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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61화 (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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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성

좀 전에 봤었던 그 녀석들이군.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전형적인데. 벨로크는 하늘을 수놓고 있는 빨간 털실들을 보면서 눈가를 찌푸렸다.

놈들은 격식 따위 없이 중구난방으로 날아다녔다. 마치, 한여름의 벌레떼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썩은 과일이나 음식 대신 인간의 팔다리가 놈들의 입에 물려있단 것이겠지.

“흐아아아!”

불쌍한 희생자 한 명이 또다시 끌려갔다. 몸을 뒤흔드는 부유감에 젊은 병사가 악을 쓰며 몸부림쳤지만, 악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큼직한 피막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킬킬거릴 뿐이었다. 그런 녀석의 머리에 화살이 퍽 박혔다.

“끄르륵···”

붉은악마의 눈이 홰까닥 뒤집혔다. 이윽고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떨어지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병사의 비명 또한 커졌다. 종래에는 붉은 점과 살색 점이 뒤엉켜서 폐허 무더기에 쿵 처박혔다.

흩날리는 먼지와 작살난 천장의 상태만큼이나 마물과 인간이 어떻게 됐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석궁을 들고 있던 이자벨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러면 내가 죽인 게 되는 건가요?”

사람? 악마? 아니면 둘 다? 어찌 됐든 훌륭한 솜씨였다. 먼 거리에서 날아다니는 표적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벨로크가 이자벨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릴 때쯤. 카라가 한마디 했다.

“저 높이까지 올라간 이상,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네가 쏘지 않았다면 녀석의 굶주림이나 채워줬겠지.”

덧없이 저버린 젊은 목숨에 대한 애도가 그렇게 끝났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생명이 지하의 악귀들에게 유린당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셀레네여!”

“모두 무기를 드시오! 이대로 가다가는 농락당하며 잡아먹힐 뿐이오!”

몇몇 독실한 성기사와 사제가 기도문을 외우며 악마들을 상대했다. 요란한 빛이 넘실거리며 축복, 보호막, 번쩍거리는 쇠사슬 등 각양각색의 주문이 터졌다. 전의를 잃지 않은 기사 몇 명도 이에 합세했다.

“죽여!”

“내 오늘 저놈의 피로 목을 축이겠다!”

숙련된 살인기술에서 오는 솜씨가 유감히 발휘되었다. 길다란 장창이나 도끼창이 휘둘러지면 여지없이 악마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용맹한 자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응전 대신 자신의 안위를 택했고, 이들만으로는 전장의 판세를 뒤엎을 수가 없었다. 용기가 만용이 되고, 사람들의 눈에 절망감이 차오를 때쯤 벨로크 일행이 나섰다. 그가 말했다.

“아직 멀었나?”

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문을 외우고 있었으니까. 그냥 눈의 안광을 한층 더 진하게 뿜어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녀가 손짓했다. 일행이 비켜서자 양손을 펼친 카라가 높고 낭랑한 목소리로 주문의 마지막 단락을 외쳤다.

“얼어붙어라!”

그녀의 말을 기점으로 하늘에서 갑작스레 진눈깨비가 내렸다. 이윽고 그 허연 덩어리들은 점점 커지더니, 종래에는 매서운 강풍과 함께 휘몰아치는 거대한 눈 폭풍이 되었다.

하늘이 쿠르릉 비명을 질렀고, 구정물 같은 흙바닥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기세에 놀란 아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을 파고드는 한기가 너무도 강렬했던 탓이다.

“잠깐, 위력이 너무 강하다! 이러다가 우리들까지 휘말릴 것 같은데.”

카라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녀는 아델의 입김을 한 번, 이윽고 하늘을 한 번 쳐다보더니 외우고 있던 서리 폭풍의 주문을 멈췄다. 구름이 흩어졌고, 얼음알갱이들이 사르륵 사라졌다. 후. 한숨을 내쉰 카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저놈들을 떨어트릴 수 없었을 거야.”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악마들이라. 꽤나 보기 좋은 광경이군요. 한 폭의 그림 같아요.”

이자벨의 말을 끝으로 끄에에엑 하는 비명이 다발적으로 울렸다. 피막 날개에 서리가 낀 악마들이 몸을 허우적거리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미쳤네. 위력 봐라. 벨로크가 감탄할 때. 카라가 허리를 두들기며 앓듯이 말했다.

“자, 마법사의 조력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우리 칼잡이 나리들께서 맡아.”

땅에 떨어진 새를 잡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덕분에 수월하겠군.”

“엄호할게요.”

카라는 보호막 주문을 외웠고, 그녀의 곁에 선 이자벨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석궁을 들어 올렸다. 남은 두 명의 기사들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했다. 손에 들린 날붙이를 꾹 움켜쥔 채, 적들을 향해 돌격하는 것이었다.

강철 부츠가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깊은 고랑을 남겼다. 그 잠깐 사이에 눈밭이 이렇게 쌓이다니. 마법이라... 어떤 면에서는 과학기술을 훌쩍 뛰어넘는 기행이었다.

허구헌날 뛰어다녀야만 하는 나와는 달리 폼도 나고 말이지.

속으로 푸념한 벨로크가 검을 내려찍었다. 다리가 부러져 꿈틀거리고 있던 악마 한 마리가 쩍 갈라졌다. 몸 색깔만큼이나 시뻘건 피가 눈밭을 후득 적셨다.

옆에 있던 아델 역시 곡도를 역수로 쥐더니 거칠게 내려찍었다. 목이 꿰뚫린 악마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컥컥거리더니 그 흉악한 눈을 내리깔았다.

두 기사는 마치 두더지를 잡듯 대로변에 널린 악마들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대검이 두개골을 쩍 갈랐고, 성력의 불꽃이 눈밭을 녹이고 악마마저 태워댔다. 중간중간 카라의 벼락이 사위를 울렸고, 요정의 화살 또한 한 발 걸쳤다.

벨로크는 마치 농부가 된 기분이었다. 거름을 뿌리고 밀밭을 수확하는 촌부의 기쁨이란 게 이런 것일까? 짭짤하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주변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온몸에 눈뭉치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일행을 찬양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열심히 싸워대던 용맹한 원정대원들이었다.

“감사합니다! 경! 덕분에 살았습니다!”

“헬레나여···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칼솜씨입니다.”

“거기다가 저 주문은 대체···!”

벨로크는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아직 쳐 죽여야 할 놈들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풍차에 걸려 버둥거리던 놈, 집안에 처박혀서 해롱거리던 놈, 날개를 휙 털고는 발악하는 놈들까지 곧 그의 손에 걸려서 죽었다. 이윽고 마지막 한 놈만이 남았다.

보통 놈들보다 덩치 하나는 더 큰 악마가 마찬가지로 머리 하나는 더 큰 인간을 노려보았다.

뭔가 있어 보이는데. 저놈이 대장인가? 벨로크는 설렁거리던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은 검의 크로스 가드에 착 맞게 올려 쥐었고, 왼손은 검 끝 폼멜에 맞춰서 단단히 받쳤다. 이윽고 허리를 약간 숙이고는 허벅지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육신 아래, 손에 들린 거대한 검은 일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끄르르르

이에 맞서서 악마 역시 이를 드러내며 낮게 울었다. 혀를 한 번 낼름거리고는 짐승 주둥이 같은 입을 열었다.

“너, 정녕 인간인가? 대체 어떻게 그런 무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또 그 소리로군. 귀에 딱지가 앉겠어. 쇠 긁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벨로크는 놈의 말에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검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고는 악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눈앞의 이 괴물도 자신과 대화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말을 하는 와중에도 놈의 피막 날개는 부르르 떨리면서 가속을 준비하고 있었고, 날카로운 손발톱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몸을 꿰뚫으려 하고 있었다. 이런 약은 새끼. 악마는 이를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다시금 주둥이를 열었다.

“음··· 과묵한 인간이로군. 어찌 됐든 우리와 손잡을 생각은 없나? 영원히 늙지 않는 육신과 더불어 강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너희들의 왕이나 대장군들마저 탐냈던 그 힘이지. 어떠냐?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그분의 사냥터지기인 내가 장담하겠다. 너는···”

숲지기 다음은 사냥터지기냐? 여기가 사냥터고? 이대로 두면 하루 종일 중얼거릴 것 같은 놈의 모습에 벨로크는 행동을 취했다.

달려들어서 검을 휘두르는 대신, 눈가를 조금 떨어주었다. 그러자 악마의 입가가 조금 일그러졌다. 상대가 동요 했다고 판단한 걸까. 녀석은 말을 끊고는 피막 날개를 한순간에 가속시켰다.

공기가 붕 울리고 형체가 흐릿해진 괴물이 쏜살같이 쇄도해왔다. 벨로크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오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대검이 번뜩였다. 풍압과 함께 눈밭이 촥 갈라졌다. 한발 늦게 반으로 쪼개진 악마가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벨로크는 후두둑 떨어지는 내장과 빨갛게 물드는 도화지를 잠깐 바라보았다. 이윽고 검을 집어넣고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입김은 약해져 있었다. 새하얗던 세상이 사라지고 다시금 어둠이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너저분하게 널린 악마들의 시체 사이로 세 명의 여인들이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쪽에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수백 명의 군중들이 보였다. 용기를 얻은 자, 여전히 겁에 질려있는 자, 어떻게 하면 자신을 이용해 먹을까 눈을 굴리는 녀석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그는 이들의 보모 노릇을 해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못 따라오면 버릴 뿐이었다.

#

악마들의 습격으로 인해 멈춰졌던 대책 회의가 재개되었다. 벨로크 일행의 초월적인 무력을 목격해서 그런가. 분위기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신세 한탄 대신 어떻게든 벨로크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 목숨줄이 걸려있었으니까. 모닥불 지펴진 폐가안에서의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마을 옆에 있는 해골산들이 붉은 악마들의 영역입니다. 놈들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그곳에서 쏟아지고 있죠. 하지만, 경께서 놈들을 다 쓸어버리셨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군요! 정말이지 대단하신 솜씨입니다! 그야말로···”

와중에는 정보라고 불릴 만한 것 대신 별 이상한 잡담도 있었다. 벨로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쫑알거리고 있는 저 인간 또한 그런 부류였으니까.

“그만, 그것 말고 다른 정보는?”

열변을 토하던 피그오 남작이 입을 떠듬거리자, 기회를 노리던 용병대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벨로크가 그를 가리켰다.

“말해보시오.”

“이건 다른 지역에 떨어졌다가 여기까지 도망쳐온 제 부하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지금 저희가 있는 마을을 지난다면 어떤 장소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시종일관 타오르고 있는 마을 하나가 나온답니다. 더군다나 그곳에서 나오는 게 어떤 괴물들이냐면···”

용병대장이 목소리를 깔면서 분위기를 잡았지만, 벨로크는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이미 절벽 위에서 다 본 광경이니까.

“불타는 마을이 거인들의 소굴이란 말을 하려는 건가?”

“헙. 그걸 어떻게···?”

“다른 건?”

“놈들이 무척 포악하다는 것과 드레이크처럼 입에서 불을 내뿜는다는 것 정도?”

브레스를 뿜는 거인이라. 조심해야겠는데. 이건 좀 쓸만하군.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용병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자 여사제 한 명이 이에 질세라 손을 올렸다. 마치, 사탕을 달라고 떼쓰는 아이 같았다. 벨로크가 그녀를 지목했다.

“그래, 달의 여신을 모시는 사제께서는 어떤 정보를 가지고 계시지?”

여사제는 긴장이 되는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윽고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저희가 붉은 악마들에게 쫓겨서 이 마을로 도망치고 있을 때. 보게 된 게 하나 있어요.”

벨로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사제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해골산의 끝자락에 웬 사람 한 명이 서 있었어요. 붉은 망토를 입고, 요상한 검 하나를 차고 있었는데. 악마 놈들이 그 사람을 따르는 듯 주위를 빙빙 돌고 있더라고요.”

괴물들의 우두머리라. 숲의 노파 같은 놈인가? 벨로크가 턱을 쓰다듬을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카라가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당신은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는데. 요정족도 아니면서 그 먼 거리에 있는 걸 어떻게 봤다는 거야?”

여사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는 주위의 음영과 맞물려 한층 더 우울하게 느껴졌다.

“마법진을 타고 떨어졌던 곳이 하필 해골산 근처였거든요. 덕분에 대부분의 동료가 잡혀가고 저를 비롯한 소수만이 살아남았어요. 제가 잘못 봤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사제가 말끝을 흐리자, 벨로크는 손을 내저었다.

“고맙소. 많은 도움이 되는군.”

그 밖에도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딱히 쓸만한 건 없었다. 어찌 됐든 해야 할 일은 똑같았으니까. 괴물들을 뚫고 또다시 괴물들의 서식지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놈들의 우두머리인 대악마를 죽이는 것. 벨로크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윽고 축객령을 내렸다.

“회의는 이쯤 하지. 다들 피곤할 텐데. 그만 가보시오.”

“고생하십시오. 나리.”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용병대장, 촌뜨기 기사, 사제 등 대표자들이 하나같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하지만, 벨로크 일행을 제외한 딱 한 사람이 방 안에 남아있었다. 양팔을 내밀고 모닥불을 쬐던 아델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남작. 당신은 왜 안 가시오? 할 말이 남았나?”

“저, 그게···”

남작은 몸을 꾸물거리며 품을 뒤졌다. 벨로크는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을 한 가지 읽었다. 초조함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대부분의 대표가 괜찮은 정보들을 하나씩 던졌다. 하지만, 그는 별달리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못 했으니까. 이대로 있으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남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품속에 있던 작은 병 하나를 벨로크에게 건넸다.

“이, 이걸 받아주십시오. 벨로크 경. 아니, 벨로크 님!”

벨로크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이건?”

“샹드레져 32년산입니다.”

“이게 대체 무엇이오?”

“술입니다.”

“술?”

“금화 수백 닢은 호가하는 물건이죠. 원래는 승전 연회를 기념해서 가지고 온 것인데. 저 같은 놈보다는 실로 위대하신 기사께서 드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저, 정말 귀한 겁니다. 그럼···”

남작은 그 말만을 남긴 채, 후다닥 자리를 벅찼다. 아델이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뇌물입니까?”

옆에 있던 이자벨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오히려 벨로크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좋은 술이에요. 피로 물든 밤을 달래기에는 최고죠.”

“저기··· 내일을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과음은 좀···”

카라가 말끝을 흐릴 때.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보석 달린 검에 상인마냥 툭 튀어나온 배, 생긴 것만큼이나 어울리는 처세였다. 하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짙은 강행군을 위로하기에는 술만 한 것이 없었으니까.

벨로크는 고개를 돌렸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은 여전히 붉었고,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내일이 되면 또 한바탕 날뛰어야 할 테니 목을 축이는 것도 좋겠군. 어차피 해는 뜨지 않겠지만...”

아델이 냄비를 올렸고, 끓어오르는 스튜와 함께 술잔이 찰랑거렸다. 그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용병들처럼 먹고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마계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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