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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22화 (22/222)

22

뱀소굴

두 악마는 일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얼굴이 마치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한껏 치켜있는 눈동자와 일자로 다문 입술.

눈앞에서 파리가 날아간다고 해도 그대로 있을 기세였다.

피식

돌연 뱀 영주가 웃었다. 입가가 살짝 벌어졌다. 아니, 점점 커졌다. 웃음소리도 더 커졌다.

“하하하하하.”

옆에 시립해 있던 샘도 낄낄거렸다. 그 소리는 쏟아지는 빗소리와 맞물려서 꽤나 기괴하게 들려왔다.

번쩍하며 천둥도 쳤다. 영주와 샘의 그림자에서 파충류의 실루엣이 꿈틀거렸다.

광소를 터트리고 있는 둘을 보면서 벨로크는 저 자식들이 정체가 탄로 나니까 무안해서 계속 웃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물까지 흘려가며 끅끅거리던 뱀 영주가 웃음을 뚝 멈췄다.

“정말이지··· 재밌군.”

목소리 톤도 낮아지고, 말투도 바뀌었다.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은 뱀 영주가 찢어져라 미소 지었다. 입안으로 톱니 같은 이빨이 흉흉하게 빛났다. 동공도 세로로 갈라졌다.

놈들이 인간의 탈을 조금씩 벗어 던지고 있었다.

“말하는 거로 보아하니, 알면서도 온 것 같은데. 먹어봤나? 야들야들한 것이 말이야. 별미라네. 특히 난 가슴 부위가 좋더라고. 그것도 암컷.”

뱀 영주가 아델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쪽 빨았다. 샘도 군침이 도는지 어느새 입가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더러운 악마 새끼들이!”

차르릉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두 괴물의 시선을 받은 아델이 검을 뽑아 들었다. 벨로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는 끝났다. 건질 만한 정보도 딱히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족칠 걸 그랬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레벨 업 시간이었다. 아델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뱀 영주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악마? 아하. 알겠군. 왜 중무장한 기사 두 명이 이곳까지 왔나 했는데. 내가 식인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나? 악마를 잡고 명예를 드높이려고? 글쎄, 그것만 가지고 나를 악마라고 매도하기에는 비약이 심한데.”

“아니, 넌 악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거··· 컥.”

뱀 영주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벨로크의 손에 들린 석궁이 불을 뿜었기 때문이다.

벨로크는 굳이 긴말하지 않았다. 교회의 변고와 마을의 소문, 자신의 스킬 등 모든 정황이 저놈들이 악마라고 말해주었으니까.

어차피 싸울 텐데.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입안에 화살이 박히자, 영주의 고개가 뒤로 팍 젖혀졌다. 그가 양팔을 늘어트린 채, 대롱대롱 흔들렸다.

“영주님! 컥.”

샘도 소리를 지르다가 입안에 화살이 박혔다. 아델이 석궁을 쐈기 때문이다.

“끝난 겁니까?”

쇠뇌를 손에 든 아델이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질문했다. 벨로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미 악마를 상대해봤다. 녀석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강대한 힘을 안다.

“이렇게 쉽게 잡을 리가.”

“흐흐흐. 잘 알고 있군.”

뚜두둑

뼈 소리와 함께 뱀 영주의 고개가 오뚜기처럼 돌아왔다. 녀석이 입을 헤 벌리더니 손을 뻗어서 목에 박힌 화살을 쭈욱 뽑았다. 이윽고 악력만으로 화살대를 부러트려버렸다.

“인사가 거치시군요.”

샘 또한 입을 오물거리면서 화살을 통째로 씹어 먹고 있었다.

기이한 행태를 일삼는 두 괴물의 모습에 아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늑대 앞에 선 양이 된 기분이었다.

‘대체 저게 무슨··· 벨로크 님은 로벤에서 저런 걸 상대하셨던 건가?’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

“저것 봐라. 악마가 맞지 않나.”

얼어붙은 아델과는 달리 벨로크는 여유로운 태도로 검을 뽑았다. 괴물 놈이 어디서 되도않는 말장난인가.

거대한 대검. 도살자가 벨로크의 손에 쥐어졌다. 단순히 검을 뽑아서 바닥에 기댄 것만으로 쿠웅하며 진동이 울렸다. 뱀 영주가 의자에 앉은 채 박수를 쳤다.

“오오. 저게 그 인간 여섯을 한 번에 토막 냈다는 검인가? 과연 자신할만하군. 놀랍도록 무식해.”

“네놈들을 죽은 부하들 곁으로 보내줄 친구이기도 하지.”

“하하. 그거 기대하지.”

벨로크의 서슬 퍼런 기세에도 불구하고 뱀 영주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는 기적을 다루는 사제나 성기사 혹은 주문쟁이도 아닌, 일개 기사가 악마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놈의 검이 거대하다 한들. 한낱 날붙이일 뿐.’

게다가 놈은 인간이다. 저 정도 크기의 대검이라면 몇 번 휘두르면 지칠 것이다. 스피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힘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벨로크는 뱀 영주의 오만한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포식자인 양, 인간을 먹잇감으로만 생각하는 괴물 녀석.

‘한 줌 경험치로 만들어줘야겠군.’

결심한 벨로크가 대검을 들어 올렸다. 뱀 영주가 느긋하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죽이지는 마라. 샘. 주인께서 녀석을 새로운 그릇으로 사용하시겠다는군.”

“알겠습니다.”

씨익 웃은 샘의 배가 올챙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윽고 입을 벌리자 수십 마리는 될법한 뱀들이 채찍처럼 쏟아졌다.

푸화아악

혓바닥을 넘실거리며 쏟아지는 파도가 사뭇 위협적이었다.

“아델! 휘말리지 않게 조심해라!”

“네···네!”

벨로크가 크게 소리치자, 퍼뜩 놀란 아델이 반사적으로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용맹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행동.

하지만 벨로크는 종자의 겁먹은 모습을 이해했다.

스킬과 스탯의 도움을 받는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악마들의 모습에 공포심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뭐든지 처음이 힘든 법. 가르쳐주고 이끌어준다면 그녀는 앞으로 훌륭히 제 몫을 해낼 것이다.

“나와 녀석의 전투를 잘 봐라. 악마를 상대하는 법을 가르쳐주마.”

벨로크가 냅다 달려 나갔다. 갑옷이 철컹거리고 돌바닥이 쿵쿵 울렸다. 이윽고 한 발 크게 내디딘 벨로크가 몸을 회전시키며 대검을 휘둘렀다.

샘이 눈을 빛냈다. 자신이 더 빠르다. 놈의 검이 닿기 전에 파 묻어줄 심산이었다.

그 순간. 벨로크가 이를 악물며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스탯으로 강화된 괴력 같은 힘이 한층 더 폭발했다.

그러자 벨로크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부우웅

충분한 가속도가 더해진 대검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샘이 토해낸 뱀들이 일거에 잘려 나갔다.

“뭙?”

한순간에 혓바닥이 잘려 나간 샘이 당황했다. 저 육중한 대검의 파괴력은 짐작했었다.

묵직한 무게감만큼이나 원심력이 더해진다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테니까. 하지만··· 그 속도가 문제였다.

‘저걸 이렇게 빨리 휘두른다고? 대체 힘이 얼마나 세길래?’

샘은 당황했지만, 이윽고 정신을 추스르며 자신의 신체를 개조시켰다. 아무래도 진심을 다해야 할 것 같았다.

말랑말랑한 살갗 대신 강철도 튕겨내는 시퍼런 비늘이 돋았다. 돌도 부숴버리는 손톱과 발톱도 자라나며 목이 쭈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완연한 괴물이 된 샘이 울부짖었다. 녀석이 두 팔을 쭈욱 뻗었다. 그러자. 마치 고무처럼 늘어난 양팔이 벨로크에게 쏘아 들어왔다. 순식간에 뻗어오는 두 개의 점.

샘은 벨로크의 갑옷 틈새를 노렸다. 겨드랑이나 투구 사이, 혹은 관절 이음부 같이 파고들기 쉬운 곳.

샘의 손톱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하지만 벨로크는 여유로웠다. 그는 남는 한 손으로 대검의 옆면을 받친 채, 방패처럼 들이밀었다.

오직 사람 몸체만 한 대검으로만 할 수 있는 무식한 돌격. 샘의 양팔이 부러진 꽃처럼 퉁 튕겨 나갔다.

하지만 샘은 당황하기는커녕.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걸렸구나! 캬아악!”

샘의 목 또한 한순간에 늘어나며 날카로운 이빨이 벨로크의 목덜미로 향했다. 시퍼런 독이 넘실거리는 게 물리면 결코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벨로크는 무심한 눈으로 그걸 바라봤다. 뱀이라는 녀석의 신체적인 특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틀리면 깨물 거라는 것도 예상했다.

괴물의 송곳니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에도 벨로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벨로크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박치기를 시전했다. 깡. 쇠울리는 소리와 함께 샘의 머리통이 튕겨 나갔다.

“컥.”

톱니 같던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 큰 충격을 받은 샘이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기 직전.

머리 위로 거대한 음영이 졌다. 샘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그러자 쏜살같이 떨어지는 쇳덩이가 보였다. 검이라기엔 너무나 무식했으며, 철퇴라기에는 퍽 날카로운···

콰직

샘은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채, 피떡이 돼서 죽었다. 콰아앙. 샘의 몸체를 부수고도 힘을 잃지 않은 도살자가 애꿎은 돌바닥을 부쉈다. 파편이 하늘을 치솟았고 악마의 살점도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를 해낸 검은 머리의 기사. 벨로크가 숨을 조금 몰아쉬었다. 그리고 검을 어깨에 척 걸치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렇게 잡는 거다. 아델.”

“시발... 이게 뭔.”

대답은 뱀 영주에게서 나왔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혐오스럽게만 보이던 녀석의 파충류 눈이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팔꿈치를 괴고 있던 자세도 턱 풀려있었다.

혼란을 느낀 뱀 영주가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껌뻑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검을 한 번 휘둘렀다. 샘이 변신을 했다. 박치기를 맞았다. 검이 다시금 휘둘러졌다. 샘이 죽어버렸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끝장났다.

결론이 났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괴물?”

뱀 영주가 입을 떠듬거리며 말했다. 벨로크는 코웃음을 쳤다.

“악마 새끼가 뭐라는 거냐.”

“벨로크 님···”

아델 또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벨로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돌연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세게 다물었는지. 잇몸에 피가 날 정도였다. 아델이 고개를 팍 숙였다.

“죽여주십시오.”

“뭐?”

“감히··· 주인을 보필하지는 못할망정 겁에 질려서 꼬리나 내리고 있었다니··· 저는 종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겁 좀 먹었다고 대뜸 목을 쳐달라니. 종자의 극단적인 행동에 오히려 벨로크가 당황했다.

'이놈의 중세랜드식 사고방식은 한 번씩 이해가 안 되는군.'

하지만 벌벌떠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벨로크가 아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런 상황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군. 전투가 끝나면 다시 얘기하지.”

“알겠습니다.”

아델이 눈을 빛내며 무기를 꼬나 쥐었다. 그 기세가 굉장히 흉흉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던 모습은 없었다.

두 기사의 모습에 뱀 영주는 아까 전까지의 위엄도 잊은 채,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그 순간.

홀의 문이 콰앙 열렸다. 위층에서 일어난 소란 때문에 뱀 영주의 부하들이 올라온 것이다.

그 숫자가 무려 스물이 넘어갔다.

“영주님! 이게 대체 무슨··· 헉.”

부하들은 손님으로 모셔온 두 기사가 검을 뽑아 들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고, 구석에 처박혀 곤죽이 되어버린 괴물 시체에 또 놀랐다.

마지막으로 범접할 수 없는 공포심으로 언제나 그들을 사로잡던 영주가 자신들을 열렬히 환영하자 또 놀랐다.

“오오. 어서 와라. 나의 충직한 검들아. 이 씹어먹을 떠돌이 놈들이 감히 나의 목숨을 위협했다. 나를 도와서 놈들을 무찌르자.”

“영주님···?”

“어이, 진짜 두목 맞아?”

부하들은 당황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수틀리면 사람을 죽여대고 인육을 먹어대던 영주가 저런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고? 저건 마치 구세주를 바라보는 얼굴이 아닌가.

그런 부하들이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아니면 악마로서의 위신이 깎인 것에 대한 분노일까.

영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벨로크와 아델을 가리켰다.

“놈들을 죽여라! 그렇다면 금화 주머니를 내리겠다! 아니, 보석을 주겠다!”

효과는 굉장했다. 부하들의 마음속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눈에는 탐욕이 깃들었다.

녀석들이 무기를 꼬나 쥐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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