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20화 (20/222)

20

뱀소굴

허리춤에 검을 찬 사내들이 여관 안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테이블에 고개를 박은 채, 그 상황을 무시했다.

당연했다. 저들은 오커 영주의 직속 부하들이었으니까.

끼어들었다간 결코 좋을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아버지!”

“제, 제발 딸을··· 딸을 놓아주십시오.”

여관주인이 한 사내의 팔을 붙잡으며 눈물로 애원했다. 하지만 검을 찬 사내는 콧방귀만 낄 뿐이었다.

“주인장.  당신 딸년의 얼굴이 반반해서 하녀로 뽑아가는 거라니까? 영광인 줄 알라고!”

사내가 인심 써준다는 어조로 말했지만, 여관주인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성에 들어간 아이들이 다시 밖으로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소! 내 딸아이는 안··· 커억.”

모시는 주인이 욕보이자 분노한 사내가 여관주인의 명치를 냅다 걷어찼다.

“네놈. 지금 영주님을 모욕한 거냐?!”

쿠당탕

여관주인이 바닥에 쓰러져 끙끙거렸다. 사내가 그런 주인의 팔을 가차 없이 짓밟았다.

다른 녀석들은 휘파람을 불면서 여관주인의 딸을 희롱하고 있었다. 가슴을 만지거나 얼굴을 핥기도 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쓰러져 있던 여관주인이 눈을 붉게 물들이며 이를 악물었다.

사내가 여관주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딸년을 보내는 게 싫다면 당신이 직접 다른 사람을 구해오는 게 좋을 거야, 납치를 하든, 돈으로 사든. 그게 아니라면 우리한테 성의 표시를 좀 해줘. 그렇다면 풀어주지.”

사내가 여관주인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이며 비열하게 미소 지었다.

“그··· 그렇담. 돈을.”

여관주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려는 찰나.

가게의 문이 콰앙 열렸다. 사내들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응? 뭐냐?”

“이봐. 지금 여기는 자리가 없으니 꺼··· 허억, 기사가 왜 여기에.”

난데없이 중무장한 기사 두 명이 나타나자. 사내들이 기겁했다.

영주의 부하들이라고 모든 소식을 딱딱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시대에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정보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낮부터 이곳에서 술을 마시던 사내들은 더더욱 그랬다.

사내들이 당황하든 말든 가게로 들어온 벨로크가 주위를 살폈다.

무기를 차고 있는 도적 같은 놈들과 난장판이 된 가게. 쓰러진 여관주인과 울고 있는 여인.

‘전형적이군.’

벨로크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사내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어깨를 쳐대면서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것이··· 저희는 이곳 영주님의 부하들인데. 주인장의 딸을 하녀로 데려가려고.”

부하가 영주의 이름을 팔았다. 보통 귀족들은 평민들이 무슨 일을 당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괜스레 움직여서 지배자들하고 마찰을 일으키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의 지배자인 악마를 사냥하러 온 벨로크 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벨로크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허락은 맡았고?”

“그게···”

“뭘 그렇게 꾸물거리는 것이냐! 벨로크 님이 묻지 않나!”

차르릉

사내들이 꾸물거리자. 아델이 격하게 소리치며 검을 뽑았다.

그녀는 영주의 부하들이 악행을 저지르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저 무지렁이들이 주인의 물음에 늦게 답하는 것에 더 분노했다.

반쯤 휘어진 곡도가 서슬 퍼런 예기를 뿌리자. 이를 본 몇 있던 손님들마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이제 여관 안에는 뱀 영주의 부하들과 주인 부녀, 베로크와 아델 뿐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났다. 주인의 딸을 희롱하며 젖가슴을 만지던 사내였다.

“거, 말 한 번 좆같이 하는군!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떠돌이 아닌가? 이곳은 우리 영주님의 땅! 이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건가?!”

‘생긴 것 답지 않게 말을 조리 있게 하는군.’

벨로크가 눈에 이체를 띄었다.

“어이, 아론! 너 미쳤냐!”

사람이 여럿 모여 있다면 그중 한 명은 꼭 용기 있는 녀석이 있었다.

유난히 얼굴이 더 빨갛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사내. 아론이 바로 그랬다.

“기··· 기사님.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잠깐. 어이, 아론.”

“비켜. 시발! 버릇을 고쳐줄테니까.”

아론이 말리는 사내를 밀치고 벨로크에게 다가갔다. 떡 벌어진 어깨와 키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그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살인 전문가였다. 거기에 술기운이 더해지자 망설임도 사라졌다.

“이 새끼가 뒤질라고!”

“아델, 잠깐만.”

“벨로크 님?!”

주인이 받은 모욕에 검을 휘두르려는 아델을 벨로크가 막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아주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당한 방법으로 적의 숫자를 줄일 수 있겠는데.’

이를 본 아론이 씨익 웃었다.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역시나 남의 땅에서 함부로 행동하기는 힘든 모양이지?

기세를 얻은 아론이 쿵쿵 다가갔다. 그리고 벨로크의 얼굴에 고개를 팍 들이밀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꺼져라. 대가리 터져서 뒤지기 싫으면.”

벨로크는 일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동자는 오히려 깊게 가라앉았다.

속으로는 계획이 이렇게 잘 풀릴 수가 있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바닥에 침을 뱉던 아론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이 젊은 기사 놈이 겁을 집어먹었다 생각하고, 와하하 웃으며 뒤를 돌았다.

“고맙다. 명분 만들어줘서.”

그의 등 뒤로 벨로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커덩 소리와 함께 거대한 풍압도 느껴졌다.

“무슨 개소··· 어?”

단말마를 남긴 아론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하늘을 날았다.

촤아아악

피와 내장이 비처럼 쏟아지며 먹다 남은 음식과 술잔 나무 탁자에 스며들었다.

여관 특유의 쿰쿰한 냄새에 짙은 피비린내가 더해졌다.

뒤이어서 혀를 내밀며 죽은 아론의 상체가 철푸덕 떨어졌다. 뱀 영주의 부하들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쉭 하고 지나간 것 같은데. 사람이 두 토막 난 것이다.

“꺄아아아악!”

여관주인의 딸이 요란스럽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사내들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론의 피와 살점이 묻은 쇳덩이가 나무 바닥에 박힌 채, 피를 뚝뚝 흘려대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한 사내가 벨로크를 손가락질하며 떠듬거렸다.

대검··· 거대한 대검이었다. 그것도 무지막지할 정도로 크고 무식했다. 마치 거인족이나 휘두를법한 무기.

시발. 저런 걸 인간이 휘두른다고?

지금 부하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죽은 동료에 대한 복수나 애도 따위가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목격한 것에 대한 공포감뿐.

모두들 얼어붙어 있을 때. 여관 한복판에서 경쾌한 박수 소리가 울렸다.

짝짝짝

“역시 훌륭하십니다. 벨로크 님! 어째 갈수록 솜씨가 좋아지시는 것 같습니다.”

종자 아델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좋아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반 토막 났는데. 그 앞에서 박수를 친다.

‘좆됐다. 잘못 걸렸어.’

이를 본 부하들이 온몸 가득 식은땀을 흘렸다. 저 새끼들도 자신들의 두목만큼이나 미친놈이었다.

벨로크가 땅에 박혀있던 대검을 들어 올려서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태연하게 말했다.

“몇 번 휘두르다 보니까 적응이 되는군.”

“앞으로 점점 손에 익으실 겁니다.”

자기들은 무시한 채,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서 뱀 영주의 부하들도 서로 속삭였다.

금세 결론이 나왔다. 방금 있었던 일은 멍청한 아론 새끼가 눈이 돌아서 기사에게 개겼다. 그래서 뒤졌다. 로 가볍게 끝낼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내가 아론의 시체에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이런 미친 새끼. 감히 기사님들에게 그딴 망발을 해? 뒤져도 싼 새끼.”

“맞아. 이런 쓰레기 같으니. 평소에 거들먹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사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은 동료를 모욕했다. 그리고는 헤헤 웃으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리. 아론 새끼의 불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요.”

의리라고는 없는 도적다운 행동이었다.

“사과를 받아주지.”

벨로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들이 눈에 띄게 안도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감사합니다. 나리. 그렇다면 저희는 이제 가보겠습니다요.”

벨로크가 슬쩍 미소 지었다. 그가 종자를 불렀다.

“아델.”

“네.”

주인의 뜻을 알아들은 아델이 대뜸 곡도를 휘둘렀다.

촤아악. 피가 튀며 웃고 있던 사내의 손목이 하늘을 날랐다.

“어?”

갑작스레 느껴지는 화끈함에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아델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검광이 번뜩이고 목이 잘린 사내가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졌다.

여관 주인의 딸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영주의 부하들도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왜! 왜! 숀을!”

“용서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벨로크가 바닥에 대검을 쿵 찍은 채, 한 손으로 귀를 팠다. 무슨 개가 짖냐는 소리였다.

“사과는 받아준다고 했지만··· 보내준다고는 안 했는데?”

“뭣?”

“네놈들은 나와 내 종자를 모욕했다. 감히 나. 벨로크 하이네를 어머니도 없으며 용기도 없는 비겁한 겁쟁이 새끼라 불렀고, 내 종자를 거리의 창녀라고 욕보였지.”

시발. 우리가 언제.

부하들은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싶었다. 분명 아론이 위협을 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저렇게 지독한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분과 체면을 핑계 삼아 뱀 영주의 세력을 줄여두고 싶었던 벨로크 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을 잡아다가 팔아넘기는 짓을 일삼는 자들이니.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고.

“그렇지 않나? 주인장!”

벨로크가 여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어느새 딸을 데리고 구석에 숨어있던 여관 주인이 영주의 부하들을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그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실로 영광스러운 기사님! 모두 사실입니다! 저 폭도들이 기사님을 모욕하고 겁박했습니다. 이 도돈이 두 눈과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하나뿐인 딸을 욕보이고 짓밟은 사내들이다. 여관주인은 뒷일은 생각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되는대로 퍼부었다. 수틀리면 그냥 재산을 챙겨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 순간. 부하들은 느꼈다. 눈앞의 이 기사는 자신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다.

“이··· 이 개새끼가!”

“시발. 죽여 버리겠어!”

그렇다면 싸울 뿐이다.

부하들이 거친 욕설과 함께 무기를 꼬나 쥐었다. 핏발이 선 눈과 일그러뜨린 얼굴이 썩 위협적이다. 기세를 올린 그들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벨로크도 이를 드러내며 땅에 박아두었던 대검을 들어 올렸다.

힘줄이 비죽 솟아오르며 끔찍한 쇳덩이가 웅웅 울렸다.

“한 녀석은 살려주마. 영주에게 소식을 전해줘야 할 테니까.”

부우웅

파공성과 함께 여관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흔들렸다.

여관주인은 가진 재산을 다 챙겨서 딸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 하긴 자신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가게의 집기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그 밑에는 토막 난 인간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이런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하나뿐인 딸의 목숨을 살렸으니 싸게 먹힌 것 아닌가.”

벨로크가 선반에 남아있던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아델 또한 바구니에 담긴 빵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자기 부하들이 죽었는데. 눈이 돌아간 영주가 복수하려 들지 않을까요?”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엔 안 그럴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음. 귀족이니까? 게다가 놈은 식인을 즐기는 악마이기도 하지. 악마가 인간을 동등하게 생각할까? 아니, 그냥 이용하기 편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도 악마라고는 말도 못 하고 메에에 거리던 산양 대가리를 잡아본 게 끝이니까.

하지만 어째선지 그럴 것 같았다.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해 본 21세기 현대인의 감이라고 봐도 좋았다.

‘뭐, 복수하러 한꺼번에 와준다면 그 자리에서 다 죽여 버리지.’

방금 있었던 도적들과의 전투에서 벨로크는 느꼈다. 괴력과 괴물 같은 검이 합쳐지니, 그는 인간 병사 수십 혹은 백이 넘게 몰려와도 썰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군요!”

아델이 고개를 끄덕이며 먹고 있던 빵을 마저 삼켰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먹고 즐기며 여로를 풀었다.

피비린내가 올라오는 바닥과 죽은 자들의 시신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이제 곧 신호가 올 텐데.”

벨로크가 선반에 팔을 척 걸치며 말할 때였다.

똑똑

여관의 출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경. 저는 오커 영주님의 부하 샘 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있었던 무례를 사과드리고 싶습니다만,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