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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30화 (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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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사태의 원흉이라··· 루즈백 주교를 말하는 거지? 정말 그자가 악마라고?”

카라는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교회의 도 넘은 마녀사냥은 분명 끔찍했다. 자신도 그 희생양이었으니까.

다행히 저 기사에게 구원받기는 했지만, 그것이 꼭 루즈백이 악마라는 사실을 단언하지는 않았다.

“겨우 목숨을 건진 주제에. 감히 벨로크 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아델이 미간을 찌푸렸고, 카라가 당황했다. 벨로크가 그런 아델을 제지했다.

“아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하지. 나도 긴가민가했으니까.”

벨로크가 품을 뒤적거려 손에 잡힌 추천서를 스윽 내밀었다.

이를 받아들인 카라가 양피지를 읽어내렸다. 내용을 확인할수록 그녀의 눈썹이 곡선을 그렸다.

카라는 온갖 미사여구는 제외한 채, 본론만 중얼거렸다.

“진정 신실하며 명예로운 기사. 벨로크 하이네 경의 악마 바호메트와 사교도 토벌의 업적을 치하한다?”

“하멜른까지 오는 동안. 한 마리 더 잡았지. 놈들의 하수인을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건 그 증거다.”

“음···”

양피지를 곱게 접어서 다시 벨로크에게 넘겨준 카라가 머리칼을 쓸었다. 이윽고 생각을 마친 그녀가 말했다.

“정리하자면 당신은 악마도 죽일 정도로 강력하며, 교회의 보증을 받을 정도로 신실한 기사야. 그런 기사가 이 땅의 주교를 악마로 규정했다. 맞아?”

“그래, 처음 봤을 때는 미심쩍었지만, 너랑 영주를 만나고 나니 확신이 들더군.”

벨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즈백을 보고 느꼈던 기시감, 그가 아들을 치료해주고 영주의 신임을 얻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일어난 마녀사냥. 모든 정황이 그가 악마라는 사실을 대변해주었다.

카라가 또다시 의문을 나타냈다.

“추천서가 있었다면 영주에게 보여주고 협력을 요청할 수 있지 않았을까?”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죽는 순간까지. 루즈백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놈에게 이딴 종이 쪼가리가 효력을 발휘했을 것 같지는 않군. 하물며 당시의 나는 죄인을 탈출시킨 범죄자였지.”

“그건 그렇네. 상황이 안 좋긴 했어.”

“그래서 이제 믿음이 좀 가시나?”

카라는 피식 웃었다.

“애초에 나는 당신을 믿고 자시고 할 게 없어. 다 죽어가는 나를 구해줬잖아? 설령 같이 왕의 목을 따러가자고 해도 따를 거야. 방금의 질문은 단순한 의문일 뿐이었어.”

“믿음직스러운걸.”

벨로크도 씨익 웃었다. 상황이 꽤나 잘 풀렸다. 만약 처음 계획했던 대로 카라에게 거래를 제안해서 동료로 맞았다면, 시작부터 이 정도의 호감은 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카라가 고갯짓을 했다.

“그전에 일단 내 방에 좀 들르는 게 어떨까? 떠나기 전에 챙겨야 할 게 많아. 하물며 악마를 상대하는 일이라면야.”

“물론이지.”

세 사람은 곧 성내에 있는 마법사의 방으로 향했다. 영주가 죽고 성이 초토화됐으니, 그들의 발걸음을 막을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방문을 연 카라가 과장되게 양팔을 벌리며 웃었다.

“마법사의 방에 온 걸 환영해. 용감한 기사들. 굴러다니는 것을 함부로 만지면 개구리가 될지도 몰라?”

개구쟁이처럼 장난기가 가득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벨로크는 그녀의 말투와 행동 속에 담겨있는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이제 곧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는 불안감. 그사이에 존재하는 약간의 두근거림 같은 다채로운 감정들이 느껴졌다.

벨로크는 그것이 새롭게 얻은 힘. 육감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몰랐다.

그냥 난데없이 들이닥친 폭풍에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저 마녀도 참 힘들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뭐, 이제는 같이 여행하게 될 동료였지만,

“놈들이 그렇게 안 헤집어놓아서 다행이야. 마녀의 저주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하. 기도 안 차는군.”

카라가 씁쓸하게 웃으며 방안을 뒤적거렸다. 그녀가 책장에 꽂혀있는 오래된 서적이나 로브, 지팡이 등을 챙기며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벨로크와 아델은 방안을 구경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왜 마법사가 툭하면 마녀나 이단으로 몰리는지도 알게 되었다.

책상은 본래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만큼 난잡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수정구나 유리에 담겨 부글거리는 요상한 액체라던지, 말린 박쥐나 개구리의 표본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 등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으···”

아델이 진저리를 치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같은 마법사가 아닌 이상, 이 세계의 사람들 대부분은 마법이라는 학문을 두려워했으며 꺼림칙해 했다.

요상한 사술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벨로크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비커처럼 보이고, 이건··· 약사발인가?’

마치 과학실험을 하는 거 같다. 벨로크는 어째선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벨로크 님. 조심하십시오. 저주에 걸리실 수도···”

아델이 한쪽 팔을 뻗으며 만류할 때, 카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챙겼어. 이제 가면 될 것 같아.”

벨로크와 아델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두 사람 다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머리칼만큼이나 시뻘건 로브를 입은 채, 지팡이를 든 카라의 모습이 보였다.

“오.”

“차려입으니 좀 마법사 같군.”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비참한 죄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오직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겨내는 마법사 한 명이 서 있을 뿐 이었다.

“후후. 그래? 나중에 실력으로도 보여줄게.”

카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손에 들린 지팡이를 흔들었다. 다른 손에는 백과사전처럼 보이는 두꺼운 책이 들려있었다.

벨로크가 그 책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갈드라보크가 저거로군.’

소유자의 능력에 따라 수십 혹은 수 백 개의 주문을 알려준다는 전설 속의 마법서.

이는 카라를 손에 꼽히는 마법사로 만들어주는 유물이기도 했다. 벨로크가 굳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이유이기도 했고.

“손에 들린 책은 뭐지?”

아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카라가 책을 탁자에 턱 놔뒀다. 먼지가 풀썩였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 이거? 얼마 전에 휴가차 다른 영지에 갔다가 구한 거야. 노점상이 파는 물건이었는데. 기이한 기운이 느껴져서 일단 집어왔지. 그런데 걸려있는 봉인이 너무 강하지 뭐야? 그래서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어. 이건 내 감인데. 분명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아.”

“내가 처음에 너에게 제안하려고 했던 게 저거다.”

“응? 아, 내가 가진 물건의 봉인을 풀어줄 테니. 동료로 들어오라고 한 거? 그게 이 책이었어?”

벨로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마법사도 아닌 기사가 이 책의 봉인을 해주 할 줄 안다고? 대체 어떻게?”

“신의 은총이 알려주더군. 일단 하나만 말해두자면 그건 대단한 마법서라는 거다.”

정보의 바다를 검색하면 안 나오는 게 없지. 속으로 중얼거린 벨로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카라는 황당하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벨로크의 마지막 말에 눈을 빛냈다.

“무슨··· 신이 그런 것도 알려준다고? 잊혀진 고대 신인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튼 이게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벨로크가 흥분한 카라를 제지하며 말했다.

“아니, 저건 푸는 데 꽤나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

“하긴, 우리는 이 땅의 영주를 죽인 불안당 무리에 곧 주교까지 죽일 사람들이지.”

카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흥분을 애써 가라앉힌 카라가 싸두었던 짐을 메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벨로크와 아델도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기 직전, 카라의 가라앉은 두 눈이 방안의 광경을 이리저리 살폈다.

미련을 못 버린 채,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방랑자의 눈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뜨이며 기묘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떠한 다짐이었다. 한순간에 자신의 신세를 망친 악마에게 한칼 먹여주겠다는 의지와 과연 이 기사가 자신을 어디로 이끌지에 대한 기대감.

고개를 돌린 카라가 중얼거렸다.

“부디 교회랑 귀족 양쪽에서 쫓기는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악마가 요란하게 날뛰어준다면 우리의 무고도 증명될 거다. 가능하다면 증인들의 눈이 많을 때. 주교가 본모습을 드러내면 좋겠지.”

“그러면 시민들의 피해가 커지지 않을까?”

“영문도 모른 채, 계속해서 불태워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벨로크의 냉담한 반응에 카라가 조금 놀랐다. 악마를 둘이나 잡고, 영지를 구한 기사치고는 썩 명예롭지 못한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저 남자를 따라간다면 적어도 개죽음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마녀가 피식 웃었다.

“그래, 맞아. 영웅 놀이 하다가는 죽기 딱 좋은 세상이지.”

세 사람은 성을 빠져나와서 걸었다. 어느새 태양이 지고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도시를 감돌던 매캐한 연기나 고기 굽는 냄새도 줄어들었다.

세 사람의 얼굴을 본 주민들이 기겁하며 도망치던, 저주에 걸린 한 사내가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던, 일행은 계속해서 걸었다.

미약하게 남은 태양 빛에 세 사람의 그림자가 들쑥날쑥했다. 그건 도시 외곽에 위치한 교회 건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꾸불거리는 그림자가 마치 내장처럼 보였다.

이상했다. 교회란 본디 신을 모시며 기리는 곳이다. 하지만 이 붉은 색깔의 벽돌 건물은 따뜻함이나 포근함 대신 기이하며 불길한 기운만 넘실거렸다.

벨로크의 육감이 경종을 울렸고, 카라가 얼굴을 잔뜩 가라앉혔다. 아델도 허리춤의 검집을 굳세게 쥐었다.

“조심해. 아까 마을을 지나쳐 올 때 본 사람들 있잖아.”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던 사람 말인가?”

아델의 질문에 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유독 팔다리가 길었지. 그리고 그 괴성.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어쩌면 구울화가 되어가는 걸지도 몰라.”

“구울은 죽은 시체에 원념이 쌓여서 생겨나는 것 아닌가?”

뜻밖의 사실에 아델이 눈을 크게 떴다. 카라는 고개를 저었다.

“지하에 서식한다는 악마의 주문이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 어쩌면 놈이라면 살아있는 사람을 진짜 구울로 만들 수도 있을 거야.”

벨로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머리 악마와 거대 뱀 악마를 생각해본다면 꽤나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분명 이번에 상대하게 될 녀석도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겠지.

“어찌 됐든 방법은 하나뿐이다.”

벨로크가 교회의 문 앞에 서며 말했다. 그러자 아델이 검과 방패를 뽑았고, 카라는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 벨로크가 문을 걷어찼다.

콰아앙

강철 그리브에 부딪친 나무문이 산산 조각났다. 그러자 시꺼먼 어둠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태양 빛도 교회의 내부로 전혀 스며들지 못했다. 마치 저 안만 다른 공간인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태연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래서 더 기묘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자기 집 대문을 부쉈는데. 저렇게 친절한 어투로 묻는단 말인가?

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무기를 꾹 쥐었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목소리가 끈적하게 늘어졌다.

잠시 후.

“누구우우우우십니까아아아아악?”

찢어질듯한 괴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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