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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26화 (2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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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마법사?”

“그래, 손에서 불덩이 좀 발사하고, 보호막 같은 것도 만들 줄 아는 주문쟁이들.”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아시던 분입니까?”

아델의 의문은 타당했다. 마법사는 귀했다. 단순한 주문 몇 개만 알아도, 영주의 고문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동료로 모집하신다고?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그녀의 고민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거든. 지금쯤이면 돼지 영주 아래에서 잘 살고 있을 텐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아델은 얼굴 가득 의문을 떠올렸다가 주인이 곧 신에게 은총을 받은 기사란 걸 떠올렸다.

‘신의 말씀은 범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 아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그 마법사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대체 뭘 이해했는데? 라고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은 벨로크가 말했다.

“이곳에서 며칠 거리에 있는 도시인데...”

그곳이 어디였더라. 주인이 생각에 빠지자. 아델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왕국지도를 꺼내든 그녀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오커 영지 근처라면··· 하멜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고개를 끄덕인 벨로크가 시선을 돌려서 창밖을 바라봤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래픽과 폴리곤 덩어리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얼굴은 어떻게 다를까? 타오르는 듯한 머리칼도 그대로일까. 마녀 같은 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여정 준비를···”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델의 머리를 벨로크가 꾸욱 눌렀다.

윽하며 괴상한 소리를 낸 아델이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정말이지 열정이 넘친다니까. 벨로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 점심에 출발이다. 강행군이었으니까.”

“그러려면 미리 준비를···”

“아델. 체력 회복도 전투의 일환이다. 준비는 내일 해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먹다 남은 식기, 술잔과 굴러다니는 병, 과일 쪼가리 등을 뒤로한 채, 여관방으로 올라온 두 사람은 곧 잠자리에 들었다.

이곳의 침대는 과학이 아니었다. 푹신함과는 거리가 먼 딱딱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채워 넣은 짚이 오래된 것인지. 축축하고 냄새도 났다.

발밑으로는 사람 손만 한 쥐새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가 기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벨로크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발을 몇 번 굴러서 불청객들을 쫓아냈을 뿐이다.

“이런 세상이지.”

양팔에 머리를 기댄 벨로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다.

자연이 뿜어내는 소리건만, 어째선지 유투브로 틀어놓은 것 같다.

손만 뻗으면 금방이라도 핸드폰이 잡힐 것만 같았다. 아. 밝기 줄여야 하는데. 쓸데없는 생각과 함께 벨로크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마을을 구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부디 가시는 여정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감사합니다요. 나리들. 몸조심 하십시오.”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두 사람은 길을 떠났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영주는 죽었고, 도적단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마을을 지켜주던 병사들이 죽었다.

농사나 짓던 촌부들끼리 이 마을을 지킬 수나 있을까? 벨로크가 잠깐 고민했지만,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괜한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마을 사람들이 폐허가 된 성의 잔해를 뒤지며 돈 되는 것들을 다 챙기고 있었다.

대부분은 으깨진 시체가 나왔지만 이따금씩 금화나 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벽돌을 헤집었다.

‘저런 집념과 독기라면 어떻게든 살아가겠군.’

벨로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고삐를 쥐었다. 물론 장비의 무게 때문에 말을 탈 수는 없었다. 그냥 쥐고 걸어갈 뿐이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 벨로크가 중얼거렸다.

“뭔가 비참한데.”

“하나뿐인 마차가 성과 함께 깔려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두 사람은 계속해서 대로변을 걸었다.

떠오르는 태양이 저물고 달이 고개를 내미는 횟수가 반복될 만큼.

모닥불을 피우고 끓여 먹은 스튜의 접시가 늘어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중에는 기사임을 알아보고 식량이나 술을 바친 상인도 있었으며, 재산을 탐내며 덤빈 도적들도 있었다.

신성 왕국까지의 순례를 위해 길을 나선 순례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특이한 집단이 있었다.

벨로크만큼이나 번쩍거리는 판금 갑옷을 걸친 기사들과 흰색 법복을 입은 사제들의 행렬이었다.

그 숫자만 해도 스무 명이 넘어갔으니, 위세가 대단했다.

제일 선두에서 말을 몰던 성기사 한 명이 벨로크 일행을 발견하고는 먼저 다가왔다.

“거기. 길을 비켜라. 네놈들은 누군데, 신성한 대리자들의 앞길을 막는가.”

성기사의 음성에는 수틀리면 치워버리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이를 들은 아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벨로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그녀가 재빨리 앞으로 나가며 호통 쳤다.

“웃기는 소리. 그쪽이야말로 먼저 비켜라.”

“뭐라? 대체 네놈들은 누구인데··· 음? 기사?”

성기사가 끼고있던 면갑을 올렸다. 그러자 가까워진 벨로크 일행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먼지와 때가 조금 타긴 했지만, 틀림없는 풀 플레이트아머 였다. 한 눈에 보아도 대단한 명품으로 보일 정도.

‘기사라는 양반들이 말도 안 타고 왜 걸어서 다니는 거지?’

성기사의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벨로크가 매고 있는 거대한 대검에 시선이 닿은 것이다.

그렇군. 저런 걸 매고 있으면 말이 견디지를 못하겠군. 장식용 아닌가. 저걸 어떻게 휘둘러?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성기사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면갑을 내렸다.

“우리는 지금 신의 부름을 받아서 가는 것이오. 그대들이 기사라고 한들 우리를 물러서게 할 순 없을 거요.”

충실한 무장 덕분인지, 아델을 기사라고 착각한 성기사가 말했다. 아델 또한 지지 않았다.

“아무리 교회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한들. 이 대로는 국왕 폐하와 하멜른 영주의 칙령으로 만들어진 것. 그렇다면 귀족인 나의 주인에게 우선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길을 먼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한쪽이 양보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체면과 명예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귀족과 교회의 다툼이 된 것이다.

오. 말 잘하는데? 두 사람이 싸우든 말든 뒤쪽에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던 벨로크는 새삼 그녀의 언변에 감탄했다.

맨날 욕을 달고 살아서 그렇지. 아델은 꽤나 영민한 아이였다. 그러니까 평민에서 기사의 종자가 된 것 아니겠는가.

아델의 반박에 잠깐 머리를 굴린 성기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 대로는 시민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것 아닌가? 그들에게도 우선권이 있는 것이오.”

“고혈이라고? 그대는 지금 영광스러운 국왕 폐하와 하멜른의 영주를 모욕한 것인가?”

“아니, 그건··· 이익. 말장난은 여기까지요. 더는 우리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오.”

스르릉

말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성기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아델도 검을 뽑았다.

“카단. 무슨 일인가?”

“이 사람들은 대체?”

어느새 다가온 성기사의 동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로에서 난데없이 칼부림이라니? 선두의 성기사. 카단이 바로 답했다.

“이 기사가 지금 나를 모욕했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카단은 지금 기분이 나빴으니까.

평소에 신앙과 교리를 공부하며 수행을 쌓은 자신이 무식한 기사에게 말로써 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그러자 교단 일행의 기세가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교회와 귀족들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만큼. 그 여파는 특히나 강했다.

성기사의 동료들도 무기를 뽑아 들었고, 사제들도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

평화로운 대로에서 순식간에 20대 2의 싸움이 일어나려고 했다. 바로 그때.

“그만.”

벨로크가 아델과 성기사들 사이에 난입하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을 한 번 노려본 아델이 재빨리 검을 집어넣고는 보필하듯 벨로크의 옆에 섰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아델을 째려본 카단이 벨로크를 보며 빈정거렸다.

“이 기사의 주인 되시나?”

“그렇소.”

“시종이나 하인도 없고, 떠돌이처럼 보이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으신가 보군? 판금 갑옷까지 내릴 정도라니.”

“뭐, 부족한 정도는 아니지.”

벨로크가 유들하게 넘기자, 성기사도 어깨를 으쓱였다.

“지체 높은 가문이신가? 그렇다면 아랫사람 관리를 좀 더 확실히 하셔야겠구려. 약간 예의범절이 없는 듯 한데...”

“욕은 그쪽이 먼저 하지 않았나? 검도 그쪽이 먼저 뽑았고, 그래서 하고픈 말이 뭐요?”

"...그 주인에 그 부하로군."

입술을 씹은 성기사가 분노로 몸을 떨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교회의 위신과 체면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신의 이름으로 너희를 처단하기 전에 당장에 길을 비키란 소리다!”

결국 참지 못한 카단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단한 기세였지만, 악마의 기운도 받아 넘긴 벨로크에게는 가소로웠다.

벨로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였다.

“오. 그러시군. 그렇다면 비켜드려야지.”

벨로크와 아델이 비켜서자. 서슬 퍼런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본 카단이 중얼거렸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어딜 국왕의 개 따위가.”

신을 모시는 자가 말하는 것 치고는 어투가 좀 불순하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궁금한 것이 있었다. 벨로크가 물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두 기사의 콧대를 꺾었다고 생각한 걸까? 말을 몰던 카단이 건방진 어투로 물었다.

“뭐냐?”

“이 많은 숫자의 인원을 데리고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카단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오커 영지로 간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곳에 악마가 있다더군.”

“오?”

벨로크가 반응을 보이자 의기양양해진 카단이 턱을 치켜 올리며 말을 이었다.

“너희같이 허황된 명예니, 돈을 쫓는 놈들과 우리는 다르다. 진정한 정의를 바로 세우러 가는 것이지. 이건 고귀한 성전이 될 것이다.”

듣고 있던 아델이 비웃었고, 벨로크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지만, 제 말에 취한 카단은 전투마의 속도까지 줄여가며 중얼거렸다.

“이제 그곳에 계신 사제님들과 힘을 합쳐 악마를 몰아내리라. 신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가봤자. 불에 타버린 교회와 머리통이 잘린 악마의 시체밖에 못 볼 텐데. 마음속의 말을 숨긴 벨로크가 그들의 행렬을 응원해주었다.

“그렇군. 꼭 해내길 바라지.”

성기사들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은 다시 걸었다. 아델이 큭큭 웃었다.

“병신들 아닙니까?”

“들리겠다. 아델. 그러고 보니 추천장이 있었지. 이걸 먼저 보여줄 걸 그랬나?”

잡담과 함께 좀 더 걷자. 마침내. 하멜른의 성문이 보였다. 검문이 얼마나 까다롭든, 사람이 얼마나 모여 있든 상관없었다.

기사란 이 시대의 기득권층이었으니까.

여느 때처럼 사람들을 걷어차며 길을 뚫은 아델이 입구의 병사에게 호통 쳤다. 콧수염을 길게 기른 병사였다.

“거기 너! 당장 영주께 소식을 아뢰어라! 나의 주인이신 벨로크 하이네 님이 뵙기를 청하신다고 말이다.”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사내와 여인의 모습에 병사가 기겁했다.

“아··· 알겠습니다요. 나리들. 일단 따라오시지요.”

벨로크와 아델은 병사를 따라서 도시에 들어섰다. 하멜른은 나쁘지 않은 도시였다.

로벤 보다는 작았지만, 오커 보다는 크고 깨끗했다. 하지만 이 도시 역시 무언가 이상했다.

도시 곳곳에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던 것이다. 그 덕분인지 매캐한 탄내도 사방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화재인가? 아니, 무언가 좋은 냄새도 나는데? 단체로 고기라도 굽는 건가?

두 사람이 코를 킁킁거리자. 안내를 맡았던 병사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저희 도시가 처음이시죠?”

“그렇지.”

“그렇다면 앞으로 보시게 될 풍경이 조금은 낯설 수도 있습니다만...”

“이곳에 뭐가 있나?”

벨로크의 물음에 얼굴이 살짝 핼쑥해진 병사가 답했다.

“현재 하멜른에서는 교회의 주도하에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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