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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105화 (10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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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험한 자들

벨로크가 툭 내뱉은 말에 병사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허리춤의 무기로 손을 가져다 대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냥 석고상에 거죽만 붙여놓은 것 같이 멀뚱히 서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이한 행태는 앞으로 몰아닥칠 파도를 예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어이가 없어서 다들 말문이 막힌 것으로 보였다.

그때. 벨로크의 뒤에 서 있던 카라가 슬그머니 여관 입구 쪽을 눈짓했다. 이를 용케 알아들은 촌장이 네 사람을 한 번. 그리고 왕자의 병사들을 한 번 보고는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제일 선두에 있던 갈색 피부의 병사. 일행에게 말을 건넸던 그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는 말했다.

“친절하시군. 아주 대단한 성인군자들이 납시었어. 자비의 신을 따르는 신도라고 해도 믿을 정도야.”

벨로크 역시 여관의 경첩이 삐그덕 거리는 걸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대화는 이쯤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거 아쉽군. 난 자네들한테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이야. 그 시커멓고 음험한 용. 아스타로트를죽인 것도 그렇고, 루탄카에서 이곳까지 도착한 비결도 궁금했거든.”

그의 말을 끝으로 병사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핏줄이 조금 서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형상이던 동공이 짐승마냥 찢어졌다. 입고 있는 갑옷이 잔뜩 부풀어 오를 정도로 덩치 역시 우람해졌다. 선두의 사내.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가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군. 자네들 나름의 비전일 테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뭐지?”

억압되어있던 것을 풀어 재낀듯한 목소리. 묘한 쾌감과 희열을 담고 있는 그 음성에 벨로크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는 속으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변신을 하기 전 인간의 거죽을 쓴 악마보다야 본 모습을 드러낸 악마. 괴물 데몬들이 경험치를 더 주지 않을까? 녀석들의 심장 소리가 갑자기 커졌는데? 한 녀석이 무슨 놀라운 말이라도 했나? 사내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나? 우리가 지하의 존재들이라는 걸. 불과 증오의 지배자. 오직 일신의 무력만으로 모든 것을 쌓아 올린 자. 그분의 칼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말일세. 교회에서 나온 성기사나 사제들조차 간파해내지 못했는데.”

불과 증오? 데몬들의 왕을 말하는 건가?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화려한 수식어를 많이 붙여? 그가 이 악마들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별 게 없었다. 갑옷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괴물들의 근육이나 뼈, 내장 등. 강도에서부터 인간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내부 장기들의 요동거림을 감지해냈기 때문이었다. 스킬레벨을 올림으로서 한층 더 강력해진 육감. 인간을 초월한 오감들. 벨로크는 이 모든 사실을 구태여 설명해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래서 냅다 창을 던졌다.

“아밀리아 그년이 그렇게 자신했던 주문이라-억”

말을 뱉던 사내의 고개가 퍽 돌아갔다. 머리에는 짧은 창날이 박혀있었다. 온몸을 허우적거린 그가 뒤편에 있던 동료들에게로 넘어진 순간. 괴인들의 기세가 폭발했다.

크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괴성과 함께 여관이 박살 났다. 이곳저곳 못질을 해서 땜빵한 벽면들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다니 뻥 터진 것이다. 끔찍한 재난이었다. 여관주인의 재산피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혹시나 모를 유혈사태를 대비해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촌장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난장판이 된 건물의 잔해 속에서 웬 괴물들이 나타난 것이다. 놈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덩치는 집채만 했으며 머리에는 두 개 혹은 세 개씩 뿔이 달려있었다. 얼굴과 몸체 역시 살점을 다 벗겨놓은 듯 뼈만 남은 짐승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시퍼런 달 아래 열 마리가 넘어가는 괴물들이 포효했다. 그 숫자가 마침 여관 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의 숫자와도 같았다. 시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으며 사람들의 등을 떠밀던 촌장은 약간의 생각 후 깨달을 수 있었다. 범인은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음습한 음모가 이 마을을 넘어 온 나라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괴물들의 아래였다.

붉은빛을 띠는 반투명한 역장 아래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에서도 두 명은 그도 아는 자들이었다. 오늘 점심 무렵 마을을 괴롭히던 괴물 사자를 사냥한 자들. 도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진 자들. 하지만 저들이라고 해서 저 괴물들을 다 죽일 수가 있을까? 지금이라도 발이 빠른 사람을 보내 인근 영주에게 구원을 요청할까? 몇 날 며칠이 걸릴 그 거리를? 그 사이에 마을은 무너지고 말 텐데? 그 순간. 괴물의 시뻘건 눈과 촌장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생각이 멈췄다. 이윽고 그 역시 뒤돌아 도망치면서 목청껏 비명을 질렀다.

“그때 하수구에서 봤던 놈이 열이군. 벨로크가 여덟 마리는 잡을 테니 나머지 두 마리만 우리가 맡으면 되는 건가?”

손을 휘저으며 보호막을 해제한 카라가 중얼거렸다.

“눈앞에서 우르르 악마들이 나타났으니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겠죠.”

이자벨은 쓰고 있던 로브를 홱 벗어던지며 칭칭 감았던 붕대 역시 풀었다. 해방감을 느낀 듯 고개를 저어 머리칼을 찰랑거린 그녀가 등에서 칼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옆에 있던 아델 역시 제 도끼를 들어 올렸다. 시뻘건 불꽃이 무식한 도끼날을 타고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변신의 후유증을 털어내던 데몬들의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몇몇 녀석은 이자벨을 보면서 입가를 핥았다. 다른 몇몇은 눈을 찌르는 성력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중에서 제일 덩치가 큰 한 마리. 눈에 창날이 틀어박혀 피를 뚝뚝 흘리던 놈이 말했다.

[다들 알고 있겠지? 계획대로 간다-악]

놈은 말하다가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손을 뻗은 벨로크가 장창을 회수했기 때문이었다. 피가 마를 날이 없군. 조만간 또 수리를 맡겨야겠는데. 끈적한 내용물을 휙 털며 장창을 살펴보던 그가 그것을 휙 털며 허리에 찼다. 이윽고 검을 들어 올렸다. 우두머리 데몬은 크르르 흉성을 내지르며 그를 내려다보다가 제 손에 들린 무기를 들었다. 통짜 뼈로 만들어진 거로 보이는 거대한 도끼였다. 뭐냐. 석기시대냐? 녀석이 도끼를 내려찍으며 외쳤다.

[형제들이여!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파공성을 그리며 날아오는 도끼에 아델과 카라 이자벨 세 사람이 몸을 피했다. 오직 벨로크만이 검을 휘두르며 녀석의 도끼를 맞받아쳤다. 천둥이 치고 그의 발밑에 깊은 고랑이 생겼다. 우두머리 데몬의 몸체가 휘청거렸다. 녀석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놈! 인간 주제에 무슨 힘이···]

“네가 알고 싶어 했던 용의 모가지를 날린 비전이지.”

짧은 호흡을 내뱉은 그가 팔을 움직였다. 강렬한 힘의 반발력에 우두머리가 나가떨어졌다. 벨로크는 냅다 달려들어서 놈을 끝장내는 대신에 제자리에 서서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흐릿한 궤적과 함께 불똥 여러 개가 튀었다. 다른 데몬들이 휘두른 검이나 창, 몽둥이 등이 일제히 튕겨 나갔다.

한 놈이 안 보이는 거 같은데? 휘청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뒤로한 채,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모습을 드러냈던 병사들은 열.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아홉뿐이다. 사람들을 습격하러 갔나? 그 순간. 뿔 셋 달린 데몬의 위에 올라탄 채, 쌍검으로 녀석의 눈을 찌르고 있던 이자벨이 외쳤다.

“한 놈이 도망치고 있어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본거지에 알릴 셈이에요!”

이거 귀찮게 됐군. 벨로크는 다시금 덤벼든 우두머리의 도끼를 튕겨내고 검을 휘둘렀다. 팔이 잘려 나간 녀석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남은 손으로 도끼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막아! 막아라!]

그가 우두머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슬쩍 눈을 굴렸다. 시커먼 밤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비행형 괴물이었다. 그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대려다가 혀를 찼다. 뒤편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던 카라에게 몇 놈이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덩치가 흉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녀석들이 집채만 한 덩치로 그냥 비집고 들어오면 보호막 주문 같은 건 그냥 깨져버릴 것이다. 짧은 생각을 마친 그가 땅을 박찼다.

[어디를 가느냐!]

우두머리를 포함해 옆에 있던 다른 녀석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소용없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기사는 찰나의 순간. 아주 빠른 속도로 가속할 수 있었다. 악마들의 무기가 애꿎은 잔상을 후려치고 의미 없는 흙먼지만 풀썩 일어났을 때. 벨로크는 이미 한 녀석의 머리통을 쪼개고 있었다.

[바르다!]

마른 고목처럼 보이는 두개골이 쩍 갈라졌다. 악어를 닮은 데몬이 그걸 보고는 피 토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녀석은 휘두르던 무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술을 부리는 마법사년을 처리해 버릴 속셈이었다. 벨로크 역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허리춤으로 손을 뻗어 장창을 쏘아냈다. 직후에 양팔을 뒤로 주욱 당겨, 대검을 비수처럼 쏘아냈다. 장창을 얻어맞은 놈은 바닥을 굴렀다. 검은 선이 되어 쏘아진 대검은 악어 머리 데몬의 배를 헤집었다.

끄에에에에엑!

놈한테 가까이 붙자 역한 냄새가 느껴졌다. 땀 냄새는 아니었다. 사람 잡아먹은 악마 특유의 악취였다. 녀석은 내장을 줄줄 흘리면서도 양팔을 움직여 벨로크를 끌어안으려 했다. 자신이 시간을 끌면 동료들이 해결해주겠지. 라는 생각이군. 지독한 새끼였다. 그러고 보니 하수구에서 만났던 데몬 역시 그랬다. 싸우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전사. 동료를 이용할 줄도 혹은 그들을 위할 수도 있는 녀석들. 기존에 만났던 악마들하고는 좀 다르다. 마치 군대 같았다.

그래, 이 녀석들에게도 각자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대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투는 그것의 충돌 결과였다. 벨로크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생각은 하나였다. 배고프다고 사람 잡아먹는 새끼들.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괴물들이 꼴값을 떨고 있군.

그는 발을 뻗어서 악어 머리 데몬을 뻥 차버렸다. 내용물이 몇 없어서 그런가? 한층 더 가벼웠기에 차기 쉬웠다. 이윽고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2미터 가까이 되는 길쭉한 대검이 마찬가지로 길쭉한 악마의 상체를 갈랐다. 괴물의 하체가 제 혼자 부르르 떨리다가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산양의 뿔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데몬은 그렇게 죽었다. 몇 마리 남았지? 그가 시선을 돌렸다.

“입에 걸레를 물었다고? 이 개 같은 괴물 새끼야! 다시는 그 입을 지껄이지 못하도록 불태워주마!”

거친 욕설을 내뱉은 아델이 팔 하나 남은 우두머리와 웬 늑대를 닮은 데몬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성력의 불꽃을 뿜으며 데몬을 견제하는 동시에 우두머리의 도끼를 빗겨내거나 흘렸다. 그럴수록 바닥을 태우는 불길은 거세어져만 갔고, 놈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자벨 역시 쌍검을 종횡무진 휘두르며 나머지 세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벨로크와 검을 맞대기까지 했던 악마의 근력과 동체 시력. 그리고 몸놀림은 녀석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에 충분했다. 탁한 녹색빛을 띠는 곡도가 휘둘러질수록 데몬들의 몸이 쩍 갈라지며 피를 뿌렸으니까.

도와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있는 녀석을 쫓아야 하나? 근데 하늘을 날고 있는 놈을 내가 무슨 수로?

“내가 너무 늦었나?”

주문의 영창을 끝내고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카라의 목소리에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 너무 빠른 거지.”

고작해야 전투가 흐른 지 몇 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카라는 제 주변에 널려있는 시체들을 한 번. 그것들을 밟고 있는 벨로크를 한 번 본 다음.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일행을 향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녀가 외쳤다.

“다들 엎드려!”

“뒈져!”

쓰고 있는 투구 때문인지. 전투의 열기 때문인지 아델은 듣지 못했다. 이자벨만이 귀를 쫑긋거리더니 재빨리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 엎드렸다. 움찔 놀라고 있는 세 마리의 데몬을 향해 카라의 주문이 쏘아졌다. 전에 봤었던 모든 것을 분해시킨 요상한 광선이었다. 빛이 번쩍였고 상체가 증발 당한 녀석들이 풀썩 쓰러졌다.

“어마어마한 위력이네요. 머리카락이 조금 탄 것 같은데···”

엎드려있던 이자벨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무릎을 접으며 상체를 낮추더니 재빨리 땅을 박찼다. 문양 새겨진 쌍검이 빛났다. 아델과 도끼를 맞대고 있던 데몬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곧이어 나머지 한 놈도 아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후우. 후우."

가슴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호흡을 가다듬은 아델이 이자벨을 향해 슬쩍 웃었다. 이내 도끼를 휙 털며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재산피해가 피해가 좀 크기는 하지만... 목숨을 건졌으니 싸게 먹힌 셈이지요.”

카라가 머리칼을 헤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 마리가 넘어가는 괴물들이었어.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야. 만약 우리가 없었다면 마을 하나가 지도에서 지워졌을걸?”

우리가 있어서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일지도 모르지. 벨로크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이자벨이 다급히 외쳤다.

“도망친 한 놈. 잡았어요?”

“도망을 쳤다고?”

“그런 녀석이 있었어?”

상황을 모르는 아델과 카라가 어리둥절해 할 때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놈을 내가 어떻게 잡아? 내가 마법사라면 날아가서 잡았겠지. 금세 상황을 전달받은 카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큰일이네··· 설마하니 도망을 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날아서 가다니··· 이러면 놈들 측에서도 나름 대비를 할 거야. 당장에 외부에 있던 병력을 불러들일 수도 있어.”

“카라. 네 부유 마법으로 쫓을 수는 없나?”

지팡이를 타고 하늘을 날고는 하던 마녀들을 떠올리며 벨로크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그 주문의 속도는 몸을 허공에 띄우고 걷는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아.”

염병. 어쩔 수 없나. 포기하는 방법밖에··· 그 순간. 이자벨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새카만 하늘을 한 번 보고는 제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죠. 제가 조금 힘을 써야겠네요.”

무슨 수로? 되살려낸 악귀들도 마을 먼 곳에 놔두었으면서. 카라 역시 물었다.

“응? 무슨 소리야?”

이자벨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바라보다가 흡 숨을 들이쉬었다. 이윽고 미간을 구기며 입술을 짓씹었다. 뭐 하는 건지 가만히 지켜보던 일행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의 어깻죽지가 쩍 갈라지며 튀어나온 한 쌍의 피막 날개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헉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틈으로 보고 있던 주민들이 내지른 소음이었다.

“맙소사. 이건 또 무슨···”

카라가 헛웃음을 지을 때. 벨로크가 말했다.

“그때 봤던 그건가?”

머리에는 두 개의 뿔. 어깨에는 날개까지 달고 있는 이자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 마력이 폭주했을 때 나타났던 결과물이죠.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어서 놈을 쫓아야죠.”

고통이 상당했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그녀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벨로크를 향해서였다.

“자. 우리 산책 한 번 나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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