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마녀사냥
“교회법에 의거해서 이단자들을 색출하는 그것 말인가?”
아델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저은 병사가 부연설명을 했다.
“정확히는 악마의 색출입니다. 현재 도시 내부에 악마가 숨어들었다는군요.”
벨로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에는 산채로 사람을 태워 죽인다는 야만적인 행위에서 온 거부감도 있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하멜른은 원래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도시가 아니었다. 미래가 바뀐 것이다.
그 이유는 쉽사리 짐작이 갔다. 병사의 말마따나 악마. 그놈들이 늘 문제였다.
어째선지 일이 꼬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일단은 상황 파악부터 해야겠는데. 벨로크가 물었다.
“교회의 주도하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영주님은 뭐하고 계신가? 서로 합의는 된 건가?”
“그것이···”
병사가 망설이자. 벨로크가 동전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아델이 먼저 선수를 쳤다.
품에서 재빠르게 은화를 꺼내서 병사에게 쥐여준 것이다.
검 대신 돈이라. 좋아. 점점 발전하고 있군. 벨로크의 감탄과 함께 병사도 히죽 웃었다.
“어디 가서 밝히기 좋은 내용은 아닙니다만, 두 기사님들께서는 워낙 입이 무거워 보이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돈 때문은 아니고? 벨로크가 어서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주위를 둘러본 병사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현재 일어나는 마녀사냥은 영주님의 묵인 하에 교회가 벌이고 있는 짓이 맞습니다.”
“하멜른 영주가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나?”
병사는 택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마을에 저주가 퍼지고, 하나뿐인 아드님께서도 그 저주에 걸리셨다면 없던 신앙심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저주?”
“피부가 썩은 고목처럼 갈라지며 고름이 흘러나오고, 손발톱이 기괴하게 자라났다는군요.”
설명을 마친 병사가 입으로 괴상한 소리도 냈다. 그 모습이 구울을 연상케 했다.
“맙소사.”
벨로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쯤 되면 진짜 저주였다. 곧 그들의 귓가로 저주만큼이나 끔찍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악다구니와 비명소리, 아우성 등이었다. 고기 굽는 냄새도 한층 진해졌다.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 상상이 갔다. 벨로크와 아델이 인상을 찌푸리든 말든, 병사는 익숙한 듯 코를 파며 말했다.
“수소문을 통해 용하다는 명의를 다 찾아 다녀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죠. 하필 그때는 또 마법사님··· 아니, 그 여자마저 자리를 비웠던 터라···”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주교께서 말씀하시길. 이 저주는 악마가 내린 것이며, 녀석이 사람들 틈에 숨어들었으니 놈을 찾아서 죽여야 저주가 풀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밀고를 받거나 의심이 되는 사람들은 다 잡아서 심문하거나 태워죽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이 꼴이 난 거죠.”
벨로크가 고개를 저었다.
“미쳤군. 애먼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거기다가 빛을 모시는 사제들이 악마 하나를 못 찾는다고? 말이 안 되는데.”
경비가 대경실색했다.
“쉿. 기사님. 부디 입조심 하십시오. 지금 이 도시에서 교회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입니다.”
“그렇군.”
주위를 둘러본 경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저희 같은 말단이 무얼 알겠습니까? 그저 이 사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뿐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되건, 내 가족만 지키면 끝이지. 속마음을 숨긴 경비가 안내를 계속했다.
“영주 성으로 가려면 광장을 지나쳐야 합니다. 이제 곧 나오겠군요. 지금 한창 재판 중일 텐데.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경비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코너 길을 돌았을 때. 벨로크와 아델은 절로 신음성을 흘렸다.
사방에서 화염이 넘실거렸다. 진행형이었고, 앞으로 진행될 광경이기도 했다.
기둥 위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과 다 타버려 꺼먼색의 형체만 남은 잿더미들.
그런 그들을 둘러싼 채 야유를 퍼붓는 사람들. 모두 다 같은 인간이었다.
차이점은 하나였다. 이들이 정녕 무고한가? 아니면 악마가 숨어든 마녀인가?
그걸 정하는 것은 단상 위에 서서 포고문을 들고 있는 왜소한 노인이었다.
단상을 슬쩍 올려본 경비가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루즈백 주교입니다. 하멜른의 교회를 총괄하시는 고위 사제이시기도 하죠.”
“저자가?”
벨로크와 아델이 고개를 올렸다. 떨어지는 태양 사이로. 바가지 같은 하얀 모자를 쓴 채, 포고문을 읽어 내려가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을 본 순간. 벨로크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꺼림칙했다. 마치 다른 생물을 보는 듯한 느낌. 강대한 적을 상대로 ‘꺼지지 않는 투지’가 반응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이건··· 설마?’
벨로크의 미심쩍은 시선을 뒤로한 채, 주교가 입을 열었다. 낭랑한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판결! 죄인들은 갱생의 여지가 없으니.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 불 속에서 그 죄를 뉘우치게 하겠다!”
말을 마친 주교가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명백한 사형 집행이었다.
와아아아
그러자 마녀가 아니라고 판명된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윽고 그들은 기둥에 묶인 죄인들에게 돌이며 침, 썩은 과일 등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건 조막만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한 모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아이의 손에 돌을 쥐여 주며 던지라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칭얼거렸다.
“엄마. 나 안 던지면 안 돼? 로지 언니는 나랑 놀아 줬는걸? 나쁜 사람 아니야아.”
작은 목소리였다. 어린아이다운 상냥한 마음씨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은 광기에 찬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몇몇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뭐? 꼬마야. 너 지금 뭐라고 한 거냐?”
한 사내가 모녀를 가리키며 손가락질 했다.
“누군지 알아! 이제 보니 안나의 딸년이군. 그래, 너는 로지랑 친했었지. 안 그래도 의심스러웠는데. 네년도 마녀였구나!”
“자··· 잠깐. 오해에요! 내 딸은··· 꺅.”
아이의 엄마를 후려친 사내가 쭈그려 앉았다. 이윽고 번들거리는 눈으로 아이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어이, 꼬마. 너도 친구 따라서 저기에 매달릴래? 엉? 시발. 누구는 좋아서 이러는 줄···”
“그만.”
위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내들의 행동이 멈췄다. 시선을 올리자. 중무장한 기사가 보였다.
사내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기··· 기사님이 여기는 왜···”
사내들은 무시한 채, 벨로크가 모녀를 바라봤다. 아이는 훌쩍였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감싸 안고 괜찮다며 속삭이고 있었다.
차마 보기가 힘들어서 끼어들기는 했지만, 행동을 잘해야 했다.
여기서 이들을 함부로 감쌌다가는 그가 떠난 후, 시기를 받은 모녀가 마녀로 몰릴 수 있었다. 그래서 벨로크는 사내와 모녀를 냅다 걷어찼다.
“어억.”
“악.”
그리고 여느 귀족들처럼 오만하게 말했다.
“더러운 평민 놈들아. 어디서 내 앞길을 막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알아들었다면 어서 꺼져라.”
“네··· 네!”
사내들과 모녀가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그 모습에 안내를 맡은 병사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으로 벨로크를 바라봤다.
아델 만이 주인의 자비심을 찬양하며 욕설과 함께 사내들을 한 번 더 후려쳤다.
“어서 지나가지.”
세 사람은 다시 이동을 개시했다.
“불을 붙여라!”
“나··· 난 마녀가 아니에요. 나는··· 아아아악!”
“끄아아아!”
치이이익
뒤편에서 끔찍한 비명과 함께 살갗이 익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가 먹먹할 정도로 강렬한 냄새도 화악 풍겨왔다. 인육 다음은 화형이라니.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냐. 마음속으로 되물은 벨로크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감고 돌을 던지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벨로크가 쯧 혀를 찼다.
“아무리 봐도 좆같은 세상이야.”
시기와 질투, 탐욕, 삶에 대한 집착 등. 온갖 음울한 감정들이 광장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끔찍하군요.”
아델 또한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벨로크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
순간 벨로크의 말문이 턱 막혔다.
괜찮냐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을 팔아넘기고 오늘 하루의 목숨을 연명하는 저 광경을 보고 괜찮냐고?
아니, 그럴 리가. 근데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괜찮다. 그래. 괜찮아야지.”
스스로를 세뇌하듯 중얼거린 벨로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머리칼의 기사는 늘 괜찮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벨로크는 차오르는 상념을 끊었다.
지금은 목표만 생각해야 할 때였다.
광장을 가로질러 한참 걸었을까. 두 사람은 마침내. 하멜른 영주가 거주하는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야 만날 수 있겠군. 성주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 성주는 단지 마법사와의 접견을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애초에 하멜른에 온 것 자체가 성주의 고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그녀를 빼가려고 온 거니까.
하지만 그 계획은 영주와의 대화에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년은 지금 지하 감옥에 처박혀있소.”
널찍한 의자에 앉아있던 하멜른 영주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적당한 안부 인사와 함께 마법사의 행방을 물은 것에서 나온 답이었다.
잘 살고 있는 게 아니었군. 벨로크는 당황했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 여자가 저한테 빚을 져서 말입니다.”
“받아낼 것이 있으시다?! 하. 역시나 그렇군. 경도 속았소? 하마터면 나도 속아 넘어갈 뻔 했지 뭐요.”
어떻게든 만날 구실을 만들어 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 덕분에 의심 가득한 눈으로 벨로크를 쳐다보던 영주의 기색이 한결 누그러들었다.
“이유라··· 뭐, 못 말해줄 것도 없지. 어차피 곧 죽을 테니. 루즈백 주교께서 그년을 마녀라 낙인찍으셨다는 게 그 이유요.”
“마녀요?”
“그렇소. 마녀. 감히 내 하나뿐인 아들을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을 뿐 아니라. 영지 전체에 저주를 내린 마녀 말이요. 그년은 요상한 사술을 사용하는 주문쟁이니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얘기요.”
말을 내뱉는 지금 순간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영주가 탁자를 쾅 쳤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이뤄지는 마녀사냥은 대체···?”
“주교께서 말하시길. 이 땅에 있는 마녀는 한 명이 아니라고 하시더군. 그래서 지금 충실한 내 종들이 그 주문쟁이 년을 고문하면서 정보를 캐내려 하고 있소. 설명이 좀 되었나?”
“···”
벨로크는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갇혀있는 것뿐만 아니라. 고문에다가 사형까지?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더럽게 꼬여버렸군.
그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인 것일까. 하멜른 영주가 변명하듯이 입을 열었다.
“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소. 귀족인 내가 교회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경의 눈에는 못마땅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괴물이 된 내 아들의 원래 모습을 주교가 되돌려주었다면?
끔찍한 괴성밖에 못 지르던 그 아이가 다시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어떻겠냐는 말이요! 그건··· 진정 신의 기적이 아니겠소!”
토해내듯이 나온 그 음성은 하나뿐인 아들을 구한 것에 대한 아비의 부성애가 절절히 느껴졌다.
하지만 벨로크는 그 사실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주교가 원흉이니, 놈의 손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건가? 아니, 피붙이가 걸려있다면 눈이 멀 수도 있겠군.’
그것에는 이 세계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선도 한몫했다. 기이한 사술을 쓰는 주문쟁이 보다 신앙과 교리로 무장한 사제 쪽을 더 믿는 것이다.
물론 벨로크는 아니었다. 학살을 일삼던 주교로부터 느껴진 꺼림칙한 기운과 마녀로 낙인찍힌 옛 동료.
누구를 믿어야 할지는 명확했다.
성직자의 탈을 쓴 악마라...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벨로크가 고심하고 있는 사이. 하멜른 영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 하멜른에 찾아온 비극의 시발점은 모두 카라. 그년 탓이라는 얘기요. 그래, 그년에게 받을 빚이 있다고 하셨지? 소지품을 한 번 보시겠소? 꺼림칙하기도 하니 웬만하면 내어드리리다.”
“그것도 탐나기는 하지만, 그 여자를 직접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꽤나 재밌는 꼴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벨로크는 일부러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비열한 표정을 연기했다. 그게 통한 것일까. 영주 또한 비죽 웃으며 의자를 쿵쿵 쳤다.
“하하하하! 이거 악연으로 얽힌 관계였나 보군. 좋소. 망가진 그년을 데리고 떡을 치든, 어딘가를 못 쓰게 하든 마음대로 하시오. 다만 죽이지는 마시오. 산채로 불태워버릴 테니까.”
“고맙습니다. 영주.”
“별말씀을. 그럼 나가보시오. 시종이 감옥까지 안내해 줄 것이오.”
알현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아델과 시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질을 받은 시종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안내를 자처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벨로크와 아델이 뒤따라갔다. 아델도 기다리는 동안. 나름대로의 정보를 얻은 것인지.
걱정스런 기색으로 속삭였다.
“괜찮을까요?”
“병신이 안 되었기를 바라야지··· 혓바닥이라도 잘렸으면 주문도 못 쓸 테니까.”
벨로크 또한 알 수가 없었다.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도시와 버림받은 마법사, 악마가 된 주교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