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악마
영주가 손바닥을 슥슥 비비며 집사를 불렀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노년인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창고에 넣어둔 갑옷을 가져와라. 그리고 금화랑 보석도.”
“갑옷이라 하시면···”
로벤 영주가 벨로크를 슥 쳐다봤다. 그리고는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풀 플레이트 말이다!”
벨로크가 눈을 빛냈고, 아델이 입을 헤 벌렸다.
풀 플레이트 아머. 각각의 두터운 철판을 마치 파츠처럼 이어붙인 판금 갑옷은 중세시대 갑옷의 최종판이자.
웬만한 창칼과 화살은 그냥 튕겨내는 보물이었다.
들어가는 쇳덩이와 다듬기 위한 장인의 솜씨가 필요한 만큼. 그 가격은 천정부지.
현대로 따지자면 고급 외제 차 한 대 값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 갑옷을 주겠다니.
로벤 영주는 어지간히 벨로크가 마음에 든 것이 틀림 없었다.
집사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는 할 말이 더 있는 듯 자리에 꾸물거렸다.
“알겠습니다. 참. 영주님.”
“뭔가.”
“거스트 경이 살아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가 분명 찢어 죽일 죄를 지은 것은 맞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로벤 영주를 보필한 것도 사실.
병사들이나 하인들이 함부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 죄인 놈이?! 당장에 목을 잘라 개들의 먹이로··· 아니, 잠깐.”
욕설을 내뱉던 로벤 영주가 턱을 쓰다듬었다. 잠시 머리를 굴린 그가 잔인하게 눈을 빛냈다.
“놈을 잘 치료해서 감옥에 가둬놔라. 내 직접 심문하겠다.”
“알겠습니다.”
집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벨로크는 영주의 속셈이 무엇인지 간파했다.
‘본보기로 삼을 셈이군.’
감히 주인의 목숨을 노린 가신이다. 두 기사의 가문은 풍비박산이 날 것이며, 감옥에 갇힌 거스트는 끔찍하고 불명예스럽게 죽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다른 가신들에게도 깊은 경고가 되겠지.
'뭐, 내가 알 바 아니지.'
곧 떠날 생각을 하던 벨로크는 신경을 껐다. 그렇게 영주 부녀와 담소를 나눈 벨로크와 아델은 같이 방으로 돌아왔다.
영주가 하사한 갑옷을 입어보기 위함이다.
사슬갑옷과 서코트도 경장무장으로서 나쁘지는 않았지만, 방호력 면에서는 조금 부족했다.
“축하드립니다. 벨로크 님. 아니, 이제는 영주님이 되시겠군요.”
아델은 침울해 보이는 기색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해맑게 웃었다. 잘된 일이다. 로벤 영주의 딸을 아내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벨로크는 이제 한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의 후계자가 되는 거니까. 그래, 분명 그럴진대.
‘어째서 이렇게 섭섭한 거지?’
자신의 마음이건만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아델은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벨로크가 갑옷을 입는 것을 도왔다.
영주가 하사한 풀 플레이트 아머는 분명 대단한 갑옷이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혼자 입고 벗기가 힘들다는 것. 필히 종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방 안에는 둘을 제외하고는 갑옷을 갈아 끼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청력을 돋구어 봤지만 밖에도 그들 말고는 다른 사람은 없어 보였다.
벨로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떠날 생각이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델이 잘못 들었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해줄 만큼 해줬고, 받을 것도 받았으니 갈 때가 되었다는 얘기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델의 얼굴에 경악이 차올랐다.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대체 왜?
아무리 대단한 무력을 가진 기사라도 땅을 가진 영주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갖은 고난과 기존 기득권들의 시기와 위협, 그리고 천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걸 내던지신다고?
아델의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벨로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모르고 있다. 이곳 로벤의 수명이 채 몇 달도 안 남았다는 것을.
지금도 영지 밖에서는 베이츠 영주를 비롯한 주위 영주들이 칼날을 갈고 있을 것이다.
물론 영주의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생각도 했다.
‘영주의 딸과 혼인을 한다면 내 발언권은 높아진다. 어떻게 준비를 한다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벨로크는 고개를 저었다. 결혼을 한다고 꼭 바로 영지를 상속받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로벤 영주가 죽어야 받을 것 아닌가?
그 기간 동안 벨로크는 계속 구르겠지. 그럴 바에야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서 더 좋은 곳에서 다른 기회를 잡는 것이 나았다.
갑옷도 얻고 여비도 모았다. 영주 부녀의 목숨도 구해줬으니 양심에 걸릴 것도 없다. 아니, 생각해보니 아델이 조금 걸린다. 정착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좋아했었으니까.
슬프지만 이곳에 남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줄...
“잘 생각하셨습... 아니, 벨로크 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를 뿐입니다. 어떠십니까. 움직임이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아델의 목소리 톤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좋은 일이 있는지 어깨도 으쓱거렸다.
섭섭해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군.
“음.”
벨로크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철컥철컥 하며 쇳소리가 울렸다.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전에 입던 체인메일보다 무게중심이 더 잘 잡혀있었다.
명품이다.
‘이거 괜찮은데?’
벨로크가 입가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시대에도 풀 플레이트를 가진 기사들은 그렇게 흔치 않았다. 더럽게 비쌌으니까.
기사들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돈이 나간다. 장비의 유지 보수, 종자와 군마를 먹이는 데 필요한 식비. 그리고 품삯까지.
일부 악독한 기사들은 종자에게 전투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품삯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벨로크는 그런 악덕 고용주가 아니었다. 벨로크가 웃으며 말했다.
“아델. 무엇이 갖고 싶으냐?”
이번 사교들과의 전투와 이전 전장에서도 그녀는 대단한 활약을 했다. 게다가 한결같은 충성심까지.
이런 부하를 챙겨주지 않으면 대체 누구를 챙겨준단 말인가.
“네? 벨로크 님. 저는 괜찮···”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품삯은 이미 과할 정도로 받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은 종자를 여럿 데리고 다녔지만, 벨로크는 아델 하나만을 데리고 다녔다.
자연히 고생을 한 만큼 다른 사람들의 배 만큼의 급여를 주었던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렇지. 아예 이 주머니를 통째로 주는 것이 낫겠군.”
아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벨로크가 로벤 영주가 주었던 보석 주머니를 통째로 내밀었다.
번쩍이는 오색찬란한 광채.
족히 금화 수십 닢은 넘을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무슨··· 받을 수 없습니다. 절대!”
그 어떤 기사도 종자에게 이런 대우를 해주지는 않는다. 아델이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벨로크는 미동도 없이 보석 주머니를 든 채 아델에게 내밀었다.
“팔이 무겁다.”
벨로크에게 있어 아델은 특별했다. 굳이 과거의 인연뿐만 아니라.
이 악독한 세계에 떨어진 와중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제 편인 것이다.
그만큼의 대우는 당연했다. 아델이 입술을 씹었다.
“과합니다.”
“전혀.”
“하아. 그렇다면 이걸로 충분합니다.”
주인이 고집을 꺾지 않자. 아델은 타협안을 택했다.
주머니를 받아서 안에 있는 보석을 하나 꺼내고는 나머지를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빼도 박도 못 하게 과거의 일을 꺼냈다.
“몇 년 전 산골짜기 마을에 기근이 들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녀의 나직한 말에 벨로크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3년 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델을 종자로 거두게 된 경위.
이 시대의 평민들은 먹고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꼭 질병 때문이 아닌 굶어 죽거나 맞아 죽는 것은 예사였으며,
돈 때문에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팔 정도였다.
“제가 지나가는 상인에게 노예로 팔릴 뻔한걸. 벨로크 님이 구해주셨지요.”
얼굴 반반한 어린 소녀가 노예로 팔려 가서 무슨 고초를 겪을까? 뻔했다.
성난 취객들을 접대하며 술 따르고, 몸 팔고,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고. 비참한 미래가 그녀를 기다렸겠지.
하지만 그녀는 구원받았다.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칼을 한 젊은 기사에 의해서.
그리고 영광스러운 기사의 종자가 되었다. 그녀로서는 그것 하나만으로 차고 넘치는 보수였다.
아델이 부끄러운지 말을 하면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을 슬쩍 넘겼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 목숨은 벨로크 님의 것이라고, 오직 당신만을 따르겠다고.”
한 치의 틈도 없는 눈빛과 진중한 말투. 마음속에서 우러난 깊은 충성심.
벨로크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졌다는 듯 푸우 한숨을 쉬었다. 벨로크가 보석 주머니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렇게 분위기 잡는 건 반칙 아니냐. 쯧. 미련한 녀석. 뭘 좀 챙겨주려고 해도···”
마침내 주인의 고집을 꺾자 아델이 슬며시 웃었다.
“그저 지금처럼만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벨로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하나 더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남은 건 언제 도망치냐는 건데. 오늘 밤은 좀 쉬고..."
벨로크가 야반도주의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꺄아아악!”
베로니카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만큼이나 지하감옥의 바닥은 습기로 가득했다.
차가운 돌바닥에 거스트가 내동댕이쳐졌다.
“우읍.”
거스트가 고개를 들어 간수들을 노려보자. 병사들이 욕설과 함께 거스트를 창대로 후려쳤다.
“시발. 눈 안 깔아? 아직도 지가 기사인 줄 아는 건가?”
“더러운 반역도 주제에. 캬악 퉤!”
한 간수가 거스트의 얼굴에 걸쭉한 침을 뱉었다. 한낱 병사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거스트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들은 다 자신들의 부하들이었다.
하지만 거스트가 내란죄로 감옥에 수감되자마자. 한순간에 태도를 바꿨다.
그들은 한참 동안 감옥에 서성거리며 이제는 죄인이 된 거스트를 구타하며 농락했다.
“그럼 뒤지기 전까지 잘 살아있으쇼.”
간수들이 낄낄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끼이익
지상과 이어지는 문이 닫히고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감옥이 거스트를 맞이했다.
“우우우웁!”
입에는 자결 방지를 위한 재갈, 몸은 쇠사슬로 꽁꽁 묶여있었다.
아니, 설령 이걸 푼다고 해도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벨로크의 검에 의해 힘줄이 잘려 나간 탓이다.
만신창이가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거스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시퍼렇게 빛나는 눈동자 속에는 오직 분노와 증오만이 가득했다.
‘죽인다. 죽여버릴 거다!’
꽁꽁 묶인 거스트가 몸을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창살 쪽으로 다가가 머리를 부딪히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쿵쿵쿵
이마가 찢어지고 얼굴이 피범벅이 됐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에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자신을 버린 영주, 농락한 옛 부하들 마지막으로 그 젊은 기사 놈!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저주한다. 저주할테다!
다 자신의 업보로 인해 생겨난 결과였지만 거스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욕했다.
바로 그때.
[실로 순수한 악의로군.]
거스트의 귓가로 한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쇠를 긁는 듯한 기괴한 음성.
그가 이마를 땐 채 흠칫 놀랐다.
[널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이제 보니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도 잠시.
복수.
그 한마디에 거스트의 이성이 마비되었다. 그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읍!”
어디서 온 누구인지,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묘한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감옥에 있는 어둠이 스르륵 움직이더니 자기들끼리 뭉쳤다.
[반갑다. 인간.]
이윽고 넘실거리는 연기가 된 존재가 쇠창살을 가볍게 넘어 거스트에게 다가왔다.
무형의 존재가 거스트를 슬쩍 보더니, 주위를 서성거렸다.
[오. 이제보니 기사였군. 실로 명예로운 자가 이런 나락에 처박혀있다니.]
[분명 누군가의 시기 질투를 받았겠지. 불쌍한 자 같으니. 쯧쯧.]
[네가 한 행동들이 지탄받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밖에서는 그보다 끔찍한 일들이 넘쳐난다던데.]
무형의 존재는 거스트가 듣고 싶어 하는 실로 달콤한 말들만 속삭였다.
욱씬 거리는 상처와 박살 난 자존심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궁지에 몰린 거스트는 그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 맞다! 난 억울하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복수하고 싶다!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그 마음을 읽은 무형의 존재가 크게 외쳤다.
[복수! 꿀처럼 달콤하며 창녀처럼 화끈하지.]
[내가 이뤄주겠다.]
“으읍!”
거스트가 눈을 빛내며 무형의 존재를 올려다봤다. 눈빛 속에서 번들거리는 광기를 읽은 연기, 아니. 악마 바호메트가 미소 지었다.
악의와 증오로 가득 찬 인간만큼 쓸만한 그릇은 없었다. 놈의 몸을 차지한다면 이블렛의 복수를 할 수 있으리라.
[너는 그저 한마디만 하면 된다. 나랑 계약하겠다고.]
[계약하겠나?]
거스트는 잠시 고민했다. 음침한 공간과 기괴한 존재. 그리고 계약이라는 말 한마디. 끔찍하게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피식 웃었다.
여기 가만히 있어봤자 교수대에 매달리기밖에 더하겠는가.
썩은 동아줄이든 뭐든 일단 잡고 볼 생각이었다. 거스트가 말했다.
‘물론이지.’
바호메트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파아아아
[계약은 성립되었다.]
쿠르릉
창살이 흔들리며 지하감옥이 요동쳤다.
바닥에 깔려있던 끈적한 어둠이 사방으로 치솟았다. 검붉은 기운이 감옥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거스트가 홀연히 서 있었다. 그가 팔을 슬쩍 움직였다.
뚜두둑
몸을 감싸고 있던 쇠사슬과 재갈이 손쉽게 끊어졌다.
자유를 찾은 거스트가 냅다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근육이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무엇보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이 강대한 힘.
이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이것만 있다면... 바깥의 인간들을 모두 찢어발길 수 있으리라.
내면의 힘을 주체하지 못한 거스트가 쇠창살에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무쇠가 한순간에 쪼개지며 입을 쩍 벌렸다.
“하하하하.”
거스트가 만족스레 웃으며 감옥을 빠져나갔다.
복수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힘이 마음에 드는가?]
바포메트의 목소리에 거스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무엇을 원하나? 내 모든 주겠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지만, 바포메트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 우둔한 인간은 몰랐다. 세상에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는 걸.
자신이 지금 영겁과도 같은 불지옥에 발을 들이밀었다는 것도.
[줄 필요 없다. 나는 이미 받았으니까.]
“뭐?”
[네 몸뚱아리는 내가 잘 써주마. 멍청한 인간아.]
“어?”
거스트의 생각이 뚝 끊겼다. 그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거스트의 몸이 들썩거리며 요란하게 흔들렸다.
뚜두둑 뚜둑
감옥 안에는 뼈와 살이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잠시 후.
메에에에!
흉측한 짐승 소리가 울려 퍼졌다.