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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31화 (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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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벨로크는 기다릴 것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녀석이 고개를 들이밀고 할 것도 없었다.

콰아앙

무식한 대검이 괴인의 몸통을 짓뭉갰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출입구 일부도 박살 내버렸다.

곤죽이 되어버린 괴인의 사체 위로 붉은 벽돌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델과 카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끔뻑거렸다. 분명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빨랐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것에는 괴인의 움직임과 벨로크의 대검 둘 다 포함된 의미였다.

벨로크가 위협하듯 대검을 앞세운 채, 슬쩍 뒷걸음질 쳤다.

“정신 차려라.”

“네!”

아델이 머리를 흔들었고, 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세 사람은 벽돌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괴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꿈틀꿈틀

살덩이가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교회 안의 어둠과 대비되듯 밀랍처럼 하얀 피부와 날카로운 손톱이 엿보였다.

그 위를 덮고 있는 때가 탄 법복이 괴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카라가 중얼거렸다.

“끔찍한 피부 조각···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걸.”

“그 말은?”

“구울 같아. 아니, 구울 이야. 확실해. 거기다가 안에서 흘러나오는 저 기운은··· 예사롭지 않아.”

“이미 놈의 소굴이란 거지.”

고개를 끄덕인 벨로크는 대검을 역수로 쥐어 내려찍었다. 그러자 벽돌 아래에서 꿈틀거리던 구울이 움직임을 멈췄다.

언데드가 되어버린 수도사라. 나쁘지 않은 경험치군. 슬쩍 웃으며 고인에 대한 묵념을 마친 벨로크가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다시 엉망이 된 교회 안으로 향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였다. 마치 짙은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사물의 명암 자체가 없었다.

무슨 결계 같은 건가?

벨로크가 의아해하던 찰나.

이변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시뻘건 안광이 번뜩인 것이다. 처음에는 한 개였다. 하지만 숫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나중에 가서는 수십 쌍의 눈동자가 벨로크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귓가로 무슨 소리도 들려왔다. 드드드득이나 다다다닥 같은 바닥을 기는 소리.

거기에 카라가 주문을 외우는 소리도 섞여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도 빛을 뿌렸다.

“비켜! 벨로크! 앞을 밝혀볼게!”

등 뒤가 뜨뜻했다. 벨로크가 물러서며 카라를 슬쩍 보았다.

지팡이 끝에 화염구가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의 머리통만 한 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몸통 만해졌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땀이 비죽 흐를 정도였다.

이 정도면 앞을 밝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다 태우려는 거 아닌가? 벨로크가 감탄하든 말든 카라가 불덩이를 던졌다.

“더러운 악귀들아! 언제까지나 숨어있을 수는 없을 거다!”

교회의 어둠이 쏘아지는 화염구를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이윽고 벽돌 건물은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꽃이 토해냈다.

푸화아악

한순간에 눈앞이 번쩍거리며 내부의 어둠이 물러났다. 그제서야 일행은 안의 광경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박살 난 식기나 예배당 의자 라던지.

피에 물들어 원래의 색깔을 잃고 검게만 보이는 여신상이라든가.

찢어진 잇몸을 내보이며 눈을 가리고 있는 구울 때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때가 탄 법복을 입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몸을 뒤덮는 화마에 수도사나 사제였던 구울 들이 울부짖었다. 이윽고 이빨을 딱딱거리며 몸을 웅크린 괴물들이 벨로크 일행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양팔과 다리를 전부 이용한 네 발 뛰기였다. 게다가 놈들은 굳이 바닥을 고집하지 않았다. 개미처럼 기둥을 타고 오거나 천장을 통해 기어 오기도 했다.

‘교회를 불태우다니. 신성모독이군. 여신에게 저주를 받는 건 아닌가 몰라.’

따위의 생각을 한 벨로크가 교회의 입구에 떡하니 섰다. 알아서 나와 준다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마법이란 건 참 편리하군. 양손에 검을 쥐고 자세를 잡은 벨로크가 한마디 했다.

“나와는 가급적 거리를 두는 게 나을 거다. 괜히 말려들 수도 있으니까. ”

새롭게 합류하게 된 카라에게 하는 당부였다. 그녀도 저런 무식한 쇳덩이에 베이고 싶지는 않은 지.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면 나는 주문을 이용해서 엄호를 해줄게. 아. 혹시 종자 아가씨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마지막 말은 아델에게 하는 것이었다.

붉은 마녀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델의 검은 눈동자와 마녀의 갈색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데.

슬쩍 미간을 찌푸린 아델이 벨로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부탁한다. 아델.”

“명을 따르겠습니다.”

카라와 아델은 교회 건물에서 조금 떨어졌다. 이윽고 두 사람은 뒤편의 철책에 등을 맞댄 채, 전투를 준비했다.

카라는 다시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아델이 그녀의 앞을 지켰다. 그러는 사이. 벨로크는 첫 번째 괴물을 맞이했다.

“캬아아악!”

불타오르는 건물 안에서 바닥을 다다다닥 기어오던 구울이 길게 점프했다.

마치 개구리가 달려들 듯 놈의 흉물이 벨로크를 덮쳐왔다. 대비하고 있던 벨로크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쫘아아악

대번에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갈라진 구울이 바닥을 굴렀다.

벨로크는 놈을 벴을 때의 그 감촉. 마치 딱딱한 밀랍을 가르고,

끈적한 물엿을 휘젓던 느낌을 뒤로한 채,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상·하체가 분리된 놈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 후에는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찔러서 배를 갈라버리기, 폼멜로 놈을 후려친 후, 정신을 못 차리는 녀석을 찍어버리기. 등 이었다.

얼굴에 썩은 피가 튀든 말든,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요란스러운 등장치고는 놈들의 지능이 생각보다 안 높아서였다.

자신은 그저 입구에 선 채, 놈들이 덤벼들면 하나씩 베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제일 처음에 마주쳤던 말하던 구울이 특별했는지도 몰랐다. 이거 손쉽게 끝나겠군. 그나저나 주교는 어디 있는 거지? 그 순간.

콰장창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벨로크 님! 위입니다!”

아델의 비명 같은 외침에 벨로크가 고개를 올렸다. 깨진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구울이 팔을 휘저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설상가상 앞에서는 또 다른 구울이 덤벼들고 있었다. 하지만 벨로크는 당황하지 않았다.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저 심호흡과 함께 손에 들린 대검을 머리끝까지 치켜 올렸다. 다리가 쩌억 벌려졌으며, 대검의 무게를 지탱하는 양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구울 들의 회색빛 눈동자가 점점 가까워졌다. 놈들의 썩어빠진 살점 냄새가 벨로크의 코를 자극했다. 두 구울의 손톱이 벨로크를 찢어발기려는 순간.

기사가 검을 내려찍었다.

촤아아악

빛이 번뜩이며 위에서 달려들던 구울이 쪼깨졌다. 이윽고 힘을 잃지 않은 대검이 앞에서 달려들던 구울의 몸체마저 갈라버렸다.

후두둑. 하늘에서 떨어지는 살점과 내장을 그대로 맞은 벨로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고개를 흔든 벨로크가 뒷걸음질을 치며 아델과 카라가 있는 곳까지 후퇴했다.

콰장창

곳곳에 나 있는 교회의 창문들이 깨지며 구울 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벨로크가 막고 있던 입구를 벗어나자 사태는 더 심해졌다.

출입구를 비롯해 사방에서 놈들이 몰려온 것이다. 마당이 두두두 울렸다. 이대로라면 포위될 기세였다.

자신은 괜찮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이 문제였다. 어쩌면 괴물들의 파도에 휩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둘을 후퇴시키고 나 혼자서 싸워야 하나?’

벨로크가 고민하던 차였다. 카라가 중얼거렸다.

“입구는 나한테 맡기고, 너희들은 양쪽에서 오는 놈들을 맡아.”

파지지직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머리카락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괴물들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벨로크의 시선이 카라에게로 돌아갔다. 이어서, 그녀의 손에 중점이 맞춰졌다.

여리여리한 손 사이로 시퍼런 뇌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벨로크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너무 보모 노릇을 하려 한 것 같았다.

여기 있는 모두는 일인분은 거뜬히 할 수 있는 동료들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여정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

“아델. 왼쪽을 맡아라.”

생각을 마친 벨로크가 오른쪽으로 달려들었다. 그가 손에 들린 대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바닥이 쿠웅 울리면 어김없이 구울 들이 뭉개지거나 토막 났다.

아델 또한 구울 들에게 달려들었다. 흙바닥이 촤아악 거리며 구울이 달려들었다.

연약한 여자를 체중으로 찍어 누를 셈이었다. 하지만 주인의 전투를 보며 머릿속에 상황을 그려왔던 아델은 재빨리 스텝을 밟았다. 땅에 떨어진 구울이 헛손질을 했고, 그녀의 곡도가 휘둘러졌다.

퍼석

구울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동시에. 뒤쪽에서 빛이 반짝였다. 카라의 손에서 뻗어 나간 벼락이 구울 들을 강타했다.

몸을 뒤흔드는 뇌전에 시쳇더미들이 경련하듯 떨었다. 이어서 녀석들은 피부가 꺼멓게 변하며 한 줌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하아, 하아. 몸이 정상이 아니라서 그런가? 이 정도 주문에 힘이 겨울 줄은···”

식은땀을 흘린 카라가 가슴을 헐떡거리며 숨을 고를 때. 벨로크가 아델을 도와 나머지 구울들을 정리했다.

이윽고 세 사람은 불타오르는 교회와 지진이라도 난 듯. 잔뜩 땅이 헤집어진 마당. 찢겨나가고 타버린 망자들의 잔해 위에 서 있었다.

격렬한 전투 덕분인지. 어스름하게 떨어지던 해는 이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밤의 장막이 사방에 가득 차자.

시뻘게진 교회가 더더욱 눈에 띄었다. 도시의 끝자락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화력이군.”

튀는 불똥을 뒤로한 채, 얼굴이 주황색으로 물든 벨로크가 중얼거렸다.

순수한 감탄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마법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리법칙을 벗어난 저 힘은 정말이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모든 마법사가 다 이런 건 아니야. 나 정도는 되니까. 이만한 위력이 나오는 거지.”

카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머리칼을 쓸었다. 어디서든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괴물 같은 기사의 것이니 더더욱 좋았다.

“진정 두려운 힘입니다. 어째서 벨로크 님이 이 여자를 구하려 했는지 알 것 같군요.”

아델 또한 살짝 질린 얼굴로 카라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담긴 아델의 시선마저 즐긴 카라가 싱긋 웃었다.

“걱정 마. 기사 아가씨. 내가 미치기 전에는 두 사람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윽고 미소를 거둔 카라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물었다.

“그보다 주교는 끝까지 안 보였어··· 자신의 본거지가 다 타고 있는데.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설마 우리가 올 것을 알고 도망친 것은 아닐까요?”

아델 또한 의문을 나타낼 때. 벨로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직감이 찌르르 울리고 있었다. 아침에 주교를 봤을 때. 느꼈던 그 감각이었다.

“이제 왔군. 아무래도 서로 길이 엇갈린 모양인데.”

말을 내뱉은 벨로크가 교회의 건물을 뒤로한 채, 마당을 가로질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괴물들의 육편이 가득 묻은 대검이 들려있었다.

“뭐?”

벨로크의 말에 두 사람도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철창이 끼이익 열렸다. 그 자리에 인자한 인상을 한 노인 한 명과 병사들 두 명이 서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르는 교회와 바닥에 널린 육편들.

엉망이 된 주위를 둘러본 병사들이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무슨.”

그 때. 한 병사가 마당에 서있는 벨로크 일행을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허억. 루즈백 님. 성을 습격한 괴한들이 저자들입니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루즈백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겁에 질린 병사들과 달리 그의 두 눈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거··· 성에 변고가 닥쳤다고 해서 다녀왔건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형제님들?”

루즈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사들이 앞을 막든 말든, 벨로크는 씨익 웃으며 루즈백에게 다가갔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연기라고? 이제 그만 정체를 드러내셔야지.

“이렇게 된 얘기요.”

벨로크가 손에 들린 대검을 대번에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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