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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83화 (8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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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

벨로크가 뿜어낸 벼락은 분명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직격당한다면 수십 명 정도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하지만, 천둥의 진정한 힘은 강렬한 빛과 소음에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광경이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감을 심어 주는 것이다. 한순간에 군대조차 와해되어 버렸으니, 엄청난 능력임에는 분명했다.

“이건··· 실력 있는 마도사의 벼락 주문 몇 개는 합친 것 같은 위력인데··· 그 창에 이런 기능이 있었어?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랬다면 마귀왕이 그 힘을 사용했을 테니까. 설마? 네가 전에 말했던 검에 전기가 깃들었다는 게 이거야? 그 정체불명의 힘?”

카라가 입을 헤 벌리며 물어보자, 벨로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슬쩍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내면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이 힘을 다스렸다. 꺼지라고 작게 중얼거리자, 창을 타고 흐르는 뇌전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이제야 살겠네. 그가 후우 한숨을 내쉬며 비틀거리자 아델이 기겁하며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벨로크님. 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잠깐, 잠깐만···”

벨로크는 아델의 부축을 받은 채, 이 힘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확히는 부작용에 대해서. 몸에 구멍이 뚫려 고통을 느끼거나, 근육이 지쳐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과는 다른. 색다른 고통이었다. 그러니까··· 머리가 터질 것처럼 지끈거리고 앞이 흐릿해졌다.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놓을 뻔했다. 그가 이에 대해서 말을 하자, 답은 카라에게서 나왔다.

“아마, 정신력의 고갈일거야.”

“정신력?”

카라는 뺀질나게 도망치고 있는 성주와 군대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벨로크의 뺨을 짚었다. 밝은 갈색 눈에는 놀라움과 걱정 두 가지의 감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해줘야 알겠지만, 지금 들은 얘기와 너의 반응으로 볼 때. 내 생각으로는 그래. 마법사의 견해라고 생각하고 들어줘. 네가 방금 겪은 일은 과도한 주문사용으로 인한 뇌력의 고갈이랑 비슷해.”

“과부하 상태라 이건가?”

카라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를 하나 들어줄게. 그러니까··· 마법사의 주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 현실의 경계와 법칙을 비틀고, 술자의 의지를 강요한다. 이게 기본적인 골자야. 그리고 이는 늘상 부작용을 동반해. 강력한 힘일수록 더욱 더. 숙련된 마술사는 약간의 편법을 써서 이를 최대한으로 줄일 뿐이지. 제물이나 날씨, 혹은 도구의 힘을 빌리는 거야.”

“그렇다면, 벨로크님이 겪으신 게 그 부작용이라 이건가?”

아델의 말에 카라가 긍정했다.

“그렇지. 네가 사용한 정체불명의 힘. 그래, 고대신의 은총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 옛날에 들었던 기억이 나. 하멜른의 교회에서 말이야.”

그거 그냥 해본 말인데. 아니,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 게임 시스템 같은 창은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내 말의 요지는 이거야. 신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성기사의 성력이든 마법사의 주문이든 모든 힘에는 대가가 있어. 네가 검을 여러 번 휘두르면 몸에 근육통이 생기듯이 뇌도 지치는 거야. 기절은 약과라고 볼 수 있어. 심하면 뇌가 녹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힘은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어. 알아들었어?”

카라는 마치, 다짐을 받겠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벨로크 역시 칼 맞아 죽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객사하기는 싫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능캐 일수록 머리를 많이 쓴다는 거로군. 나는 힘캐라서 부작용이 더 심하고 말이지. 염병, 마검사의 길은 물 건너간 건가? 지금이라도 다른 스탯을 찍을까? 그가 그렇게 고민할 때. 아델이 말했다.

“그보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르게 정비되어 있던 도로는 잔뜩 뒤집어져 있었고, 과일이나 생필품 등을 깔아놓은 좌판이나 수레 등도 요란스레 박살 나 있었다. 잔뜩 그을려진 흰색 돌집이나 쩍 갈라진 담벼락 역시 수두룩하게 보였다.

군대는 성주의 성으로 도망친 지 오래였지만, 이 근처에 사는 시민들은 창틈이나 문틈으로 일행을 힐끔거렸다. 그들을 두려워하는 시선들이 강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한다? 장보기는 물 건너 간 것 같은데.

“일단 움직이는 게 좋겠군.”

일행은 엉망이 된 시장가의 한 구역을 벗어나 어떻게든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려고 애썼다. 몇 시간 동안 땡볕을 돌아다닌 것이다. 하지만 벨로크가 벌인 소동이 벌써 소문이 다 퍼진 것인지 문이 열려있는 가게나 좌판들이 하나도 없었다.

시발. 그냥 성주놈의 아들에게 정중하게 부탁했어야 했나? 그랬다고 돌려줬을 것 같지는 않던데. 아니면, 녀석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서 훔쳐냈어야 했을까? 뭐가 됐든 일 자체가 굉장히 꼬여버렸다. 이걸 어떡하지? 그들이 그렇게 고민할 때. 머리에 터번을 뒤집어쓰고 염소수염이 인상적인 사내가 그들에게 접근해왔다.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지만, 대번에 눈에 띄었다.

“웬 놈이냐?!”

아델이 도끼를 홱 들어 올리자, 사내는 히이익 거리더니 대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머··· 먼 곳에서 오신 귀한 분들이여. 저는 성주님의 청지기. 반자크라고 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성주의 부하라고? 벨로크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 그가 말했다.

“난쟁이 브루스와 경호대장 하반으로부터 일의 전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해 들었습니다. 아벤마하님의 실수까지도요. 그렇기에···”

반자크라는 사내는 긴장이 되는지 혀를 살짝 핥았다. 이윽고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절했다.

“부디 저희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무례에 대한 사과와 보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 지랄을 떨었는데. 이렇게 행동한다고? 새로운 함정인가? 벨로크가 생각할 때. 아델이 나섰다. 도끼창이 묵직한 파공성을 그리더니 사내의 목에 척 겨누어진 것이다. 목덜미를 가득 채운, 땀 너머로 시뻘건 핏줄기가 한 방울 흘렀다. 그의 기겁과는 상관없이 아델이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개수작이냐.”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게오르그 공작으로 인해 큰 화를 입었던 일행이었기에 이 정도의 경계심은 당연했다. 물론 벨로크가 깨어났기에 웬만한 암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의 사태란 게 있었으니까.

“아, 아닙니다! 그게···”

사내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요란하게 팔을 휘저었다. 말의 요지는 대강이랬다. 정말이다. 성주님은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어 한다. 정 의심된다면 무기를 소지하고 들어가도 된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였다. 이 새끼들이 진짜 무슨 꿍꿍이지? 벨로크가 생각할 때. 카라가 속삭였다.

“대충 무슨 의도인지 알겠어. 한 번 가보는 게 어때?”

“뭐지?”

“우리가 들었던 소문 기억나? 도시의 실종사건, 그리고 하수구의 썩은 내.”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가 말했다.

“단순히 우리를 죽이고 싶어서 함정을 팠을 수도 있지만··· 설마하니 그렇게 멍청할까? 내 생각에는 하수구와 관련된 일 같아. 성주가 머리를 조금 썼군.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모양이야. 도시의 지하에 암약하는 살인자의 정체가 생각보다 거물인가 본데?”

그러니까. 우리를 용병으로 쓰고 싶어 한다고? 이건 또 신박한 접근인데. 벨로크는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시장을 돌아다녀도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족쯤 된다면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겠지.

‘조심은 해야겠지만··· 만약 함정이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면 그만이니까.’

이제는 벌벌 떨고만 있는 사내를 향해 벨로크가 턱짓했다.

“안내해라. 성주를 만나러 가겠다.”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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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흰색 돌이 가지런히 깔리고 꼭지만 툭 튀어나온 원을 얹어놓은 듯한 성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병사들은 일행을 두려워하기는 했지만, 칼을 뽑는 대신 고개를 꾸벅 숙였고, 아름다운 여인이나 잘생긴 하인들이 공손한 표정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들의 선두에 서서 걷고 있는 자. 반자크가 말했다.

“이쪽입니다. 성주님께서 계신 연회장입니다.”

연회라고? 보석으로 세공된 차양막이 차락 걷어진 순간. 북이 둥둥 울리고, 요란한 나팔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고급스러운 양탄자가 깔린 바닥 위에는 악단과 더불어 벌거벗은 무희, 화려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놓인 접시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방의 상석. 푹신한 가죽 의자 위에는 전에 봤었던 중년인. 알타니스의 성주가 턱 하니 앉아있었다. 그는 일행이 들어오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러고는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낯선 땅의 귀빈이여. 어서 오시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서 기쁘기 그지없구려.”

성주는 일행을 습격하려 했던 사실을 잊어먹기라도 한 듯. 아주 태연하게 행동했다. 진짜 환영식 같았다. 물론, 그의 목소리와 손발은 벌벌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비죽 굴러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처세라고 볼 수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이걸 다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괜히, 한 도시의 지배자가 아니라 이건가? 마냥, 아들 바보는 아닌 모양이군. 벨로크는 조금 감탄했다.

“그래,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셨소?”

“그렇습··· 아니, 그, 그렇소.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다 파악했기 때문이오. 내 멍청한 아들놈이 감히 경의 물건에 손을 대려 했다던데.”

“그렇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기에 나는 나름의 행동을 취했을 뿐이오. 마땅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것뿐이지.”

“지, 지당하신 말씀이오. 경은 아무런 잘못이 없소이다. 이건 전적으로 내 아들 새끼의 잘못이오. 그래서··· 내 경들을 불렀소! 마땅한 사죄와 보상을 위해서 말이오!”

도시를 지키기 위한 성주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아낀다는 아들의 흉까지 보며 열변을 토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보호막 주문을 외워두었던 카라는 흐음. 하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금 도시는 범람하는 괴물들로 인해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이 바로 질서와 규율이다. 어떻게든 도시민들을 하나로 단결시켜서 이 위기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행해야 할 성주의 칼날이 툭 부러졌다. 그것도 외국에서 온 이방인 하나에 의해서. 이렇게 되면 시민들은 당혹감과 더불어 강력한 불안감을 느낀다. 기껏 잡아놨던 치안이 흔들리게 생긴 것이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원인을 제거해서 본보기로 세우거나 아니면··· 영입이지.’

어차피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안다. 거기다가 사상자 역시 없었다. 그렇기에 성주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굉장한 힘을 보여준 이방인 용병을 품을 수만 있다면 아니, 적어도 자신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게 할 수만 있다면 이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딱 맞는 무대가 있다.

현재 도시를 떠들썩하게 울리고 있는 살인사건. 지하의 하수도였다. 카라는 피식피식 웃었다. 한 도시의 권력자가 단 한 사람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꼴이 대단히 웃겼던 것이다. 결국, 성주의 이 모든 계획은 벨로크의 뜻 하나에 달린 것이다.

“자, 자! 일단 앉으시오. 시장하지 않으시오? 내 알타니스 최고의 춤꾼들과 음식, 술들을 준비했소. 입에 꼭 맞으실 거요.”

일행은 성주의 바로 옆에 마련되어있는 푹신한 의자에 턱 앉았다. 좌식이 익숙지 않은 아델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리를 쭉 뻗었다. 도끼창 역시 어깨에 척 기대어진 채, 시종일관 살벌한 기세를 풍겨댔다. 혹여 암습이 일어난다면 바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성주의 명에 따라. 시종들은 항아리에 담긴 술을 일행의 잔에 넉넉히 부었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그들의 앞에 대령했다. 카라와 아델은 음식에 손 하나 대지 않았다. 혹여 독이 들어있을 것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벨로크는 예외였다.

그는 양념한 닭고기를 한 손에 들고, 대뜸 씹었다. 그러고는 투명한 술 역시 한 모금 들이켰다.

“벨로크님?!”

“잠깐! 그렇게 함부로 먹으면···”

“독은 없는 것 같은데···”

기갑하는 두 사람을 향해, 그는 입가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인간 같지 않은 오감은 음식과 술에 담겨있는 불순물 하나까지 감지해낼 수준이었으니까. 이거 맛있군. 역시 권력자가 먹는 음식은 달라. 그가 만족스러워하자 성주가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그 역시 음식들을 마구 씹어 먹으며 말했다.

“내 귀족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소. 절대 허튼짓은 하지 않았소이다! 부디 믿어주시오!”

그가 손뼉을 치자, 무희들의 춤사위가 더 격해졌다. 악단들 역시 흥겹게 연주를 이어나갔다. 카라와 아델 역시 슬쩍 손을 움직여 음식을 집어 먹자, 분위기는 한층 더 좋아졌다.

성주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잘 풀리고 있다. 이제 저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좀 구해주고 보석만 좀 쥐여 주면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좋게 풀릴 수도 있겠지.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별안간 욕설이 들리더니 문이 쾅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대번에 집중되었다. 앞니가 몇 개 사라진 청년이 벨로크 일행을 손가락질했다. 성주의 하나뿐인 아들. 아벤마하였다.

“아버지! 대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 무뢰배를 성 안에 들인 것도 모자라. 연회를 열어주고 있다니요?!”

성주는 벨로크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크게 호통 쳤다.

“아벤마하? 이런 멍청이가··· 말을 삼가지 못하겠느냐! 내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모두 다 네놈의 불찰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니더냐?! 뭣들 하느냐! 저 멍청이를 끌고 가지 않고!”

“아, 아버지?”

아벤마하가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대단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벨로크에게 저항했던 것처럼 경박한 입이 다시금 나불거렸다.

“너! 이 외국인! 아니, 이 새끼들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어떤 비겁한 짓거리를···”

“아가리 닥쳐라! 이 등신아!”

아벤마하는 말을 끝마칠 수가 없었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성주가 손에 들린 술병을 그의 얼굴로 던졌기 때문이다.

도자기가 챙그렁 깨졌다. 애지중지하던 아들은 컥 소리와 함께 다시 정신을 잃었다. 성주는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벨로크 일행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겨, 경! 부디 화를 가라앉혀 주시오. 정말이지 면목이 없소이다! 내··· 내, 충분히 보답하겠소.”

이제는 벌벌 떨기까지 하는 성주의 모습에 벨로크가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뒤에 시립 해있던 시녀가 공손한 태도로 술잔을 다시금 채웠다. 마치, 그가 이 성의 주인처럼 보였다.

“개의치 않소. 꽤나 재밌는 공연이었으니까. 그래, 우리한테 뭘 주실 거요? 또 부탁할 만한 일도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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