이 상처. 그래서 낸 건데.”

“말도 안 되는··· 내가 어떻게.”

고개를 도리도리 젓던 이자벨이 흘러내리고 있는 선혈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 그의 손을 핥으려다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답답하네.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벨로크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피가 흐르는 제 손을 얄상한 입가로 가져다 댔다. 한 방울. 두 방울. 처음 한 번이 어려웠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가서 아예 입가를 처박고 그의 피를 빨아댔다.

“하아아···”

쪽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신음성이 동굴을 가득 채웠다. 이자벨은 한참이나 대악마를 죽인 전사의 피를 빨다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혀를 날름거리며 입가를 핥고는 말했다. 억압되어있던 무언가를 풀어 재낀 듯 나른한 목소리였다.

“당신··· 괜찮아요? 혈색이 많이 창백해진 것 같은데.”

조심스레 뺨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벨로크가 웃었다. 이제 좀 살만한 갑지?

“체력스탯이 높아서 괜찮다. 좀 괜찮나?”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물론이에요. 아주··· 아주 좋아요. 너무 맛있었거든요.”

“그거 다행이군. 그럼 배도 채웠으니 다시 날 수 있겠지? 돌아가자.”

그는 안고 있던 그녀를 풀어주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이자벨이 다시금 그의 목을 끌어안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자벨?”

타락요정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신고 있던 가죽 부츠를 홱 벗어던지며 그의 입술을 집어삼킬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돌처럼 굳어있는 카라의 얼굴과 아델을 마주했다. 이거··· 엿 된 것 같은데? 벨로크는 땀을 삐질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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