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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성
불붙은 기둥이 휘리릭 회전하며 날아왔다. 벨로크는 고개를 숙여 이를 피해냈다. 그러고는 땅을 박찼다. 기다렸다는 듯이 털북숭이의 손아귀가 다가온다. 때가 낀 손톱. 그 아래 징그럽게 솟은 핏줄이 꿈틀거렸다.
안에 담긴 감정은 명확했다. 졸라 죽이고, 짓눌려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벨로크는 손에 들린 날붙이로 저항했다.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흐릿한 궤적이 번쩍였다. 거인의 큼직한 손이 손목에서 떨어져 나가며 피를 철철 흘려댔다.
[끄어어어!]
비명을 지르는 놈의 입에 대검이 컥 박혔다. 거인은 소리 지르다 말고 고개를 푹 꺾으며 절명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전사와 2m 넘어가는 철판이 만나 이뤄낸 합이었다. 벨로크는 뻗었던 팔을 내리며 검을 회수했다. 진동이 쿵쿵 울렸다. 그의 양옆으로 또 다른 거인 두 마리가 덤벼들고 있었다. 쉴 틈을 안 주는군.
[저거 위험하다! 죽인다!]
[빌보 죽음 당했다. 원수 갚는다!]
거인 한 마리의 배가 부풀어 올랐다. 코에서는 허연 증기가 칙칙 뿜어져 나왔고, 이빨 사이로 넘실거리는 화염이 보였다. 다른 한 놈은 손에 들린 철퇴를 붕붕 돌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쇠공을 피하거나 막아내면 불꽃이 날아올 것이다. 화염을 피하고자 움직이면 쇳덩이가 날아오겠지. 우둔해 보이는 말투와는 달리 꽤나 위협스러운 합공이었다. 하지만, 벨로크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도 이 포위망을 꿰뚫을 방법들이 속속들이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제일 쉬운 것은···
“이 돼지 새끼들이! 비켜라!”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여전히 걸쭉한 욕설을 내뱉은 아델이 철구든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입으로 뭐라 뭐라 중얼거리자 방패에서 기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헬레나의 문장이었다.
그녀는 빛나는 방패를 앞세운 채, 거칠게 돌격했다. 눈을 파고드는 역겨운 빛에 거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윽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에 쿠억 소리를 낸 녀석이 바닥을 굴렀다. 그 순간. 거인 한 놈이 불을 뿜었다. 동족을 구하기 위해 혹은 이 위험한 인간들을 사전에 처리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드레이크의 화염을 연상시키듯 불길을 거대한 범위로 또한 재빠르게 뻗어 나갔다. 누워서 끙끙거리는 거인 하나와 두 명의 기사를 잿더미로 만들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풍의 손아귀여!”
뒤편에 서 있던 마법사의 주문이 완성되었으니까. 카라의 손에서 뻗어 나온 시퍼런 광선이 거인의 불꽃을 막아냈다. 이윽고 두 불가사의한 힘은 서로 간에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붉은색은 푸른색을 날름거렸고, 푸른색은 붉은색을 돌처럼 굳혀버렸다. 흩날리는 유리 조각, 뚝뚝 떨어지는 물, 치솟는 수증기. 거인은 배가 홀쭉해질 정도로 불꽃을 뿜어냈고, 카라 역시 눈에서 안광을 한층 더 빛내며 크게 소리 질렀다.
“벤시의 숨결이여!”
서리 광선의 크기가 더욱 커지고 맹렬해졌다. 거대한 물줄기를 보는 듯했다. 거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광선이 불꽃을 집어삼키고 사출자까지 먹어 치웠다. 놈의 모공, 솜털, 동공까지 모조리 얼어붙었다. 이윽고 화가에게 영감을 줄 만한 특별한 조각상 하나가 완성되었다. 주위 광경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기이하고 아름다운 석상이었다. 볼만하군. 왜 사냥꾼들이 동물들을 박제하는지 알 것 같은데. 짧은 감상을 남긴 벨로크는 검을 휘둘렀다. 얼음 동상이 콰장창 조각났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델 역시 이자벨의 도움을 받아 누워있던 거인의 숨통을 끊는 중이었다. 성대가 끄르륵 소리를 내고 요정의 검과 곡도가 원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거인의 시체를 짓밟은 아델이 가래침을 퉤 뱉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외쳤다.
“벨로크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냐는 말은 나한테 먼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벨로크는 한 눈에 봐도 멀쩡해 보이잖아.”
과도한 주문 사용으로 인해 카라가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아델은 마법사를 한 번 바라봤다. 이윽고 다시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벨로크 님. 괜찮으십니까?”
“물론.”
벨로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씹.”
카라가 구시렁거릴 때. 이자벨이 다가와서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고마워, 나. 당신이 점점 마음에 들려고 그러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슬슬 이 상황이 해결되는 것 같은데요?”
이자벨이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여신의 이름으로 너를 단죄하겠다!
-어이! 쇠사슬 더 가져와. 이 새끼 발악한다!
-가란 경! 지원이 필요합니까? 이쪽은 어느 정도 해결됐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해도 인간들은 여전히 많았다. 게다가 괴물들의 습격을 버티고 살아남은 자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정병들은 곧 적응을 마치고 반격에 나섰다. 교단원들은 대주교와 성기사단장을 필두로 신을 부르짖으며 싸워나갔다.
성력의 빛이 번쩍이면 음지에서 살아가는 악귀들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신앙으로 괴물들을 죽이든, 권력을 탐하는 몇몇 윗대가리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이든. 어쨌든 신의 검이자 방패였다. 교단원들은 악귀들을 착실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신의 가호가 없는 전사들은 그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아 이 상황을 돌파해나갔다. 경험 많은 기사들이나 전략에 능통한 귀족들의 지휘 아래 함정이나 도구들을 이용해서 거인들을 사냥했다. 쇠사슬을 날려 팔다리를 결박 후 창을 찌르거나 몇몇을 미끼로 내세워서 놈들을 유인한 후 주문으로 놈들을 박살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게오르그 공작 휘하의 기사단이었다.
“죽어라! 괴물아!”
단단한 체구의 난쟁이가 손에 들린 보우건을 괴물에게 조준했다. 이윽고 옆에 달린 도르래 같은 손잡이를 끼릭 돌렸다.
투두두두
수많은 화살비가 쏟아졌다. 연발 보우건의 위력에 고슴도치가 된 거인 하나가 바닥에 몸을 뉘었다. 미친. 무슨 기관총이냐? 그 뒤를 이어서 순식간에 창날이 늘어나는 랜스나 충격파를 뿜어내는 방패 등. 각양각색의 유물들이 그 힘을 과시했다.
벨로크가 보기에 저건 돈 지랄이었다. 그것도 하나하나가 금화 수 백 닢은 가뿐히 넘어 수천 닢까지는 갈 법한 장비들의 향연이었다. 북부 야만인들과의 전투를 치르는 공작에게 저만한 장비를 살 돈이 어디서 났을까? 피그오 남작의 말대로 휘하 봉신들의 고혈로 뽑아낸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야만인들의 마을에 금괴가 산처럼 쌓여 있어서 그걸 약탈했거나. 뭐가 됐든 좋은 일이었다.
그들이 괴물들의 숫자를 줄여주고 있었으니까. 경험치를 뺏기는 건 조금 그렇지만, 원래 세상살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적당히 타협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어쨌든 일행의 최종목적은 저 거인들을 무찌르고 성으로 들어가 대악마를 죽이는 일이었으니까. 이대로라면 수월하게 끝나겠는데. 벨로크가 그렇게 생각할 때쯤. 이변이 일어났다.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또 다른 진동 소리가 울렸다. 컹컹 짖는 소리와 함께 소름 끼치는 괴성 또한 들려왔다. 이윽고 흐릿한 연기 사이로 무언가가 쉭쉭 거리며 다가왔다. 지면을 가볍게 짚는 소리. 네발짐승의 것이었다. 그가 검을 들어올리기 전, 카라를 부축하고 있던 이자벨이 귀를 쫑긋거렸다. 이윽고 한쪽 손에 들린 석궁을 퉁 발사했다. 검은 선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들에게 덤벼들던 짐승 한 마리가 깨갱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몸을 감싼 검은 가죽과 붉은 털 갈기. 사나운 광견처럼 생긴 짐승은 단말마 대신 시뻘건 숨결을 쉭쉭 내뱉고 있었다. 카라의 표정이 조금 더 안 좋아졌다.
“헬 하운드. 지옥의 파수견이야. 이제는 별의별 괴물들이···”
아우우우
[인간! 다 죽인다! 아스타로트님 땅 침범! 죽인다!]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방벽 너머로 거인들이 계속해서 넘어오고 있었다. 놈들의 손에는 웬 목줄들이 잡혀 있었는데. 줄의 끝에는 조금 전에 봤던 맹견들이 으르렁거리며 앞발을 치켜들고 있었다. 거인들이 목줄을 놓았다.
[쫓아라! 죽여라!]
놈들은 날렵하게 움직이며 거인들의 잔당과 대치 중이던 사람들을 덮쳤다. 비교적 가벼운 무장을 고수했던 사람들은 목덜미가 물려 즉사했고, 중무장을 한 사람들은 시뻘건 불길을 얻어맞았다. 갑옷이 달아오르고 피가 치솟았다. 잠깐의 틈이 만들어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한순간에 전열이 무너지고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룬검으로 파수견 하나를 절단 낸 게오르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후퇴! 후퇴한다! 일단 전열을 바로 잡는다!”
“공작! 당신들이 갑작스럽게 빠지면 우리는 어떡하란 말이오!”
공작 휘하의 기사단과 병사들이 빠지자, 괴물들과 맞서고 있던 교단측의 부담이 더 커졌다. 하지만, 공작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후퇴 명령만 내릴 뿐이었다.
“이 탐욕스러운 늙은이가! 형제들이여! 우리들도 빠져나갑시다!”
헬레나 교단의 대주교 하이넥이 손에 든 십자가를 쥐면서 외쳤다. 성력의 보호막이 커졌고, 그 틈에 교단원들은 몸을 뒤로 뺐다. 이윽고 위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가장 큰 두 세력이 빠져나가자. 자유 기사와 연합귀족들 또한 욕설을 내뱉으며 병력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괴물들은 원진을 그리며 인간들을 포위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마을의 중앙에 생쥐처럼 몰려버렸다.
존나 개판이네. 이게 이렇게 된다고? 거친 숨소리와 땀 냄새, 욕설, 신을 찾는 부르짖음,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 등이 일행의 귓가를 강타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괴물들의 번들거리는 눈까지도. 벨로크가 말했다.
“잘못하면 통구이가 되겠는데.”
“연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더는 못 버텨. 뚫고 나가야 해.”
카라의 말 대로였다. 마을을 뒤덮은 화마는 점차 심해지고 있었으며,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수놓았다. 가끔씩 마법사들이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걷어내고 있기는 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전부 다 타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거인들 또한 그것을 알고 있는지. 포위망을 굳건하게 세우며 입가를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아마 원정대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놈들의 입에서는 불꽃이 뿜어져 나오겠지. 그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벨로크도 들어본 목소리였다.
“모두들 잘 들어라! 난 게오르그 공작이다! 이대로 있다가 우리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게오르그! 이 비겁자! 애초에 네가 병력을 뒤로 물리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명예도 없는 비겁자가 하는 말을 들으라고?! 웃기지도 않군!”
교단측과 그와 대착점에 있는 귀족들이 소리를 높였지만, 게오르그는 듣지도 않았다. 그저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보고는 자신의 기사단에게 손짓할 뿐이었다.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한층 더 커진 목소리였다.
“나와 내 기사단이 길을 뚫겠다! 모두 우리들의 뒤를 따라라! 그렇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그를 비난하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알아서 병력을 소모시켜주겠다는데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따르는 사람이 없던 자유 기사나 용병, 병사들은 환호했다. 이윽고 공작의 병력 뒤편으로 스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게오르그와 기사들은 흡족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로 간에 뭐라 중얼거리며 무기를 꼬나쥐기 시작했다. 이를 보던 카라가 말했다.
“지금까지 몸을 사리던 자가 느닷없이 선봉에서 돌격이라···”
“주인 잃은 사람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군요. 전장에서의 활약만큼 병사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없으니까.”
이자벨이 말했고, 아델이 받았다.
“별 피해 없이 뚫기만 한다면 그의 입지는 더욱 커질 겁니다.”
벨로크는 고개를 돌렸다. 연발 보우건 난쟁이, 귀쟁이 마법사, 황갈색 피부의 창을 들고 있는 전사까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공작의 곁에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지금도 속속들이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하고 있었다.
만약 공작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그는 이 원정대 안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끌게 될 것이고, 왕의 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것이다. 조금 전에 봤던 기사단의 무력이라면 충분히 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벨로크는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는 거대한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놈들보다 더 묵직하며 진동 소리 역시 더 컸다. 우두머리? 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게오르그가 크게 외쳤다.
“여명 기사단! 출정이다! 적들을 짓밟아라!”
말들은 진작에 다 죽거나 잡아먹어서 남아있지도 않지만, 기사들은 용맹하게 달렸다. 거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불을 뿜었다. 하지만, 기사단 소속의 마법사들이 보호막 주문을 펼쳐서 이를 상쇄시켰다. 그 사이로 화살비가 벼락처럼 쏟아졌다.
“으하하하! 이 더러운 악귀 놈들아! 죽어라!”
연발 보우건을 든 난쟁이의 짓이었다. 괴물들의 전열이 무너졌다. 게오르그의 룬검이 악마의 몸뚱이를 갈랐다. 이윽고 가란의 랜스나 황갈색 피부의 전사가 휘두른 시미터 또한 괴물들을 썰어댔다. 포위망이 뚫렸다. 계획대로다. 게오르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가 검을 치켜 올렸다.
“모두 내 뒤를 따라··· 컥!”
말을 내뱉던 그가 돌연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뒤를 따르던 기사들 역시 입가에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끄으으.”
내장을 뒤흔드는 충격에 흙투성이가 된 난쟁이 기사가 고개를 올렸다. 다른 거인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인이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니, 거인들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놈은 머리통이 두 개였으니까. 난쟁이 기사가 피 섞인 침을 퉤 뱉었다. 그는 전의를 불태우며 손에 들린 보우건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도르래를 돌리며 화살비를 날렸다.
“바람구멍을 만들어주지!”
검은 선들이 몸을 꿰뚫기 직전, 거인 두목의 한쪽 머리가 뭐라 중얼거렸다. 주문이었다. 그러자, 반투명한 역장이 생겨나며 화살들이 튕겨 나갔다.
“마법사?!”
난쟁이 기사가 당황할 때. 거인의 한쪽 손이 움직였다. 거대한 도끼가 떨어졌고, 난쟁이는 피떡이 되었다. 한순간에 생긴 지휘관의 공백과 그사이에 나타난 강대한 괴물. 거인 두목은 한 손에는 화염구를 다른 손에는 도끼를 휘둘렀다.
[모두우 죽여라!]
[태워 죽여라!]
그 강맹한 공격에 유물들로 무장한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애써 뚫어놓았던 포위망이 도로 닫히고, 다시금 괴물들이 난입했다. 난전이 되어버린 전쟁통에서 거인 두목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사람 몸통만 한 전쟁도끼가 휘둘러지면 어김없이 강철 투구를 쓴 머리통이 박살났다.
녀석은 웃었다. 그러고는 입안을 우물거렸다. 이빨 사이로 느껴지는 피와 살점의 맛이 아주 좋았다. 부하들에게 맡겨놓지 말고, 진작 왔어야 했다. 눈동자 네 개가 다시금 돌아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늙은 기사 하나가 보였다. 두목은 혀를 날름거렸다. 이윽고 손에 들린 도끼를 내려찍었다. 그 순간. 철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도끼가 우뚝 멈췄다. 머리 두 개가 시선을 돌렸다.
기이한 문장 갑주를 입은 채, 대검을 들고 있는 기사 하나가 보였다. 놈은 자신의 힘을 받아내고 있으면서도 휘청거림 하나 없었다. 두목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뛰어난 놈일수록 고기의 맛이 더 좋았으니까. 머리 두 개가 입을 열려는 찰나. 흑기사가 말했다.
“대가리가 둘이라. 어째선지 추가 경험치를 줄 거 같은 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