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마녀사냥
시종의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은 근처 초소에 무기를 맡긴 채, 지하 감옥으로 들어왔다.
여느 감옥이 그렇듯. 바닥에서는 습기가 올라왔으며, 공기는 축축했다.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였다.
밀렵, 신성모독, 도둑질 등의 죄목으로 갇힌 범죄자들을 지나치자, 제일 마지막 공간에 그녀가 있었다.
독방이었다. 안에서 간수의 목소리가 흉악하게 울려 퍼졌다.
“이 더러운 마녀야. 이래도 입을 안 열테냐?”
웃옷을 벗어 던진 간수가 손에 들린 부지깽이를 갖다 댔다. 치이이익 살 타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에 매달려있던 전라의 여인이 발버둥 쳤다.
지독한 고통이 휘몰아쳤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갈색 눈은 독기로 차올랐다.
“으으읍!”
그 눈빛을 받은 간수는 일견 몸이 떨려왔다. 입을 천으로 틀어막고 재갈까지 물려놨으나, 저년은 마법사였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감히 눈도 못 마주쳤을 존재.
‘아니지. 어차피 지금은 묶여있는 병신일 뿐이지.’
간수는 공포심을 몰아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자신은 죄인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 땅을 위해서 그리고 고통 받는 도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독한 년. 좋아. 다음은 채찍이다. 그다음은 물고문에 마지막으로는 손가락을 잘라주마.”
비열하게 웃은 간수가 탁자에 걸쳐놓았던 징 박힌 채찍을 꺼내 들었다. 의무감, 책임감 사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도도하게만 보이던 이 여자가 나락까지 떨어졌다. 이년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간수는 제일 좋았다.
“흐흐흐. 그러고 보니 영주께서 죽이지만 않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지.”
간수가 채찍의 손잡이를 이용해서 카라의 턱을 치켜 올렸다. 피투성이가 되고 온몸 가득 생채기가 나 있었지만, 미색은 여전했다.
카라를 바라보는 간수의 눈에 음심이 차올랐다. 간수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바지춤을 풀 때였다.
“간수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뭐··· 뭐냐?!”
시종의 목소리에 당황한 간수가 황급히 바지를 추스르며 감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중무장한 기사가 둘 보였다. 영지의 기사님들이 아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지?’
별다른 언질도 받지 못했지만, 간수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귀하신 분들께서 여기에는 어쩐 일로?”
벨로크는 영주와 나눴던 대화들을 대충 들려줬다. 그러자 간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했다.
“그렇군요. 나리들께서도 그 요술쟁이 년한테 볼일이 있으셨군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년은 지금 저 안에 있습니다. 어찌나 독한지 입을 안 열더군요.”
“들어가 봐도 되나?”
“물론입죠. 고문하는 모습을 좀 보시렵니까?”
“아니, 잠깐 셋이서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벨로크가 아델을 가리키며 말하자. 간수의 눈빛이 순간 요상해졌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자 둘과 남자 하나?
잠깐 생각을 하던 간수가 이내 히죽 웃었다. 기사나리도 별수 없는 사내로군. 간수가 땀에 젖은 이마를 스윽 넘기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나리들. 하하. 천천히 즐기시고 나오십시오.”
“고맙네.”
알아서 착각해주니 편하군.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 들어가자.”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델?”
벨로크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아델이 얼굴을 붉히며 바닥을 걷어차고 있었다.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벨로크의 얼굴이 황당해졌다.
‘너까지 왜 이래?’
“참. 입에 물려놓은 재갈과 천은 절대 빼시면 안 됩니다. 마녀가 요술을 부립니다요!”
“걱정 말게.”
끼이익
두터운 철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감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벨로크 님···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악.”
벨로크가 정신을 못 차리는 종자의 머리를 때려주었다.
“망 잘 봐라.”
“아··· 알겠습니다.”
주인의 타박에 화들짝 놀란 아델이 출입문에 기댄 채, 귀를 기울였다. 그제야 벨로크는 감방의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땀 냄새와 피 냄새, 오물 냄새가 가득한 공간 안에서 미약한 횃불 빛이 일렁거렸다.
차르릉
방의 정중앙.
쇠사슬에 묶여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마녀가 보였다.
폴리곤과 텍스트로 이뤄진 게 아닌, 진짜 살아 숨 쉬는 인간. 붉은 머리 마녀. 카라.
“꼴이 말이 아니군.”
벨로크는 혀를 차며 카라에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옮길수록 카라가 몸을 비트는 게 더 커졌다.
그에 맞춰 손목을 묶은 쇠사슬도 치렁거렸다. 연약한 피부가 쓸려나가며 피가 뚝뚝 흘렀다.
“으으읍!”
카라가 눈을 시퍼렇게 뜨면서 벨로크를 노려봤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죽이려 드는 영주나 고문하는 간수. 새롭게 등장한 기사놈 또한 다 같은 새끼들이었다.
나락에 처박힌 자신을 모욕하고 농락하기 위해 온 거겠지.
‘주문만 쓸 수 있었다면··· 다 죽여버렸을 텐데! 내장을 끄집어내서 토막을 내줬을 텐데!’
하지만 손과 입이 막혀버린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마법사 카라가 아니라.
벌거벗겨진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여인이었으니까. 간수 앞에서 강한 척은 했지만, 거센 고문 탓인지. 그녀의 강인한 정신력도 차츰 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때. 몸 근처에서 우악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카라는 아까 전 간수의 음험한 눈길을 떠올렸다. 이 새끼도 똑같군.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봐.
카라가 체념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철그럭
“컥.”
입에 물린 재갈과 천이 빠져나갔다. 입안을 통해서 들어오는 공기에 카라가 신음을 내질렀다.
침이 줄줄 흐르고, 목구멍이 컥컥거렸다. 하지만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그녀는 주문을 외울 생각도 못 한 채,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멍한 얼굴로 벨로크를 바라봤다.
“허억, 허억. 왜··· 왜.”
“널 풀어준 거냐고?”
벨로크는 흔들리는 마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쓰게 웃었다. 이런 꼴로 재회하는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쭈그려 앉은 벨로크가 매달려 있는 그녀의 손발목을 확인했다.
“으윽.”
“다행히 어디 잘린 곳은 없군. 걸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무슨 소리야.”
“처음에는 거래를 제안하려고 했지. 네가 가지고 있는 마법 물품의 비밀을 풀어줄 테니, 나를 따라오라고 말할 생각이었어.”
“그게 대체···”
벨로크는 카라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런데. 일이 꼬여버렸지. 너는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혔고, 나는 그런 마녀를 탈옥시켜야 하지. 왜냐면 내가 아는 한 너는 최고의 마법사니까.”
그의 시선은 카라를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로 향했다. 음. 저 정도 굵기라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신을 차린 것인지. 카라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나를 탈옥시킨다고? 대체 왜? 너는 누군데 나를···”
“억울하잖나.”
벨로크의 한 마디에 카라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 억울했다. 그것도 존나게.
그녀는 다른 마법사들처럼 변덕스럽지도 사악하지도 않았다. 그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점을 봐달라고 하면 봐줬다. 물약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어줬다. 하지만, 그 모든 행위가 창칼이 되어서 돌아왔다. 나보고 악마랑 내통한 마녀란다. 기가 찼다.
“시발, 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녀가 눈물을 비죽 흘리며 울먹거렸다. 여인의 가녀린 등이 파르르 떨렸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까. 시뻘게진 눈을 한 카라가 고개를 들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래봤자, 쇠사슬에 매달린 불쌍한 여인처럼 보일 뿐이지만, 카라가 한층 담담해진 어조로 말했다.
“일단 구해줘서 고마워. 정식으로 소개할게. 난 카라. 마법사야.”
“벨로크. 저쪽은 내 종자 아델.”
문가에 서 있던 아델이 슬쩍 눈인사를 건넸다. 목이 막히는지, 기침을 몇 번 한 카라가 다시 말했다.
“나를 동료로 모집하고 싶다고 했지? 좋아. 이 더러운 공간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따라가 주겠어! 너는 날 구해줬으니까. 그전에 일단 물러나도록 해!”
“왜 그러지?”
카라가 자신을 묶고 있는 구속구를 보면서 말했다.
“이걸 풀어야 할 테니까. 마법을 쓸 거야.”
말을 마친 카라가 입술을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언제 영주 일당들이 눈치챌 줄 모른다. 탈출은 빠를수록 좋다.
그녀의 갈색 눈이 광채로 번뜩거리고 요상한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턱
“윽?”
하지만 그녀의 주문은 벨로크의 손길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영창 중에 방해를 받자. 카라가 짜증스럽게 벨로크를 바라봤다.
“대체 왜···”
“몸도 안 좋은데 무리하지 말지?”
“누가 그걸 몰라? 일단 이걸 풀어야 여기서 나가··· 뭣?”
카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벨로크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구속구가 종잇장처럼 뜯겨나간 것이다.
한순간에 자유로워진 카라가 기우뚱 넘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몸을 벨로크가 턱 받쳤다.
“조심해야지. 귀하신 마법사인데.”
벨로크의 품에 안긴 카라가 입가를 떠듬거렸다.
“이게 무슨··· 너. 오우거의 후손이라도 되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이곳을 탈출해야지.”
“걱정 마. 이제 마법을 쓸 수 있으니··· 윽.”
온몸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카라가 몸을 비틀었다. 거봐라. 무리하지 말라니까. 그녀를 살살 다독여준 벨로크가 아델을 불렀다.
다가온 아델의 시선이 카라의 가슴과 자신의 가슴에 조금씩 머물렀다. 이윽고 낮게 혀를 찬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미안하지만 아델. 네가 조금 업어줘야겠다. 제대로 거동도 못 하는 군.”
“알겠습니다.”
벨로크가 안고 있던 그녀를 넘겨주자 카라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반항했지만, 아델은 가뿐히 무시하며 마녀를 들쳐 업었다.
등 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아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직접 느껴보니까 상상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반항했지만, 이윽고 갑옷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이 기분 좋은지. 카라가 조금 풀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탈출할 생각이야? 나까지 업고 있잖아.”
벨로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때로는 단순한 것에 답이 있지.”
“흐음?”
“하멜른의 영주가 우리한테 현상금을 걸 수도 있다는 거지.”
슬쩍 웃은 벨로크가 감방의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
콰앙
그러자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낮잠을 자고 있던 간수가 끔뻑 고개를 들었다.
“어이쿠. 나리. 생각보다 빨리 끝나셨군요?”
헤헤 웃던 그의 시선이 돌처럼 굳었다. 여기사의 등에 업힌 마녀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어. 저년이 왜 풀려난 거지?
“이게 무슨···”
“악의는 없다.”
벨로크가 간수의 머리를 거세게 걷어찼다.
“꺽.”
간수는 의문을 풀지도 못한 채, 목이 터억 꺾이며 구석에 처박혔다.
창살이 댕댕 울렸고, 감옥에 갇혀있던 다른 죄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저렇게 쉽게 죽여서는 안 되는 놈이었어! 갈기갈기 찢어 죽였어야 했다고!”
아델의 등에 업힌 카라가 난리를 쳤다.
불과 조금 전까지 자신을 찢고 지지던 사내였으니, 벨로크도 그 기분을 이해했다. 하지만 원흉은 따로 있었다. 갈 길도 바빴고.
“미안하군. 다음에는 좀 더 잔인하게 죽이도록 하지.”
이뤄지지도 않을 약속을 한 벨로크가 앞장서서 걸었다. 이윽고 그는 괴력을 발휘해서 감옥 안의 창살들을 구부러뜨리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죄수들이 기겁했다.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자비로운 기사가 탈옥의 기회를 준 것뿐이다.”
벨로크는 아무렇지 않게 답하고는 계속해서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카라가 아델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방패막이야··· 영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간지럽다. 주문쟁이.”
“어머. 미안.”
세 사람이 걸어가는 족족. 죄수들도 풀려났다. 마침 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입을 크게 벌리며 감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유다아!”
“자비로운 기사님께 영광을!”
죄수들의 소란을 틈타 감옥을 벗어난 벨로크 일행은 초소에 들러서 맡겨두었던 무기를 되찾았다.
“맙소사. 저런 걸 인간이 휘두른다고?”
벨로크가 매고 있는 대검을 본 카라가 또다시 입을 벌렸다.
물론 그 대검을 수없이 휘둘러온 벨로크에게는 익숙함과 동시에 지겨운 반응이었다.
카라의 감탄을 무덤덤하게 넘긴 벨로크가 초소 밖으로 먼저 나왔다.
그러자 얼굴을 잔뜩 굳힌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십 명의 병사가 보였다.
번뜩거리는 창날과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촉은 금방이라도 그의 몸을 찢을 듯했다. 하지만 벨로크의 무덤덤한 표정은 깨지지 않았다.
“반응이 빠른데?”
짧게 중얼거리자. 병사들의 틈을 비집고 하멜른 영주가 나왔다. 마치 이럴 것을 예상했다는 듯. 오만한 태도로 벨로크를 비웃었다.
“내 혹시나 해서 준비해둔 것이네만, 설마하니 기사라는 작자가 이딴 비열한 짓거리를 벌이다니.”
벨로크는 이제라도 사실을 밝혀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은 당신이 믿고 있는 주교가 진짜 악마고, 마법사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오. 어떻소. 그럴듯하지 않소?
벨로크는 피식 웃었다. 개도 안 믿을 소리였다. 그래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굳이 죄없는 자들의 피를 보고 싶지는 않은데... 꼭 싸워야 겠나?”
하멜른 영주도 피식 웃었다.
“겁 먹었다는 말을 거창하게도 하는구나. 이 마녀의 동조자야.”
“그렇다면 답은 나왔군.”
벨로크는 묵묵히 대검을 뽑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