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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82화 (82/222)

82

마찰

떡 벌어진 어깨에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매고 있는 대검까지. 아무리 평상복을 입고 있다고는 하나 벨로크의 모습은 퍽 비범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겁먹지 않았다. 그들은 태양 아래 용감한 사막의 전사들이었으니까. 모래의 성벽. 알타니스의 날카로운 검들이었으니까. 요컨대 자신들의 뒷배를 믿었다는 이야기였다. 병사 중 하나가 거들먹거렸다.

“어이, 이방인. 우리 말 못 들었나? 지금 대장간에는 성주님의 아드님이신 아벤마하님께서 계시다고 했다. 용무가 있거든 조금 있다가 다시 오도록 해라.”

“그건 안 되겠는데.”

“뭐?”

벨로크의 태연한 어조에 병사는 당황했다. 그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벙어리가 되었다가, 이윽고 큰 소리로 웃어 재꼈다. 그러자 뒤편에 있던 병사들 또한 따라서 웃었다.

“아만. 네가 너무 좆밥처럼 보이나 본데?”

“이제는 이방인한테까지 무시당하는 거냐? 엉? 그런 거야? 아만?”

동료들의 비웃음에 아만이라 불린, 제일 선두의 병사는 입가만 끌어당겨 허허 웃다가, 별안간 표정을 굳혔다. 그가 쥐고 있던 창대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뭐? 안 돼? 야이, 개새끼야. 지금 흰둥이 새끼가 감히 알타니스의 경비대에게 도전하는 거냐? 이것은 곧. 이 땅을 다스리시는 영주님의 권위에 반기를 든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을 알고는 있는 거냐?!”

오. 드디어 나오셨군. 동료들 앞에서 강한 척 폼재기. 상관 팔아먹기.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반응인걸. 벨로크는 피식피식 웃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일행뿐이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던 도시민들은 공권력과 정면 추돌 중인 외국인들을 보고는 수군거리면서 자리를 피했다. 이를 알아차린 아만이 고개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네놈들. 이 지경까지 온 이상. 가만히 넘어갈 거라 생각하지 마라. 너, 덩치는 채찍형에 거기 여자들은 오늘 밤. 우리를 위해 봉사를···”

“죽일까요?”

아델이 도낏자루를 움켜쥐며 말하자, 벨로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검도 뽑지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 나가며 말했다.

“그러면 소동이 너무 커질 테니. 팔 한두 개 정도만 부러트리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하아. 결국, 또 이렇게 되네. 휴식은 이제 끝인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쉬고 있는 카라를 뒤로하고 두 사람이 움직였다. 그쯤 되자, 병사들은 정말로 당황했다. 맨몸으로 십여 명이 넘는 무장병에게 덤벼들고 있는 년놈들 때문이었다. 선두의 아만은 반사적으로 창을 내질렀다.

“이 새끼들이!”

관리를 잘했는지. 창날은 태양 빛에 반짝이며 서슬 퍼런 기세를 뿜어냈다. 이를 뻗어내고 있는 구릿빛의 팔뚝과 허벅지 또한 단단한 근육을 자랑했다. 이 한 번의 찌르기에 아만이라 불린 병사가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떠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그렇게 놀림 받을 실력은 아닌데? 벨로크는 이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손날을 휘둘러주었다. 아름드리나무로 만든 단단한 창대가 툭 부러졌다. 아만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

그의 얼굴에 시커먼 음영이 졌다. 벨로크의 주먹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에 아만은 그냥 눈앞이 번쩍했다는 것만 느낄 뿐이었다. 아만은 억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휘날리는 모래 먼지 속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나름 높다고 봐줄 수 있었던 코뼈가 폭삭 주저앉았고, 앞니 또한 몇 개가 나갔다. 터진 입술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안 죽은 게 용한 것처럼 보였다. 뒤편에 있던 병사들은 잠시, 놀랐다가 곧이어 욕설과 함께 무기를 빼 들었다. 가시 박힌 곤봉, 휘어진 칼, 창 등이 벨로크를 향해 찔러져왔다.

그의 체력 수치가 아무리 높다고 한들, 눈앞의 날붙이는 확실한 위협이기는 했다. 갑옷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벨로크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뻗어오는 창대를 가볍게 잡아채서 손목을 움직였다. 날카롭던 창날은 이쑤시개보다 못한 젓가락이 되었다. 그 잠깐의 틈 사이로 어깨를 내려찍어오는 시미터가 보였다.

그는 칼날이 몸에 닿기 전 남아있던 다른 한 손을 뻗었다. 검을 휘두르던 병사의 손목이 벨로크의 손아귀에 턱 하니 잡혔다. 그는 그대로 힘을 주어서 병사의 손목을 부러트렸다. 이윽고 그자의 배를 가볍게 후려 찼다. 동료의 몸뚱이가 휙 날아오자, 이를 얻어맞은 다른 녀석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전열이 무너진 병사들을 잡아내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녀석들은 버둥거리며 손에 들린 무기를 휘두르거나 던져댔지만, 벨로크는 이를 가볍게 피해내거나 쳐내며 그들을 짓밟았다.

부츠발 한 번에 갈비뼈가 툭 부러진 병사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정리가 된 것 같은데? 벨로크가 고개를 돌렸을 때. 아델이 도끼 창의 자루를 휘둘러, 병사의 복부를 퍽 후려치고 있었다.

“끄어어어.”

자리에 주저앉아 우에엑 토를 하는 녀석이 마지막이었다. 이제 내 물건을 찾으러 가볼까? 벨로크가 그렇게 생각할 때. 대장간의 문이 텅 열렸다. 이윽고 웬 두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천 옷으로 몸을 감싸고 황금으로 된 관과 펜던트 등을 찬 잘생긴 청년이 하나. 앞선 병사들보다 무장상태와 체구가 좀 더 좋은 대머리 중년인이 하나였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며 당황했다.

“뭐, 뭐냐! 이게 무슨 일이야?

청년의 손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창 하나가 들려있었다. 묵빛의 광택을 자랑하는 게 왕의 검을 녹여서 만든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아벤마하님! 조심하십시오! 이 무뢰배들이 갑자기!”

“끄으으. 하, 하반 대장! 괴, 괴물들입니다.”

병사들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아벤마하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지면을 딛고 떡하니 서 있는 일행을 보며 소리쳤다.

“보아하니 외국인들 같은데. 뭐 하는 놈들이냐?!”

“우리도 대장간에 용무가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길을 막으며 검을 휘둘러 오더군. 그래서 저항을 좀 해주었지.”

“뭐라? 고작 그런 이유로 지금 이 행패를 부렸다는 건가? 네놈들. 대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냐?!”

청년이 으르렁거렸음에도 벨로크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가 말했다.

“안다. 이곳 성주의 아들.”

“그걸 아는 놈이···”

벨로크는 청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나한테 중요한 건 네놈의 배경 따위가 아니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그 창의 원래 주인이라고 해두지.”

“음? 난쟁이가 말했던 놈이 너였나? 그러니까··· 지금 이걸 되찾기 위해 이 짓거리를 벌였다?”

아벤마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황당하다는 어조였다. 이윽고 손에 들린 창을 바닥에 휙 던지고는 강하게 짓밟았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오직 아랫사람들을 짓밟으며 커온 권위와 오만이 가득 담긴 귀족의 눈이었다. 그가 말했다.

“야 이, 미치광이 놈아. 생긴 걸 보니. 어디, 왕국의 귀족이나 기사처럼 보이는데. 그 잘난 나라의 법이 이곳까지 통할 것 같나? 엉? 꼴리는 대로 그렇게 행동하고 다녀도 그 목을 보존할 수 있을 것 같냐고?”

“건방진 깜둥이 새끼가!”

아델이 달려드려는 걸. 벨로크가 제지했다. 아직까지는 완만하게 합의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벨로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내 물건. 돌려줄 건가?”

귀족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창대를 밟고 있는 힘 역시 커졌다. 그가 옆을 보며 말했다.

“하반. 사막의 대전사이자, 나의 칼날아. 내가 이런 모욕을 당했는데. 언제까지 두고 볼 참인가?”

하반이라고 불린 중년인은 말없이 스으윽 움직였다. 미세한 어깨의 꿈틀거림과 은밀하면서도 힘찬 발걸음, 검을 쥐고 있는 자세를 보니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달인이었다. 무감정한 눈동자에 담긴, 숙련된 살인자의 기색까지는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 이 친구를 믿고 있었나? 벨로크가 고개를 까딱거릴 때. 하반이 움직였다.

그는 짧은 숨을 들이켜고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작은 모래폭풍이 일 정도였다. 인위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휘어진 검이 번뜩였다. 벨로크는 이제 맞서, 손을 휙 휘둘렀다. 검이 땡그렁 깨져나가고, 사막의 대전사는 이빨을 후두둑 떨구며 털썩 쓰러졌다. 청년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시발. 이게 뭐야?

“하반···?”

얼빠진 소리를 내뱉고 있는 그를 향해 벨로크가 다가갔다. 그는 손을 툭툭 털고는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내 물건을 돌려줄 생각이 들었나?”

아벤마하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뒷걸음질조차 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단련된 혓바닥은 어떻게든 살고자 몸부림을 쳤다. 이번에는 겁박이었다.

“이,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성···!”

이 새끼가 끝까지 안 비키네. 약간 짜증이 난 벨로크는 녀석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져주었다. 성주의 하나뿐인 아들 역시 컥 피를 뿜으며, 이빨을 후두둑 떨구었다. 그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기절해버린 청년을 뒤로한 채, 떨어져 있던 창을 주웠다. 그러고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아델은 벨로크의 뒤를 따르며 청년의 얼굴에 퉤 가래침을 뱉었고, 카라는 이걸 어떻게 수습한다?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두 사람을 따라갔다. 망나니 귀족이 요란하게 휘저은 덕분인지, 가게는 난장판이었다. 난쟁이는 얼굴 가득 멍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버티고 버티다 억지로 뺏긴 모양새였다. 그는 벨로크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바깥에서 들려온 소란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대번에 이해한 것이다.

“안 좋은 꼴을 보였네. 내가 최대한 막아보려 했건만···”

“괜찮소. 귀족들의 변덕이야. 흔한 거니까.”

“자네 또한 왕국의 귀족이면서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난쟁이는 허허 웃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표정을 굳히며 재빨리 말했다.

“작업은 완벽하게 끝났네. 원본에 걸려있던 주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다듬었거든. 그 창에는 다양한 보조 주문들이 걸려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네. 자네가 기억해야 할 건 ‘주인의 부름’과 ‘축소화’ 이 두 개야.”

직관적인 단어에 벨로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뭔지 예상이 가는데? 난쟁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카라가 말했다.

“한 마디로 그 창은. 너의 의지에 따라 네 손으로 되돌아오고, 휴대하기도 쉽게 작아질 수 있다는 뜻이야. 단순하지만, 꽤나 새기기 까다로운 훌륭한 주문들이지.”

난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가씨의 말이 맞네. 그리고 자네들의 갑옷 역시 수리가 끝났네.”

난쟁이는 끙끙거리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무광택의 흑갑주와 십자가가 새겨진 새하얀 갑옷이 마치, 새것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벨로크와 아델은 기다릴 것도 없이 서로 도우며 판금 갑옷을 입었다. 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강철의 묵직함에 답답함과 동시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를 보고 있던 난쟁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다 입었다면 어서 이 도시에서 벗어나시게! 성주님은 인품이 꽤나 훌륭하신 편이지만, 자기 자식만큼은 끔찍하게 아끼시네. 잡힌다면 결코 좋은 꼴은 볼 수 없을 거야!”

자식 농사에는 실패한 성군이라 이건가? 이 도시의 미래도 알만하군. 벨로크는 피식 웃으며 이번에 얻은 무기에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거대하던 창날이 휘리릭 줄어들더니 작은 단검만 한 크기가 되었다. 존나 신기하네. 이걸 꽂을만한 곳이···

벨로크는 가게를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작은 단검 집이 매달린 허리띠 하나를 찾아내고는 갑옷 위에 찼다. 훌륭한 투척 무기가 생겼다. 돌멩이 보다는 쓸만하겠군. 그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소. 이건 얼마지?”

“그냥! 그냥 가져가게! 그보다 어서 도망치라니까?! 곧 성주의 군대가 몰려올걸세!”

난쟁이는 얼굴을 붉히며 악을 썼다. 하지만, 벨로크는 태연하게 답했다.

“우리가 멋대로 떠난다면 당신이 피해를 입지 않겠소? 성주나 그의 아들이 해코지할 것 같은데.”

난쟁이는 고개를 저으며 큰소리쳤다.

“나는 괜찮대도! 걱정 말고 어서 떠나기나 하시게! 훌륭한 무구를 만지게 해준 손님들이 목 매달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떠나게! 제발!”

마지막에 가서는 애원이었다. 벨로크는 끙끙거리면서도 그들을 생각해주는 난쟁이의 마음씨를 생각해서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 이면에는 훌륭한 솜씨를 가진 장인을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일행은 감사 인사를 한 번 하고는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사람과 열기로 가득하던 공방 거리는 싸늘했다. 앞으로 일어날 폭풍에 대비하는 듯했다. 바닥에 툭 떨어져 있는 망치와 기우다만 가죽, 염색약을 줄줄 흘러대고 있는 옷가지들을 뒤로한 채, 일행은 움직였다. 다급한 발걸음도 아니었다. 그냥, 느릿하게 걸었다.

선두에 있는 벨로크는 평소와도 같았다. 눈동자는 무미건조했으며, 쫙 핀 어깨와 가슴께는 당당하게만 보였다.

아델은 도낏자루를 꾹 쥐고 눈을 빛내는 것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리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아리아인들에게 당한 차별을 이런 식으로 풀고 싶어 하는 지도 몰랐다.

결국,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걱정은 카라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그간 겪어온 경험으로 인해 반 자포자기 식으로 말했다.

“성주의 군대와 마주치기 전, 바로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준비가 덜 되었지? 식량이나 가방, 모포 등이···”

“그렇지. 기왕이면 탈 것도 샀으면 좋겠는데. 사막이니까 낙타가 좋겠군.”

“물을 많이 구비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지도도 구할 수 있다면···”

일행이 그렇게 걷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공방 거리를 벗어나 시장에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철커덩거리는 갑주와 무기의 짤랑거림으로 볼 때. 족히 백은 넘을 것 같았다. 이윽고 허공에서는 웬 양탄자 몇 개가 제멋대로 날아다니며 일행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 위에는 터번 쓴 사내들이 올라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품속에 있던 피리를 꺼내 들더니 휘리릭 불었다.

-찾았다! 공자님을 습격한 도시의 불안당들이 여기 있다!

-어서 성주님께 연락해!

-방심하지 마! 상대는 대전사를 일격에 꺾은 이국의 기사다!

시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세 사람의 또다시 텅 비어버린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곧이어 구릿빛 피부의 전사들이 성난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아까 전, 대전사라고 불렸던 살인의 달인들조차 수십 명은 넘어 보였다. 그 새끼는 어느 틈에 일러바친 거야? 대처가 빠른데. 벨로크가 그렇게 생각할 때. 갈색의 파도가 좌르륵 갈라졌다. 이윽고 아까 전의 청년보다 배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감싸고 있는 금덩이만 빼다가 팔아도 저택 몇 개는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알타니스의 영주가 말했다.

“네놈들이냐? 감히, 내 아들을 상처입힌 이방인들이?”

“죽이지는 않았는데?”

“뭐라?! 이런 건방진···”

벨로크의 태연한 대답에 성주가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어질고 현명한 영주라고 하더니, 벨로크가 보기에는 그냥 아들 바보였다. 그가 손을 치켜들며 뭐라 명령을 내리기 전. 벨로크가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빛이 반짝이고 작은 단검 크기의 날붙이는 순식간에 거대한 창이 되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이것과 더불어 시험해 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다.

“마법 걸린 무기다! 경계해라!”

“공격해!”

주위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내면의 힘을 끌어올렸다. 이번에 대악마를 죽이면서 얻어낸 새로운 힘. ‘용살자의 벼락’이 꿈틀거렸다.

그가 창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자, 하늘이 쿠르릉 울렸다. 이윽고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벼락이 쉴 틈 없이 번쩍였다. 사위가 순식간에 환해지고, 눈이 멀어버릴 정도였다. 삐이이 하는 이명 또한 계속해서 들려왔다.

벨로크는 이 강렬한 힘의 파동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스킬이 가진 힘은 간단했다. 날붙이에 벼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닌, 뇌우 그 자체를 주위에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시발. 주문이 안 부럽네. 무슨, 폭탄 같은데. 이걸 이제 어떡한다? 던져버려?

그가 강렬한 스파크가 흐르는 창을 쥐고 고민하던 순간. 쇠붙이들이 철그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것들이 일제히 떨어지는 소리였다. 벨로크는 시선을 돌렸다. 일행을 잡아먹을 것처럼 굴던 사막의 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요술사나 대전사라고 불리던 인간 병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지를 뒤흔드는 재앙에 군대 자체가 순식간에 와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그렇게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수 백의 병사들을 물리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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